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87화 (87/325)

[87]

동팔이 오후 내내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때, 남궁지완은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관중석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혜진을 바라봤다.

이제 더 이상 놓칠 수 없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할 절대적인 이유.

악마와 계약한 만큼 그에게 새로운 힘이 생겼다.

으득!

'내가 악마와 계약해서 얻은 힘은 잠재력의 극대. 힘도 민첩도 분석력과 판단력 그리고 몸의 밸런스를 자연스럽게 맞추는 것까지 해서 전부 말이지.'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지금은 그 효과를 확인하는 것이다.

마운드에 오르기 전, 이미 볼펜에서 공을 던져 몸 상태만 가볍게 확인했다.

그리고 마운드에 올랐지만 아직 경기가 시작되기 전인 지금은 완전히 전력을 다해 던질 생각이 없었다.

스윽~ 휙!!

하지만 전력이 아닌 투구만으로도 이전에 던진 그의 구위와 달라졌다.

쉭~ 퍽!!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온 남궁지완의 패스트볼.

옆에서 보는 오성의 선수들은 이번에 던진 공을 보자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왠지 오늘 지완이 상태 좋은 것 같은데요?"

"어쩌면 완봉하는 거 아냐? 공이 날카롭게 파고든 것 같아."

옆에서 보는 사람들도 느끼는 것을 직접 공을 받은 포수가 모를 수 없었다.

"좋아~!! 다른 걸로 다시!!"

그는 평상시처럼 투수를 독려하며 공을 다시 던져 주었다.

방금 전의 남궁지완의 투구를 떠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정신이 바짝 들었다.

'확실히 전보다 더 빨라졌어. 느낌인지 몰라도 볼 끝의 움직임도 좋았고. 흔들림도 역시 없었어.'

너클볼이나 다른 변화구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경계를 오가면서 볼 끝에 움직임이 많아야 한다.

포심은 얼마나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날아오는지가 관건인 구종이다.

분명히 그가 봤을 때, 남궁지완의 구속은 전보다 더 빨랐다.

공은 주변에 부는 바람을 뚫고 들어오듯이 자신의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왔다.

그는 방금 전에 지완이 던진 구속을 어림짐작으로 맞췄다.

'아마… 155 이상은 확실한 것 같은데…….'

그의 짐작은 맞았다.

지금 남궁지완이 던진 구속은 시속 157킬로였다.

그리고 얼마 뒤.

경기가 시작되고 5이닝을 넘어갈 때였다.

쉭~ 퍽!!!

남궁지완의 빠른 직구가 타자의 배트를 헛돌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 정도는 야구를 하다보면 자주 있는 일이다.

그 뒤에 찍힌 스피드건의 숫자는 '160'이었다.

이 소식은 당연히 모든 스포츠 매체에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퍼져 나갔다.

브레이크 타임, 올스타전

프로야구에서 전반기와 후반기를 나누는 것은 경기의 숫자가 아니다.

오히려 전반기의 경기는 90여 경기가 있고, 후반기에 남은 50여 개의 경기를 치른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은 올스타전이다.

선수를 뽑는 기준은 실력 그리고 인기다.

감독이 뽑는 선수 12명과 팬들이 뽑은 12명이 한 팀이 되어 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실력은 물론 인기가 많은 동팔과 동욱이 올스타에 뽑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구단의 선수를 책임져야 할 감독의 입장에선 올스타로 뽑히는 것이 마냥 좋을 수 없었다.

"동팔이야 특별히 훈련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치지 말고 잘 놀다 와."

"에, 에? 놀다 와요?"

동팔이 생각하는 올스타전은 메이저리그의 피가 튀는 접전이 일어나는 경기였다.

하지만 임상훈 감독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올스타전에 가면 알게 될 거야. 그러니 다치지만 말고. 놀다 온다 생각하고 갔다 와. 네가 많이 던져서 좀 쉬게 하려고 했는데 팬들도 감독도 뽑으니 별수 있나……."

야구는 팬들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그들의 돈으로 먹고 산다.

덤으로 팬이 많은 구단일수록 광고 수입이 많아져 또 다른 수입원이 되어 준다.

올스타전의 팀 구성은 기본적으로 실력이 뛰어난 각 팀의 선수들이 포지션 별로 뽑힌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팀은 드림팀과 나눔팀으로 불리며 이틀 동안 두 번의 경기를 치른다.

그러니 이전에는 상대팀에 소속되어 경쟁하던 선수와 같은 팀이 되어 호흡을 맞추는 일이 이틀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다.

올스타전에 온 동팔은 주변을 돌아본다.

전에는 다른 팀이라 경쟁하던 선수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정식 경기가 아니기에 다른 팀의 선수와 친한 척을 해도 상관이 없었다.

곧 경쟁을 하게 될 그들이었지만 소풍이나 놀러온 것처럼 편하게 있었다.

팬들도 승패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보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과 분위기에 동팔은 생각했다.

'이 느낌… 왠지 예전에 느낀 것 같았는데… 뭐지?'

동팔이 의문을 해결하기도 전에 올스타전의 행사와 식순이 진행되었다.

올스타전은 두 번의 경기를 치르는데 그 전과 후에 이벤트와 같은 행사가 있다.

그 행사 중 하나가 바로 여러 종류의 미니 게임이었다. 미니 게임에는 경차를 비롯한 상금이 걸려 있어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때마침 동팔에게 유리한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고리에 공을 얼마나 많이 통과하면 점수를 얻습니다. 1등에게는 백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이 증정되니 살림에 보태어 쓰세요."

