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74화 (74/325)

[74]

슬럼프

강동팔의 무실점 기록과 한동욱의 무삼진의 기록이 깨진 충격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이야기로 화제가 바뀐다.

기록이 깨진 접전이던 RG와 지아의 주중 3연전이 끝나자 RG는 홈경기를 하기 위해 서울로, 지아는 오성과의 원정 경기를 하기 위해 대구로 이동했다.

그 사이 팬들의 관심은 기록을 떠나 각자 좋아하는 팀에게로 향했다.

오성의 경우, 한 번의 우천 취소가 있어 주말 3연전의 첫 경기에선 2선발인 남궁지완이 선발로 등판할 예정.

그래서 남궁지완은 구장에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정도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악마와의 계약이라고…?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데?'

분명히 강동팔의 공은 위력적이었다.

이미 충분히 위력적인 구위였지만 한동욱과의 접전을 통해 너클볼과 자이로볼까지 추가되었다.

동팔이 인터뷰로 두 구종의 제구력이 완전하지 않다고 했지만, 던지는 것 자체만으로 위협적이었다.

그 사실을 남궁지완도 잘 알았다.

그도 종종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였고, 그로 인해 상대 타자가 당황하는 사이 삼진이나 범타로 처리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악마와의 계약으로 인해 얻은 힘으로 인한 것임을 알자 배신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강동팔을 이기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악마의 힘을 빌려?! 그럼 난 내 자신의 힘으로 눌러버리겠어! 어떻게 해서든지!!'

그렇지 않아도 좋은 기회가 왔다.

'한동욱… 강타자에 까다로운 선구안을 가진 타자. 하지만 이번에 내가 삼진으로 돌려세우면… 상대적으로 나의 우위. 그리고 나서 나중에 같은 경기를 하게 되면… 그때 완전히 누를 거야. 예전과 완전 다르게!!'

휙~ 퍽!!

남궁지완의 각오가 서린 공은 절묘한 각도로 휘며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마치 그 앞에 한동욱이 그리고 강동팔이 타석에 서 있는 것처럼.

한편, 대구에 있는 한 호텔에 묵고 있는 한동욱은 이번에 상대할 투수, 남궁지완에 대해 분석하고 있었다.

그는 남궁지완이 주로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과 커브, 포크볼과 슬라이더는 물론 간혹 던지는 너클볼도 예외 없이 전부 돌려보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분석을 마친 그는 남궁지완에 대해 간단히 평가했다.

"여전히 뛰어난 투수.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에이스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강동팔만큼은 아냐."

강동팔과 달리, 그는 지난 시즌부터 남궁지완을 몇 번 상대해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을 헛스윙하게 만든 몇 안 되는 투수 중 한 사람이 바로 남궁지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달랐다.

"전력을 다 하기로 한 이상… 봐줄 순 없겠지. 미안하지만 내가 메이저리그로 가는 디딤돌 중 하나가 되어줘야겠어."

몇 시간 후.

지아와 오성의 주말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예정된 대로 투수는 남궁지완.

2선발이지만 에이스인 그는 초반부터 강하게 밀고 나갔다.

휙~ 퍽!!

공이 한가운데로 지나가지만 워낙 빠른 속도라 지아의 3번 타자는 제대로 치지 못했다.

"스트롸익~ 아웃!!"

결국 세 타자를 범타 또는 삼진으로 돌려세운 남궁지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다른 선수들과 함께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 투수 코치가 말했다.

"지완아. 너 초반부터 너무 달리는 거 아냐? 페이스 조절해야지. 지금처럼 안 해도 너 정도면 다 잡을 수 있는 타자들이야."

지금 지완이 상대한 타자들은 지아의 1, 2, 3번 타자였다.

한 팀의 선투 타자와 중심 타선을 두고 하는 말치곤 너무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오성의 어느 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지아는 한동욱만 신경 쓰면 되지 않나요? 나머진 초반부터 기를 눌러버릴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궁지완의 말에 한 선수가 옆에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니 고딩 때 라이벌인 동팔이 의식하는 거 아이가? 가도 얼마 전에 완투했다더니 니도 가 이길라꼬? 마, 이 자슥 서울 샌님인 줄 알았드만. 싸나이네 싸나이. 하모 남자가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제."

그의 말에 남궁지완은 웃으며 말했다.

