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이제 사람다워 보인다."
"야구를 하다 보면 이럴 때도 있는 거야. 다른 것보다 완봉이라는 것에 신경 써. 프로에 들어와서 에이스도 하기 힘들다는 완봉 아니냐."
그들은 동팔이 흔들리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 그 말을 했다.
당시에 동팔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을 했지만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대체 왜 안타를 맞은 거지? 구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과 달리 그는 회복이 아주 빠르다.
무리라고 하겠지만 매일 선발로 나서도 다음 날 새벽에 회복했다.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도 없고, 말한다고 한들 믿지도 않는다.
그러니 피로에 의한 구위 저하와 그로 인해서 안타를 맞았다는 전문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구위에 문제가 없다면 타자들의 실력이 좋아서? 하지만 그것도 아니야. 안타를 친 타자보다 못 친 타자가 많아. 중심타선만 친 것이 아니라 하위 타선에서도 안타가 2번 나왔어.'
안타도 문제였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거기에 안타만 되지 않았을 뿐 타격에 성공한 경우가 많아. 범타로 끝나거나 파울이 되어서 그렇지…….'
한동욱과의 만남 이후, 압도적인 피칭으로 삼진을 더 많이 할 계획이었다.
범타도 나쁘지 않지만 자신이 유도한 것이 아니라 찝찝했다.
감독님과 코치 및 선배들이 말한 대로 완봉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동팔은 그 정도에 만족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피칭. 그리고 슬럼프 없는 안정적인 페이스. 그래야만 메이저에 1년이라도 더 빨리 입성할 수 있어. 이미 한동욱은 시동을 걸었으니 내가 늦으면 안 되는데…….'
한동욱은 선구안이 아닌, 칠 수 있는 모든 공을 치기 시작했다.
타자가 볼을 골라서 걸어 나가는 것보다 단타인 1루타를 치는 것이 더 좋다.
볼넷은 밀려 있지 않는 이상, 타자 주자만 진루한다.
하지만 1루타는 타자 주자만이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기존의 주자도 진루하게 만든다.
볼넷보다 단타를 1.5배 더 높게 쳐주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살아나가 주자를 쌓는 리드오프가 될지 아니면 나간 주자를 불러들이는 중심타선이 될지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무엇보다 통상적으로 1번인 리드오프보다 3, 4, 5번인 클린업 타자가 몸값이 더 높다.
동팔은 한동욱이 몸값을 올리는 작업을 시작했음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동팔도 이전처럼 압도적인 피칭을 하여 몸값을 올리려 했지만 의외의 암초를 만나고 말았다.
무엇보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더욱 답답한 동팔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일 다시 훈련을 하면서 확인해 보자. 나도 모르게 투구 폼이 달라졌을 수 있으니까.'
다음 날.
훈련장에 나오려던 동팔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맞다. 오늘 월요일이지."
자신이 등판했던 경기는 주말 마지막 경기.
그리고 그때는 항상 일요일이다.
하루가 지났으니 오늘은 당연히 월요일이다.
프로야구 1군 선수들에게 있어서 월요일은 쉬는 날이다.
다른 사람들의 일요일과 같은 날이다.
자신이 등판하는 날은 평상시보다 빨리 끝나 어제 잠도 빨리 잤기에 일찍 일어났다.
그래서 동팔은 제일 먼저 아침에 연락하기 힘든 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희야. 나야."
―네. 오빠. 오늘은 빨리 일어났네요.
민희의 목소리를 듣자 어제 고민했던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동팔은 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어제 경기 빨리 끝나서 일찍 일어났어. 그런데 지금 출근 준비 중이야?"
―그렇긴 한데, 괜찮아요. 아직 시간도 많이 있어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니 좋다는 사람이 싫을 수 있을까.
동팔의 말에 민희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어제 괜찮았어요? 분명히 공은 좋은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MC 타자들이 오빠 공을 치던데요.
"아~ 그거. 그건 나도 모르겠어. 분위기가 전과 다른 것도 있지만 그걸로 이해하기엔 너무 잘 쳤거든."
―그냥 우연이겠죠. 그리고 운이 좀 안 좋았다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운이 좀 없어서 6피안타라면 다른 투수들은 뭐가 될까 고민이긴 하지만.
그 이후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했다.
민희의 출근 시간이 다가오자 그녀가 말했다.
―오늘 쉬니까 산책이나 하면서 여유를 가져 보세요. 맛집에 가서 맛좋은 것도 먹고. 아, 그렇다고 좋으면 데려가 달라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 좋긴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좌우지간 어제 경기 너무 의식하지 마세요. 이미 오빠는 한국 리그에서 감당할 수 있는 투수가 아니잖아요. 그럼 저 가볼게요. 오늘 봐요. 쪽!
민희는 일부러 소리가 나게 폰에다가 입맞춤을 했다.
"아~!! 이거 뭐야. 너무 묻었어!!"
덕분에 민희는 폰에 묻은 립스틱을 지우고 다시 발라야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수 없는 동팔은 통화를 마치자 가볍게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그래, 너무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민희 말대로 우연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
처음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우연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연이 계속 반복된다면 더 이상 우연이라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 이후로 동팔은 3경기 사이 총 20의 피안타를 허용했다.
한 경기에 최소 5피안타, 최대 7피안타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RG의 면담실.
피안타가 늘었지만 4경기 동안 완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동팔은 임상훈 감독, 투수코치와 면담을 하고 있었다.
