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투구할 때요? 요즘 훈련을 많이 해서인지 몰라도 무겁다는 느낌이 들어요. 힘도 잘 들어가지 않고."
"그래? 그럼 지금 하고 있는 훈련 양을 줄이자. 당분간은 절반 정도. 그리고 회복이 되면 지금 하고 있는 것의 80%까지 하자."
동팔의 말에 진혁이 수긍하면서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코치님께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구위가 떨어져서 눈치가 많이 보이거든요."
"그건 내가 말씀드릴게. 지금 슬럼프에 빠진 이유가 체력 저하일 수 있으니까 내 경험도 같이 말씀드리면 받아들여 주실 거야."
다른 선수라면 코치도 자신의 주관과 자존심이 있기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코치가 받아들이는 건 현재의 몸 상태 정도.
하지만 동팔은 다른 사람과 달리 특별했다.
동팔의 경험은 혹사로 인한 부상.
그러다보니 그 감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코치도 선수가 혹사나 과도한 훈련으로 부상을 입는 것은 철저히 피한다.
팀에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본인의 경력에 큰 오점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선수 본인이 혹사의 징조가 나타나도 모를 수가 있다.
그런데 혹사로 부상을 입은 경험이 있는 동팔이 말을 한다면?
광산 안의 카나리아처럼 동팔만큼 혹사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코치의 자존심이 강하더라도 그의 말은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그건 진혁도 잘 알고 있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솔직히 이게 사실이라도 자신이 그 말을 하면 훈련받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들릴 수 있었다.
알더라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
동팔이 대신 그걸 말해주면 절로 해결이 된다.
진혁이 고개를 숙이면서 고마워하자, 동팔은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마울 것까지 있냐. 나중에 너도 잘 되면 한턱 쏴."
"한턱만 쏘겠습니까. 몇 턱이라도 쏘겠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팀 흐름은 절로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진혁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본인은 슬럼프라 생각하고 있나? 엄밀히 말해 슬럼프는 아니지?"
한 코치의 말에 다른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투수가 더 성장해서 그렇지 진혁이가 못 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악력 훈련 때문에 끝이 흐트러져서 흔들릴 뿐인데… 그렇다고 그만두게 할 수도 없고."
"지금이야 성장이 더뎌 보이는 거지. 2, 3년 지나면 진혁이의 성장이 제일 빠를 거야. 투수의 능력은 강속구보다 제구력이 더 중요한 법이니."
다만 진혁의 훈련하는 양을 어느 정도에 맞춰야 하는지 항상 고민했다.
마침 동팔이 적정한 수준을 말해준다면 거기에 맞추면 되었다.
이 모습을 보며 감독은 좋으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이번 시즌이야 동팔이 덕분에 좋게 흘러가지만 다음 시즌에는 어떻게 한다…….'
동팔의 구위가 뛰어나 전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동팔의 모습을 보면 그가 도움이 되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야구는 팀 스포츠다.
투수 놀음이라 불리며 제일 중요한 위치가 투수라고 하지만, 결국엔 9명의 선수가 함께 뛰며 호흡을 맞추는 놀이다.
팀으로 하는 스포츠이니 당연히 팀워크가 좋아야 승리할 수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움직여줘야 한다.
수비할 때도 그렇지만,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타격을 나온 타자라면 혼자 상대하겠지만, 나중에 주자가 쌓이면 상대 투수를 견제하고 흔들어야 한다.
그래서 타자가 치면 바로 달리는 작전이나, 치기도 전에 달려 흔드는 작전이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팀워크를 위해 팀으로 하는 훈련이 필수였다.
훈련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선수들끼리 친해지는 것이 가장 좋았다.
친목 도모는 코치가 판을 깔아줘도 결국 선수들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다.
그것만큼은 감독이나 코치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몇몇 선수가 활발한 성격으로 팀을 활기차게 만들곤 했다.
그걸 동팔이 해 주고 있으니 안 예쁠 수 있을까.
거기에 자신의 경험까지 아낌없이 알려주니 선수는 물론 코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내년까지 동팔이 계속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미 메이저리그 구단 중 일부가 동팔이의 신분 조회를 KBO에 의뢰했어. 아직 리그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보통 메이저리그에서 한국 선수에 관심이 있거나 포스팅을 하기 전에 하는 것이 신분 조회다.
이 선수에게 포스팅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또는 자유계약의 여부와 기타 범죄 경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단계다.
사실상 포스팅 바로 전 단계라 보면 되었다. 신분 조회를 한다는 것은 특별히 큰 문제가 없는 이상 영입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신분 조회의 경우 비밀이 아니라서 바로 언론에 알려지기 때문에 심사숙고하여 결정했다.
신분 조회를 했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영입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구단의 신뢰 문제로 이어졌다.
보통 안전하게 리그가 끝나고 하는데 동팔의 경우, 일부 구단이 벌써 신분 조회를 했다.
이것은 그만큼 메이저리그의 구단들이 동팔을 데려가기 위해 달아올랐다는 의미였다.
너무 이르게 신분 조회를 하면 그만큼 불리해 지지만 지금은 그걸 감수할 만큼 급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되니 임상훈 감독도 동팔을 내년까지 묶어둘 수 없었다.
'내년은 무리겠지. 옵트 아웃 조항이 있지만 내년 초반에 이미 그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켜. 그러면 결국 내년에 계약이 끝나. 다른 팀에 넘길 수도 없고, 계약을 거부하면 동팔이의 야구는 그것으로 끝이지. 그러면 동팔이나 구단의 손해가 막심해. 그럴 바엔 차라리 높은 포스팅 금액을 얻어서 팀 전력을 전반적으로 상승시키는 수밖에 없어…….'
