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66화 (66/325)

[66]

"하지만 그래도 아직 동팔이를 상대한 적이 없으니 어려울 건 없다고 본다. 그리고 한동욱이 앞에 주자만 보내지 않으면 대량 실점을 막을 수 있어. 한동욱이 어렵지 지아가 어려운 건 아니야."

그러면서 한동욱에 대한 틈을 조금이라도 찾기 위한 분석과 준비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회의에 같이 있는 동팔은 생각했다.

'분명히 대단한 타자인 건 맞아. 기록이 그걸 증명하고 있어. 하지만… 삼진이 없을 뿐이지 강속구와 변화구를 섞어서 나가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으니까…….'

처음 상대하는 상황이라면 투수에게 더 유리하다. 상대가 어떤 공을 던질지 모르고, 아직 투수의 공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쪽은 투수라는 의미도 된다.

이는 타자가 투수의 공에 적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 결과로 타자가 공을 배트에 걸리도록 치는 것이 더 많아지게 된다.

타자가 투수의 공을 커트하며 던질 수 있는 구종을 제한시켜버리면 결국 몰리는 쪽은 투수. 그러다 실투가 나오면 타자는 그것 놓치지 않고 넘겨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그건 동팔도 알고 있다. 자신은 아니더라도 다른 투수들이 강타자를 만났을 때 당하는 것을 많이 봤다. 하지만 동팔은 한동욱과의 대결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전까지 던지지 않은 구종이 있어. 그걸 던지면… 아무리 강타자라도 헛스윙을 하지 않을 수 없겠지. 다만 내가 실제 경기에서 그걸 던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겠지만…….'

동시에 지아의 홈구장인 챔피언스필드에서도 지아의 코치진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RG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적응해 나가는 것이 패턴인데, 지금은 승률이 40전 27승 12패 1무입니다. 시즌 초반에 밀렸던 우산과 동률이고, 그 다음으로 오성과 엑센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RG의 강점은 누가 봐도 알지만 탄탄한 선발진입니다. 계투진도 그렇고 마무리도 나쁘지 않아요. 특히 이번에 선발로 등판하는 강동팔의 경우, 거의 무적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7승 중 완봉이 4승. 나머지 셋도 8회까지 던지고 내려왔습니다. 특히나 스트라이크 비중이 높아 탈삼진율도 높습니다. 탈삼진 2위와 거의 2배 차이가 납니다."

RG에서 한동욱을 경계하며 난감해 하는 것처럼 그들도 강동팔을 어떻게 공략할지 난감해 하고 있었다.

동시에 RG에서 강동팔을 믿는 것처럼, 지아는 한동욱을 믿고 있었다.

"동욱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대?"

중요한 건 투수를 상대하는 타자의 마음가짐. 지아의 타자들도 본인들이 강동팔을 쉽게 상대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보다 떨어지는 1선발인 강중근이나 용병 소르스, 호프를 상대로 제대로 된 안타를 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체면치례를 하게 해준 유일한 타자가 바로 한동욱.

이미 한 번 붙어본 RG와의 3연전에서 한동욱의 연타석 솔로 홈런으로 세 경기 중 한 경기를 겨우 이길 수 있었다.

"물어보니까 칠 수 있는 공이라고 합니다. 이미 연구를 많이 한 것 같더라구요."

"그래? 그럼 그 전에 주자가 나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오늘 다른 거 연습하지 말고, 번트 연습에 집중하라고 해. 타격이 안 되면 그거라도 해서 확률을 높여."

"알겠습니다. 하지만 구속이 워낙 빨라서 쉽진 않겠지만, 해 보겠습니다."

지아의 감독도 번트가 어렵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타격코치의 말에 조금 더 신경을 써 달라는 말을 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에는 수비적인 측면에서 상대 타자를 어떻게 상대할지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RG의 마운드는 단단하지만, 타격에 있어선 많이 약합니다. 그리고 전과 달리 달라진 점이 없으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2군에서 올라온 선수도 없고."

"그래도 점수 안 내려면 더 효과적으로 투구해야 하니까 어떤 볼 배합으로 갈지 준비해."

