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08화 (108/325)

[108]

[자신의 은퇴 시즌을 우승으로 마무리할지 아니면 준우승으로 마무리할지 결정되는 순간입니다. 지금 엄청나게 압박을 받을 거예요.]

[하지만 이승협 선수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참 많은 경험을 해온 선수 아니겠습니까? 다른 선수들이 떠먹여 주는 우승 은퇴보다 본인의 손으로 결정짓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군요. 우승이든, 준우승이든 본인이 은퇴할 때 팀이 잘 되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승협 선수는 물론 오성에게도 운명의 순간입니다. 과연 이 타석에서 극적인 홈런이 나올지 아니면 이대로 끝날지 결정됩니다.]

캐스터의 말에 해설위원이 농담어조로 물었다.

[안타의 경우는 없습니까?]

[안타도 당연히 좋죠. 하지만 그 뒤의 타선이 받쳐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중계를 하는 사이,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경험이 많지만 이미 늙은 사자야. 분위기에 쫄 필요 없어. 동정심은 개나 주라지. 여긴 프로야!!'

투수는 결의를 다시 한 번 세우며 수많은 야구팬들의 염원에 반대가 되는 결심을 했다.

스윽~ 휙!!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아래로 떨어졌다.

훤히 보이는 공에 이승협의 배트는 나가지 않았다.

1볼.

공을 교체하여 받은 투수는 호흡을 가다듬은 후, 다시 공을 던졌다.

쉭!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공은 방금 전과 비슷한 코스로 날아왔다.

이번에는 이승협의 배트가 움직였다.

휭~!!

공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이승협의 배트가 따라갔지만 약간의 차이로 맞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이제 1볼 1스트라이크.

볼카운트는 유리하게 흘러갔지만, 공을 받는 투수는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완벽히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간파 당했어? 역시 경험은 무시 못 하는 건가?'

투수가 노린 건 같은 코스라 예상하게 해 배트가 나가지 않게 하는 것.

하지만 이승협은 알아차리고 배트를 휘둘렀다.

아주 약간의 차이로 맞지 않았지만 부담감은 오히려 투수가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 던지는 공은 이전과 다른 패턴으로 던져야 했다.

쉭!!

이승협을 마지막 아웃카운트로 잡는다는 각오로 투수는 전력을 다해 투구했다.

공이 향하는 곳은 안타를 맞더라도 장타로 연결되지 않을 낮은 쪽.

아슬아슬하게 걸치기 때문에 이승협도 배트를 휘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휭!!

이승협의 배트는 이번에도 한 끗 차이로 공을 치지 못했다.

이제 1볼 2스트라이크.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볼카운트가 되었다.

오성의 팬들, 특히 이승협 선수의 팬들은 남녀를 떠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부 여성 팬들은 벌써부터 울상이 되었다.

'됐어. 이제 하나만 잡으면…….'

이승협과 달리 우세에 있는 투수는 회심의 미소를 숨기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아무리 좋아도 이 순간 슬쩍이라도 웃으면 그 이후의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난감해 할 이승협의 표정을 보고 싶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지금은 자신의 정규이닝 마지막 타석에, 팀의 우승을 가를 중요한 순간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승협은 평상시처럼 타석에 서 있었다.

한 사람이 서 있었지만 투수는 태산이 앞에 있는 것 같은 압박을 받았다.

분명히 유리한 쪽은 자신인데 이승협의 모습을 보자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투수의 변화를 알아차린 포수는 다급해졌다.

'쟤 갑자기 왜 저래? 그렇다고 일어서서 나갈 수도 없고…….'

지금 나갔다간 투수가 정상이 아니란 것을 대놓고 보여주는 꼴이 된다.

포수는 최대한 사인을 많이 주면서 투수의 시선을 돌리려 했다.

'괜찮으니까 아무 공이나 던져. 3볼까지 가도 괜찮아. 아직 여유 있어.'

지금 유리한 쪽은 자신들이다.

공 2개의 여유가 있으니 그 틈에 변화구로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었다.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강한 타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타자라도 한동욱같이 괴물급의 타자가 아닌 이상 3할의 타율을 가진다.

이번 타석에서는 강타자라도 아웃이 될 확률이 70%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볼카운트도 유리하니 포수는 투수에게 그 사실을 주지시켜 여유를 줄 생각이었다.

그 덕분인지 투수는 정신을 차리고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변화구를 뿌렸다.

이승협은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투수의 공을 치지 않았고, 순식간에 풀카운트가 되었다.

"으아… 설마 정말로 풀카운트 승부라니……."

"보는 우리도 가슴 떨려서 못 보겠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느껴지는 중압감.