외통수도 이런 외통수가 없었다.
어차피 떠나게 될 선수라면 좋게 보내는 것이 더 좋다는 건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 감독은 이번 시즌의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초반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목표였지만, 지금은 우승도 나쁘지 않다. 동팔이가 있을 때 하지 않으면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 몰라."
물론 투수 한 명이 뛰어나다고 한국 시리즈나 정규 리그의 우승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선발로 나올 수 있는 경기는 보통 다섯 경기 중 하나. 나머지 네 경기에서 승리를 챙기지 못하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도 포기해야 했다.
임상훈 감독이 다시 훈련하기 위해 나온 동팔의 모습을 보았다.
동팔이 하려는 훈련은 투구 훈련이 아니라 타격 훈련이다.
동팔은 얼마 전에 구입한 배트를 들고 타격 코치에게 직접 코치를 받았다.
그를 보며 임상훈 감독이 생각했다.
'나중에 어이없는 기록을 또 만들지도 모르겠군. 그게 될지 모르겠지만…….'
***
아무리 동팔이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홈런을 치고, 타격 훈련을 받는 중이라도 실제 경기의 타석에 들어설 일은 없었다.
동팔은 투수인데다, RG로선 최고 전력인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타석에 세우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것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퍼억!!
[아~!! 히네신스 선수, 크게 맞았는데 괜찮을까요?]
[이번 공은 제구가 안 되었습니다. 허벅지에 제대로 맞았습니다.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는데요.]
RG의 4번 타자인 히네신스가 예상치 못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은 살이 많은 허벅지 부분이라는 것이지만 지금 당장 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대주자로 교체되었다.
RG의 코치들은 히네신스의 상태를 면밀히 체크하면서 대책을 논의했다.
"대신할 타자는 누구로 하지?"
"그건……."
야구는 9명으로 하는 스포츠지만, 선수단에 9명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체할 투수는 물론 포수와 타자들이 뒤에서 백업을 했다. 그리고 언제라도 타격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지명타자도 있었다.
코치들이 회의를 할 때, 임상훈 감독이 말했다.
"지금 몇 회지?"
감독이 설마 지금 몇 회인지 정말 몰라서 물어봤을까? 그건 아니다. 이미 전광판에 답이 나와 있었다.
그렇다고 코치들이 감독의 질문을 무시할 수 없었다.
"8회 말입니다."
"아직 비기고 있는 중이지? 너무 고심하지 마. 그리고 홈인데 길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팬서비스도 해야지."
"네? 팬서비스요?"
'대체 무슨 팬서비스가 있을까?' 의문이 들 때, 임상훈 감독이 동팔을 보며 말했다.
"동팔아. 10회엔 다시 교체해서 수비할 필요 없으니까 대타로 나올 준비해. 마지막 타석이다."
감독의 말에 동팔은 물론 코치들 그리고 선수들도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네? 동팔이를요?"
"분명 타격이 좋긴 하지만 정말로 보내실 겁니까?"
투수가 타자로 나온 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감독이 팬서비스라는 말을 한 것이다.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잖아. 팬들도 나름 신선한 볼거리니까 좋아하겠지. 수비를 시킬 필요도 없으니 무리하는 것도 아니고, 안타를 쳐도 대주자로 교체할 거니까 나쁘지 않잖아?"
프로야구는 팬이 있기에 존재한다.
그들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히 팀이 승리하는 것이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감독이 제안한 것처럼 이벤트가 있으면 좋았다.
비기는 중이라 타석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함부로 날릴 수 없지만, 연장전에 돌입하면 팬들의 피곤도 커진다.
그럴 때, 팬들이 좋아할 볼거리가 있다면 흥이 나는 법.
남발할 경우 역효과를 조심해야 하지만, 한 번 정도라면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확실히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은 승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은 물론 한국 시리즈로 직행할지 아니면 한 다리 걸칠지가 결정됩니다."
"상위 세 팀의 경기 승수 차이가 반 게임밖에 안 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한 경기, 한 경기 할 때마다 순위가 바뀌고 있었다.
그것도 1, 2, 3위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리그 우승을 하여 한국 시리즈에 바로 진출할지 아니면 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갈지가 결정되는 시기였다.
3위로 마치면 준플레이오프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 한국 시리즈에 가더라도 이미 선수들이 많은 체력을 소모한 뒤라 불리한 상황이 된다.
리그의 순위는 명예도 그렇지만, 포스트시즌에 유리하기 때문에 중요했다.
그걸 알면서도 임상훈 감독의 선택은 바뀌지 않는다.
"타석 하나 바꾼다고 비기던 게 지냐? 그건 아니잖아. 투수 교체하는 것도 아닌데 민감하게 나갈 필요 있어? 어차피 지금은 후반기 초반이야. 남은 경기 많으니까 여유 있게 가자고, 여유 있게."
감독이 바꿀 생각을 하지 않자, 코치들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선수를 선택하는 건 감독이었다.
"알겠습니다."
"동팔아. 들었지. 다음 이닝에 배트 들 준비해."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물론 본인도 예상치 못한, 동팔의 프로 경기 첫 타석이 만들어졌다.
8회의 공방이 끝나고, 상대팀도 9회 초 점수를 내지 못하고 마무리했다.
이어서 9회 말 RG의 공격이 있었지만, 2아웃이 될 때까지 점수를 내지 못했다.
어쩌면 RG의 9회 마지막 타석이 될지 모르는 순간에 오른 사람은 예정된 대로 강동팔이었다.
그걸 알 리 없는 관중들은 동팔이 타석에 오르자 의아해했다.
"어? 강동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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