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무사해서 다행이네."
"야. 너희들. 뭘 보고만 있어. 당장 의무팀 안 불러?"
그들은 민희의 맞은 흔적을 보자 안쓰러우면서도 분통이 터졌다.
동팔을 보고 싶어서 풀려나자마자 병원이 아닌 잠실구장에 왔고, 이젠 다른 것이 그녀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말에 민희는 자신의 얼굴이 어떤지 깨닫고 바로 동팔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보, 보지 마세요! 괜찮으니까 보지 마!!"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쁜 얼굴이 아닌 못난 얼굴을 보여줬다는 사실에 얼굴이 더 붉어졌다.
피가 얼굴에 몰리는 만큼 아픈 곳이 더 아파왔다.
하지만 동팔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니 아픈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민희의 귀여운 반응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크게 웃을 수 있었다.
"하하하! 그래도 빨리 치료 받아야죠."
"우리한테 안 보여줘도 되니까 의료진에겐 보여주셔야 합니다. 빨리 나아야 붓기랑 멍도 빨리 사라져요."
운동하는 선수를 주로 담당하기에 타박상을 포함한 외상에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얼굴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지 민희는 의무실에 가면서도 끝까지 얼굴을 가렸다.
당연히 동팔도 민희와 같이 의무실에 갔다.
남은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내고, 서로 이야기했다.
"무사해서 다행이긴 한데… 왜 풀어줬지?"
"납치까지 했으면 정말 위험할 수 있었을 텐데……."
같은 시각.
민희를 풀어준 조폭.
특히 보스는 오늘의 결과에 심히 만족해하고 있었다.
"됐어!! 완전 대박이야!!!"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도박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볼넷을 던질 가능성이 사라지자 보스는 다른 방법을 취했다.
"설마 무결점 이닝이 나오다니! 하하하!!!"
그것은 동팔이 무결점 이닝을 하는 것.
심호흡의 버릇을 이용해 로데와의 경기에서 무결점 이닝을 한 이후 지금까지 같은 기록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볼넷보다 배당률이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낮은 것도 아니었다.
무결점 이닝 자체가 메이저리그에서도 희귀한 기록이고, 동팔이 하기 전까지 한국 야구에서 없던 기록이었다.
또한 볼넷은 조작이 가능했지만 무결점 이닝은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작의 가능성이 없고, 기록 자체가 희귀하니 기본적인 배당률이 높았다.
결국 무결점 이닝 달성에 돈을 올인한 보스는 높은 배당률로 몇 십 배나 되는 돈을 얻게 되었다.
"크크. 볼넷도 아니니 이놈들도 뭐라고 못 하겠지. 증거는 없고, 완벽한 상황이야.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콧노래와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보스.
그는 동팔의 무결점 이닝으로 큰돈을 만지게 되자마자 민희를 바로 풀어주었다.
민희를 풀어준 이후, 그들은 바로 움직였다.
"야. 바로 체크아웃해. 여기 뜬다."
민희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풀려난 다음 동팔과 만나기 위해 경기장에 갈 수 있었지만 경찰서에 가서 신고할 수도 있었다.
여기로 납치할 때도 그랬지만 감금하고 있을 때도 창을 가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했고, 풀어줄 때도 눈을 가리고 풀어줬다.
그것도 모자라 서울 어딘가에 핸드폰과 함께 떨구고 사라졌다.
설령 풀려나자마자 경찰에 신고한들 적어도 자신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문을 나서기 전, 누군가 노크를 했다.
"실례합니다."
그의 물음에 한 사람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여기 불법 도박 조작하는 사람이 있대서 왔는데요."
"……."
너무 대놓고 물어보는 말에 조폭들은 당황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밖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그렇게 물으면 애들 당황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먼저 말을 한 사람이 답했다.
"여기 사람 있는 거 확인했잖아. 만약 잘못 왔으면 무슨 소리냐는 말이 바로 나왔겠지. 당황해서 아무 말 없는 거 보니 확실하네."
그의 말에 조폭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
하지만 문에 붙어서 말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한 충격이 그를 급습했다.
쾅!!!
큰소리와 함께 호텔방의 문이 뜯어졌고, 문은 바로 앞에 있던 조폭을 덮쳤다.
"헛소리하지 말고!! 내 딸 어디 있어! 이 새끼들아!!!"
분명히 단단히 고정되어 있을 호텔의 문은 한 남자의 발차기에 조금 구겨지며 떨어져 나갔다.
문이 사라지자 여러 명의 남자가 보였다.
그들은 전부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모자가 조폭들의 눈에 들어왔다.
'거, 검은 베레모?'
'특전사들이 왜……?'
경찰이 덮쳤다면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아닌, 군인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비록 무기가 없다지만 경찰과 군인의 무게감이 달랐다.
무엇보다 발길질 한 번에 호텔 문이 약간이나마 구겨졌다.
문을 박차고, 막은 그들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전부 검은 복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명찰도 떼어냈는지 보이지 않았다.
"당신들 뭐야?! 뭔데 이 지랄이야!!"
보스가 크게 소리쳤지만 특전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군복을 입은 그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제일 앞에 있는 남자가 뒤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야. 걔네들 언제 온대?"
"13분이면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럼 10분 동안 조질 수 있겠네. 어디 보자……."
