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09화 (109/325)

[109]

'내가 있어도 한국 리그에서 준우승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 자신은 한국의 다른 선수들과 격차가 크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선 그 격차가 많이 줄어들거나 비슷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준우승을 겨우 했으니, 메이저리그에서의 우승이 더 힘들다는 의미였다.

메이저리그는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두 개의 리그로 구성되어 있다.

각 리그마다 서부, 중부, 동부의 리그로 나뉘어 있고 세 지역의 팀은 각각 다섯 개다.

다섯 개의 팀 중에 1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투수 왕국이라던 LA도 지역 리그에서 1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지역 리그에서 1위를 하고, 높은 승률의 2위를 해도 와일드카드와 지역 리그 우승팀들끼리 디비전 시리즈를 거친다. 그 후 리그의 챔피언십을 거치며 리그의 최종 승자를 가린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각 리그의 최종 승자가 붙는 마지막 경기, 월드시리즈가 있었다.

리그의 지역 우승이 쉬울지 아니면 한국 리그의 우승이 쉬울지 쉽게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리그의 우승보다 한국 리그의 우승이 쉽다는 건 당연했다.

'메이저리그의 리그 팀은 15개 팀. 한국은 전부 해 봐야 10개 팀이야. 그리고 실력은 한 단계 아래지. 그런데 한국 리그 우승도 쉽지 않아서야… 메이저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이 쉬울까?'

솔직히 동팔은 스크레이치와 계약했을 때 경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신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시금 현실에 부딪히자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안 돼. 나 혼자선 절대로…….'

분명 자신은 압도적인 구위를 가지고 기록을 매 경기마다 갱신했다.

한국 리그를 씹어 먹었다는 역대 투수들도 동팔에 비하면 많이 낮았다.

하지만 타선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다.

그리고 동팔이 등판하지 않은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무승부를 만들었다.

만약 무승부 중에 한 경기만이라도 승리했다면 올해 리그 우승은 오성이 아닌 RG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선수들은 물론 코치와 감독, 팬들이 많이 아쉬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때 동팔은 한동욱이 떠올랐다.

'내가 지아에 있든가, 동욱이 우리 팀에 있었다면…….'

그땐 두 사람이 있는 팀이 리그를 씹어 먹으며 압도적인 승률로 우승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팔은 그가 자신에게 했던 조언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차피 둘 중 한 사람만 성공해야 하는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니, 우리가 같은 팀에 있다면… 우승 확률은 더 높고, 둘 다 해방될 수 있으니까요."

내년에 두 사람이 있을 곳은 메이저리그다.

계약은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구단에서 아직 말은 없지만 기자인 지예를 통해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구단에서도 내년에 자신을 잡을 생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미리 제시해 온 포스팅 금액에 만족스러워 한다는 소문도 들었다.

모든 것은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동팔에게 좋은 소식이었다.

동팔이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은 RG의 약한 타선이 주된 이유다.

그보다 더 큰 것은 그가 매 경기마다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야 매일 새벽에 고통을 동반하더라도 회복할 수 있지만, 그건 말할 수 없었다.

말하더라도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특급 투수인 그를 혹사시킨다는 세간의 오명을 뒤집어 쓸 생각도 없을 것이다.

반면, 타자(打者)인 동욱은 매 경기마나 나서서 팀을 승리로 이끌 기회가 있었다.

동팔도 타격 연습을 많이 했지만 본 직업인 타자보다 잘 치는 건 무리였다.

지금 상황에 두 사람이 같은 팀에 들어가는 것 불가능했다.

"아… 몸값을 너무 띄웠나? 하지만… 그렇다고 어정쩡하면 한 시즌 이상 날릴 수도 있었어……."

아무리 메이저리그라도 두 사람을 동시에 데리고 오려는 구단은 거의 없었다.

구단은 두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아직 한국 출신의 선수에게 많은 돈을 쓰지 않는 건 쉽게 고쳐지지 않은 습관이자 선입견이었다.

적은 돈으로 데려왔으니 터지면 좋고, 안 되도 한 시즌을 지켜 본 다음 방출하면 그만이었다.

동팔과 동욱의 경우, 그간의 선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성적을 냈으니 그들도 이전처럼 낮은 금액을 부르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자국과 쿠바 및 다른 나라 출신 선수의 실력과 연봉을 생각하면, 실력에 비해 낮은 금액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냐. 어차피 메이저로 진출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야? 결국 동욱이도 내 생각을 듣고 몸값을 올렸잖아. 리드오프에서 클린업으로."

후회할 필요도 없고, 후회해도 고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미 호랑이 등 뒤에 올라탄 상황이니 멈추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같은 팀에서 뛰면 좋겠지만, 다른 팀에서 뛰더라도 양보할 수 없었다.

'혼자선 우승을 할 수 없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난 실력만 가지고는 불가능해. 이건 나뿐만 아니라 동욱이도 마찬가지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가장 좋은 것은 타선이 강하고, 투수들도 뛰어난 팀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음은 동팔도 잘 아는 사실이다.

이건 본인의 실력이 뒷받침되는 동시에 여러 가지로 운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었다.

간만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응? 모르는 번호인데 누구지?"

