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정말 강동팔이야?"
"강동팔이 배트를 들었어?"
쉽게 보기 어려운 광경에 관중들은 자기 팀이든, 상대팀이든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투수한테 배트 쥐어 줘도 되는 거야?"
"그냥 이벤트로 타석 하나 날리는 건 아니겠지?"
"지금 얼마나 중요한 때인데……."
모두 다른 반응이었다.
코치가 걱정한 것처럼 한 경기, 한 경기가 아쉬운 마당에 찰나의 찬스를 놓칠 수 있다 생각하면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중들은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에 너도 나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내년에 메이저리그 확정인데 지금 봐야지 어쩌겠어."
"삼진이나 범타로 물러가겠지만, 이게 어디야."
관중들은 강동팔이 안타나 홈런을 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점수를 낼 수 없을 것 같으니 연장전에 들어가기 전 팬들을 위한 이벤트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팔은 아주 진지하게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이니 타격을 보진 않겠지. 보더라도 옵션에 불과할 테니까. 그래도 타격에서 구멍이 아니라는 것만 증명하면 충분하겠지만…….'
그러려면 홈런보다 어떻게든 진루하는 것이 중요했다.
메이저리그는 투수도 보통 9번 타순에 들어간다.
자신이 타석에 올라왔을 때, 쉬어가는 타자 취급 받는 것은 싫다.
동팔은 상대 투수를 살펴봤다.
'생각보다 마운드가 높게 보인다. 타자들은 항상 이런 기분이었나?'
훈련할 때 마운드가 낮은 건 아니다.
분명히 같은 마운드인데, 훈련할 때와 실제 경기를 할 때의 느낌이 달랐다.
투수로 있을 때의 높이보다 타자로 있을 때가 낮았다.
다행인 건 동팔이 많은 훈련을 한 덕분에 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우……."
동팔은 심호흡을 한 후, 훈련했을 때의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익숙하게 그립을 강하게 잡으면서 손바닥과 손가락이 힘을 제대로 줬다.
동팔의 타격 준비 자세를 보고 사람들이 말했다.
"폼은 잘 잡혔다."
"그래도 프로라 그런지 갑자기 해도 잘 하네."
사람들은 모른다. 지금 동팔이 하고 있는 폼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1년 동안 많이 노력했는데 저 정도 나왔으면 잘 나온 거지."
"일단 확실히 임팩트만 제대로 맞으면 넘길 힘은 있습니다."
프로야구에서 흔히 보는 단순해 보이는 타격 폼도 조금 연습한다고 바로 나오지 않았다.
하나의 타격폼이 완성되기 위해서 남들이 보든 안 보든, 선수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성장을 위한 약간의 타격 대미지 추가)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주 약간의 틈이 생기면 원하는 대로 배트를 컨트롤할 수 없다.
스포츠의 승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위치다.
어느 때에,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가 대처할 때 아주 중요한 변수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타자가 어느 상태에서 배트를 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쥐고 있으며, 팔의 간격과 발의 위치, 쥐고 있는 위치에 따라 칠 수 있는 공과 칠 수 없는 공이 결정된다.
타자들은 어떤 공이 오더라도 칠 수 있도록, 타격 자세를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그리고 좌완과 우완을 포함해, 상대 투수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여 주력구를 칠 수 있도록 조금씩 자세를 변경하기도 한다.
경험이 많은 타자라면 변화가 오더라도 대처할 수 있지만, 신인들은 경직되는 경우가 많아 생각한 대로 배트가 나가지 않았다.
동팔도 어색한 상황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절대적인 힘이 되어주는 것이 있다.
바로 그동안 동팔이 해온 훈련이었다.
'1년이 아냐. 2년 동안 보이지 않게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한 거야. 생각해 봐. 동팔아. 산속에서 했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훈련을.'
산속에서 한 훈련은 훈련이라기보다 혹사 이상의 고문이었다.
덕분에 확실히 힘이 많이 늘었고, 타격 폼도 자연스럽게 되었다.
타자로서 서 있는 것이 어색했지만, 그래도 타석에 들어선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마운드에 오른 투수와 마찬가지로.
'상대 투수는 변화구보다 강속구를 주력으로 던져. 어떻게 생각하면 처음 타석에 선 나에게 더 맞는 상대일지도 몰라.'
괜히 임상훈 감독이 지금 동팔을 투입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타자의 입장에서 투수를 상대하게 된 순간, 공이 빠르게 날아왔다.
휙~ 퍽!!
공을 한가운데로 가지 않고, 아래쪽을 향해 날아갔다. 빠른 직구에 동팔은 배트를 휘둘러보지도 못했다.
"스트~라이크!!"
첫 스트라이크. 상대 투수는 동팔을 가볍게 상대하지 않으려는지 전력으로 공을 던졌다.
연장을 생각해야 하지만, 혹시라도 지금 뚫리면 여러 가지로 잃을 것이 많았다.
'동팔이가 진루하면 다음 타자를 상대하는 것도 그렇지만 끝내기를 당할 확률이 더 높아져. 거기에 투수에게 안타나 볼넷을 허용하면 어떡하자는 거야?'
상대팀 불펜진 중 제일 구위가 좋은 마무리 투수였다.
경기에 나오면 보통 한 이닝을 던지니 항상 전력으로 던질 수 있다.
아무리 상대가 만만해 보여도 아차하면 위험해지고, 운(運)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한편, 공이 날아온 것을 본 동팔은 슬쩍 뒤를 보았다.
'152킬로? 빠른 건 아니라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느껴지잖아?'
