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변화구 연습이요? 잠깐만요. 그럼 몇 개의 고리를 통과한 건가요?"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나중에 3개를 동시에 통과했습니다."
동팔의 말에 사회자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에이~ 농담도 잘하신다. 설마 정말요?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하시면 봐 드립니다. 안 그러면 정말로 세 고리를 통과시키는 것을 보여주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전혀 꿀릴 것이 없는 동팔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당장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운드에 올라서 제대로 던져 보이겠습니다."
동팔의 자신만만한 말과 행동에 사회자가 말했다.
"동팔 선수가 직접 말했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확인해 보시죠. 이거 실패하시면 1등 물려도 되겠습니까? 그럼 상금은 2등을 한 남궁지완 선수에게 갑니다."
"괜찮습니다."
동팔이 물러나지 않자, 사회자도 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행 요원분들은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연 강동팔 선수가 고리 세 개를 통과시킬 수 있을지 여기에 모인 팬 분들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상외의 게임이 추가되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흥미 있게 바라보았다.
준비가 되자 사회자가 동팔에게 말했다.
"고리가 세 개니까 세 번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성공하실 수 있으십니까?"
사회자의 말에 동팔이 답했다.
"한 번이면 됩니다."
"오~ 대단한 자신감. 한국 리그 최고 투수의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그럼 동팔 선수가 말한 대로 한 번의 기회만이 주어질 겁니다. 그럼 시작하시죠."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마운드에 오른 동팔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가 자세를 잡자 보고 있는 선수들이나 팬들도 긴장하며 지켜보았다.
스윽~ 휙!
공을 생각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제대로 폼을 잡고 던진 공은 빠르고 정확하게 고리의 궤적을 따라 날아갔다.
"성공!! 성공입니다!! 두 개만 통과해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정말 고리 세 개를 통과했군요. 비결이 뭡니까?"
사회자의 물음에 동팔이 답했다.
"방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노력입니다. 몇 년 동안 제구력을 갈고 닦기 위해 정말 많이 연습했거든요. 120 이상은 무리지만 그 아래로는 얼마든지 통과할 수 있습니다."
방금 전에 던지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동팔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할 말이었다. 하지만 스피드건에 찍힌 숫자 117을 보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강동팔 선수를 있게 한 이유를 바로 여기서 볼 수 있었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강속구도 강속구지만 제구가 완벽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었군요."
동팔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서 팬들과 지켜보던 선수들도 박수를 쳤다. 하지만 남궁지완은 박수를 치면서도 작게 중얼거렸다.
"거짓말……."
게임 하나가 끝나고 백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게 된 동팔은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했다.
"어머니께 드리면 되겠지? 그러면 나중에 누나랑 같이 쇼핑하실 거니까."
아버지나 민희도 떠오르지만 이번에 얻은 상품은 동팔이 말한 엄마와 누나에게 더 맞을 것 같았다. 그 말을 하고 잠시 쉬기 위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이번에는 같은 팀이 된 동욱이 반겼다.
"여~ 정말 대단하던데."
그 말을 하면서 주먹을 내미는 동욱.
동팔은 그가 내민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가볍게 쳐 하이파이브를 하며 말했다.
"노력의 성과야. 너도 많이 노력한 것 같은데 아냐?"
"그야 그렇지… 능력이 있다고 해서 갈고 닦지 않으면 후회하게 되니까. 안 그래?"
한동욱은 그 말을 하며 상대팀에 있는 민호준을 봤다.
그의 시선에 강동팔도 어떤 이유로 그를 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가… 그럼 저 사람도 우리랑 같이?"
"응. 하지만 우리와 달리 능력만 믿고 방심하다가 시간만 잡아먹었어. 아마 올해가 끝이라더라."
"그래……."
올해로 더 이상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 이미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월드 시리즈에 우승해야 하지만 지금 민호준이 있는 곳은 아직도 한국 리그다.
여름 이적 시장도 끝난 이상, 민호준이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는 길도 끝났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과거에 세운 기록 그리고 이번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끝날 자신의 남은 삶이었다.
그래서인지 민호준은 올스타전에 뽑혀 여기에 왔어도 눈빛은 이미 죽어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며 동팔이 말했다.
"안타깝긴 하지만… 우리도 저렇게 안 된다는 보장은 없지."
"그래도 우린 메이저에 진출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거고."
"너무 확신하는 거 아냐?"
"확신하지 않을 수 있냐? 말은 하지 않지만 우리가 이 페이스를 유지하면 99.9% 확정이야. 공개적으로 말만 안 나오고 있지 사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잖아."
한동욱은 그 말을 하고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나는 홈런이나 장타도 그렇지만 타율이 아주 높지. 그리고 너는 구위의 스펙도 중요하지만 삼진의 숫자와 피안타율이 아주 낮다는 것. 그것만으로 메이저리그의 구단이 나설 이유는 충분해. 또 포스팅 금액도 구단이 거절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갈 것이 뻔하고."
그건 동팔도 잘 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팔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아니었다.
"그런데 넌 무슨 능력을 얻었어? 단순히 속도가 빨라진 것 같진 않은데."
"나? 생각하면 별거 아니야. 능력을 얻더라도 당장 효과를 보는 것도 아닌 능력이거든."
"그래서 어떤 능력인데?"
"나만 말하기야? 너는?"
"나도 말하면 되지. 어차피 우리가 적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조만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국가대표로 한 팀에 있을 건데."
