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동팔의 큰 목소리에 그의 엄마가 놀라서 방에 들어오셨다.
"동팔아? 민희에게 무슨 일 생겼니?!"
그러자 동팔은 핸드폰을 숨기며 말했다.
"아뇨. 엄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동팔이 방금 전 소리 친 것과 숨기려는 행동을 보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보통 상황이 아님을 알고 적당히 넘어갔다.
"그래. 오늘 선발이라 잠꼬대를 했나 보구나."
엄마가 나가자 동팔은 다시 통화를 했다.
"영원히 못 본다는 말은 무슨 말이야. 죽이겠다고?"
―꼭 죽이는 것만 못 보게 하는 건 아니지. 여러 남자한테 여기 저기 뚫리면 알아서 피할걸?
어쩌면 죽는 것보다 못 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그들의 협박.
동팔은 두려웠지만 확인할 것이 있음을 떠올렸다.
"민희가 무사한 건 내가 어떻게 알고? 목소리는 들려 줘야 하는 거 아냐?"
―뭐… 그건 알고 있긴 한데… 이 아가씨가 의외로 고집이 세. 말하라고 해도 입도 뻥긋 안 해서 말이야.
그가 말을 마치자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퍽! 퍽! 퍽!
무언가 맞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이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작은 숨소리조차.
"지금… 엄한 거 치고 협박하는 겁니까?"
―아니… 그게 좀… 고집이 세다고. 어떻게 숨소리나 신음 하나 안 내고 있어? 이렇게 독한 년이랑 어떻게 사귀지?
"나랑 지금 장난쳐? 영상통화도 안 하고 내가 어떻게 믿어."
―영상통화도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건 자동 모자이크 처리 안 되잖아. 녹화하는 것도 있지만… 지금 안전하다는 건 확실하지 않으니 그것도 안 되고.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쪽이 영상을 저장하면 빼도 박도 못 하는 증거가 되며 곤란하거든.'
가능한 안전하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문제가 있다면 민희가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원래는 납치한 뒤 의식이 깨어나면 바로 전화할 예정이었지만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회유와 협박을 해도 입을 열지 않고 밤을 보내자 조급해진 그들이 먼저 이런 수를 쓴 것이다.
―뭐… 믿지 못하면 어쩔 수 없고. 아직까지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
―선택은 그쪽이 잘 판단해서 해. 오늘 경기에서 볼넷을 던지든지. 아니면 사랑하는 애인 얼굴 영원히 못 보든지.
뚝.
그 말을 남기고 조폭의 보스가 전화를 끊었다.
"야. 됐으니까 그만 때려. 소용없다. 씨바……."
그의 명령에 민희를 주먹으로 때리던 사람이 행동을 멈췄다.
보스는 맞으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 민희를 봤다.
때릴 테면 때려 보라며 노려보는 눈빛에서 죽더라도 결코 입을 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절라 독한 년일세… 야. 어떻게 신음소리 하나 안 낼 수 있냐."
뼈가 부러지거나 어딘가 터질 정도로 강하게 때리진 않았다.
소리가 나긴 했지만 손바닥이나 주먹을 약하게 쥐면서 때렸다.
그것만으로 소리는 났지만 그것은 동팔에게 들려주기 위해 때린 것이고, 다르게 때린 부분이 있었다.
소리만 나고 둔탁한 소리만 나게 때린 것이 아니라 급소를 약하게 쳤다.
급소이니 강하게 치면 죽을 수 있었기에 고통만 가중시키는 방법이었다.
명치의 경우 가볍게 쳐도 호흡이 곤란해졌다.
꼭 급소가 아니더라도 통증이 심한 곳을 노려서 치기도 했다.
새끼발가락이 문틈에 치이면 절로 눈물이 날만큼 아픈 것처럼.
하지만 그렇게 맞고, 또 맞아도 민희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통화가 되는 사이에 입을 꽉 다물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러자 때리던 사람은 생각대로 되지 않자 짜증을 내며 민희의 뺨을 주먹으로 쳤다.
"이년이!!"
퍽!!
남자의 체중이 실린 주먹을 맞아 민희는 서 있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하지만 쓰러진 후에도 그녀의 눈빛은 전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 쳐보라는 듯이 때린 사람을 노려봤다.
"이년이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나……."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그는 민희의 멱살을 잡아 억지로 세웠다.
그가 제대로 다시 얼굴을 치려 하자 보스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만해. 이미 통화 끝났다. 그리고 진짜 죽으면 네가 다 책임질 거야?"
"하지만… 이년이 입을 열지 않으면……."
"입 열게 하려다 완전히 벌어지게 만들면 그것도 소용없어. 그러니 작작해. 새꺄."
"아, 알겠습니다."
보스가 노려보자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가 멱살을 잡은 손을 놓자 민희가 바닥에 쓰러졌다.
