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79화 (79/325)

[79]

한편, 같은 시각.

부산에 온 민철과 지예는 서울에서 하지 못할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바다가 확 보이니까 분위기도 다르네. 그렇죠?"

"응."

두 사람의 변화는 단순히 부산에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전에도 데이트할 때엔 팔짱을 끼고 다녔다.

하지만 그때는 서로의 체온을 느끼는 가벼운 정도의 팔짱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팔짱은 서로가 떨어질 수 없게끔 꽉 조여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팔을 통해 상대방의 몸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

'설마… 방을 잡으라고 했더니 하나만 잡을 줄이야…….'

단순히 하나만 잡으면 경비를 줄이려는 의도로 애써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예가 예약한 방은 생각보다 작았고, 침대도 더블 사이즈 하나였다.

바닥에서 자는 것도 있지만 너무 좁았다.

결국 한 침대에서 누운 두 사람은 금방 불타오르더니 그날 밤 내도록 서로를 잡아먹는 야수가 되었다.

그 여파로 두 사람이 기상한 시간은 평상시보다 몇 시간이 늦었다.

다행히 체크아웃하기 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온 후, 지금처럼 평범하게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다만 어제의 거사가 있었기에 이전과 분위기가 다른 건 당연지사.

특히나 어제의 격정적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민철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닿아 있는 지예의 허리를 생각하면 무언가 불끈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아냐,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그건 나중에(?)…….'

민철은 본능을 억누르며 지금의 시간에 맞는 행동에 집중했다.

지금 두 사람은 바다가 잘 보이는 횟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민철과 지예는 의외의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어라? 민희야. 여긴 어쩐 일이야?"

"아, 지예 언니?"

두 사람은 마침 같이 들어가려던 민희와 마주쳤다.

민희도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마침 아는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진하게 팔짱을 낀 모습을 보자 망설여졌다.

'데이트 중에 내가 끼어들어도 되는 걸까?'

반갑긴 하지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러자 바로 지예가 말했다.

"같이 먹자. 혼자 먹으면 심심할 거 아냐. 어차피 동팔이도 선수들끼리 식사하니까 같이 못 먹을 거고."

"그렇긴 하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히 괜찮지. 어차피 사직에 같이 가야 하는데."

이들이 여기 온 목적이라면 당연히 동팔과 관련된 일이다.

오늘 동팔이 선발등판을 하니 부산에 온 이상 구장에 가는 건 당연했다.

결국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 그들은 간단하게 먹으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거하게 차려 먹기로 했다.

거기에 늦은 점심이라 손님이 많지 않아 주문한 요리가 금방 나왔다.

회는 기본이고, 그 이외 다양한 요리가 같이 나오며 눈도 즐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민희는 좋아하면서도 마냥 좋아하지 못하고 걱정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철이 물었다.

"요즘 동팔이가 안타를 맞아서 걱정되나 봐요."

"아, 네… 뭐 조금… 실점이 없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언제 무너지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있죠. 편하게 보던 때랑 달라서 가슴을 졸이게 되고……."

민희의 말에도 민철은 전혀 걱정하지 않고 먹으면서 말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아마 지금 동팔이 피안타를 허용하는 건 다른 것이 아니라 포심 패스트볼이에요. 특히 빠르게 날아오는 강속구가 맞고 있을 테니까. 변화구는 국내에 있는 타자들 중 한동욱 정도 아니면 치지도 못할 겁니다."

민철은 정확하게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예가 물었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 그동안 분석한 거예요? 나한테 말도 없이?"

민철이 말한 정보는 지예가 얼마 전에 들은 사실이었다.

그것도 여기 오기 전에 동료 기자에게 들은 최신 정보에 해당했다.

물론 사실이라는 기록 자체는 있었지만 진실의 분석에 시간이 걸렸다.

"분석? 분석할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네. 시간이 없어서 그건 무리고. 짐작한 거야. 아마도 동팔이 안타를 허용할 구종이 있다면 포심 패스트볼밖에 없어. 이전에 많이 지켜봐서 잘 알거든."

"하지만… 지켜 본 시간은 동팔 선수가 재기하기 전이었잖아요. 그땐 120을 겨우 넘을 때였고.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구위의 차원이 달라요."

민철의 말에 지예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민철이 답했다.

"당연히 구종이나 구위는 변했지.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어서 그래. 본인은 그걸 모르지만 나는 알거든."

"그게 뭔데 그래요. 직접 봐야 알 수 있다면서 말해주지도 않고."

민희는 밥을 먹는 것도 멈추고 민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동팔의 슬럼프 아닌 슬럼프의 비밀을 그가 알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건 말해줄 수 없어. 잘못된 정보라면 오히려 동팔이에게 안 좋을 수 있거든. 그래서 내가 직접 봐서 확인하겠다는 거야."

그의 말에 지예가 민희의 마음을 담아서 말했다.

