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69화 (69/325)

[69]

[그야 팀을 위해서라면 고의 볼넷 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재미가 확 떨어지겠지만, 이후의 타자들은 한동욱 선수에 비하면 무게가 많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거든요.]

[지아 입장에선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모처럼 한동욱 선수의 홈런으로 기세가 살아났지만, 이어서 나온 타자들 전부 삼진아웃으로 끝나 찬물을 끼얹고 말았습니다.]

[이제 2대 1입니다. 앞으로 RG가 더 달아날지. 아니면 지아가 한동욱 선수의 힘으로 따라갈지가 관건이 되겠습니다. 그나저나 이걸로 강동팔 선수의 평균 자책점이 약간 올라가겠어요. 그동안 방어율은 '0'이지 않았습니까.]

[이제 곧 통계가 나오겠죠? 아, 나왔습니다. 완전히 영(0)은 아니지만, 영점대 방어율입니다. 현재 강동팔 선수의 방어율은 0.128입니다. 정말 조금 올랐습니다.]

[그동안 강동팔 선수는 완봉승 아니면 8이닝까지 완봉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동안 8경기에 나왔고 방금 전 두 이닝까지 합치니 지금까지 70이닝 그리고 방금 전 1점을 잃었으니 그 정도가 맞습니다.]

[그런데 8이닝까지 던진 것도 투구 수가 많아서 내려온 건 아니었죠?]

[투구 수 문제가 아니라, 계투진의 감각을 위해서 내렸던 거죠. RG는 행복할 겁니다. 그 걱정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팀 상황이 그만큼 여유 있고 좋기에 가능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마운드의 힘은 RG가 지아보다 더 뛰어납니다. 아마 그래도 더 유리한 쪽은 RG겠지요.]

그들이 중계를 할 때에, 마침 RG의 3번 타자인 박호택이 좌전안타를 쳤다.

따악!!

[오! 잘 맞은 타구가 좌익수 바로 앞에서 바운드. 박호택의 1루타!! 그리고 주자는 1, 2루. 거기에 무사입니다. 1점 나는가 싶었더니 바로 위기를 맞는 지아입니다.]

캐스터의 말에 해설위원은 같이 흥분하지 않았다.

[좋은 기회입니다. 하지만 상대는 지아입니다. 특히 한동욱 선수의 수비 능력은 탁월합니다. 방심하면 좋은 기회를 날릴 수 있습니다. 4번 타자임에도 1루수가 아닌, 유격수나 2루수를 하는 이유가 있어요.]

해설위원이 그 말을 할 때에 타자가 타석에 들어왔다.

[RG의 절호의 기회. 거기에 이번 타석은 강타자인 히네신스입니다. 무사(無死)여서 그런지 여유가 있습니다. 설령 자신이 아웃되더라도 기회는 살아 있으니까요.]

[투수도 엄청나게 압박을 받고 있을 겁니다. 타순을 알고 있지만, 주자를 안 내보내려 해도 그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히네신스는 좋은 기회인 것을 알지만 욕심을 내지 않았다.

'장타도 좋지만, 중요한 건 기회를 이어나가는 것…….'

희생플라이도 나쁘지 않지만 그것도 쳤을 때의 이야기다. 이왕이면 단타라도 쳐서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고, 무사 1, 2루의 기회를 이어가는 것이 좋다. 주자가 있으니 투수의 입장에선 이만 저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집중하며 타석에 임하는 히네신스. 그리고 지아의 투수가 공을 던졌다. 코스는 낮은 쪽으로 들어오는 변화구.

히네신스의 공격적인 타법을 이용한 유인구였다. 히네신스도 그걸 알고 있지만 배트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스트라이크이든, 볼이든 칠 수 있으면 안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심타선의 역할이었다.

따악!

유인구를 멋지게 받아친 히네신스는 절로 기쁨의 웃음이 피어났다. 하지만 공이 가는 곳을 보자 웃음은 사라지고, 시체처럼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웁!! 하필 저기로!!?'

히네신스의 타구가 향한 곳은 유격수가 있는 방향이다. 힘이 제대로 실려 빠르게 튕기는 히네신스의 타구. 경험이 많은 유격수라도 쉽지 않은 타구였다. 특히나 불규칙하게 튕기는 타구는 놓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지아의 4번 타자이자 유격수인 한동욱은 강습형 타구를 기다렸다는 듯이 잡았다.

퍽.

한동욱의 플레이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있는 곳은 2루에서 3루로 가는 길목이다. 한동욱은 3루로 진루하는 2루 주자를 태그해서 아웃시킨 후 재빠르게 이어서 공을 잡아 2루로 송구했다.

휙~ 턱.

2루수는 한쪽 다리를 뻗어 2루 베이스에 닿게 한 상태에서 자신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오는 공을 가볍게 잡았다.

1루 주자였던 박호택이 열심히 달렸지만, 한 걸음 차이로 아웃되었다.

이어서 2루수도 1루수에게 공을 던져 열심히 달려오는 히네신스를 아웃시켰다.

[아~ RG의 좋은 기회가 호수비로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설마 삼중살을 당할 줄이야 알았겠습니까?]

[지난 시즌 중반부터 지아의 수비에서 병살과 삼중살이 늘어났습니다. 아마 한동욱 선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빠른 타구라도 한동욱 선수가 놓친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이어서 던지는 연속동작도 깔끔했습니다.]

무사 1, 2루의 위기를 한동욱을 시발점으로 한 삼중살 덕분에 벗어난 지아의 투수는 겨우 안도했다. 이닝이 마무리되었기에 그는 한동욱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같이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한편, 그 모습을 보면서 공수교대를 하는 동팔은 생각했다.