모르는 번호라고 무조건 안 받는 건 아니지만 지금 울리고 있는 핸드폰은 가까운 사람에게만 번호를 알려준 터라 의문이 들었다.

"네. 여보세요."

―아, 동팔이냐? 나 지완이야. 남궁지완.

"응? 지완…이?"

고교시절부터 라이벌로 엮인 두 사람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만날 때가 가끔은 있었다.

하지만 동팔이 프로에 입문하고 방출당한 뒤로 만나지 못했다.

특히나 동팔의 전 애인인 혜진을 낚아 챈 장본인이니 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갑자기 끊자니 그것도 좀 그랬다.

"그런데 이 번호는 어떻게 안 거야? 그리고 갑자기 웬 전화?"

―그야 일이 있으니까 걸었지. 너한테 줘야 할 것도 있고, 서울에 올 일도 있어서.

"줄 거? 올해 너네 우승해서 자랑하러 온 거야?"

―그건 아냐. 다른 거지. 만나면 알 거야. 그래서 시간 되냐?

시간은 많았다.

어제 리그가 끝나고, 플레이오프를 준비하기 전까지 달콤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남궁지완이 있는 오성은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으니 시간적인 여유가 더 많았다.

지금은 정오를 지난 이른 오후 시간.

민희는 회사를 그만두고 열심히 영어 학원에 다니는 중이었다.

만나기 싫으면 시간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동팔은 거짓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지완과의 만남을 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야 있지. 지금?"

―아니, 지금은 좀 힘들고. 내일 시간 돼?

"내일도 상관없어."

―그럼… 내일 오후에 보자.

예정된 건 아니었지만 간만에 제대로 만나야 할 상대가 생겼다.

약속장소와 시간이 정해지자 동팔은 폰을 침대 위에 던져놓은 후 중얼거렸다.

"그런데 내 번호를 어떻게 안 거지? 그건 왜 대답해주지 않은 거야?"

모든 구단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이제 10개의 팀 중 승차와 승률을 기준으로 상위 5개의 팀이 가을야구라 부르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리그와 달리 몇 경기만으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시작은 4위와 5위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두 경기다.

4위 팀이 1승을 가지는 것을 기준으로 2선승(先勝) 팀이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5위 팀은 와일드카드의 2경기 중 단 한 경기라도 지거나 비기면 탈락하게 된다.

그러니 5위 팀의 팬들은 두 경기 모두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았다.

오늘은 와일드카드 두 번째 경기가 있는 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위한 두 팀의 총력전이 예고되었다.

[토너먼트의 백미는 역시 모든 경기가 피 말리는 혈전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리그에서 중위권과 하위권을 전전하다가 기적적으로 5위에 들어온 지아. 그리고 3강에 밀렸지만 꾸준히 4위 자리를 수성해 온 CK. 경기는 홈 어드밴티지로 두 경기 모두 CK의 홈구장인 인천 문학 구장에서 진행합니다.]

[1차전은 모든 조건이 CK에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반격이 있었죠. 한동욱 선수만 경계하던 CK가 지아의 다른 타자들에게 안타와 볼넷, 실책을 허용하면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있습니다. 작년에 새로 추가된 규정 때문이죠. 포스트시즌에서 고의 볼넷을 준 투수는 퇴장 당합니다. 이 규정 때문에 CK에선 한동욱 선수를 상대로 고의 볼넷을 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 규정이 만들어졌나요?]

캐스터의 질문에 해설위원이 그 이유를 명확하게 말했다.

[간단히 말하면 재미 때문입니다. 솔직히 토너먼트에서 승부를 피하고 고의 볼넷을 주면 김이 새잖습니까. 그걸 막기 위해 KBO에서 포스트시즌에 한해서 이 규정을 도입한 겁니다.

이번에 지아가 그 규정 덕을 봤죠. 한동욱 선수를 지닌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이 규정에 의해 절대 유리한 고지를 얻는 겁니다. 아무리 못해도 2점이나 3점을 주고 시작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한동욱 선수가 제대로 치면 홈런이나 장타가 터지니까요. 그럼 고의 볼넷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판별할 기준이 있겠죠? 우연히 볼넷을 던질 때가 자주 있으니 구별을 해야 할 텐데요.]

캐스터의 질문에 해설위원이 이번에도 명쾌하게 답했다.

[있습니다. 그건 타자의 배트가 닿지 않는 투구로 볼넷을 만든 경우입니다. 폭투로 위장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나간 주자가 진루할 수 있기에 위험하죠. 그럼 지금 두 팀의 상황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해설위원의 질문을 캐스터가 익숙하게 받았다.

[네. 지아의 예상외의 선전과 한동욱 선수의 활약으로 이제 두 팀은 1승 1패의 동률을 이루었습니다. 오늘 경기의 결과로 준플레이오프로 진출하는 팀이 결정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유리한 쪽은 CK죠?]

[그렇습니다. 혹시 경기가 연장전을 가서 12이닝이 끝날 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더 높은 순위에 있던 CK가 진출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져 준플레이오프에서 가용할 선수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건 CK에서도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든 이겨서 끝을 내려 할 겁니다.]

토너먼트답게 단판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경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해설위원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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