회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는 않다. 이들에게 있어 단기전인 토너먼트나 가을에 하는 포스트시즌도 아니다.

정규 시즌은 길고, 지금 하는 경기는 그 중에 한 경기에 불과했다.

매일같이 경기가 있는 와중에 회의에 전념하면 다른 할 것을 하지 못하게 된다.

같은 시각.

한동욱은 이미 분석관을 통해 받은 동팔의 투구 장면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었다. 모든 구종에 따라 잘 정리가 된 동영상 파일을 돌려보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구위는 뛰어나다. 하지만… 의외로 빈틈이 커."

그리고 그 말을 하면서 그의 입가에는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의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주중 화요일 경기였기에 경기 시작 시간은 저녁 6시 30분.

그 전에 야구팬들은 이미 좌석에 앉아 각자의 팀을 응원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이번에 화두는 누가 뭐라 해도 이것이었다.

"드디어 리그 최고 투수와 최고 타자와 맞붙는구나. 누가 이길까?"

"RG랑 지아랑 처음 했을 땐 강동팔이 선발로 나오지 않았었으니까."

"사실 둘 중에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지."

"강동팔이 틀어막느냐. 아니면 한동욱이 한 방 때리느냐. 그 차이야. 조건은 타자한테 더 유리하지 않을까? 세 타석 중 한 번이라도 안타를 치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한동욱이 세워나가는 기록 중 하나가 바로 연타석 무삼진 기록이야. 만약 세 타석 중 한 타석이라도 강동팔이 삼진을 잡아내면 그것도 끝. 지금까지 295타석 연속 무삼진이잖아. 지난 시즌까지 합쳤을 때 이야기지만."

야구는 기록의 경기다. 단순히 공을 던지고 치며, 날아가는 공을 잡고, 던져 주자를 잡거나 홈에 돌아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모든 경기의 기록은 남고, 그 기록이 이야기를 만들며 끊임없는 관심사를 만들어낸다. 바로 지금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는 것도 매 경기 쌓이면 그것만으로 하나의 기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팬들도 기대하며 보는 관전 포인트를 중계진 또한 모를 수 없다.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는 RG와 지아, 지아와 RG의 경기입니다. 특히나 관심을 받는 쪽은 역시나 강동팔 선수와 한동욱 선수의 대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팬 여러분은 물론, 중계하고 있는 저희도 어떻게 될지 큰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두 선수에게 리포터가 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영상을 보시죠.]

캐스터의 말에 화면은 바뀌었다. 지아의 홈구장에 해서 그런지 먼저 나오는 선수는 한동욱이었다.

[한동욱 선수, 상대 선발 투수가 뛰어난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강동팔 선수입니다. 그동안 연속 무삼진 기록을 계속 세워나가시고 계신데요. 이번에 제일 큰 난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각오는 어떠신가요?]

리포터의 질문에 한동욱은 능숙하게 답했다.

[연속 무삼진 기록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타자로서 중요한 건 타율과 타점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개인의 기록보다 팀의 승리를 위해 배트를 휘두를 겁니다.]

그의 답변이 끝나자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방금 전에 질문한 리포터가 동팔과 인터뷰하는 장면이었다.

[강동팔 선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다른 것이 아니라 많은 팬들이 강동팔 선수와 한동욱 선수의 맞대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탈삼진 부분에서 독보적으로 1위인 투수가 강동팔 선수인데요. 이번 맞대결에서 과연 한동욱을 삼진 시킬 자신이 있으신가요?]

[네… 단순히 마음으로 따지면 어느 투수라도 타자를 삼진시키려 할 겁니다. 하지만 상대하는 한동욱 선수가 뛰어난 타자인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기록보다, 팀 승리를 위해서 아웃카운트를 하나 더 올리는 것에 신경 쓰려고 합니다.]

두 사람의 답변이 나오자, 바로 중계진으로 화면이 바뀌었다.

