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67화 (67/325)

[67]

상대가 처음부터 번트 작전으로 나왔다. 그러니 동팔도 그에 맞는 공을 던졌다.

'그럼… 역시 이 공이 낫겠지?'

동팔은 뻔히 보이는 의도를 알고 번트하기 어려운 공을 골라서 던졌다.

휙~ 팅~!

'됐어!!'

타자는 어떻게든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동팔의 투구를 배트에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빠르게 날아가면서 강하게 회전하는 동팔의 공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다.

휘리릭~

번트의 기술은 날아오는 공을 최대한 늦추고, 배트의 밑부분에 맞아 낮게 깔아야 한다. 그리고 3루수와 투수, 포수가 겹치는 지점을 향해 적당한 속도로 굴러가야 한다.

공이 너무 느리면 포수의 손에 잡히고, 너무 빠르면 3루수나 투수의 손에 잡혀 1루로 송구된다.

하지만 지금 맞은 공은 모든 것에 맞지 않았다.

속도를 줄이지 못해 공이 빨랐다. 그리고 낮게 가지 못하고 배트의 윗부분에 맞아 높이 뜨고 말았다.

'이런…….'

날아가는 공을 보며 지아의 1번 타자는 어떻게 될지 알았다. 그리고 그가 예상한 대로 공은 이미 기다리고 있는 3루수를 향해 캐치볼을 하듯이 날아가다 잡혔다.

"아웃!"

공 하나로 가볍게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았다. 이미 살아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일말의 실책을 기대하며 1루로 달려가던 지아의 1번 타자는 힘없이 더그아웃으로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지아의 작전은 바뀌지 않았다. 1번 타자가 당한 것을 봤지만, 2번 타자도 역시 번트 자세를 취한 것이다.

'또?'

단단히 준비하고 나온 지아의 번트 작전에 동팔은 황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 동팔은 역시나 방금 전의 상황을 똑같이 만들어주었다.

휙~ 팅!

이번에도 역시나 기다리고 있던 내야수를 향해 공이 높이 떴다. 그리고 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번 타자도 번트 작전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공 두 개째에 파울플라이로 물러나고 말았다.

결국 공 4개로 한 이닝을 지운 강동팔.

그로 인해 지아는 작전을 바꾸어 다시는 번트 자세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

2회 초의 RG의 공격은 모두 범타로 끝나 쉽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기다리고 대결이 있는 2회 말.

강동팔이 마운드에 오르고, 한동욱이 타석에 오르자 경기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경기는 선취점을 뽑은 RG에 유리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 한동욱이 강동팔을 상대로 추격점을 뽑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지아의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을 펼치고 있었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바뀌자 자연히 동팔도, 상대하는 한동욱도 긴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과도한 긴장이 아닌, 집중력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지나가지 않으면 치지 않는 타자. 선구안이 탁월하게 좋으니 어설픈 공은 통하지 않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투수를 상대로 해서 얻은 기록. 아직 동팔과 직접 상대한 기록이 아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동팔은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강수와 미리 이야기한 볼 배합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

처음은 유인구. 하지만 상대하는 타자의 선구안이 지극히 뛰어나기에 단순한 유인구로는 효과가 없다. 그래서 동팔이 던지는 공은 빠른 슬라이더. 처음에는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할 직구처럼 보이지만, 홈플레이트에 가까이 오면 빠지는 공이었다.

스윽… 휙~!!

공은 동팔의 의도대로 빠르게 날아갔다. 궤적은 완벽했다. 속도도 마찬가지였다. 150에 달하는 구속은 어느 타자라도 움찔거리게 만들거나, 완벽하게 속여 헛스윙을 유도할 구위였다.

퍽!

하지만 한동욱은 치지 않았다. 이미 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그를 바로 앞에서 본 김강수는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어떻게 미동도 안 할 수 있는 거지? 완벽한 유인구였는데?'

이미 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한 한동욱. 그리고 그의 상태와 반응을 면밀히 살피는 김강수는 머릿속에 여러 가리 셈법으로 인해 복잡해졌다.

'그냥 속이는 건가? 단순히 압박하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꿰뚫어 본 건가?'

볼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인구도 통하지 않는다. 지금의 공에도 속지 않는다면 다른 공으로 실험해 봐야 했다.

그리고 이는 동팔도 포수의 생각과 같았다.

'이번에는 완벽한 스트라이크. 하지만…….'

구종을 정한 동팔은 그에 맞는 그립으로 공을 쥐었다. 그리고 여전히 방금 전에 던진 것과 같은 폼으로 공을 뿌렸다.

방금 전에 던진 것과 같은 코스로 날아가는 동팔의 공.

슬라이더는 슬라이더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정도가 많지 않은. 궤적만 본다면 직구라고 봐도 될 슬라이더였다.

공의 회전의 조절이 가능한 동팔이 할 수 있는 속임수.

'이번에 던진 것에 대한 반응을 보면 확실히…….'

초반의 궤적만으로 파악을 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허세인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완벽하게 파악하고 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치지 않는다면 그대로 스트라이크. 그리고 이번의 한동욱의 반응은 방금 전과 달랐다.

휙~ 따악!!!

한동욱은 동팔의 투구를 때렸다. 그리고 그의 타구는 멀리 파울 지역을 향해 날아갔다.

"아… 좀 빗맞았네……."

한동욱은 그 말을 하고 방망이를 고쳐 쥐었다. 여유로운 그와 달리 동팔과 김강수는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설마 정말로 알아차리고?'