앞에 서서 문을 부순 남자는 조폭들의 숫자를 세어 나갔다.
"하나, 둘, 셋… 열… 열다섯. 열다섯이다. 알려줘."
"알겠습니다."
한눈에 봐도 조직 폭력배인 것을 봐도 무덤덤했고, 오히려 무시하면서 숫자를 세는 그들을 보자 조폭들은 급격히 불안해졌다.
그렇다고 도망칠 곳은 없었다.
높은 곳이라 창문으로 나갈 수 없었고, 유일한 탈출구인 문은 이들이 막고 있었다.
그런데 문까지 부수고 온 이상, 좋게 말한다고 '네. 편안히 지나가세요'라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니 조폭들이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
"뚫어!!"
고작해야 다섯 명밖에 안 되는 이들을 제압하여 지나가는 것.
숫자는 자신들이 더 많기에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했다.
다수가 소수를 상대할 때엔 화력의 집중이 가능한 넓은 곳이 유리했다. 하지만 이들이 있는 곳은 좁은 길.
두 명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넓은 어깨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
터덕.
"윽!"
"억!!"
서로의 어깨에 부딪혀 움직임이 방해되었고, 그 틈에 군인은 군화발로 한 사람의 다리를 내리찍다시피 찼다.
우득.
"아악!!!!"
단단한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이어서 군인은 손날로 다른 조폭의 어깨와 목 사이를 내리찍었다.
쩌억!!
단 두 번의 공격으로 두 명이 무력화되었다.
손날에 맞은 사람은 기절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다리를 발로 채인 조폭은 꺾여버린 다리를 부여잡지도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아! 아악!!"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터진 고통에 절로 나오는 비명이었다.
하지만 그를 발로 찬 군인은 비명이 마음에 들지 않은지 엎어진 조폭의 입을 발로 찼다.
퍽!!
"읍!!"
강한 충격이 머리로 가자 그는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기절했다.
하지만 지켜보는 조폭들은 자신이 맞지 않아도 두려움이 절로 한 걸음 물러섰다.
특히 방금 전에 입을 발로 채인 조폭의 피 묻은 이가 바닥에 뿌려진 것을 보자 더 두려웠다.
이 모습을 보던 군복을 입은 한 사람이 말했다.
"괜히 악귀라 불린 게 아니라니까……."
그의 말에 앞에 선 군인이 뒤돌아서 그를 보며 말했다.
"전역 안 했으면 너도 조졌을 텐데… 전역해서 다행이라 생각해라."
그의 말에 악귀라 말했던 사람이 서둘러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넵……."
그의 입을 막은 사람은 다시 조폭을 봤다.
조폭들은 그가 뒤돌아 있었어도 차마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하지 못했다.
선두에 선 사람은 조폭을 보다가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고, 다시 조폭을 노려 본 다음 말했다.
"12분 남았다. 내가 다 상대해줄 테니까 덤벼."
그의 말에 보스가 물었다.
"서, 선생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특전사 군복을 입은 민희의 아빠가 움직였다.
빠악!!
그는 말로 하지 않았다.
제일 가까이 있는 조폭에게 발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에게 가슴을 맞은 조폭은 억! 소리도 하지 못하고 벽으로 날아가더니 기절했다.
눈을 떠도 흰자위만 보인 상태로 기절한 부하를 보자 보스는 알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미 작정을 하고 왔다는 것을.
이렇게 된 이상 보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외통수였다.
"조져!!"
방금 전과 달리 이젠 좁은 통로가 아닌 넓은 방으로 들어온 민희의 아빠였기에 희망을 보고 달려들기 시작한 조폭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오히려 넓은 방에서 일어난 격투야 말로 민희 아빠의 장기였으며 특기였다는 사실을.
툭, 탁, 퍽, 퍽, 퍽!!!
12분 후.
혼자서 조폭들을 다 처리한 민희의 아빠는 피를 흘리고 기절한 조폭들을 계속 밟고 있었다.
퍽! 퍽! 퍽!!
"죽어! 죽어, 이 새꺄!!"
그러자 보다 못한 그의 후임이 다가와서 말렸다.
"선배님. 시간 다 됐습니다. 이제 가봐야 합니다."
하지만 후임의 만류에도 민희의 아빠의 분노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뭐? 오려면 아직 2분 남았잖아."
분명히 경찰이 도착할 시간은 2분이 남아 있었지만 그 전에 지금 철수하기로 한 것도 있었다.
괜히 경찰과 마주치면 좋을 것도 없는 것이 현실.
"이것들이 내 딸한테 한 짓거리를 생각하면 한참 부족해!!!"
참고로 민희가 조폭들에게 맞은 것은 급소 몇 대와 얼굴 몇 대, 소리만 큰 타격 몇 회로 국한되었다.
그 정도만으로 민희의 얼굴의 반쪽은 크게 부어오르고, 멍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조폭들은 팔과 다리가 부러지거나 이가 부러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의 뼈에 금이 갔거나 부러진 상태였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열다섯 명 전부.
민희에게 한 것 치곤 심했지만 딸이 맞아서 부은 얼굴을 본 아빠의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심정은 알았지만 그래도 이대로 계속 조폭들의 뼈를 분지르는 것을 묵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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