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70화 (70/325)

[70]

'그걸 알면 보일까? 일단 지금은 한동욱을 잡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러기 위해선… 우선 유리한 볼카운트로 유도…….'

상대가 노리는 것을 알면 상대하기가 더 편하다. 그리고 동팔은 한동욱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홈런을 쳤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 다음 타자를 믿을 수 없는 이상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니까.'

동팔은 일부러 스트라이크 존의 낮은 쪽을 지나가는 공을 던졌다. 직구면 한동욱의 힘으로 퍼 올릴 수 있기에 처음에는 커브 다음에는 슬라이더였다.

따악!!

두 개 연속으로 배트에 맞았다. 그러나 위로 넘어가거나, 파울지역으로 넘어갔다. 볼카운트는 투 스트라이크. 철저히 한동욱에게 불리한 카운트였다.

하지만 한동욱은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파훼(破毁)할 방법은 없어. 낮은 쪽으로 들어오는 유인구는 무조건 커트. 직구면 퍼 올리고, 높은 공이면 반드시 홈런으로…….'

다른 사람이 전 타석의 동욱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운의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한동욱은 처음부터 운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강동팔을 상대로 점수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타자가 자신인 이상, 절대로 안타에 만족할 수 없었다.

한동욱의 의도는 투수인 동팔이나, 포수로서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김강수도 알고 있었다.

'의도는 알겠지만… 볼넷이 아니면 공략할 방법이 보이지 않아. 그럼 어떻게…….'

김강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동팔에게 하나의 사인을 받았다.

'응…? 설마 그걸로……?'

김강수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가 보는 것은 더그아웃도 아닌, 구장에 있는 깃발이었다.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을 보던 김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이라면 그게 좋을지도…….'

선택은 정해졌고, 던질 구종도 정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김강수의 포구 능력.

한동욱도 타석에서 짧은 시간 동안 호흡을 가다듬은 후, 진지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이어서 동팔이 공을 던지자,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

이미 동팔에 대한 분석은 끝났다. 던질 수 있는 구종과 가능한 코스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모든 동작이 같았고, 설령 다른 투구 동작이 되더라도 코스가 같았다.

그래서 동팔의 투구 동작으로 그가 어떤 구종을 던지는지 알 수 없었다. 있다면 그가 공을 던지는 순간, 보이는 그립을 파악하는 것.

그러나 아무리 눈이 좋은 타자라도, 빠르게 휘둘리는 팔과 더 빠르게 움직이는 손을 보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한동욱에겐 예외였다.

'동작이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다만 지금 던지는 동팔의 투구동작은 전에 분석하던 것과 달랐다.

특히 손의 움직임이 달랐다. 힘차게 뿌리며 회전을 가하는 것과 달리, 이번에는 움직임이 크지 않았다.

그리고 회전이 거의 없이 날아오는 공을 보자 한동욱은 이번에 던진 동팔의 구종을 알았다.

'너클볼!!'

그것은 야구에서 3대 마구로 불리는 구종.

공에 회전을 가해, 특정한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공과 달리 회전이 없었다. 그래서 투수가 처음 던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면서 만나게 되는 바람이 제일 큰 영향을 줬다.

그러니 바람이 심한 곳에서 던지면 안 되는 구종임과 동시에, 제구만 잘 된다면 제일 위력적인 힘을 발휘하는 구종.

그래서 김강수는 동팔이 너클볼을 던진다는 사인에 제일 먼저 구장의 펄럭이는 깃발을 봤던 것이다.

"……!"

동팔의 공이 향하는 곳은 일단 스트라이크 존.

이 상태라면 가만히 있다가 삼진을 당할 것이다.

일단 배트를 휘두르는 한동욱. 하지만 동팔의 너클볼은 주변의 대기와 바람에 어우러져 자신만의 춤을 추며 흔들렸다.