비록 몸에 힘이 없어도 민희는 여전히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 보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진짜 잘못 잡았네. 순한 직딩인 줄 알았더니 독사야 독사.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납치라고 했지만 적당히 겁을 주면 알아서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불법 도박에 납치까지 한 이상, 폭행에 살인까지 더할 이유는 없었다.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민희를 때리거나 살해할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서로가 원한을 더 가지지 않고 좋게 좋게 넘어가기 위해선 최대한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보스의 원래 계획.
그런데 민희가 이렇게까지 저항하고 독기로 맞서니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계획대로 되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막히고 말았다.
"어이. 아가씨. 우리 계획에 협조만 해. 협박받아서 했다고 하면 되잖아. 그리고 대가로 받은 것도 없으면 넘어가잖아."
보스의 말에 민희가 말했다.
"조까고 있네. 씨바……."
예쁜 얼굴과 달리 험한 말이 나오자 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는 사이 민희가 말을 이어갔다.
"도박 조작에 연루되는 것만으로 우리 오빠 선수 생활 끝나. 니들이 한 말이 사실이라도 누가 믿어? 다 짜고 친다 생각하지……."
야구에 대해서 그리고 범죄와 도박과 이어질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민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말대로 정말 피해자라도 진실이 규명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정말로 규명된다 하더라도 팬들의 싸늘한 시선이 바뀌는 데 또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그것을 막을 방법은 하나 있었다.
그 방법에는 대가가 있었지만.
'괜찮아… 내가 이놈들에게 죽으면… 오빠의 결백은 확실히 증명되니까…….'
설령 동팔이 볼넷을 던지고, 도박 조작에 연루되었다 하더라도 애인이 죽었다면 상황은 반대가 될 것이다.
동팔은 철저히 피해자로, 팬들도 그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안쓰럽게 바라보고 또한 사람을 죽여서까지 도박 조작을 한 조폭들은 특수 살인죄가 추가될 것이다.
민희의 말에 보스가 말했다.
"아, 죽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겠다? 내가 너 같은 년놈들을 좀 봐서 잘 아는데 그거 아냐? 죽음을 각오하는 사람은 많지만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 거의 없다. 어떤 사람이 말했는지 몰라도 참 마음에 드는 말이지. 적어도 죽이진 않아. 대신 많이 아플 거야."
보스는 그 말을 하고 앉아서 민희의 부어오르는 뺨을 툭툭 치고는 다시 일어났다.
"일단 좀 쉬고 있어. 좀 이따가 제대로 해줄 테니까."
보스는 그 말을 하고 부하들을 보며 말했다.
"이년 허튼짓 못 하게 지키고 있어."
보스는 지키는 부하 둘만 남기고 그 방을 나와 민희가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한 부하에게 말했다.
"지키는 애들, 헛짓 못 하게 한 놈이 지키고 있어. 나중에 돌려보내야 할 때 돌려보내지 못하면 되면 될 일도 안 되니까."
조폭이라 해서 모두 인면수심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긴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
바꿔 말해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이면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묶여 있는 젊은 여성을 방에 두고, 건장한 남자 둘이 있다면 무사하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도박을 조작해 큰돈을 만지는 것.
그 과정에 살인이나 겁탈이 생기면 그 이후에 깔끔하게 끝낼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민희가 알게 해주면 원하는 대로 진행이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보스의 명령에 지명을 받은 부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민희가 갇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민희는 묶여 있는 상태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여전히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거나 편하게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늘어났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민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설마… 오늘 죽는 걸까? 그런데 오빠는 이놈들이 협박한 대로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안 되는데…….'
자신도 걱정됐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동팔이 길이 꼬이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오빠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겨우 날개를 폈는데… 나 때문에 막히면 안 되는데…….'
이전부터 동팔을 봐온 민희였다.
고교 시절 사람들의 이목을 받았을 때부터 그가 방출당해 나락으로 떨어지던 모습을 보았다.
동팔이 힘들어하던 것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었다.
동팔이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그가 회사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 것도 그 마음 때문이지도 몰랐다.
하지만 야구할 때의 동팔을 알고 있는 민희는 회사에 있을 때 무기력한 동팔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동팔의 실수를 가려주거나 적당히 말하여 덜 혼나게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동팔이 하고 있던 아마 리그에 업무 핑계를 대며 찾아갔다.
그러던 중에 동팔이 다시 야구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말에 반색한 사람은 다름 아닌 민희였다.
그의 집에서도 동팔이 다시 야구에 전념하겠다고 했을 때 말렸지만 당시 동팔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사람은 민희가 유일했다.
민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도와주긴 했지만 민희처럼 적극적이진 않았다.
잘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더라도 다시 도전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그리고 불과 1년 만에 동팔은 완벽하게 부활하다 못 해 진화해서 돌아왔다.
그런데 그동안의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와해시키게 만들 일이 생기고 말았다.
민희는 어떻게 해서든 동팔의 추락을 막으려 하는 것이다. 설령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하지만 두렵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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