그러니 정작 당사자인 투수와 포수 그리고 타자인 이승협은 말해 무얼 할까.

강한 압박을 받으리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이승협의 정신은 또렸하여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보인다… 전에도 이렇게 보였으면 더 놓은 기록을 세우고 은퇴할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극한의 상태가 되자 이전에 없던 능력을 발휘하는지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선구안은 물론 직감도 정확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정확한 타이밍에 배트를 휘두르지 못한 것이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방금 전의 타격에서 무엇이라도 결과를 냈을지 몰랐다.

'그래… 괜히 욕심 부려봐야 무슨 소용인가. 박수칠 때 떠나야지.'

남들은 모르지만 이승협은 이번 타석에서 준비한 것이 있었다.

그는 그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참고 또 참았다.

투수는 그것을 모르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냥 볼넷으로 보내도 상관없잖아. 고의 볼넷도 아닌데.'

헛스윙을 하면 좋지만 속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이 경기를 무승부로 마무리해 우승의 제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남궁지완의 괴물 같은 투구로 12이닝까지 점수를 내지 못했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다.

지금 화나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또 집중했다.

스윽~ 휙!!

투수는 자신의 의도대로 스트라이크존을 조금 벗어나는 볼을 던졌다.

위치는 조금 위쪽.

'맞으면 위험하긴 하지만 그만큼 배트를 끌어들일 수 있는 공. 그러니 제발……!!'

공은 이승협을 유혹하듯이 적정한 높이로 날아왔다.

이대로 흘려보내면 볼이 되어 진루할 것을 안다.

하지만 이승협이 선택한 것은 안주가 아닌 과감한 승부였다.

그가 무엇보다 원하던 공이 왔다.

따악!!!

이승협이 원하는 공은 적당히 높이 오는 공.

그것을 위해 칠 수 있는 공을 치지 않고 흘려보냈다.

볼로 가는 것은 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투수와 포수에게 주기 위해서.

투수가 어느 쪽으로 공을 던질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위로 향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타석에 선 자신이 욕심을 부릴 거라고 예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희박한 확률이었지만 이승협의 도박은 성공했다.

그것도 대성공이었다.

[큽니다! 큽니다!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 넘어갔습니다!! 이승협, 정규이닝 마지막 타석을 홈런으로 마무리 합니다!]

캐스터의 격정적인 중계대로 이승협의 타구는 관중석을 향해 떨어졌다.

제일 멀리 나가 있던 중견수가 빨리 달려갔지만 넘어가는 타구를 잡을 순 없었다.

이승협은 홈런을 확인하자 평소에 담담하던 모습과 달리 주먹을 불끈 쥐고 어퍼컷을 날렸다.

마지막 순간에 무승부마저 날려 허탈한 화나의 선수들과 달리, 오성의 선수들은 환호하며 전부 나와 이승협이 홈으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승협이 루상을 도는 사이, 그의 홈런에 감격한 팬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환호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승협!! 이승협!! 이승협!!"

이승협도 팬들의 환호에 화답하며 홈플레이트에 발을 디뎠다.

턱.

선수로서 마지막 홈런 그리고 마지막 한 걸음으로 오성은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포스트시즌 (1)

이승협의 홈런으로 오성의 리그 우승이 확정되었다.

자연스럽게 RG는 반 게임 차이로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당시 임성훈 감독은 아쉬워하는 선수들에게 '준우승도 하기 어려운 거야. 수고했어. 포스트시즌에 집중하자'며 독려했다.

선수들은 제일 아쉬워하는 사람이 임성훈 감독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현격한 차이도 아니고, 고작 반 게임 차이로 우승하지 못한 건 어느 팀이라도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우승팀과 한 게임 반 차이로 준우승조차 못한 우산도 아쉽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리그 일정을 마친 뒤 축하의 시간을 보내고, 포스트시즌 중 플레이오프를 준비해나갔다.

와일드카드 2차전이 있는 오늘.

그것과 상관없는 동팔은 집에서 쉬고 있었다.

동팔은 간만에 침대에 편하게 누워 생각했다.

'그렇게 해도 결국 준우승이라…….'

분명히 자신의 압도적인 피칭이 있었다.

또한 자신이 알려준 훈련법과 투수들의 노하우가 활발히 공유되며 꾸준히 훈련했다.

RG의 모든 투수들의 전력은 확실히 성장했고, 이는 평균자책점이 증명해 주었다.

RG의 평균자책점은 리그 모든 팀 중에서 제일 낮았고, KBO리그에서도 역대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G는 오성에게 아주 작은 차이로 밀려 우승하지 못했다.

분명히 준우승도 대단한 업적임을 알고 있다.

지금 동팔이 걱정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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