타자인 한동욱도 치기가 난감했지만 포수인 김강수도 마찬가지였다. 너클볼은 어디로 갈지 투수도, 포수도, 타자도 몰랐다. 그러니 끝까지 집중해서 포수 미트가 따라 가지 못하면 놓치고 말았다.

동팔의 공은 처음에는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가더니 바람에 흔들리며 존을 벗어났다. 생각보다 크게 벗어나기에 이대로 배트가 나가면 스치지도 못 했다.

"큭!!"

한동욱은 휘두르던 배트를 겨우 멈추고 뒤로 뺐다.

퍽!

김강수는 가까스로 동팔의 공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그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휙! 척!

그는 즉시 간결한 동작으로 1루심에게 스윙 여부의 확인을 부탁했다.

하지만 1루심의 판정은 스윙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

아쉽지만, 이걸로 합의 판정을 요구하기엔 아까웠다.

그리고 더그아웃에서도 합의 판정을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뒤로 봐도 스윙은 아니지?"

"네. 배트 안 돌아갔습니다. 그나저나 동팔이가 실제 경기에서도 너클볼을 던질 수 있다니… 정말 배짱이 좋습니다."

"단점이 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장점이야. 이미 손가락 힘이 강하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길기에 가능한 구종. 거기에 연습할 때처럼 너클볼이 120을 찍고 있어. 보통 다른 투수가 던지면 110 겨우 나오는데."

"또한 제구도 좋습니다. 겨우 받기는 했지만 폭투로 완전히 안 빠진 게 다행이죠. 만약에 한동욱이 배트를 휘두르고, 강수가 공을 못 받았다면… 낫 아웃 상태가 되서 나갈 수 있습니다. 이번에 던진 건 한 번 빠지면 크게 빠지잖아요. 몸으로 막을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으니."

"익숙해지려면 여전히 연습이 필요하지만 지금 한동욱이 상대하려면 이 정도는 던져줘야지."

그리고 감독은 투수 코치를 보며 이어 말했다.

"전에 동팔이가 손가락으로 푸시업할 때부터 보고 너클볼 가르쳐준 건 잘했어. 다른 타자들에게 위험한 너클볼을 던질 이유는 없지만… 지금은 적절하게 쓸 수 있으니까."

"동팔이 재능이 뛰어난 것도 한몫했습니다. 새로 배우는 구종일 텐데 생각보다 배움이 빨라요."

그들의 말대로 동팔이 너클볼을 배우는 시작은 길지 않았다. 처음 배운 것은 리그가 시작의 초반.

이제 중반을 향해 넘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한 달 남짓한 시간이었다.

"분명히 혼자서 열심히 노력했겠죠. 아주 짧은 시간에 저 정도까지 던지려면 단순히 천재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그 성과가 바로 앞에 나타났고."

볼카운트는 두 스트라이크에서 볼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전보다 투수에게 불리해졌다.

그러나 그들이 긍정적으로 본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중계진에서 바로 파악했다.

[한동욱이 너클볼에 당황해서 배트를 휘둘렀다가 뺐습니다. 처음 봤으니 당황할 만도 하겠죠.]

[이번에 새로운 구종을 선보였는데, 그게 너클볼인 것도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도 헛스윙을 하지 않고, 배트를 뒤로 뺀 한동욱 선수… 이거 정말 모르겠습니다.]

단 하나의 공이었지만 여파는 다른 공들과 달랐다.

이미 관중들도 동팔이 던진 너클볼에 대해 이야기나 나오며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을 떠나 다음에 던질 공을 골라야 하는 동팔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분명히 배트가 나갔다 돌아왔어. 보통 반사 신경이 아니야. 단순히 분석력이 좋아선 불가능해.'

처음 겪는 상황에, 처음 겪는 구종일 것이다.

물론 오성의 남궁지완이 너클볼을 간간히 던졌지만 위력에서 차이가 났다.

'투구폼이 다른 건 너클볼이라서 그런가? 하긴. 회전을 주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다음엔 안 통해…….'