[둘 다 좋은 선수들이에요. 리포터가 난감하고 어려운 질문을 했는데도 개인보다 팀을 우선시하는 두 선수였습니다. 잘 비켜 갔어요. 나중에 리포터가 안 좋은 소리 듣는 건 아닐까 걱정이 좀 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안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솔직히 저희들을 포함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니까요.]

[그러니 한 번 질문하고 끝냈겠죠. 그럼 양팀 선발 라인업을 보겠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위원은 능숙하게 양팀의 선발 선수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소개가 끝나자 이번 경기의 양상 및 중요한 포인트를 말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많은 분들이 예상하신 것처럼 경기의 중요한 포인트는 강동팔 선수와 한동욱 선수의 맞대결입니다.

지아는 한동욱 선수를 제외하면 물 타선이고, RG는 전체적으로 평균보다 아래입니다. 타격 전체 순위로 보면 타율이 6위, 타점은 8위입니다. 하지만 방어율로 따지면 독보적인 1위입니다. 선발의 평균 자책점, 피안타율, 피홈런까지 전부 1위죠. 계투진도 막강합니다.]

[RG가 지금 상위권에 랭크된 제일 큰 이유가 바로 단단하고 탄탄한 마운드입니다. 오히려 1선발인 강중근 선수가 불안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구요. 반면 지아는 마운드가 중하위권에 있습니다. 그마나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수비쪽에 실책이 많지 않다는 것인데… 이건 한동욱 선수의 공로가 크죠?]

[맞습니다. 4번 타자인 한동욱 선수는 1루수가 아닌 유격수를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습 타구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오히려 병살이나 삼중살을 만들고 있죠. 그래서 지아와 경기를 하는 팀은 주자가 나가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됩니다. 지아가 패배는 많지만, 그래도 5점 이상의 대패가 없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결국 두 선수가 맞붙는 2회 말이 관건이겠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5회 말과 8회 말을 결코 놓칠 수 없겠죠. 아니면 4회 말이나, 7회 말이 될까요?]

캐스터의 말에 해설위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한동욱 선수를 제외하면 다른 타자들은 거의 진루를 못한다는 전제 아닙니까?]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아닙니까? 지금까지 강동팔 선수가 허용한 볼넷은 고작 3개. 그리고 몸에 맞는 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실 그게 다행입니다. 강속구를 맞으면 어딜 맞아도 아프거든요. 부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동팔 선수가 몸에 맞는 볼을 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는 중계진을 포함해 대부분의 팬들이 예상하는 그림과 같았다. 하지만 그 그림대로 흘러가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아의 타자들이었다.

"쉽게 당할 줄 아나……."

"우리를 아주 핫바지로 보네."

그래도 1회 말에 타석에 오르는 사람들은 팀의 중심타선이라 할 수 있는 1, 2, 3번 타자들이다. 당연히 투수의 공을 쳐서 주자를 진루시키고 점수를 얻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역할.

그리고 이번에는 동팔에 맞춰 번트를 열심히 연습했다.

타선이 약한 RG였기지만, 그래도 지아의 5선발 투수에게 마냥 당하지 않는다. RG의 5선발과 달리 지금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동팔에 비하면 너무 약했다.

결국 꾸준한 안타와 흔들기로 2점을 먼저 낸 RG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1회 말 수비를 할 수 있었다.

지아의 작전은 단순하다.

'번트로 어떻게든 주자가 나가고, 최대한 안전하게… 주자가 나가면 최대한 흔들기. 상대는 이런 경험이 많지 않으니까.'

순간과 찰나의 충돌로 결과가 만들어지는 스포츠가 야구다. 그러니 정신적인 요소와 흐름도 생각보다 큰 자리를 차지한다.

순수하게 상대 투수나 타자를 이길 수 없다면, 이런 전법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통할 때의 이야기.

타자는 이미 준비한 대로 타석에 오르자 번트 자세를 취했다.

주자가 없기에 희생번트가 아닌, 본인이 진루하기 위한 세이프티 번트다. 타격할 수 없다면 최대한 가져다 대어 공을 튕겨낸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지만, 번트는 겉으로 쉬워 보여도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기술이다. 또한 한동욱은 같은 팀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힘들겠어. 전부 아웃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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