동팔의 말에 한동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WBC도 있었지. 메이저만 생각하다보니 잊고 있었네. 내 능력은 별거 아니야. 신경 전달 속도가 극한으로 빨라지는 것. 그것뿐이지."
"응? 정말? 그래서?"
"그래서는 뭐 그래서. 신경 전달 속도가 남들보다 빠르니 네 공이 아무리 빨라도 보고 칠 수 있는 거라고. 변화구도 마찬가지야. 배트를 조절하는 것은 물론 수비할 때. 아무리 빠른 강습형 타구라도 방향을 보고 잡는 게 가능해. 물론 더 빨리 그리고 더 정확히 타격하고 송구하기 위해선 그만큼 노력해야 하지만. 덤으로 주력(走力)도 조금 늘어났고."
동욱의 설명에 동팔은 그가 왜 뛰어난 선구안과 타격 감각 그리고 탁월한 수비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그래서 그게 가능한 거였구나."
"하지만 그것만 믿고 멍하니 있다간 더 빨라질 수 있는 것도 불가능해. 많이 보고, 분석하고, 경험을 쌓아야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 그리고 원하는 지점에 정확히 타격하기 위해선 연습 그리고 또 연습뿐이야. 그건 너도 알고 있잖아."
동욱도 동팔이 제구를 정확하게 해서 고리를 통과하는 것을 봤을 때, 처음에는 악마의 능력으로 인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120이 한계? 그럼 정말로 계약하기 전에도 이 정도 제구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러게 되자 동욱은 동팔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감각과 재능을 가진 천재. 그리고 누구보다 쉬지 않고 노력하는 노력가. 그럼 혹사로 인해 방출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이 정도 능력을 갖추었을지도…….'
악마의 계약으로 지금의 구위를 갖춘 것도 사실이지만 계약은 동팔에게 있어 시간을 줄여주고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는 것으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넌 무슨 능력인데?"
"나? 회복. 어떤 혹사나 부상을 당해도 다음 날이면 깔끔하게 회복하는 거지."
동팔은 그 말을 하면서 또 다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부상을 회복하는데 고통이 따른다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만약을 위해서 말할 이유는 없지.'
피곤에 의한 회복도 고통스럽다. 지난번 무릎을 크게 부상당해 회복할 때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이후에 산속에 있으면서 한 미친 수련을 할 때, 매일 죽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혹사에 혹사를 거듭했다.
그러면서 그때, 동팔은 걱정했다.
'잠깐, 나 예상치 못한 부상을 크게 당하면 정말 죽는 거 아냐?'
부상에 직접적인 타격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과정에서 느낄 고통으로 죽을 수 있었다.
물론 마취를 하고,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리면 넘어갈 수 있지만 항상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깊은 잠에 빠져도 고통으로 인해 다시 깨어날 때가 훨씬 많았다. 처음에 악마가 강제로 의식을 잃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깨와 등, 팔의 부상에서 회복하는 동안 죽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그러니 나중을 생각해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어. 같은 입장이지만 나중에 적이나 걸림돌이 된다면, 일부러 사람을 시켜 나에게 큰 부상을 입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아직까지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지 않았다.
고작해야 인대가 끊어지거나 관절에 무리가 갔던 것이 최대였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죽음이 더 낫다고 생각할 고통이 찾아왔다.
그런데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지게 된다면 어떤 고통이 찾아올까? 동팔은 그 고통을 참을 자신이 없었다.
"회복… 회복이라… 하긴 그때, 몸만 회복된다면 이전의 구위를 찾는 것만으로도 재기할 수 있을 테니까… 부럽네."
동욱의 말에 동팔이 물어 봤다.
"그런데 왜 넌 다른 것보다 그걸 바란 이유가 뭐야?"
"그거? 그건… 말하면 너도 이해할 거다. 공이 눈에 들어오고, 어떻게 들어오는지 아는데 팔과 손의 반응이 느려서 칠 수가 없어. 그리고 1군은커녕 계속 2군에만 있게 되면… 어떨 것 같아?"
그의 말에 동팔은 그의 말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동팔도 계약하기 전, 공을 던질 때마다 자신이 잘 던지던 때가 안 떠오를 수 없었다.
공을 던질 때마다 느껴지는 무력함.
분명히 뇌에선 기억하고 있는데 몸이 따라가지 못해 구속은 120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 간절히 바라고 바랐지. 적어도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면, 아니 그냥 내 머리에서 내린 명령을 팔이 빨리 움직여 주기만을. 그런데 재작년엔 구단에선 더 이상 재계약할 생각이 없다 하더라고. 이대로 끝나는가 싶었을 때, 그 녀석이 나타났지."
그 이후의 과정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동팔이 했던 것처럼 영혼을 건 계약이었다. 100%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만족시키면 무사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고 했다.
"그런데… 아니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동욱은 뭔가 더 말하려다 멈추었다. 그러던 중 이들에게 다가온 한 사람이 있었다.
"헤이, 동팔. 많이 친한 친구인가 봐."
"아, 히네신스. 친하다면 친한 사이죠."
다가온 사람은 동팔과 같이 RG의 선수인 용병 타자 히네신스였다.
같은 구단에 있고, 동팔이 영어를 잘 하기에 많이 친해진 두 사람이다.
"그래? 올스타전이라 편하게 이야기하는 게 가능할지도. 그런데 올스타전은 처음이지. 난 두 번째인데도 적응이 안 되더라."
"네?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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