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82화 (82/325)

[82]

마운드에 오른 타자들이 동팔의 얼굴을 봤다.

다른 부분이 아닌, 자신의 얼굴.

최근 자신이 상대한 타자들은 전부 동팔의 얼굴을 봤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민철의 지적을 듣자 이젠 확실하게 알았다.

'내 얼굴을 본 이유가 심호흡하는지, 안 하는지 보겠다는 거였잖아.'

공이 아닌 습관에만 올인해야 하는 타자들이 이젠 오히려 귀엽게 보이는 동팔.

귀엽게 보기엔 나이가 좀 많고, 얼굴이 좀 우락부락했지만 상관없었다.

'전에는 사냥감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장난감이 되어줘야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농락한 대가라고 생각하세요.'

상대하는 타자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였기에 속으로라도 반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말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지만.

동팔은 먼저 심호흡을 하지 않고 두 개의 변화구를 던졌다.

전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특히 두 번째로 던진 변화구는 한 가운데를 향하는 실투와 같은 공이었다.

하지만 동팔의 심호흡만을 기다리고 있던 타자는 좋은 공이 와도 치지 못하고 말았다.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에 몰리자 타자는 생각했다.

'쳇, 직구에 신경을 쓰기보다 다른 공에도 신경을 썼다면 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직구가 날아온다는 것을 미리 아는 장점이 너무 컸다.

하지만 카운트가 극도로 불리하게 되자 마냥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동팔이 심호흡을 하든지 말든지, 이젠 그의 공을 보고 쳐야 할 상황.

동팔은 이번에도 심호흡을 하지 않고 공을 던졌다.

'유인구!!'

직구가 아니라면 유인하기 위한 변화구밖에 없다.

쉭~!!

변화구치곤 빠르게 날아오는 공.

하지만 타자는 그대로 들어온다 생각하지 않고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나, 옆으로 빠질 슬라이더를 감안하여 더 낮게 배트를 휘둘렀다.

휙.

하지만 동팔이 던진 공은 끝에 가서 궤적이 변하지 않았다.

타자의 예상과 달리 빠르고 정직하게 들어온 직구였다.

예상이 틀린 이상, 배트는 공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헛돌았다.

"스트라익~ 아웃!!"

헛스윙이니 공의 궤적이 어떠하든지 간에 완벽한 삼진이었다.

심판의 당연한 판정에 타자는 받아들이면서도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

분명히 변화구라 생각하고 그것을 감안해 휘둘렀다.

하지만 들어온 공은 정직한 직구였다.

이전처럼 심호흡을 하지 않고 던진 직구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이것은 이어서 들어오는 다른 타자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설마 알아차렸나? 아니면 우연?'

우연인지 아니면 알아차렸는지 알아야 했다.

이번 타석이 그 기회라는 것을 알자 타자의 어깨가 무거웠다.

혼란스러워 하는 눈빛에 동팔은 확신했다.

'역시 내 습관을 보고 파악한 거였어. 그럼… 이번에는 원하는 대로 어울려 볼까?'

동팔은 자세를 잡고 공을 던지기 전에 일부러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타자의 눈빛이 바뀌고 어떻게든 치려는 자세를 취했다.

쉭~!!

타자의 예상대로 동팔은 빠른 직구를 던졌다.

공이 향하는 곳은 스트라이크 존보다 더 낮은 쪽이었다.

동팔이 직구를 던진다고 판단되면 타자들은 무조건 배트를 휘둘렀다.

이번에 올라온 타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휙~!!

타자는 공이 낮은 쪽으로 가자 배트도 같이 따라가려 했다.

하지만 땅에 바운드가 된 공은 포수의 블로킹 덕분에 폭투가 되지 않았다.

"아……."

타자는 아쉬워하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냥 우연이었나? 역시 빠른 직구를 던질 때 심호흡을 하는 건 바뀌지 않았어.'

안심하고 있지만 타자의 그 생각이야말로 동팔이 원하는 생각이었다.

다음에 던지는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 높은 공이었다.

이미 사인으로 의견을 교환했기 때문에 포수는 가볍게 동팔의 강속구를 잡았다.

지금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타자는 이번에도 배트가 헛돌았다.

'벌써 투 스트라이크. 다음에는 어떻게든 반드시…….'

이미 두 번의 직구를 놓쳤다.

타자가 바라는 것은 알기 쉬운 직구였다.

하지만 이번에 동팔이 공을 던질 땐 심호흡을 하지 않았다.

'변화구!!'

하필 제일 상대하기 싫은 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피할 수 없었다.

특히나 동팔의 변화구는 대부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기에 타자는 공이 어디로 갈지 직감으로 예상하며 배트를 휘둘렀다.

공은 타자의 예상대로 변화구가 맞았다.

하지만 정확한 방향을 알지 못했기에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스트라익~ 아웃!!"

두 번째 타자도 삼진으로 돌려세운 동팔.

이 두 번의 공격 기회가 허공에 사라진 로데는 단순히 그것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인데…….'

'아니면 이미 알아차렸나? 그러기엔 너무 방금 전과 달라진 것도 없고…….'

'어차피 알든 모르든 치기 어려운 공이었어.'

