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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를 잘 되서 막을 수 있었습니다. 최대한 범타를 유도하긴 했는데… 좀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는데 잘 넘어 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확실히 우승해야죠. 분위기를 보니 RG가 이긴 것 같던데."
아무리 코치진이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해도 이전처럼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각자 핸드폰으로 인터넷 검색도 쉽게 하는 세상이었다.
선수들이 인터넷을 할 수 없는 상황에도 관중들이 가능하기 때문에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다.
감독과 코치는 괜한 긴장감을 주어 실수를 유발할까봐 알려주려 하지 않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오성의 입장에선 이번 공격이 경기의 마지막이다.
적어도 질 걱정은 없지만, 이번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한 끗 차이로 리그 준우승이 되고 만다.
준우승도 충분히 좋은 기록이지만 이들은 그 이상인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다.
그러니 준우승에 만족할 수 없었다.
특히 이번이 이승협의 은퇴 시즌인 이상, 그의 명예로운 은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우승해야 했다.
"어떻게든 한 점 내 보자."
"홈런이든 번트든 못 할 게 있나."
"그래도 번트는 힘들지 않을까? 좌익수랑 우익수는 이미 전진 수비하고 있어. 그리고 내야수도 앞에서 번트 대비하고 있고. 중견수만 제일 뒤에 있어. 장타가 나오면 2루타로 끝내겠다는 걸 대놓고 보여주는 거지."
단순히 중견수가 뒤에 있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중견수가 한국 톱클래스의 주력(走力)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 달랐다.
이번 경기에서만 그로 인해 장타 다섯 개가 지워졌다.
보살도 두 번 있었다.
주자가 볼넷과 희생플라이로 어찌저찌 3루까지 가도 그의 뛰어난 수비에 막혀 이닝이 끝났다.
이번에도 영락없이 그렇게 진행되는가 싶었다.
오성의 첫 주자는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어떻게든 점수를 내야 하는 오성으로선 도루라도 해서 진루할 생각이었다.
따악!!
타구는 깔끔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튕겼다.
그런데 하필이면 3루수 정면으로 가고 말았다.
그러나 3루수가 이전과 달리 실책하며 공이 뒤로 빠졌다.
"우와아아~!!"
"됐다!!"
그토록 터지지 않던 상태 팀의 실책에 오성의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3루수 뒤에 있던 좌익수가 빠진 공을 잡더니 빠르게 2루를 향해 던졌다.
휙~ 턱.
세이프인지, 아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2루수는 일단 공을 잡고 베이스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재빠르게 1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설령 희생타가 나오더라도 아웃카운트 하나는 어떻게든 늘려야 했다.
2루수의 재빠른 송구로 1루 주자가 완벽히 아웃됐다.
문제는 2루 진루의 성공 여부.
그건 곧바로 심판에 의해 판단이 내려졌다.
2루심이 팔을 양옆으로 펼치먀 세이프 판정을 내린 것이다.
"와아아아!!!"
"됐다!!"
오성의 팬들은 환호했고, 선수들도 같이 기뻐했다.
상대팀인 화나의 감독이 합의 판정을 신청했다.
찰나의 순간이어서 2루심도 즉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설령 합의 판정이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오성의 상승세를 중간에 끊으면 되었다.
확실하지 않는 이상, 원심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기에 화나의 감독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기대를 하는 건 선수와 팬들이다.
그런데 합의 판정의 결과가 예상을 벗어났다.
"아웃!"
한 프레임 차이로 2루에 슬라이딩을 하던 주자의 손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병살타로 인해 순식간에 2아웃이 되어버린 오성.
그리고 이번에 올라오는 타자는 9회 말과 같이 이승협이었다.
연장전 내내 범타와 삼진으로 오성의 타자들이 물러났기에 그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승협은 타석에 가기 전, 동료 선수들과 후배들에게 특별히 무언가 말하지 않았다.
이번이 분명 정규 리그 마지막 타석이지만, 항상 해왔던 것처럼 표정 없이 담담하게 걸어갔다.
