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쉭!!
이번에 던지는 공은 초반에 힘을 들이지 않았던 것과 달리 전력을 다해 던졌다.
다리부터 해서 손가락 끝까지. 너무 힘이 들어가 근육이 굳어지지 않도록 하면서도 탄력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공에 회전을 가해 종속이 떨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동팔의 공은 정확하게 스트라이크 존의 윗부분에 걸치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속도는 지금 동팔이 낼 수 있는 최고속인 시속 161킬로.
김강수도 아래에 두던 포수 미트를 빠르게 들어 올려 동팔의 공을 받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는 동팔의 강속구를 받지 못했다.
한동욱은 동팔이 공을 던지는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배트를 휘둘렀다. 날아오는 공의 궤적을 정확하게 보고 따라가 스위트스폿을 정확히 때렸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한동욱의 타구는 멀리 그리고 중앙을 향해 쭉쭉 뻗어나갔다. 공은 마지막 선을 넘어 관중들이 있는 곳을 향해 떨어졌다.
"와아~!!!"
2대 0으로 지고 있는 중에 한 점을 추격하는 홈런포. 거기다 그 홈런은 리그 최고 투수인 강동팔을 상대로 해서 뽑은 점수였다.
비록 지고 있더라도, 영패를 면하게 만드는 홈런이 나왔으니 지아 팬들은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설마 하던 RG의 팬들은 망연자실하게 한동욱이 담담하게 도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 사이 김강수는 동팔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동팔아. 괜찮아. 어차피 다음 타자들은 별로 볼 게 없잖아."
고의 볼넷으로 보내는 방법이 있지만, 실력에 자신이 있는 투수는 그것을 싫어한다. 그것은 대놓고 감독과 코치들이 '네 실력으론 상대하는 타자를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아'라는 의미와 같았다.
고의 볼넷을 회의할 때 말은 했지만 지시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강수는 동팔이 충격을 받았을까 걱정했다. 지금 흔들리면 이후에 상대하는 타자들에게 계속 안타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 달리 동팔은 크게 개의치 않고 있었다. 동팔은 홈플레이트에 도착해 발도장을 찍는 한동욱을 보며 말했다.
"노리고 있었어요."
"뭐? 뭘 노리고 있었는데? 높은 공?"
"네. 그런데 노리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어요. 분명히 제가 높은 쪽으로 포심을 던지도록 유도했어요. 일부러 헛스윙을 하면서……."
동팔은 전에 던진 공을 기억했다. 한동욱은 동팔이 던진 공보다 더 높은 곳으로 헛스윙을 했다. 그러면 보통은 타자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때 동팔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면 그 생각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 자신이 생각한 한동욱이 높은 속구를 던지도록 유도했다는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냐. 우연이었겠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잊어. 평범하게 가자. 평범하게."
그 말을 하고 김강수는 동팔의 어깨를 툭툭 친 다음,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동팔은 방금 전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공을 제대로 때려 홈런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별히 기뻐하는 세리모니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칠 것을 쳤다는 것처럼 조깅하듯이 돌았다. 그가 한 세리모니라고 해 봐야 홈플레이트에 돌아와서 동료와 하이파이브한 것, 더그아웃에 들어와 선수들의 환호에 호응한 것이 전부였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너무 담담한 행동이 동팔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존심이었다. 이제는 강렬한 무언가가 그에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있어… 분명히 뭔가가…….'
그러니 이번에 맞은 홈런을 우연으로 취급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다음에 또 같은 실수를 할 것이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강수 형 말대로 침착하게 하자. 예상치 못한 피홈런이지만 다른 타자들은 한동욱보다 어렵지 않으니까…….'
충격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 동팔이 충격을 받은 것은 홈런 때문이 아니었다.
'사냥감인 줄 알았는데… 내가 사냥감이었다라…….'
상대를 속이려 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당했다. 상대는 자신을 알고 있지만 자신은 상대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싸우기도 전에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첫 승부의 결과는 동팔의 완패.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 이제 앞으로 최소 두 번의 승부가 남아 있었다.
1승 1패… 그리고…
동팔의 시즌 첫 피홈런.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 안타를 맞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는 프로에서 처음으로 등판했을 때의 이야기다.
당시에 동팔은 극도로 긴장했다. 본인의 구위를 보여주지 못한 상태에서 안타를 맞았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 이후 8번의 선발등판이 있었고, 그중에 7승을 거두었다. 남은 하나는 무승부로 끝난 경기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안타를 맞았을 때와 달리 지금은 전력으로 한 공이 맞아서 넘어갔다.
'괜찮을까?'
'이걸로 크게 흔들리면 안 되는데…….'
RG의 감독과 코치 그리고 선수들은 김강수가 하던 걱정을 같이했다. 동시에 지아의 감독과 코치, 선수들은 좋은 기회가 왔음을 알았다.
'이번에 흔들리면 초반에 점수를 많이 낼 수 있어!!'
'올해 신인이라 경험이 많지 않으니까 가능할 거야.'
하지만 동팔은 그들의 기대를 신기루로, RG의 걱정을 기우(杞憂)로 만들었다.
쉭~ 퍽.
동팔은 이후 지아의 5, 6, 7번 타자를 범타조차 허용하지 않고 완벽하게 돌려세웠다. 그렇게 2회 말이 끝나고 공수가 바뀔 때, 중계진에서는 감탄하고 있었다.