그들은 확신할 수 없어도 기존에 했던 그대로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이닝의 세 번째 타자도 방금 전의 타자처럼 3구 삼진으로 아웃되자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거… 좀 위험하지 않나?"

"차라리 평상시대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동팔이 언제 빠른 직구를 던지는지 알아도 거기에만 골몰하니 좋은 기회가 와도 놓친다.

그리고 연속으로 한 이닝에 세 타자 전부 3구 삼진을 당하자 크게 흔들렸다.

그러던 중에 한 사람이 말했다.

"전처럼 나간다고 해서 동팔이 공을 칠 수 있어?"

"……."

지금 유일한 틈은 동팔이 빠른 직구를 던질 때 심호흡을 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만 알면 아무리 빨라도 공을 칠 수 있었다.

그러니 빠른 직구라 판단되면 무조건 배트를 휘둘렀다.

다만 이렇게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면 배트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동팔의 공을 공략할 수 있는 유일한 틈이었다.

그러니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이미 그 틈을 이용하여 한 경기에 5개 이상의 안타를 만들었고, 오늘 경기에도 안타를 치는 데 성공했다.

한편, 이번 이닝을 깔끔하게 전부 3구 삼진으로 마무리하지 중계석에서 많이 바빠졌다.

[잠깐만요. 지금 이번 이닝에서 세 타자 전부 3구 삼진이었죠? 이 기록은 어떻게 됩니까?]

[글쎄요… 이건 확인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최소나 최대 투구로 이닝을 끝낸 기록은 있지만 이건 파악을 해 봐야 하겠네요.]

[공 9개로 삼진을 3번 한 기록은 많지 않나요?]

[단순히 공 9개로 세 타자를 아웃시키는 기록은 꽤 많죠. 삼자범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 타자 전부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운 기록은 진귀하지 않습니까? 한 시즌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기록 같은데요.]

캐스터의 말에 해설위원이 답했다.

[그건 무결점 이닝(Immaculate Inning)이라 부릅니다. 삼자 범퇴와 다르죠. 삼자 범퇴는 범타도 포함합니다. 그래서 공 3개로 아웃 카운트 셋을 잡으면 삼구 삼자범퇴라고 합니다.]

[이전에 김병연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무결점 이닝을 기록했죠?]

[네. 하지만 그건 메이저에서 기록한 것이지 한국에서 기록한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당시 김병연 선수가 기록한 무결점 이닝은 내셔널 리그에서 역대 36번 째 기록이었습니다. 그만큼 희귀한 기록입니다.]

[그럼 그 어려운 걸 강동팔 선수가 방금 전에 한 것입니까?]

캐스터의 말에 해설위원이 바쁜 가운데서도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한국 프로 리그에서 첫 무결점 이닝을 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한 이닝에 삼진을 세 번 잡는 건 종종 나오지만 그 모든 삼진이 3구로 끝난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군요. 지금 인터넷으로 찾는데 안 나오네요. 정말 처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하는 사이, 공수가 교대되었다.

더그아웃에 돌아온 동팔을 보며 감독이 말했다.

"무결점 이닝은 아마 한국 프로 리그에서 처음 있는 걸 거다. 이젠 그 기록까지 세웠어?"

감독의 말에 동팔이 답했다.

"평상시라면 쉽지 않은 기록일 겁니다. 지금 이게 가능한 건 로데 타자들이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죠. 직구만 노리니 삼구삼진 잡는 것이 더 쉬워졌습니다."

삼구삼진을 자주 잡는 동팔이지만 한 이닝에 세 개의 삼구삼진은 그동안 없었다.

그래서 방금 전에 기록한 무결점 이닝은 동팔에게 있어서 처음 하는 기록이었다.

"지금 로데 타자들은 사냥감이 아닙니다. 먹잇감도 안 돼요. 그저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계속 저의 심호흡만 기다린다면… 지금 같은 결과가 더 나올 거예요.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겠지만."

동팔의 말에 임상훈 감독이 말했다.

"로데가 갑자기 작전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을 거야.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 이 상태로 쭉 가. 지금이 아니면 연속 삼구삼진 기록을 또 세우기 힘들 거다."

"네……."

동팔이 순식간에 이닝을 지워버린 탓인지 로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RG의 이번 공격에서 연속적으로 진루를 하여 홈에 세 명이 돌아오는 것으로 공격이 마무리되었다.

공수교대를 하면서 동팔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에 마운드에 오르자 동팔의 눈에는 더 많은 것이 보였다.

전에는 관중들의 환호성과 시선에 눌렸던 사직 구장이지만 지금은 강동팔의 위력적인 구위에 눌렸는지 생각보다 조용했다.

동팔이 눈에 보이는 건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민철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지예와 민희였다.

민희가 와 있다는 건 이미 통화를 해서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와 있다는 건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알았다.

어찌 보면 재기한 이상, 동팔 자신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일 수 있었다.

그들과 계속 만난다고 한들 구위가 상승하는 것도 아니었고 더 얻을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일이 단순히 서로의 이득만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이미 과거만 봐도 동팔이 민철과 지예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재기가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젠 그 반대가 된 상황.

동팔의 유명세에 지예가 얹혀 있었다.

그리고 민철도 동팔과 함께 야구했다는 자랑을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오히려 민철의 도움이 없었다면 동팔은 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습관을 몰라 헤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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