어떤 상황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한결 같은 모습을 보이는 든든한 이승협.
그를 보며 남궁지완은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며칠 전.
이승협은 남궁지완이 집에 집들이 겸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이승협이 들어오자 남궁지완과 혜진이 보였다.
"들어오세요. 선배님."
누가 봐도 임신했음을 알 수 있는 혜진의 부푼 배.
혜진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승협을 자리로 안내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직접 차린 건 없습니다. 전부 시킨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이고. 제가 제수씨 보고 상 차리라고 하면 천하에 몹쓸 놈이 됩니다. 자리를 마련해 준 것도 감사하지요. 하하하."
셋이 밥을 먹다거 승협과 지완이 단둘이 같이 있게 되자 지완이 물어봤다.
"선배님. 이번 시즌으로 은퇴하시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기분? 마, 기분은 잘 모르겠다. 시즌 끝나봐야 알지 않겠나. 지금은 그냥 '은퇴하는 갑다…'라는 생각만 들지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건 없네."
승협은 그 말을 하고 자신의 앞에 있는 작은 술잔을 기울여 입을 적셨다.
많이 마시지도 않지만 임신한 혜진까지 보니 더 자중하게 되었다.
승협은 말이 이어나갔다.
"그동안 학생 때부터 해온 야구를 더 이상 하지 못한다… 생각하면 좀 씁쓸하기도 하면서도, 그동안 나를 얽매어 온 부담과 중압감을 벗어난다 생각하니 홀가분하다는 생각도 들더라."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처음에 한두 해 동안은 좋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생활을 제약하는 굴레가 되었다.
처음에는 굴레의 중압감과 부담에 힘들었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을 지나자 초연해질 수 있었다.
"제일 힘든 건, 그동안 당연히 선다고 생각한 타석에 더 이상 선수로 설 수 없다는 거지."
"지금 모습만 봐도 내년에 선수로 뛰실 수 있으신 것 같은데 은퇴를 번복하실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
"그건 안 되지. 아무리 아쉬워도 이미 약속했는데 뒤집어버리면 어쩌냐. 그리고 선수로서 이승협이 끝날지 몰라도, 인간 이승협은 안 끝났다. 옷을 갈아입듯이 일을 정리하고 잠시 쉬다가 또 다른 일을 하겠지."
승협은 지완을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지완아. 네 선수 인생은 이제 막 꽃피고 있어. 지금은 그럴 걱정이 없지만 언젠가 은퇴할 때도 생각해야 한다. 그동안 너도 많이 봤겠지만 시점을 못 잡고, 잘 나가던 시절을 떠올리며 물고 늘어지다가 추하게 은퇴하는 경우도 참 많더라."
굳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 말할 필요는 없었다.
지완이 프로선수로 데뷔하기 전에도 그런 경우가 꽤 많았다.
겉으로는 명예로운 은퇴라고 하지만 실상은 떠밀리다시피 방출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끝까지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실력이 유지되도록 힘쓰지 않으면 명예로운 은퇴는 불가능했다.
그것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선수가 바로 앞에 있는 이승협이었다.
구단에서도 실력을 유지하는 이승협이 은퇴를 미루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은퇴를 결심한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구단으로선 이승협만 한 스타 선수가 없었다.
전 연령에게 국민타자라 불리는 인지도를 가진 이를 언제 또 얻을 수 있을까.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이번 시즌 60홈런, 6할의 타율을 기록한 한동욱도 '뛰어난 타자'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국민타자'라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다.
별명에 국민이라는 단어가 붙는 건 대한민국 전 연령을 아우를 호감을 얻어야 가능했다.
이는 실력은 물론 인격과 성품이 따라주어야 했다.
승협의 말대로 아직 지완이 은퇴할 때는 멀었다.
적어도 통상적으로는.