그렇다고 해서 동팔이 긴장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소르스가 던진 공에 비하면 느려. 못 칠 건 없어. 내가 투수라면 어떻게 상대하는 것이 좋을까?'
이전에는 압도적인 구위로 찍어 누르는 방향으로 갔지만 강타자를 상대할 때엔 신중해야 했다.
아차하는 순간, 그들은 공을 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철저히 상대해 온 덕분에 압도적인 기록을 만들며 시즌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제 그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니 훈련과는 또 다른 느낌이 밀려왔다.
'훈련할 때는 상대의 볼 배합을 예상하기보다 어떤 구종이 오면 치는 것에 집중했지. 바꿔 생각해서 내가 마운드에 있다면… 어떤 공을 던질까? 이미 빠른 직구를 던졌다면 체인지업? 아니면 날 가볍게 생각하고 직구?'
훈련과 실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훈련할 때는 어떤 구종을 던질지 말해주고 던지거나, 피칭 머신을 이용한다.
구종이 정해져 있으니 타격 지점을 정확하게 하는 것과 순발력 상승에 도움은 된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상대가 어떤 공을 던질지 알 수 없어서 공을 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그 정도는 실전 경험이 많은 동팔도 알고 있는 차이지만 타자로서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다른 타자들보다 유리한 점이 있다면, 투수의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동팔은 상대 투수를 분석해 나갔다.
상대 투수는 강속구 위주로 던지지만, 변화구를 안 던지는 건 아니다.
변화구보다 강속구를 주로 던지는 이유는 있었다.
'변화구의 제구력이 완전하지 않아. 그래서 쉽게 던질 수 없고, 던지더라도 볼이 되거나 실투로 한가운데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 그러면… 아직 여유가 있으니 지켜보자.'
생각은 길었지만 판단을 내리는 데 걸린 시간은 5초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동팔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휙~
날아오는 공은 변화구였다. 방금 전에 비해 느린 공이라 잘 보였고 공의 궤적도 파악할 수 있었다.
'벗어나는 볼.'
퍽!
이번에 들어온 공은 바깥쪽으로 많이 빠졌다. 동팔이 배트를 휘두르지 않자 투수는 생각했다.
'같은 투수라 그런가… 이런 건 잘 보네…….'
투수라고 해서 모두 공을 잘 보는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뛰어난 투수가 타격을 잘 하긴 하지만, 삼진도 많이 당한다.
쉽게 속지 않는다는 것을 안 이상,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구종에 제한이 생겼다.
'변화구는 자중해야 하려나. 까딱하다가 볼넷으로 진루시킬 수 있으니까. 그럼 일단 속구로…….'
다음 공을 정한 투수는 포수와 사인을 교환한 다음, 공을 던졌다.
휙!!
정확히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가는 공은 스트라이크 존 안에서 바깥쪽을 향했다.
직구를 기다리고 있던 동팔은 예상한 지점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동팔의 타구가 멀리 뻗어 나갔다.
"우와아아아아~!!"
"설마, 설마, 설마……!!!"
예상보다 멀리 날아가는 타구에 RG의 팬들은 전부 일어났다. 하지만 타구는 바람에 의해 파울 지역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아… 아쉽다."
"이번에 끝낼 수 있었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은 타자가 끝내기 홈런을 친다면?
그리고 그걸 직접 본다면?
그런 카타르시스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었다.
RG 팬들은 아쉬움으로 끝냈지만 투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심장이 철렁했다.
'아… 생각보다 힘이 좋잖아. 우연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넘어갈 거야. 조심해야 해.'
가볍게 상대하려던 마음도 있지만 실제로는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동팔은 의외로 공을 잘 골랐고, 직구로 날아오는 걸 제대로 받아쳤다.
자신에게 운이 좋아 파울이 되었지, 까딱하면 홈런으로 경기가 끝날 수 있었다.
동시에 동팔은 방금 전의 감각을 떠올렸다.
'한 끗 차이였어. 잘 맞았다 생각했는데…….'
헛스윙을 하지 않고 정통으로 맞혔지만 아주 약간의 차이가 결과를 크게 바꾸었다.
동팔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배트를 연습 삼아 가볍게 휘둘렀다. 그리고 거리와 위치를 다시 파악한 다음, 자세를 잡았다.
가벼운 1회성 이벤트라 생각한 동팔의 타석인데 의외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RG의 팬들은 자리에 다시 앉지 않았다.
그들은 방금 만들어진 응원구호를 외쳤다.
"강동~팔 홈런!!"
"강동~팔 홈런!!"
한 사람이 외치자 다 같이 외쳤다.
"그런데 투수한테 홈런이라 외쳐도 되는 거야?"
"무슨 상관이야. 타석에 들어서면 누가 되든지 타자지."
처음 보는 상황이지만 동팔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경기를 9회 말에 끝낼 수 있다.
큰 기대는 않더라도 이전에 없던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홈런까지 바라지 않을게. 그냥 안타나 쳐 줘라."
"장타면 더 좋고. 오늘 집에 빨리 가고 싶어!!"
팬들의 염원을 누가 받았는지 모른다. 다만 갑자기 거세진 RG의 응원에 투수가 실수한 건지 공이 한가운데로 몰리고 말았다.
'실투!!!'
마침 이번에도 직구를 기다리고 있던 동팔은 좋게 날아오는 공을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따악!!!
방금 전과 달리 제대로 맞아 역회전이 걸린 공은 점점 높이 날아올라 한국의 야구장 중에 제일 멀다는 잠실구장의 관중석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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