'의외로 빠른 공에 강할지도 몰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이미 지난 화면으로 보면 튀는 것은 뻔하게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바운드에 대비하고 있어도 예상한 대로 공이 오지 않는다.

경험이 많다면 그 오차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겠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베테랑이라도 언젠가 실책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이후의 매끄러운 송구동작이야 훈련으로 터득할 수 있지만, 그 전에 공을 잡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불규칙한 바운드로 튕긴 공은 프로라도 보통 반사 신경이 아닌 이상, 처리가 쉽지 않은 공이었다.

이미 홈에서 지아와 경기를 할 때에 더그아웃에서 봤기에 동팔은 알고 있었다.

'지아의 타자들 중에 방심하지 않는 이상 타격을 허용할 사람은 없어. 한동욱만 제외하면.'

이번에도 예외 없이, 동팔은 3회 말에 올라와 세 타자 전부 범타 또는 삼진으로 처리해 이닝을 빠르게 마무리했다.

RG와 지아의 경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RG에서 수비할 때엔 동팔이 압도적인 구위로 지아의 타자들을 더그아웃으로 돌려보냈다. RG에선 한 번 흐름이 끊기자 다시 이어가기 어려워 범타나, 한동욱의 호수비에 걸려 물러나야 했다.

그렇게 4회 말.

지아의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순번에 따라 이번 타자는 한동욱. 2회 말의 첫 타석에 이어 동팔과 다시 만나자 응원석의 열기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동팔의 공을 제대로 친 타자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동팔을 상대로 점수를 낸 팀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 전 한동욱의 홈런 한 방으로 그 기록들이 깨졌다.

지아 팬들은 이번에도 한동욱의 연타석 홈런을 기대하며 크게 응원했다.

반면, RG의 팬들은 동팔을 믿지만 방금 전의 홈런으로 인해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동안 절대 깨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 철벽의 마운드에 큰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그 이후로 상대하는 지아의 모든 타자를 돌려세워 아직도 동팔을 믿고 있지만, 조마조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이번 경기의 두 번째 중요한 지점이 왔습니다. 전 타석에선 강동팔 선수에게 홈런을 때렸지만,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요?]

[강동팔 선수도 이전과 다른 패턴으로 가겠죠. 방금 전에 왜 홈런을 맞았는지 알고 있다면 이젠 강속구가 아닌 다른 공으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그럼 해설위원께선 어떤 공을 승부구로 고르고 싶으십니까? 체인지업, 커브? 아니면 슬라이더?]

캐스터가 말한 구종은 지금까지 동팔이 주력으로 던진 변화구들이었다. 캐스터의 말에 해설위원이 답했다.

[결국 모든 것은 강동팔 선수가 결정하겠지만, 적어도 160의 강속구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구요. 그렇다고 다른 구종이 한동욱을 상대로 잘 먹혀드는가 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체인지업은 오히려 좋은 먹잇감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가능한 구속이라면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커브 또는 슬라이더겠죠.]

[

"하지만 한동욱 선수는 선구안이 뛰어나지 않습니까? 분명히 볼카운트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볼과 스트라이크를 확실히 구분하는 선수인데요.]

[유인구이지만, 이 유인구는 헛스윙을 유도하는 유인구가 아닙니다. 분명히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만, 범타를 유도하는 공을 던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동욱 선수가 아웃된 경우는 범타로 끝나는 것을 제외하면 없었습니다. 아니면 볼넷으로 보내고 다음 타자를 잡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의 말에 캐스터가 물어봤다.

[과연 강동팔 선수가 고의 볼넷을 보낼까요? 지금 2대 1이라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제가 감독이라면 고의 볼넷을 주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리그 초반을 이제 막 지나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RG는 선두 경쟁에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력을 다 해야 할 타이밍도 아니에요. 오히려 강동팔 선수의 성장을 위해서 강타자인 한동욱과 승부를 걸게 해야 합니다. 지금 지아 전력으로 가을 야구는 무리라고 생각하면 나중에 포스트시즌 때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아~ 가을 야구를 위해서 지금을 투자해야 한다. 그 말씀이시군요. 아, 역시 해설위원님의 말씀대로 고의 볼넷은 아닌 것 같습니다. 투수와 포수, 모두 제자리에 있습니다.]

캐스터의 말대로 동팔은 고의 볼넷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미 가기 전에 임상훈 감독이 말했다.

"동팔아, 볼넷도 생각해야 하지만, 고의로 주지는 마라. 좋은 승부가 될 거니까 당당하게 나가."

그의 말에 동팔의 부담은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한동욱을 상대하는 것이 편하다는 건 아니다.

'뛰어난 선구안, 정확한 타격 그리고 160의 강속구를 넘기는 힘까지…….'

제일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에 스펙도 높다. 작년 초반까지 왜 2군에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나 동팔은 한 가지 상황을 떠올렸다.

'설마… 나와 같은……?'

가만히 생각하면 동팔의 경우가 더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재활에 노력하더라도 프로에 재입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리그 최정상의 투수가 된다는 것이 말이 될까?

한동욱의 경우가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것과 같은 케이스라면, 동팔의 이야기는 기적 그 자체였다.

'그건 나중에 확인하면 되겠지. 그 전에 만약 정말로 나와 같은 계약을 했다면 악마로부터 어떤 능력을 받은 걸까? 단순히 힘이 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없어.'

민호준이라면 이해가 간다. 힘이 강해서 어떤 타구라도 넘길 수 있는 힘이 있는 타자다. 하지만 선구안이 좋지 않고, 변화구에 쉽게 배트가 나가는 것이 단점이다.

한동욱은 민호준보다 조금 떨어질 뿐, 모든 스펙에 있어서 높은 우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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