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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인터넷의 반응만 뜨거운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야구 연구소에서도 그동안 자신들이 주장했던 이상적인 구종을 실제 경기에서 던진 투수가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지금 당장 강동팔 선수랑 인터뷰할 방법을 찾아봐. 한국 야구 연맹에도 연락을 취하고."
"이미 신청했습니다. 언론 인터뷰가 아니라 연구 목적이라 그나마 쉽게 나지 않을까요?"
"방해할 생각 없고, 옆에서 지켜보는 것. 그리고 신체적인 특징이 있는지도 확인해야지. 그러려면 관계자들이랑 선수 본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통역은?"
고작해야 만화나 소설에만 나오는 게 자이로볼이었다.
그동안 자이로볼이 이론으로만 가능하다는 현실 앞에서 얼마나 낙담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공을 확실히 던진 투수가 나오니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라와 인종을 떠나, 자신이 노력하던 그 무언가가 인정받게 될 기회가 생기면 흥분하기 마련이었다.
야구를 하는 사람들, 야구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은 동팔이 던진 자이로볼에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미국의 메이저리그의 구단들이었다.
그들은 흥분하면서도 침착하게, 동팔이 공을 던진 모든 것을 분석했고, 현실적인 접근을 시작했다.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커브, 체인지업, 슬라이더도 모자라 너클볼을 던지고… 거기에 자이로볼까지? 이 투수는 괴물이야?"
"그래서 지금 한국 프로 야구 리그를 씹어 먹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구단에서도 접촉을 시작하거나 준비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러고 있으니까요."
"당연히 접촉해야지. 우리 팀의 선수가 될지, 다른 팀의 선수가 될지 몰라도 어떻게든 분석해야 하니까. 그럼 포스팅 금액은 어디까지 생각해야 할까? 아니, 그 전에 RG구단이 강동팔 선수를 놓아주려고 할까?"
역대 최고의 투수였다.
야구가 한 사람의 투수로 리그의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다지만, 큰 영향을 주는 건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중요한 능력이 있었다.
"이닝 소화 능력도 뛰어납니다. 덕분에 RG는 볼펜의 소모를 줄이고, 여유 있는 전력으로 다른 경기에서 승리하고 있으니 승률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한 사람이 선발로 나서는 것도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여파를 생각하면 가치는 더 높죠. 평상시 한국 선수를 데려오는 금액을 내밀면 밀려날 것이 분명합니다."
분석관의 말에 구단주는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 선수는 많은 돈을 쓰지 않았는데……."
"쪽박도 있지만 대박도 있습니다. 쿠바 선수들에 비해 이름값은 떨어질지 몰라도, 실력까지 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죠. 제대로 알면 싸게 데려올 수 있는 좋은 시장이긴 합니다만… 이번 경우에는 다르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동팔 선수가 프로에 다시 들어온 건 올해 그리고 자유계약 조건을 얻으려면 아직도 8시즌이나 더 던져야 합니다."
"그게 문제야? 8년이 지나면 강동팔의 나이가… 한 34살? 우리 나이로 따지면 32살?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그 나이쯤 되면 속도가 떨어져."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대신 그만한 값을 하는 선수라면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RG에서도 쉽게 놔주려 하지 않겠지만, 그들과 강동팔 선수의 계약 기간은 2+1이라 하더군요. 옵트아웃 조건이 까다롭겠지만 그래도 길어봐야 3년입니다. 강동팔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가려는 의욕이 크다면 구단에서도 최대한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선 머리를 굴려야 할 겁니다."
분석관의 말에 구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구단이 메이저리그로 가려는 것을 막으려하면 프로에 다시 설 수 없어도 계약을 끝내겠다 하면… 구단에서도 이런 저런 손해가 많을 거야. 특히 이미지에 대한 손실은 생각보다 커. 그럼 1년이든, 2년이든 남은 기간 동안 충분히 보상할 만한 포스팅 금액을 불러야 한다는 말이라… 지금 당장 전력으로 가능한가?"
"이번 여름 시장을 노리시게요?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RG에선 이번 시즌에 반드시 정규 리그 우승과 한국 시리즈 우승을 노리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 전에 준비와 대화를 충분히 하고 다른 구단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면 큰 손해를 입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 오면 적응해야 할 기간도 있지 않습니까?"
분석관의 말에 구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순리겠지. 그대로 진행해."