사회자의 말에 선수들이 하나씩 나와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투구하는 것이 아니라서 선수들은 글러브를 끼지 않고 던졌다.

투수 출신이라면 그나마 공을 많이 던져보았다.

그러나 타자만 해 온 선수는 공이 고리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투수가 고리에 공을 통과한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투수들은 어쩌다 한 번 공이 고리에 통과했을 뿐, 대부분의 투수는 공이 고리 근처에 가거나 맞아서 튕겨 나왔다.

"아~ 아쉽습니다. 잘하면 통과할 수 있었는데요."

사회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게임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 공을 고리에 통과시키는 것을 성공한 선수는 다섯 명이었다. 그것도 많아야 열 번의 기회에 두 번이 전부였다.

이번에 던지는 사람은 한동욱.

"아… 어떻게 던지지……."

아무리 섬세하고 분석력이 좋은 그라 할지라도 공을 던지자니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강속구를 던질 이유도 변화구로 타자를 속여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이렇게?'

그나마 유격수와 2루수를 하면서 수비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재빠르게 공을 정확히 던지는 것을 항상 훈련했고, 동욱의 생각대로 빠르게 던질 필요가 없었다.

고리는 움직이지 않으니 변화구를 던질 필요도 없으니 오직 통과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그만.

휙~

하지만 처음 다섯 번은 고리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선수들과 팬들은 한동욱이 던질 때 눈을 떼지 못했다.

"왠지 한동욱 선수가 던질 때마다 공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과연?"

사회자의 말이 끝나고 동욱은 공을 던졌다.

휙~ 팅.

처음으로 공이 고리에 맞자 사회자는 정말로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고리에 맞았는데, 남은 네 번의 기회에서 과연 1등을 할 수 있을까요? 세 번 통과하면 1등입니다!!"

사회자의 말을 들어서인지 몰라도 일곱 번째에선 거의 고리에 통과할 뻔했다.

이후에 던진 8, 9, 10 번째의 기회에선 전부 공이 고리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었다.

"놀랍습니다!! 타자인 한동욱 선수가 10번의 기회에서 3번 고리를 통과했습니다. 만약 20번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더 많이 들어갔을지도 모르는데 아쉽군요. 그래도 현재 1등입니다!! 다음 선수는 한참 물이 올라오고 있는 남궁지완 선수."

사회자의 소개에 남궁지완이 자리에 섰다.

투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서 마운드에서 던질 필요가 없었다. 그는 공을 받은 뒤 별 생각을 하지 않고 고리를 본 다음 던졌다.

휙~ 팅.

처음에 던진 공은 잘 들어가지 않고 튕겼다.

"오~ 역시 남궁지완 선수. 처음부터 고리에 맞혔습니다."

처음에만 영점이 안 맞았는지 이후로 던진 모든 공을 고리에 통과시킨 남궁지완이었다.

그러자 사회자는 물론, 지켜보고 있던 모든 선수들이 놀라며 순수하게 박수를 쳐 주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자그마치 9개의 공을 고리에 통과시켰습니다. 과연 이 기록을 깰 수 있는 선수가 있을까요?"

투수라도 2개 이상을 넣기 힘들었다. 오히려 투수가 아닌 한동욱이 3개를 성공시킨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10개 중 9개를 성공시켰으니 남궁지완이 1등임을 거의 확신했다. 보통이라면 예상대로 흘러갈 것이다.

'역시 악마와 계약을 한 성과가 있어. 이전이라면 3개도 힘들었을 텐데.'

동팔을 이기는 데 집착을 한 그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실력에 대한 정확한 판단도 하고 있었다. 단순히 고리에 통과하는 게임이었지만 실제로 처음 하게 되면 투수라도 힘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후에 올라오는 선수들 중에 2개 이상 넣는 선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올라온 선수는 강동팔이었다.

"마지막 도전자는 강동팔 선수입니다. 과연 9개를 넘어, 10개 전부 통과시킬 수 있을까요?!!"

사회자는 긴장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말했다.

그러나 동팔에게 있어서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은 시시했다.

'생각보다 가깝잖아. 그리고 돔구장이라 바람도 불지 않고.'

이건 굳이 악마와 계약을 하기 전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좋다… 전에는 이거 100개 이상 연속으로 통과했어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는데 10번만 통과하면 100만 원을 받는다니…….'

동팔은 공을 잡은 뒤 가볍게 고리를 향해 던졌다.

심호흡도 하지 않고, 돌 던지듯 공을 던지는 모습에 사람들은 뜨악했다. 동팔의 공이 너무 쉽게 고리를 통과하자 놀라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뭐지? 게임을 포기하고 마음을 비웠나?'

'너무 쉽게 던지잖아?'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0번 연속으로 일어나면, 더 이상 우연으로 볼 수 없었다.

동팔이 10번 연속으로 고리를 통과하자 사회자는 크게 외쳤다.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남궁지완 선수가 1등을 하리라 확신했는데 설마 10번 전부 통과시킬 줄은 몰랐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동팔이 사회자의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2등으로 밀려난 남궁지완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야 당연히 악마와 계약했으니 그렇지.'

하지만 진실은 그리고 동팔의 답변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이전부터 이런 훈련을 해 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 쭈욱. 강속구를 던질 수 없던 때라 변화구를 연습하면서 했던 훈련이었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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