"됐고. 힌트라도 줘 봐요. 변하지 않은 게 뭔데요?"

그녀의 물음에 민철은 한 단어로 답했다.

"습관."

같은 시각.

로데의 코치진들은 한 가지 정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게 정말일까?"

"유일한 틈이라고 했고, 분명히 동팔이 포심을 던질 때를 알 수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얼마 전에 들어온 정보를 믿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던 동팔이 최근 들어 안타를 허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동팔의 구위가 떨어진 것은 아니라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온 하나의 정보로 인해 그들은 소란스러웠다.

행동의 결과는 다른 팀과 같이 정해져 있었다.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몰라도 지금은 여기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어. 그러니 일단 가 봐. 밑져야 본전이잖아?"

습관의 무서움

한국에 있는 야구 구장 중에서 사직 구장은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 중에 하나다.

만 원이 될 경우 거의 3만 명에 근접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그리고 부산에서 프런트를 떠나 로데의 인기는 높다.

그리고 야구에 대한 열기도 뜨겁다.

또한 그들만의 독특한 응원 문화가 있고, 그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비록 오늘은 리그 최고의 투수인 강동팔이 등판하는 날이라 응원의 열기가 줄어들 것 같지만 지금은 그 반대였다.

"와아아아아~!!!"

생각보다 뜨거운 응원이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전에 동팔이 등판하는 경기는 상대팀의 팬들이 잘 오지 않았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경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안타를 허용하는 동팔로 인해 혹시나 모른다는 기대감이 로데 팬들을 사직으로 오게 만들었다.

특히나 부산에 있다는 점으로 인해 타 지역에 연고를 둔 팀의 팬들은 쉽게 오지 못했다.

그나마 대구에 연고지를 둔 오성이나, 광주인 지아가 오가는 것이 용이하거나 가깝다.

KTX가 바로 뚫려 있는 지역이라면 진입장벽이 낮았다.

하지만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CK는 KTX로 갈아타기 위해 인천에서 서울역까지 오는 과정이 험난했다.

사직구장에 오는 다른 팀의 팬들은 부산에 사는 사람이거나, 정말로 열정이 있는 팬이다.

주말이라면 여행도 갈 겸 해서 올 수 있지만 주중이라면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로 인해 사직구장에선 로데의 일방적인 응원이 항상 가능했다.

그리고 원정팀의 좌석도 로데 팬들이 상당 부분 차지했다.

그런 관계로 민철과 지예, 민희는 중간 중간에 보이는 로데 팬들의 응원을 바로 옆에서 듣다시피 했다.

민철을 포함한 세 사람은 비싸지만 그래도 마운드가 잘 보이는 좌석을 잡았다.

그들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분위기 봐라… 역시 사직은 사직이에요. 이러니 원정팀들이 애를 먹지."

"하지만 반대로 지고 있으면 로데 선수들이 압박 받을걸. 뭐든지 일장일단이 있어."

어차피 응원을 해 봐야 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들이 여기 온 주목적은 응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말 확신할 수 있는 거예요? 보기만 해도?"

"확실하다니까 그러네. 정 의심이 되면 내가 맞춰볼게. 동팔이가 포심을 언제 던지는지 바로 말해줄 테니까. 물론 내 짐작이 맞다면 100% 맞겠지만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렇게 말은 해도 민철은 상당히 자신 있어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말하지 않은 것은 혹시라도 모를 단 하나의 오답 가능성 때문이다.

"로데가 홈이니까. 시구 끝나고 경기 시작하면 좀 있다가 올라오겠네. 시간이 좀 있으니까 뭐 좀 먹을래? 민희 씨도 말씀하세요. 제가 사가지고 올 테니."

여자 둘이 사직에서 원정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부산 사람들이 겉으로 거칠게 보여도 원정팀 팬을 거칠게 대하진 않는다.

민철이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양아치 같은 놈들과 만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미인이라 다가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안 좋은 사고가 생길 수 있었다.

이렇게 탁 트인 곳이라면 양아치라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

부산 사람들도 일부 양아치 때문에 자신들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양아치를 배척하고 두 사람을 보호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래서 민철은 두 사람을 이곳에 두고 고릴라 같은 외모를 지닌 자신이 사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아무리 부산 사람들이 거칠고, 그중에 생양아치가 있더라도 인상이 고릴라 같은 자신에게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남녀를 떠나 그것이 더 합리적이고 안전했다.

"특별히 먹고 싶은 건 없지만… 저녁도 생각해야 하니 알아서 센스 있게 부탁드릴게요."

"저도요."

결국은 제일 난감한 '아무거나'가 당첨되었다.

민철은 가까운 식당은 물론, 멀리 떨어진 곳까지 메뉴를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 먹을 것을 사가지고 왔다.

민철이 도착할 때엔 RG의 공격이 끝나고 공수 교대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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