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71화 (71/325)

[71]

이후에 다시 있을지 모를 기록이 깨졌다.

기록이 깨진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동시에 동팔이 던진 공에 의해 다시 놀라고 있었다.

[아… 잘하면 300타석 채울 수 있었는데 거의 바로 앞에서 막힌 한동욱 선수입니다. 그런데 상대가 나빴어요. 너클볼을 완벽하게 던진 것도 놀랍지만… 방금 전의 공은 거의 자이로 볼 아니었습니까?]

[그건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공 아닌가요? 저는 빠른 슬라이더라고 봤는데요.]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투구 동작과 공의 회전을 보면 자이로 볼에 더 근접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영상 보시죠.]

보통 이닝이 끝나고 공수가 전환되면 광고화면으로 넘어갔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고 방금 전에 동팔이 던지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이 나오자 해설위원이 이어서 말했다.

[지금 강동팔 선수가 던진 폼이 다릅니다. 그립은 패스트볼 그립이지만 던지고 난 다음에 팔이 나가는 방향이 달랐습니다. 보통은 안쪽으로 들어가지만 지금은 바깥쪽으로 나왔습니다.]

해설위원이 말하자 이번에는 이미 준비했는지 평상시 던질 때의 모습이 둘로 분할된 화면으로 비교할 수 있게 나왔다.

[그러면 당연히 공의 회전이 패스트볼과 전혀 다릅니다. 이건 반대편에서 보면 더 확실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회전이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거의 좌우로 회전하면서 갔을 거예요.]

해설위원의 말에 이번에도 화면이 바뀌었다. 이전에 나온 영상은 주심의 뒤쪽에 있는 카메라에서 찍었던 것이다. 영상을 본 해설위원이 확실하게 말했다.

[이걸로 보니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코스나 속도는 빠른 슬라이더처럼 보이지만… 공의 회전을 보면 자이로볼이 확실합니다. 공의 변화도 무섭지만 다른 구종과 달리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작습니다. 실제 타자 입장에서 보면 훨씬 더 빨리 다가올 거예요. 설령 치더라도 제대로 맞지 않아 범타로 끝났을 겁니다.]

[그럼… 강동팔 선수의 주력구는 강속구, 커브와 체인지업, 슬라이더만이 아니라 너클볼과 자이로볼까지 추가되는 건가요?]

[글쎄요… 주력구라는 건 항상 제구가 정확하게 잘되어야 쓸 수 있는 공입니다. 오성의 남궁지완 선수도 너클볼을 던지지만… 주력구가 아닌 이유는 제구가 쉽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타자의 타이밍이나 예상을 흔들기 위해 종종 던지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봐야 알겠지만 아직 강동팔 선수가 너클볼과 자이로볼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요. 솔직히 두 공 모두 위험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빠졌어요.]

더그아웃에 있어 확인할 수 없었지만 중계진의 해설이 전파와 인터넷을 통해 금방 퍼져 나갔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가 급등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수를 교대하면서 동팔이 돌아오자 투수들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도 반겼다.

"이제 1승 1패."

"결국은 네가 한동욱을 잡았구나."

"축하한다."

동팔의 무피 홈런 기록이 깨졌지만 한동욱의 무삼진 기록도 깨졌다. 기록이 깨진 여파로 시무룩해진 사람도 있겠지만, 그만큼 박진감 있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명승부였다.

더그아웃에 돌아온 동팔은 그들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클이랑 자이로는 어떻게든 던질 수 있지만, 아직도 완전히 제구가 되는 건 아니었거든요."

동팔의 말에 투수들은 속으로 답했다.

'아니. 자이로볼은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단하다 생각하거든.'

'너클볼 구속이 어떻게 120까지 나올 수 있는 거지?'

이미 강한 투수인 강동팔.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3대 마구 중 2개를 실제 경기에서 던졌다. 그 자체로 대단했지만 동팔의 만족할 수 없다는 말에 기가 질림과 동시에 납득되었다.

"동팔이가 잘 던지는 이유가 있었네. 이렇게까지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노력하다니… 그러면서 정진하고 목표한 것을 이루니까."

만약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솔직히 그들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며, 더 나아지기보다 지금 실력이라도 유지하려는 쪽을 택할 사람이 꽤 많았다.

지금 동팔의 수준이라면 국내에서 톱클래스 메이저에서도 에이스급 실력이었다. 억대 이상의 연봉과 수십억을 넘어가는 계약금까지 받으며 호위호식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팔은 새로운 구종을 익혔고, 지금도 성실하고 겸손하게 배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한동욱이 어떻디? 다시 붙으면 가능하겠어?"

한 사람의 물음에 동팔은 자신만만하게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번에는 운이 조금 따랐어요. 지금까지 느낀 한동욱은 분석력이 뛰어납니다. 처음 보는 공을 보자 당황하는 것이 보였거든요."

단순히 신체적인 능력만 뛰어나선 지금의 한동욱이 만들어질 수 없었다. 분명히 그 또한 뼈를 깎는 심정으로 참고 또 참으며 노력해 왔을 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뛰어난 분석과 정보 습득이었다.

그 이후에 공을 치는 건 타자로서의 역량.

"하지만 지금 제가 쓸 수 있는 모든 패는 다 보였습니다. 너클볼은 던지는 것이 너무 눈에 띄니 소용없을 거고, 남은 건 자이로볼인데 아직 제구가 완벽하지 않아요. 던진 이후에 투구 동작을 보면 확연히 구분이 가능하니까 다음에도 통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투수와 타자가 마주치면 초반에 유리한 쪽은 투수였다.