확실히 보통 선구안이 아니었다. 볼끝의 움직임만 달랐을 뿐, 거의 같은 공이었다. 적어도 타자의 입장에선 구별이 거의 불가능한 두 개의 투구.

거기에 속도도 150에 준할 만큼 빨랐다. 심지어 공을 주문한 포수도 구분이 쉽지 않은 공. 그러나 한동욱은 볼로 판정이 될 공을 보냈고,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을 타격했다.

'유인구는 불가능. 그럼 결국 스트라이크를 노려야 하거나, 범타로 끝내야 하는데…….'

동팔도 삼진 아웃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 지금은 노아웃에 주자가 득점권에 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동욱에게 안타를 맞아도 이후에 나오는 타자를 잡으면 그것으로 경기를 이길 수 있다.

그 생각을 하며 동팔은 최대한 긴장을 풀고,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후우……."

동팔이 심호흡을 하자, 한동욱의 눈빛이 빛났다.

'지금? 아냐… 그것과 달라…….'

이어서 들어오는 공은 완만하게 꺾이는 커브. 하지만 구속이 120을 넘고 꺾이는 각도도 큰 명품 커브였다. 하지만 땅에 떨어지는 공임을 알았기에 한동욱의 배트는 나가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어진 공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느린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느려도 명색의 패스트볼이었기에 140을 넘었다. 그러나 볼인 것을 파악한 한동욱의 배트는 나가지 않았다.

결국 3볼 1스트라이크로 동팔에게 볼카운트가 불리하게 몰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 지아 팬들은 환호했지만, RG 팬들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한동욱이 강하긴 강한가 봐. 이렇게까지 몰릴 줄이야."

"다른 타자를 상대할 때랑 달리 불리하게 가고 있잖아."

그러나 조금이라도 야구를 아는 사람은 더욱 긴장하고 있었다.

"이거 전부 포석일 걸. 이번에 던지는 공이 진짜 승부구지."

"낮은 구속의 공을 던져서 눈에 익히게 한 다음, 강속구를 뿌리면 전보다 더 빨라 보이거든."

"그래서 이번에는 틀림없이 강속구야. 얼마나 빨리 던질 건진 투수가 정하겠지만."

그래서 이번에 더욱 집중하는 야구팬들도 많았다.

그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팔은 마운드 위에서 투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분명히 빠른 공이라 생각할 거야. 하지만 역으로 느린 공으로 던지면 간파당해서 크게 당할 확률이 더 높아…….'

상대를 속일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속지 않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이유는 몰라도 한동욱의 선구안은 진짜다.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그에 맞춘 준비를 하고, 정면으로 던지는 것뿐이다.

결정은 내린 동팔은 공을 쥐고 던지기 전,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후우……."

동팔이 심호흡을 하자 한동욱의 눈빛이 다시 빛났다.

'온다…….'

한동욱은 언제라도 탄력적인 움직임을 통해 배트를 빨리 휘두를 준비를 했다. 그리고 동팔이 공을 뿌리자 배트를 휘둘렀다.

휭~ 퍽.

한동욱의 배트는 한 끝 차이로 공의 위를 지나갔다.

"스트~라이크!!"

한동욱을 상대로 처음으로 헛스윙을 이끌어 내자 RG 응원석에선 환호가, 지아 응원석에선 탄식이 나왔다.

그러나 서로 마주 보는 동팔과 동욱은 팬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다음에 어떤 공을 던져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동팔은 김강수에게 공을 받으면서 머리가 복잡했다.

'분명히 배트가 공의 위로 지나갔다. 높은 공을 노리는 건가? 하지만 높은 공은 위험한데…….'

헛스윙을 이끌어 낸 것은 분명히 큰 성과였다. 그리고 상대가 노리고 있는 공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그러나 볼카운트가 불리했다.

'높은 볼로 유인당할 상대가 아냐. 분명히 높게 던지면 치지 않고 나가. 그럼 위쪽으로 꽉 차게 던져야 한다는 건데…….'

그러나 투수를 떠나서, 야구를 보는 사람이라면 높은 공이 장타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건 알고 있다.

높은 쪽의 스트라이크라면 분명히 한동욱의 배트는 움직인다. 그러나 위험이 너무 컸다. 그래서 동팔은 스트라이크 존의 아래 부분을 통과하는 공을 던졌다.

휙~ 따악!!

그대로 있으면 스트라이크였기에 한동욱의 배트가 돌아갔다. 공을 맞췄지만, 파울 지역으로 날아갔다.

이미 풀카운트에 파울은 무의미하다. 그 후 동팔은 연속해서 다섯 번의 공을 던졌지만, 한동욱은 전부 커트했다.

동팔은 직감했다. 아래쪽 공을 던져봐야 계속 던지는 자신의 손해다. 물론 내일이면 다시 회복하지만, 경기하는 중에 회복하는 건 아니다.

'결국 위쪽으로 던져야 하나…….'

이렇게 된 이상, 단순한 포심 패스트볼로는 안 됐다. 제구는 정확하게 그리고 이전보다 확연히 빨라야 했다.

"후우……."

동팔은 심호흡을 하고 공을 쥐었다. 그리고 이번에 던진 곳을 본 다음,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김강수도 동팔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순수하게 포수 미트를 위로 두지 않았다.

사인을 받았지만 김강수는 포수 미트로 아래를 툭툭 쳤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래쪽으로 던지라는 의미. 그러나 사인을 이미 주고받았기에 동팔은 그 행동이 한동욱을 속이기 위한 동작임을 알았다. 이미 김강수의 다리는 언제라도 높이 날아오는 동팔의 공을 잡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준비를 마친 동팔은 다시 심호흡하고 공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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