그러다 구단주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한동욱이라는 타자는 어떻게 보나? 처음에는 강동팔을 상대로 홈런을 쳤지? 100마일의 공을 받아쳐서."
"그렇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을 붙여 파악하고 있는 타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서 지금 보고 계신 영상대로 삼진을 당했습니다."
"알아. 그리고 그 다음 타석에선 같은 공을 상대로 때렸단 말이야. 범타로 끝났지만, 그 공을 칠 수 있는 타자가 과연 얼마나 될거라 생각하지?"
"우연일 수 있습니다."
"우연이 아닐 수도 있어. 그걸 분석하는 것이 자네와 자네 팀의 역할이야. 한동욱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혹시 모르니까 예상 가능한 포스팅 금액의 범위를 말해 봐. 투수는 아니니까 강동팔보다는 적겠지."
구단주의 말에 분석관이 물었다.
"가능하다면 이 두 사람을 영입하실 겁니까?"
"아, 가능하다면. 하지만 구단의 재정이 넉넉하진 않으니 쉽진 않겠지……."
한편, 어제 경기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RG와 지아의 선수들은 간만에 일찍 귀가할 수 있었다.
광주에 집을 둔 한동욱은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있었다.
식탁에 앉은 사람은 한동욱과 그의 엄마 그리고 누나 한 명과 두 명의 여동생이었다.
다섯 사람이 좁은 식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오빠. 어제 보니까 강동팔이란 투수… 정말 대단한가 봐? 오빠가 삼진 당하는 거 정말 오랜만에 봤어."
여동생의 말에 옆에 있던 언니가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너 밥 먹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동시에 그녀는 동욱의 눈치를 살폈다.
'오빠가 기분 나빠 하면 어떻게 하지?'
계속 이어가던 대기록이 깨졌으니 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언니의 행동에 여동생은 자신이 실언했다는 것을 알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 미안해. 오빠."
하지만 동욱은 두 여동생의 말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 깨질 기록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 그리고 계속 이어가면 그것도 은근히 신경 쓰여서 상당히 압박 받거든. 이젠 오히려 홀가분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가 내 기록을 깨겠지."
동욱의 말에 그의 누나가 말했다.
"한 백년 지나고? 지금 세운 기록은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거 아냐?"
"그건 아닐걸. 알아보니까 메이저리그에서 115경기 연속 무삼진을 기록한 선수가 있대. 한 경기에 최소 3타석에 선다는 가정하면 345타석 동안 삼진이 없었단 이야기겠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야."
"정말? 이래서 메이저, 메이저 하는 거구나."
"그 선수는 9년 연속 한 자릿수 삼진을 기록했고, 한 시즌에 삼진이 3개밖에 없었어. 그것도 576타석에 서는 동안."
한동욱의 말에 먹고 있던 두 여동생과 누나, 어머니까지 절로 입이 벌어졌다.
"동욱이가 세상에서 제일 치는 타자인 줄 알았는데… 정말 세상은 넓구나."
"그 메이저에서? 진짜 세상에 대단한 사람은 많네."
그녀들의 반응에 한동욱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겠죠. 괜히 그게 가능하겠어요? 그리고 그 기록은 아직도 불멸의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말을 마친 한동욱은 앞에 있는 밥그릇을 싹싹 비워 먹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한 그릇 가지고 안 되지? 내가 가져올게."
어머니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여동생이 말했다.
"아냐. 엄마. 내가 갔다 올게. 오빠 오늘도 경기 있잖아. 어제는 졌지만… 오늘은 이겨야지."
여동생은 한동욱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밥그릇을 가져가더니 부엌으로 갔다. 그리곤 한가득 밥을 담아서 동욱의 앞으로 가져왔다.
"자, 여기."
"고마워."
동욱은 여동생이 가져다준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면서 여동생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다.
"학교 가면 남자애들이 항상 말 걸어온다? 그런데 나 때문이 아니라 오빠 사인 받아줄 수 있냐면서. 작년 이맘때만 해도 오빠 이름 말하면 누구냐고 묻던 애들인데… 이젠 완전히 팬이 됐대."
"그거야 오빠가 크게 성공했으니까 그렇지. 지금 우리가 작년에 먹던 거랑 생각해봐. 전에는 요렇게 작은 식탁에 빈곳이 많았는데, 지금은 정 반대잖아. 이제 새 식탁을 사야 할까 봐. 언니. 좀 사 가지고 오면 안 돼?"