너클볼은 독특했지만 빠르지는 않았다. 한동욱이 생각한 것처럼 너클볼을 주력으로 던지는 투수는 독특한 형태로 던져야 해서 다른 투수들과 힘이 덜 들어갔다.

덕분에 나이를 많이 먹어도 계속 던질 수 있는 구종이었지만, 조금이라도 회전이 들어가면 안 돼 까다로웠다.

단점은 너클볼을 던지는 것과 같은 동작으로 다른 구종을 던져야 한다는 점.

그래야 타자를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동욱은 동팔이 너클볼을 던질 때 달라지는 폼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비록 너클볼이 주변의 대기 상태에 따라 불규칙하게 움직였지만 빨라야 시속 120km.

그 정도 속도면 어떻게든 칠 자신이 있는 한동욱이다.

'정타는 힘들지 몰라도… 힘을 제대로만 실으면 홈런도 불가능하지 않아.'

새로운 구종을 보았지만 동시에 봉쇄되었다. 그리고 그건 동팔도 직감할 수 있었다.

'너클볼은 폼이 달라서 바로 들켜. 하지만 한동욱이 분석력만 아니라, 반사 신경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야…….'

상대에 대해 한 꺼풀 더 벗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정보가 들어온 이상, 그에 맞추어 전략을 짰다.

이미 거기에 대한 전략. 그리고 구종은 정해져 있었다.

사인을 보내자 김강수도 받아들였다.

'승부… 걸겠다는 거네… 패를 너무 보여주는 건 아닌가 싶지만… 상관없으려나?'

모두의 시선이 마운드에 집중되고 있을 때, 동팔은 힘차게 공을 던졌다.

쉬릭.

동팔의 동작은 평상시 투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방금 전 너클볼을 던질 때와 달리 확실하게 힘이 실렸다. 하지만 다른 곳이 있다면 팔의 비틀림과 각도.

동팔의 팔은 이전보다 더 비틀어 던졌고, 던지는 각도는 평상시 안쪽으로 향하는 것과 달리 바깥쪽을 향했다.

그건 한동욱도 바로 알아차렸다.

'너클볼은 아니야… 그럼 무슨……?'

찰나의 의문이 들 때에 한동욱의 눈은 공을 향했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프로 투수가 던지는 공의 회전은 눈에 보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방금 전에 던진 너클볼이 아닌 이상 회전하는 방향을 알아채는 것은 무리.

그러나 한동욱의 눈에는 회전하는 방향이 보였다.

'스크류?'

다른 투수의 공들은 무회전의 너클볼이 아니라면 진행하는 방향과 같거나 또는 사선으로 회전했다.

하지만 동팔이 지금 던진 공은 분명히 강선에 의해 회전하는 총알과 같이 옆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직구와 달리, 훨씬 더 효율적으로 대기를 파고 들어오며 이는 초속과 종속의 차이를 줄였다. 그리고 어느 그립을 잡고 회전시키느냐에 따라 궤적의 방향도 바뀌었다.

너클볼과 달리, 전혀 상대한 적이 없는 새로운 구종.

그런데 문제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걸쳐서 들어오고 있었다.

"큭!!"

속도가 빨랐다. 이대로 있으면 쓰리 스트라이크로 아웃이 확정.

그러니 한동욱은 먼저 배트를 휘둘렀다. 어떻게든 배트에 공을 건드려 커트하려는 의도. 하지만 동팔의 공은 빠르게 날아오면서도 홈플레이트에 가까이 오자 급격한 변화를 보이며 바깥쪽 아래로 빠졌다.

휭~!! 퍽!

공을 배트를 피해 포수 미트에 정확하게 들어왔다.

완벽한 헛스윙. 주심은 더 볼 것 없다는 듯이 외쳤다.

"스트롸익!! 아웃!!"

완전한 삼진 아웃. 그리고 심판의 선언으로 인해 297타석 동안 이어진 연속 무삼진의 기록은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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