"의식을 안 할 순 없더라구요. 제가 이닝을 많이 소화하면 팀에 도움도 되고,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순순히 질 생각은 없거든요."

그러자 다른 선수가 다가와서 말했다.

"마. 말은 잘했다. 그래도 이제 다음에 상대할 한동욱이만 잡으면 그 점에선 네가 우위에 있지 않겠나? 지난 시즌 기록은 덮어두고, 이번 시즌에선 이번 기록만 보면 되는 기제."

그리고 그의 옆에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너무 의욕적으로 가지 말고 냉철하게 가자. 한동욱이 만만치 않다는 건 니도 잘 알고 있잖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과 다른 볼 배합을 준비했어요."

"준비했다면 됐다. 그럼 좀 있다 기대하마. 잘해보그래이."

그는 지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다른 선수에게 갔다.

그러는 사이, 오성의 공격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작전은 있었다.

"한동욱이 있는 유격수 쪽으로 공이 가게 하지 마. 좌우에 맞춰서 밀어치거나 당겨 치는 쪽으로 간다."

아무리 하위권 팀이라 하더라도 분석과 상대 선주 중에 주의할 선수에 대한 분석 또한 기본이었다.

리그는 길고, 하위권 팀이 상위권 팀을 잡는 경우도 꽤 많이 생겼다.

특히나 승패에 영향을 주는 한동욱.

이미 그에 대해선 뛰어난 타격은 물론 철벽이라 느껴질 수비 능력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무삼진의 기록은 깨졌지만 무실책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유격수인 한동욱이 있는 곳을 피하면 오성이 칠 수 있는 타구는 1, 2루 쪽으로 빠지는 단타였고, 외야수를 넘어가는 장타이거나 홈런뿐이었다.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의식하며 타석에 오르는 타자들은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동욱은 자신만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메이저 리그에 진출할 수 없을 수 있다…라…….'

그 고민은 동팔과 만남을 가진 이후로 계속하고 있는 고민이었다. 전력을 다 하고자 생각했지만 그 다음의 계획을 생각하면 곤란한 일.

그러나 그 모든 것도 메이저리그로 자신이 진출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었다. 실제로 지아 구단에서 자신을 쉽게 놓지 않으려는 건 알고 있었다.

어정쩡한 포스팅 금액이라면 당연히 놓지 않을 것이다.

한동욱은 자신이 생각해도 구단과 같은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미묘한 금액이 아닌,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금액이라면?

지아에서도 고민을 해야 했다. 높은 금액으로 한동욱을 넘긴 후, 그 자금을 바탕으로 전력을 탄탄히 할 것인지. 아니면 한동욱에게 계속 의지할 것인지.

그럴 경우, 대부분의 구단의 선택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한동욱을 팔고, 전력을 강화하는 쪽이다.

만약 계속 데리고 있다가 한동욱이 부상이나 슬럼프에 빠진다면 팀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한동욱만큼 초특급 타자는 아니더라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선수를 여러 명 영입하는 쪽이 더 안정적이었다.

생각을 마저 정리한 한동욱은 마침 자신을 향해 타구가 날아왔다. 타격을 한 타자는 자신의 의도와 달리 한동욱이 있는 방향으로 공이 가자 절로 인상이 써졌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기에 전력으로 달리려 했다.

하지만 타구는 한동욱의 손에 가볍게 잡혔다.

툭. 휙.

그리고 능숙하게 공을 1루로 던져 아웃카운트 하나를 쉽게 올렸다.

오성의 공격은 공격 루트의 제한 때문인지 힘을 얻지 못하며 전부 범타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아의 공격에서 이번 타자는 한동욱.

한동욱이 타석에 서자 남궁지완은 각오를 더욱 강하게 다졌다.

'동팔이를 상대로 홈런을 친 타자. 이 타자를 상대로 나도 삼진을 먹이면…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

상대가 강하면 부담이 컸지만 강한 상대를 이겼을 때에 따라오는 것도 많았다.

지난 시즌부터 만났기에 한동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완.

'뛰어난 선구안에 강력한 타격 능력. 하지만 볼로 들어오는 공은 치지 않아. 그러니 먼저 준비 작업부터…….'

이미 볼 배합을 생각하고 온 남궁지완은 제일 먼저 느린 공으로 던졌다.

