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81화 (81/325)

[81]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모두가 있어서야. 적어도 그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포기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그럴 자격도 없어!'

단순히 야구를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웜우드의 말대로 다른 것을 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은 것은 단순히 각오를 새로 다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후우……."

자신도 모르게 강속구를 던질 때마다 심호흡을 하는 강동팔.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타자는 다음에 포심 패스트볼이 오는 것을 알고 눈빛을 빛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강동팔의 기세와 마음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치려면 쳐 보라지.'

야구는 심리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동안 동팔이 워낙 위력적인 구위로 상대 타자를 눌렀기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

지금, 자신도 모르게 고양된 마음은 동팔이 미묘한 밸런스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주었다.

슥~ 휙~!!!

예견이 된 대로 동팔의 손을 떠난 공은 빠른 직구였다.

타자도 날아오는 공을 보고 그리고 그 이전에 동팔이 심호흡을 하는 것을 보고 배트를 휘둘렀다.

휭~

하지만 타자의 배트는 동팔의 공을 치지 못하고 헛돌았다.

"스트라익~ 아웃!!!"

뻔히 직구임을 알고 휘둘러도 공을 치지 못한 타자는 아까워하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동팔은 이어서 타석에 올라오는 타자를 보며 생각했다.

'미리 알고 친다고? 그럼 알아도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면 그만이잖아. 안 그래?'

한편, 신지예는 RG의 더그아웃으로 가는 길에 막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막고 있는 안전 요원에게 말했다.

"일간 스포츠 XX 일보의 신지예 기자입니다. 취재 때문에 그런데 들어갈 수 없을까요?"

그 말을 하면서 신지예는 자신의 기자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안전요원은 완고했다.

"죄송합니다만, 사전에 이야기를 들은 것이 없어 들여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기자라고 해서 무조건 보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어느 누가 기자를 사칭하고 들어오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경기 중에 이곳에 아무도 지나갈 수 없게 자리를 지키는 것이 그의 직업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신지예 기자도 그걸 알기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럼 RG의 아무 코치님께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겠어요?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하지만 적어도 취재 약속을 잡았으면 한다구요. 그리고 말씀만 전하지 마시고, 제 신분증도 같이 보여 주세요. 그럼 반드시 오실 거예요."

단순히 말만 전한다고 해서 RG의 코치가 오리란 보장은 없다.

지금은 경기에 집중해야 할 때라 기자의 취재 요청은 나중에 하겠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다른 기자라면 몰라도 신지예라는 이름의 기자는 특별했다.

팀의 중심 투수인 강동팔의 재기를 1년 동안 취재한 기자였으며, 그녀와 동팔이 '누나, 동생'하는 사이라는 것도 코치들은 알고 있다.

그러니 다른 기자들의 취재 요청과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녀의 말에 무조건 안 된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고, 무리인 부탁도 아니었다.

그래서 보안 요원 중 한 사람이 무전을 통해 한 사람을 불렀다.

그와 자리를 교대하면서 RG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뒤, 안전요원과 함께 RG의 코치 중 한 사람이 같이 왔다.

"안녕하세요. 신지예 기자님. 갑자기 취재 요청이라니요? 그건 나중에 부탁하셔도 다 될 텐데."

"그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지금은 급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아주 간단한 인터뷰이고, 질문은 한 가지만 하고 갈 거예요. 가능하신가요?"

"네… 그 정도야. 하지만 경기 중이라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굳이 대답은 안 하셔도 돼요. 사실 강동팔 선수가 최근 부진하고 있는데, 그걸 본 한 사람이 그에 대한 제보를 해줬거든요. 거기에 대한 사실 파악만 해 주시면 돼요."

"네? 제보를요?"

지금의 강동팔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전과 다른 모습이 갑자기 나오니 원인을 알 수 없어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제보를 해주겠다는 말에 코치의 귀가 절로 기울어졌다.

"다른 것이 아니라 직구를 던질 때마다 그 전에 심호흡하는 습관이 있다고 했거든요. 최근 안타를 허용한 구종이 전부 직구라서 그런 것 같다는 제보를 했는데… 혹시 알고 계셨나요?"

신지예 기자의 말에 코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안전요원들도 그녀의 말을 듣자 절로 고개가 갸웃거렸다.

'정말일까?'

'사실이면 대박인데.'