타자는 상대하는 투수의 공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하는 전적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타자가 공에 익숙해진다.

결국 초반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 타자 쪽이 조금 더 유리해졌다. 물론 그것도 투수가 이전과 항상 같은 기량일 경우에 한했다.

투수도 끊임없이 노력하며 새로운 구종을 익히거나 제구력을 더 가다듬으면서 본신의 실력을 높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타자들에게 안타와 홈런으로 두들겨 맞아 프로 무대에서 버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다음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맞붙은 경험이 어떻게 될지…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죠."

한편, 공수가 바뀌어 유격수로 필드에 올라온 한동욱은 격려와 위로를 받을 틈이 없었다.

곧장 글러브를 끼고 수비 준비를 한 그는 집중하면서 방금 전 삼진을 당했던 때를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둘 다 처음 보는 것이라 당황했지만 걱정할 건 없어. 중요한 건 강동팔이 자이로볼의 제구가 얼마나 되는지가 관건. 최악의 경우 잘되고 있다는 것으로 가정해야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져.'

자이로볼의 무서운 점은 강속구로 빠르게 날아오면서 변화구처럼 볼끝의 움직임이 크다는 것이다.

직구로 날아오는 강속구를 치는 것도 어려운데, 변화까지 있으면 제대로 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그래도 한동욱은 포기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자이로볼을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다면 내 첫 타석에서 던졌을 거야. 그게 아니니 다른 공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던 것이고. 그게 안 되는 것을 아는 이상, 도박하는 심정으로 던졌겠지. 그리고 그 도박에… 녀석은 이겼고, 나는 졌어. 단지 그뿐이야.'

무엇보다 지금은 경기에 집중할 때였다.

이번에 삼진을 당했지만, 그에게 남은 기회는 한 번 더 있었다. 그리고 그만이 아니라 중계를 보는 모은 사람들은 한동욱이 7회 말에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타석을 기다렸다.

여전히 양 팀은 점수를 내지 못하고 2대 1로 7회 말까지 왔다. 양 팀의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하며 범타나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팬들은 그걸로 화를 내지 않았다.

"어서 빨리 7회 말이 와라… 제발……."

"이번 대결 어떻게 끝날까?"

"한동욱이 안타나 홈런? 그것도 아니면 이번에도 삼진?"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대결의 끝은 한동욱의 홈런이나 안타 또는 강동팔이 삼진을 잡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따악~!!

동팔은 회심의 자이로볼을 던졌지만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였고, 한동욱은 그것을 받아쳤다. 하지만 제대로 맞지 않았기에 둘의 이번 경기의 마지막 대결은 외야 플라이라는 다소 싱거운 형태로 끝났다.

그러나 강동팔과 한동욱의 맞대결의 여파는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계약자들의 첫 만남

강동팔과 한동욱의 대결과 결과는 인터넷에서 곧장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의 대결에 이 사자성어를 쓰는 것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용호상박(龍虎相搏).

용과 호랑이가 싸웠는데, 서로의 몸통을 물고 뜯는 혈투라는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날 스포츠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주제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욱! 강동팔을 상대로 홈런!!]

[강동팔! 한동욱을 삼진!!]

제일 먼저 두 선수가 세워 나가는 기록이 깨졌다는 것을 알렸다. 그동안 감히 건들 엄두가 나지 않은 강동팔의 투구를 받아쳐 홈런을 친 건 큰 임팩트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임팩트가 있었으니, 바로 동팔이 던진 너클볼과 자이로볼. 특히 자이로볼은 던지는 투수가 전 세계적으로 없었기에 더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강동팔이 자이로볼을 던진 동영상은 편집되어 유투브나 각종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왔다.

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를 자처하며 해석을 단 자막을 추가한 영상도 하루가 되지 않아 올라왔다.

당연히 그냥 올리지 않고, 공을 확대하여 회전하는 방향이나 궤적까지 표시해서 보여주었다.

처음에 동팔이 자이로볼을 던졌다고 했을 때의 반응은 이것이었다.

[그게 말이 됨? 자이로볼은 이론에서만 존재하는 구종인데.]

[전에 던졌다는 일본의 어떤 투수도 자이로가 아닌 빠른 슬라이더라고 말했고만 무슨.]

하지만 동팔이 던지는 장면. 특히 공의 회전이 완벽하게 옆으로 도는 것을 보자 이전과 다른 반응이 나왔다.

[우와. X바. 정말로 저걸 던져?]

[제구를 떠나서 공이 총알처럼 도네. 돌아.]

처음에는 자이로볼에 대해서 놀랍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어떤 사람은 다른 곳에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범타로 끝났다지만… 저 괴물 같은 마구를 친 한동욱은 얼마나 괴물인 거야?]

동팔의 자이로볼에 대한 반응은 한국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던지는 투수가 없는 공 그리고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공을 한국의 어떤 투수가 던졌다는 말에 먼저 반응이 나온 곳은 일본.

자이로볼에 대한 이론을 말한 사람과 투수가 있는 나라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다른 나라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다만 일부 우익 성향의 사람들은 동팔이 던진 자이로볼을 평가절하했다.

[자이로와 비슷하지만 빠른 슬라이더 아닌가?]

[조센징이 자이로를 던질 수 있을 리가 없어.]

[조작 정말 잘한다. 깜빡 속을 뻔했네.]

하지만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들과 달리 편협적으로 보지 않았다.

[직접 찾아보니까 사실인데 무슨 헛소리? 정식 채널에 나온 중계가 확실해.]

[회전이랑 투구 폼을 보니까 내가 알고 있는 자이로볼이 맞아.]

[이제 정말 이론으로만 존재한다던 자이로볼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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