"동팔아. 네가 못하는 건 아니고 계속 완봉도 하니 뭐라 할 건 아닌데… 그래도 전보다 타자들이 네 공을 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코치의 물음에 동팔이 답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혹시 타자들이 제 공에 익숙해 진 건 아닐까요? 저를 상대한 팀은 다음 경기에서 높은 타율을 보여주고 있고. 시즌도 절반을 넘어가고 있으니까요."
동팔의 말에 임상훈 감독이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동팔아. 확실히 네 공을 본 타자들은 다음에 상대하는 투수들의 공이 상대적으로 쉽게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네 공을 계속 보다보면 익숙해지는 것도 맞아.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어. 네 공은 익숙해 졌다고 쉽게 칠 수 있는 공이 아니야."
"네?"
"단순히 생각해서 상대 중심타선의 일부가 네 공을 쳤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건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증거니까. 하지만 그동안 피안타를 분석하면 그렇지 않아."
처음에는 우연.
그리고 동팔의 생각대로 타자들이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중심타선만이 아니라 하위 타선에서도 안타가 나왔어. 그리고 한두 개씩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한 경기에 5개가 넘는 안타가 나왔다. 이건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미야."
감독의 지적에 동팔은 절로 몸이 굳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감독이 말하는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확실한 건 피안타가 되는 공은 단 하나… 포심 패스트볼이지. 변화구는 여전히 치지 못하고 있지만 포심만은 아니야. 어떻게 아는지 몰라도 포심이 오면 거의 대부분의 타자들이 배트를 휘둘러."
동팔의 피안타가 갑자기 늘어나자 감독과 코치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자료를 분석하며 원인을 찾으려 했다.
방금 전에 감독이 말한 빠른 포심이 주로 타깃이라는 것도 그래서 찾았다.
동시에 든 의문은 '그들이 어떻게 동팔이 포심을 던지는지 알고 치는 것인가'였다.
"감독님의 말씀에 동팔이 네 폼을 합성해서 특별히 달라진 점이 있는가 확인해 봤다. 그런데 황당한 건 겉으로 드러난 변화가 전혀 없다는 거야. 변화구를 던질 때나, 직구를 던질 때나 폼은 완벽할 정도로 같아. 네가 승완 코치에게 배워서 그런지 같은 구종을 던져도 폼이 바뀌어서 타자들이 더 혼란스러워 하지. 그래서 우리가 더 환장하는 거야."
원인을 알았는데 그 원인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없었고, 차이점도 없었다.
"동팔아. 지금 이대로도 너는 충분히 뛰어난 투수야. 상대가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그걸 알고 쳐도 최근 4경기의 피안타가 고작 26개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지금은 직구보다 변화구로 승부를 거는 방향으로 가자. 지금은 그게 최선이라고 본다."
임상훈 감독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승리를 위해서 강한 타자를 상대로 볼넷을 주라는 것도 아니고, 직구보다 변화구를 중심으로 던지라는 건 팀의 승리를 생각하면 당연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동팔은 감독의 말에 반대했다.
"그게 지금의 최선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동팔의 말에 투수코치가 말했다.
"동팔아……!"
그가 뭐라 말하기 전에 임 감독이 그를 제지했다. 그러자 동팔은 이어서 말했다.
"분명히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를 모르지 않습니다. 직구가 공략당하고 있으니 던지지 않으면 쉽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건 압니다. 하지만… 제가 직구를 던지는 것을 상대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내지 못하면 끝까지 모르고 넘어가게 됩니다."
동팔의 말에 임상훈 감독이 물었다.
"그럼… 상대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차릴 때까지 평상시처럼 던지겠다?"
"네. 하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실점을 하지 않게 변화구로 던질 겁니다. 단순히 저의 만족을 위해 팀과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킬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동팔의 말에 임상훈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 거라면 괜찮다. 사실 그동안 네가 던질 때, 수비들은 놀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녀석들도 이참에 네가 던질 때 긴장하는 것도 이후의 경기를 생각하면 괜찮겠지."
삼진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투수와 포수를 제외하면 다른 때보다 할 일이 없는 내야수와 외야수였다.
사실 동팔이 허용한 피안타 중에선 긴장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가 놓친 것도 일부 있었다.
"직구인 것을 알아도 네 구위라면 제대로 칠 타자는 많지 않아. 처음에는 컨디션이 떨어져서 구위가 떨어졌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어. 지금은 동팔이가 말한 대로 진행해. 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려고 하니까."
임상훈 감독의 말로 동팔은 자신의 생각대로 투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자 감독이 물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 같다. 즐기는 거니?"
"네? 네… 사실 이전에는 경기가 싱겁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몰랐구요. 지금 제가 성장시킬 부분이 너클볼과 자이로볼의 제구력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보완한 것이 더 있다는 게 좋다고 할까요?"
그리고 또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지금 알아내지 못하면 나중에 메이저리그 가서 크게 당할 수 있어. 그러니 최대한 빨리 알아내서 보완한 다음, 더 완벽한 폼으로 만들어야 해.'
아직 리그 중반을 지나고 있어 메이저리그로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동팔이 메이저리그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그 말을 꺼낼 때는 지금은 아니었다.
동팔의 말에 임상훈 감독이 말했다.
"좋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더 성장할 부분을 찾았다는 것도. 열심히 해 봐. 대신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 있게. 알겠지?"
"네. 유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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