하지만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코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습니까? 그런 제보가…? 그걸 누가 말했습니까?"

그의 질문에 그녀가 답했다.

"동팔이한테 민철 씨가 말해줬다고 하면 알 거예요."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사실 파악은 어려우니 가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코치는 신지예 기자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려운 발걸음 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코치는 지예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더그아웃으로 뛰어갔다.

그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신지예 기자는 보안요원에게 신분증을 받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경기에 집중하며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녀의 말에 보안요원이 말했다.

"그럼… 취재 결과는 어떻게 확인하실 겁니까?"

자신의 일은 아니지만 분명히 그녀의 질문에 코치는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지예가 답했다.

"굳이 직접 답변을 들을 필요는 없어요. 이후에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면 바로 나오니까요."

"네? 저한테 그럼 습관이?"

"응. 빠른 직구를 던질 때마다. 그 전에 심호흡을 하는 습관이 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요? 누가요?"

"그건… 너한테 민철이라고 말하면 안다던데?"

코치의 말에 동팔은 방금 전, 마운드에 올랐을 때 본 민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분명히 망원경으로 자신을 살펴보고 있었다.

전과 달리 왜 망원경으로 자신을 살펴보는가 싶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동팔.

하지만 지금 코치가 전한 말을 듣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민철이 형이요? 아까 관중석에 앉아 있었는데… 이전부터 저를 잘 아는 형이긴 한데 설마 그거까지 알고 계셨을 줄은 몰랐어요. 저도 모르던 습관을 알고 계셨을 줄이야……."

자각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이전부터 강속구를 던질 때마다 심호흡을 해 왔다.

이전의 동영상을 전부 확인할 수 없고 기억 속에서도 완전히 끄집어낼 수 없다.

하지만 민철의 지적에 어느 정도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상대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 분석을 할 때는 동팔이 심호흡한 다음, 투구 동작만 편집한 영상이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알고 보니 자신의 작은 습관으로 인해서였다는 것을 알자 너무 허탈했다.

그래도 그동안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해소되자 묵직하게 얹혀 있던 것이 뚫리는 상쾌함도 느껴졌다.

"관중석에 앉았다고? 그럼 왜 거기서 말하지 않고… 아 설마… 그거 때문인가?"

분명히 관중석에 있었다면 심호흡하지 말라고 외치기만 해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방법을 쓰지 않고 신지예 기자를 통해 은밀하게 알려줬다.

"아마도 로데에서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는 거겠죠. 제가 알아차리게 되면 분명히 그들도 전법을 바꿀 테니까……."

아무리 뛰어난 전략도 상대가 파악한 전략은 더 이상 전략이라 할 수 없다.

당연히 로데에선 다른 전략으로 나오고, RG와 동팔은 그 틈을 이용할 기회를 잃게 된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코치의 말에 동팔이 답했다.

"간단합니다. 속여야죠."

RG의 공격이 있는 사이.

할 일을 마치고 온 지예는 다시 민철과 민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됐어?"

"네. 됐어요. 제가 아는 코치님과 만났어요. 그 코치님이 스파이가 아닌 이상 반드시 말할 거예요."

신지예는 여느 다른 기자도 아니고 동팔과 잘 아는 사이다.

설령 스파이라 하더라도 동팔과 지예의 사이를 알고 있다면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오늘 경기가 끝나고 나면 전부 알게 될 일이었다.

"그래? 그럼 이제 느긋하게 보는 일만 남았네. 이제 동팔이가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볼까?"

그리고 민철이 그 말을 할 때에 RG의 공격이 끝나고 공수교대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동팔이 마운드에 올라가고 있었다.

마운드에 올라가는 동팔을 보자 로데의 타자들이 중얼거렸다.

"설마 지금도 모르는 걸까?"

"모를걸. 그걸 어떻게 바로 알겠어."

그 말을 하면서도 그들은 무엇을 아는지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듣는 귀가 있어 동팔이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아닐까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단순히 로데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동팔을 상대한 팀들이 스스로 폐쇄적일만큼 이 정보에 대해 입에 올리는 것을 철저하게 자중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RG에선 다른 팀을 통해 동팔의 습관에 대해 알아내지 못했다.

로데의 타자들은 배트를 손에 쥐며 투수인 동팔에게 집중했다.

지금 그들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의 손이나 공이 아닌, 동팔의 심호흡이 나오는 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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