코스는 스트라이크 존과 살짝 떨어진 볼. 그리고 변화가 큰 유인구였다.

다른 타자라면 속을지도 모를 공이지만, 이미 한동욱은 코스를 알아차렸다.

'볼…….'

휙~ 퍽.

칠 필요가 없는, 보내면 자신에게 유리한 공이라 흘려보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전에는 볼은 전부 보내 선구안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지금도 강한 타자에 상대하기가 껄끄러운 타자였다. 그러나 이 정도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지금 자신이라면 리드오프인 1번 타자로 갈 가능성이 높았지만, 더 많은 몸값을 받기 위해선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했던 고민을 정리하고, 하나의 결론을 내었다.

"후……."

가볍게 심호흡을 한 동욱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그의 행동에 남궁지완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다음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이번에도 느린 공. 그리고 그 다음에는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낮은 공으로 파울을 유도해서 투 스크라이크까지… 그 후에 느린 공으로 눈을 낮춘 후, 빠른 공으로 승부……!!'

투수가 어떻게 던지냐에 따라 타자가 칠 수 있는 타구의 성격이 바뀌었다. 물론 힘이 좋은 타자라면 낮은 공이라도 퍼 올려서 장타나 홈런을 만들어냈다.

생각할 필요 없이 이포수와 정해둔 볼 배합으로 공을 던지는 남궁지완. 그리고 이번에도 그와 포수는 한동욱이 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그동안 해 온 패턴이 갑자기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만약 그렇다면 사고와도 같은 일이라 어찌할 수 없는 일.

그런데 그 사고가 바로 이 순간에 생기고 말았다.

'볼… 낮게 들어오는 느린 공. 하지만… 못 넘길 공은 아냐!!'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예상대로 철저히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고, 그 안에 들어오는 공만 쳤다.

그러나 이젠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게 된 이상, 그 이상으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로 했다.

이미 1번 타자인 리드오프의 능력은 선보인 상태였고, 이젠 강타자의 상징인 4번 타자로서의 능력을 선보이려 했다.

그것은 바로 높은 타율.

볼이라도 걸어 나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의 진루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휙~ 따악!!!

휘둘러진 동욱의 배트는 정확하게 스위트스폿에 맞았다. 또한 낮게 제구되는 공이었기에 조금 더 위로 퍼 올렸다.

공의 중심으로부터 약간 하단부를 맞았기에 공은 역회전이 걸리며 더 높이 그리고 동욱의 힘에 의해 더 멀리 날아갔다.

빠르게 넘어가는 타구를 잡기 위해 중견수가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달려도 벽을 넘는 타구를 잡을 수 없는 노릇.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한동욱은 볼인 투구를 받아 쳐 홈런으로 만들었다.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동팔에게 홈런을 때렸을 때처럼 담담하게 루상을 돌았다.

하지만 남궁지완은 그럴 수 없었다.

프로에 있으면서 홈런을 종종 맞을 때가 있다.

실투했다면 자책을 했다. 제대로 던졌어도, 상대가 잘 받아 치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털어냈다.

하지만 지금의 지완은 어느 쪽도 택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삼진을 노리고 달려들었고, 그동안 한동욱의 패턴을 이용하려 최대한 유리하게 이끌러 가려고 했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승부를 건 투수가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투수들과 달리, 자신은 충분히 던질 구종과 강한 구위를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동욱이 프로 1군 무대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할 무렵, 삼진으로 잡은 기억도 있었다.

이번에도 한동욱을 삼진으로 잡아, 적어도 동팔과 동급으로 평가되려 했다. 그리고 이어서 삼진을 먹여 우위에 있으려 했다.

다른 어느 투수보다 자신감이 있었지만 그 자신감은 한동욱의 홈런과 함께 사라졌다.

빠득.

기대가 컸던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분노는 방심하고 있던 자신에게 그리고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은 한동욱을 동시에 향하고 있었다.

동시에 남궁지완은 마음속의 칼날을 벼르고 또 벼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볼도 치는지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그걸 감안하고 던지면 그만… 다음에 반드시… 삼진으로 잡는다! 반드시……!!'

그러나 그의 각오와 달리 다음 타석에서도.

따악~!!

그 다음 타석에서도.

따악~!!

지완은 한동욱에게 2루타와 이어서 홈런을 맞아 강판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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