"안 될 게 뭐가 있어. 우리가 이렇게 있을 수 있게 해준 사람이 여기 있는데. 그리고 나도 직장인이거든? 동욱이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월급을 받는단다. 요 꼬맹아."
"누구보고 꼬맹이래?"
"그야 너지. 아직도 고딩인 주제에 어딜."
세 자매의 단란한 이야기에 동욱은 절로 아빠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때, 그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음?"
즉시 문자를 확인해본 동욱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미소를 본 가족들이 물었다.
"오빠. 누구야? 혹시… 우리 몰래 사귀는 사람?"
"오빠가 문자 받으면서 지그시 웃는 거 처음 봤어."
"사귀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혹시 지아 구단 치어리더 중 한 사람이니? 아니면 배트걸?"
그녀들의 물음에 한동욱이 답했다.
"사귀는 사람도 아니고, 여자도 아냐.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인데… 마침 시간이 된다고 하네."
한동욱은 그 말을 하고 이번에도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신 후, 여전히 아침을 먹고 있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어머니. 죄송하지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들도 맛있게 먹고, 학교 잘 다녀와. 누난 알지?"
"알았으니까 빨리 약속한 그 사람한테 가기나 하셔."
그 말을 끝으로 동욱은 집을 나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 그리고 한동욱이 나가자 여자들만의 대화가 이어졌다.
"언니! 정말 작년이랑 오빠 대하는 게 너무 다른 거 아냐?"
"다르긴 뭘?"
"당연히 다르지. 전에는 오빠가 야구하는 거 그렇게 싫어해 놓고선."
여동생의 말에 언니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너는? 그렇게 따지면 너도 마찬가지잖아. 동욱이 장비나 배트 살 때마다 울면서 뛰쳐나간 거 생각 안 나니? 난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서로 한마디만 말하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에서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효… 미안하구나. 아빠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너희들을 제대로 못 챙겼으니……."
어머니는 눈물을 흘릴 것처럼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방금 전만 해도 싸울 것 같던 자매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아니에요. 엄마."
"잘못은 무슨. 흩어지지 않고 이렇게 같이 있는 게 어딘데?"
"그리고 엄마가 오빠 장비 사준 덕분에 지금 이렇게 있는 거잖아요. 작년에 프로 1군에 오르고 난 다음부터 승승장구해서, 지금은 연봉이 억대야 억대."
돈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돈이 너무 없으면 그것도 행복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들도 많은 돈을 바라기보단 조금은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이 집도 많이 좁은 바람에 넓은 방은 엄마와 자매들이 같이 썼고, 작은 방은 동욱이 쓰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빠라면 제일 먼저 엄마가 고생한 걸 잘 아니까 무조건 호강시켜주려고 할걸?"
"그래야지. 그동안 뼈 빠지게 돈 모으면 상당부분 동욱이 장비 사는데 들어갔으니까. 그런데 뭔 야구 장비가 왜 그렇게 비싼지 모르겠다니까? 가난하면 야구 못 하겠어. 엄마가 밀어붙였으니까 여기까지 왔지, 다른 집안이었으면 동욱이 야구 하지도 못하고 끝났을 거예요."
아이들의 말에 어머니가 답했다.
"호강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야. 동욱이에게 내가 해줄 것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렇지. 전에 지 애비랑 캐치볼인가 뭔가 할 때나, 방망이로 공을 때렸을 때만큼 밝게 웃는 걸 본 적이 없었어… 그래도 너희들한테도 신경을 써줘야 했는데……."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지만, 아들한테만 신경을 쓰다 딸들에게 소홀하게 대한 건 아닌가 싶어 미안했다.
그러자 막내딸이 엄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냐. 괜찮아. 그래도 신경 쓰이면 지금부터라도 신경 쓰면 되지 뭐. 이젠 우리도 마냥 투정부리는 애들도 아니고. 응?"
그리고 이어서 맏딸이 말했다.
"그런데 동욱이가 만나러 가는 사람이 누굴까? 어제 경기가 빨리 끝났지만, 보통 9시는 되어야 일어나는 동욱이가 오늘은 7시에 일어났잖아. 아니라고 했지만… 정말로 사귀는 사이……?"
엄마라면 어쩔 수 없이 집중할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들이 생각한 것과 달리 동욱이 만나는 사람은 그가 말한대로 사귀는 사람도 아니었고, 여자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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