"나도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위험한 때도 많았지. 니 동기인 동팔이만 해도 사실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끝났다가 겨우 재기하지 않았냐? 그게 꼭 고교 시절에만 있는 것도 아니니 선수들도 항상 부상 조심해야 한다. 이미 많이 벌어 놨겠지만 앞으로 태어날 니 아를 위해서라도 다치면 안 되지."
그 이후로 시시콜콜한 조언이 이어졌다.
얼추 시간이 지나고 이승협은 여기에 온 진짜 이유를 말했다.
"지완아.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꼭 알았으면 한다. 니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내년에 메이저리그로 가는 것이 사실상 확정이란 것도 안다.
동팔이나 한동욱이랑은 달리 졸업하자마자 프로에 들어와 정규이닝을 꼬박꼬박 채웠으니 자유계약 조건을 얻는 것도 가들보다 낫지. 그 두 사람보다 메이저리그 진출이 더 쉬울 기다. 내… 꼭 하고 싶은 말은 여기서 다른 애들이랑 더 친해지고 갔으면 한다는 거다.
"
"네?"
선수 생활에 대해 조언하다가 대인 관계에 대한 조언을 들으니 지완은 의아했다.
그런 지완을 보며 승협은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야구가 투수놀음이라 해도 결국은 팀 스포츠다. 그건 알고 있지? 아무리 공을 잘 던져도 동팔이처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지 않는 이상, 승리 몬 한다.
그건 야구할 때도 그렇지만 인생에 있어 모든 게 마찬가지다. 경기할 때 팀워크를 생각해 친해져야 하겠지만 은퇴한 다음을 생각하면 더 그렇게 해야 한다.
인맥이란 것이 잘 못 쓰면 큰일이지만, 잘만 하면 안 되는 것이 단번에 풀리도록 만들거든. 한 다리 건너 아는 것이 삶을 꽤 많이 편하게 해준다. 나 같은 경우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할 때였고. 하하.
"
학연, 지연, 혈연은 만국 공통의 문제지만 인연을 무조건 배척할 수만도 없다.
그건 또 다른 역차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학연, 지연, 혈연이 문제가 되는 건 공정성을 무너트릴 때일 뿐, 어떤 인맥을 통해서든 뛰어난 인재가 있다면 데려오는 것이 강한 경쟁력을 지니게 만드는 방법이다.
"아, 벌써 시간이 이리됐나? 내일 경기가 있으니 가 봐야겠다. 제수씨도 쉬셔야 할 텐데 너무 오래 있었네. 아무리 선배라고 하지만 잔소리 들어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날 밤의 단촐한 집들이는 마무리되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완은 다른 이야기가 많이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하게 다가온 것 하나는 있었다.
'은퇴를 하더라도… 선수로서 끝나는 것뿐이지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
지금 지완의 나이는 26세.
어렸을 때부터 야구만 해 왔기에 야구와 자신의 인생은 동일한 의미를 지녔다.
하지만 이승협이 말한 대로 언젠간 은퇴할 때가 온다.
야구의 경우, 격렬한 운동이 아니기에 선수들의 생명이 다른 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다.
하지만 그것도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 한계를 느끼게 된다.
선수들은 보통 서른 중후반으로 은퇴하는데, 이것도 잘 되었을 경우에 한했다.
그 전에 다른 선수들에게 밀려 보이지 않게 방출이라는 은퇴를 당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지금 타석에 선 이승협처럼 불혹의 나이가 되어도 뛰어난 기량을 유지하는 선수가 얼마나 될까.
특히 투수 쪽에선 느린공을 주로 던지지 않는 이상, 수명이 더 짧다.
아무리 회복시키려 해도 나이를 먹으니 한계가 생기는 것이다.
이제 정말로 이승협의 마지막 타석이 되어버린 12회 말.
팬들은 9회 말처럼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승협!! 이승협!!"
이번에도 팬들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왕이면 홈런, 그게 아니면 안타를 쳤으면 하는 바람이 팬들에게 있다.
이승협이야말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팀의 기대에 부응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 투수가 그의 마지막 타석을 위해서 허술하게 던질 리는 없었다.
이승협이 타석에 서자 중계석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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