[강동팔 선수에게 홈런을 때린 한동욱 선수도 대단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지아의 타자들을 막은 강동팔 선수도 대단합니다.]
[신인 같지 않은 배짱을 가지고 있군요. 세 타자 연속해서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이건 지아에 시위하는 겁니다. 홈런을 맞았지만, 나 강동팔은 건재하다. 그 말인 거예요. 그리고 그건 확실하게 먹혀들었습니다. 홈런을 쳤을 때 환호하던 지아의 응원석이 벌써 차갑게 식었습니다.]
해설위원의 말에 캐스터가 태클을 걸었다.
[차갑진 않은데요. 지금도 열심히 응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홈런을 쳤을 때랑 비교하며 그렇다는 거죠. 아직 초반인데 벌써 응원을 포기했겠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두 번의 승부가 더 있습니다.]
중계진들이 중계하는 사이에, 공수의 교대가 끝났다.
동팔은 더그아웃에 들어오면서 감독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볼넷도 생각했어야 했는데……."
동팔의 말에 임상훈 감독이 답했다.
"괜찮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공 던지면 어쩌다 생기는 일이 방금 전에 일어났을 뿐이야. 그것보다 그 이후에 세 타자 잘 잡은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 홈런은 생각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감독과의 대화는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지금은 지아의 투수를 공략하며 점수를 내야 할 때였다. 동팔이 쉬는 사이, RG의 투수들이 다가와서 물었다.
"어떻디? 한동욱이."
"설마 너도 버거워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방법이 보여? 혹시 알게 된 약점이라도?"
강동팔이 한국 프로리그에서 타자들이 제일 경계하는 투수인 것처럼, 한동욱 또한 투수들이 제일 경계하는 타자였다.
이미 자신들도 한동욱에게 한 방 이상을 맞았고, 방금 전에는 최고의 투수인 동팔이 홈런을 맞았다.
덕분에 그들이 한동욱에게 당했던 것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 한국 리그 최고의 투수도 당해내지 못한 타자를 자신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다는 핑계가 완성된 것이다.
동팔이 당했다지만, 풀카운트의 접전 끝에 얻은 것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동팔의 말은 그들로 하여금 거대한 벽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모르겠어요. 확실히 선구안은 뛰어납니다. 볼이라 판정되는 공은 절대로 치지 않아요. 아마 여기 오기 전, 저에 대한 분석은 물론, 주심에 대한 분석도 끝낸 것 같습니다."
스트라이크 존은 분명히 규정에 나와 있었다. 높이는 타자의 팔꿈치부터 폭은 홈플레이트 사이였다.
좌우의 폭은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타자의 신장의 차이로 인해 스트라이크 존은 항상 변했다. 그리고 어떤 주심은 스트라이크 기준이 상대적으로 좁아 투수가 힘들어하는 반면, 어떤 주심은 넓게 봐서 타자가 힘들어했다.
주심의 성향도 이미 분석이 되어 있지만, 문제는 그 주심이 그날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조금 바뀔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투수가 정확하게 던지고, 같은 코스로 가는 공이라도 스트라이크가 되기도 하고 볼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 경우는 스트라이크 존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경우에 한했다.
"거기에 속구가 오더라도 정확하게 때려요. 다만 방금 전의 경우는 제가 한동욱에게 완전히 속았어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속아? 어떻게?"
"일부러 헛스윙을 했어요. 높은 공을 노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어차피 볼은 통하지 않고 범타를 유도하는 낮은 공은 계속 커트했습니다. 다른 타자는 믿을 수 없으니 큰 한 방을 노리고 유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거예요. 제대로 칠 수 있는데도 일부러 빗맞힌다는 느낌?"
동팔의 말에 투수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럼 한동욱은 안타나 파울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건가?"
한 투수의 말에 다른 투수가 답했다.
"그건 아닐걸. 안타는 마음대로 못 만들겠지만, 파울은 언제라도 칠 수 있다는 거지. 그런데 그것도 끔찍해. 마음먹으면 한 자리에서 수십 번의 공을 던져도 아웃시킬 수 없다는 말이니까."
한 타자에게 소모하는 투구의 숫자가 10개를 넘어가면 비효율적이다. 한 방이 있는 타자도 부담스럽지만, 그 이상으로 부담스러운 타자는 어떻게든 커트하여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리는 타자였다.
"아래쪽으로도 안 되고, 바깥족도 안 된다. 그럼 남은 공은 스트라이크 존의 윗부분을 지나는 공뿐이었어요. 마침 높은 공으로 던질 때, 헛스윙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승부를 걸었죠. 반응할 틈도 없이 존을 통과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전력으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걸 알고 제대로 쳐서 받아 넘겼어요."
동팔이 홈런을 맞은 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 분석할 때, 중계석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이거 분명히 한동욱 선수가 노린 겁니다. 안타를 쳐도, 다음 타자가 진루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거든요. 그래서 자신이 점수를 낼 유일한 방법인 홈런을 유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투수 입장에서 방금 전의 상황이 되면 던질 공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의 볼넷이 아닌, 정정당당히 승부를 한 강동팔 선수가 대단합니다.]
[그럼 해설위원께선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투수 입장이라면?]
캐스터의 질문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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