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65화 (65/325)

[65]

"무능한 조카 웜우드를 잡으러 왔는데, 마침 좋은 말을 들으니 안 멈출 수 없더군. 그러니 원하는 것을 말해 보게나. 자네의 영혼을 받는 대가로 소원을 들어주지."

그리고 방금 전에 웜우드가 한 말을 생각하자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망쳐? 설마 내 능력을 무력화시키려고?'

동팔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제일 큰 이유는 뛰어난 회복력이었다. 이것이 없으면 이후의 일정에 많은 차질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자 웜우드가 말했다.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지 말라고. 삼촌이 준 능력을 회수하겠다는 건 아냐. 그건 엄연히 계약이니 내가 어찌할 수 없어."

"그럼 뭘 원해서 나타난 겁니까?"

"그건 별거 아니야. 사실 내 삼촌이 워낙 유능하고 교활하다보니 지금도 장관직에 있어. 일개 소시민도 못한 내가 맞설 상대는 아니지. 그러니 초를 좀 치려고 그래. 그가 원하는 진짜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웜우드의 말에 동팔은 혹시나 하며 말했다.

"그럼… 내 영혼을 빼앗겨 죽지 않게 할 수 있는 겁니까?"

악마 스크레이치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 그러자 웜우드가 답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막을 수 없어. 엄연한 계약이거든."

그의 말에 동팔은 희망을 가졌다가 낙심하고 말았다. 그러나 웜우드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너에게 조금은 더 나아질 길은 있어."

"뭡니까? 그건……."

"적어도 비참한 죽음만은 피할 수 있게 해주지. 나의 조언에 충실하게 따른다면 말이야."

그리고 웜우드는 동팔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주변을 돌며 말했다.

"사실 지금까지 잘해주고 있어. 딱히 내 조언이 필요 없을 만큼. 삼촌이 오늘 너 때문에 화를 많이 내는 걸 보니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웜우드는 그 말을 하고 뭐가 좋은지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조심해. 삼촌은 교활하지만, 동시에 집요하기까지 하거든. 그는 한 번 문 사냥감을 절대로 놓친 적이 거의 없었어. 그런 대상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지."

그 말을 하다가 웜우드는 무언가 느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거 내 말만 하다 가서 미안한데, 삼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 걸리면 난 반드시 죽으니까 도망칠게. 다음에 만나면 서로 인사나 하자고… 그럼 난 이만……."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웜우드는 갑자기 사라졌다.

'역시… 악마 아니랄까 봐…….'

이젠 귀신이나 악마보다 사람이 더 무섭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생각한 동팔. 그러나 동팔은 웜우드와의 만남으로 또 하나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악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지 모를 존재가 있다는 건 나쁘지 않겠지.'

특히나 오늘 큰 도움을 준 악마이니 그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동팔은 생각했다.

'그런데 스크레이치의 진짜 목적이 뭐지? 내 영혼이 아니면 대체 무엇을 노리고 나에게 다가온 걸까?'

하지만 그 의문을 지금 당장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그에게 직접 물어본다고 한들, 악마가 과연 제대로 된 답을 해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팔은 그 의문을 가슴에 품고, 오늘을 마무리하며 내일을 준비해나갔다. 무엇보다 지금 동팔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악마보다 오늘 가슴에 느껴진 뜨거운 무언가였다.

다음 날.

오늘 선발 등판하는 동팔은 마운드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확인한다.

군번줄처럼 은색의 줄에는 커플링이 달려 있었다. 군번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금속이 아닌 진짜 은이라는 것. 그리고 두 개의 작은 금속판이 아닌 금으로 만들어진 반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큰 차이점은 끌려가듯이 가서 매게 된 줄이 아니라, 동팔이 원해 스스로 건 목걸이라는 점이었다.

동팔은 반지에 키스하며 속으로 말했다.

'민희야… 나 힘낼게.'

미래는 모른다. 악마가 하나만 나타난 게 아니라, 그와 견제하는 또 다른 악마가 나타났다.

단순히 영역싸움일 수 있고, 그와 또 다른 원인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한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이 순간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동팔은 앞으로의 불안함을 알면서도 민희와 함께하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동팔은 각오를 다지며, 반지가 걸린 목걸이를 걸고 마운드로 향했다.

그날, 동팔이 걸고 나온 목걸이는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전에 없던 장신구. 그것도 반지가 걸린 목걸이를 걸고 나왔다. 목걸이에 걸린 반지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았고, 당연히 그들 중에 스포츠 기자들도 예외는 없었다.

[강동팔의 연인?]

[반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강동팔 스캔들?]

하지만 동팔이 왜 반지를 걸고 나왔는지 아는 기자는 거의 없었다. 있다면 딱 한 사람 있었다.

"설마 민희랑?"

그렇지 않고서 동팔이 반지를 걸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동팔과 민희 사이에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 하지만 신지예 기자는 그에 대해 기사를 쓰지 않기로 했다.

"동팔이랑 달리 민희는 일반인이니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라도 안 쓰는 게 좋겠지."

비록 자신에 대해 쓰지 못하고 전부 추측성 기사만 올라왔다. 하지만 다음 날에 민희는 기분이 좋았다.

특히 동팔이 반지에 입을 맞추는 장면이 찍힌 사진을 보면 그가 자신에게 키스한 것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만큼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사진을 통해서 느껴졌다. 하지만 마냥 좋은 기사만 올라온 건 아니었다.

얼마 전, 엑센과의 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온 다희의 사진을 올리면서 얼토당토않은 기사가 올라왔다.

[강동팔, 혹시… 다희와 열애?]

그러면서 시구하기 전에 동팔과 같이 있는 다희의 사진을 올려놓았다. 물론 민희가 가볍게 격퇴한 사람이었지만, 말도 되지 않은 기사를 보자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확 나랑 사귄다고 지예 언니를 통해서 말해?'

그러면 이 모든 스캔들이 일단락된다.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이러다 경기장에 갈 때마다 카메라가 비추는 건 아닐까? 아직 그러는 건 좀…….'

우연히 비추는 것도 아니고, 동팔과 자신을 번갈아 비춰주면 누구라도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다.

숨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과도한 시선을 감당할 자신은 지금의 그녀에겐 없었다.

"됐어.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기자들이 아무리 추측성 기사에 사실이 아닌 것을 올려도,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 그녀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가 진실의 증거물이었다.

민희는 동팔이 했듯이 그리고 동팔에게 하듯이 반지에 입을 맞추고, 힘차게 출근했다.

한동욱, 균열

5월 초의 화요일, 광주.

광주가 연고지인 지아와 경기를 앞두고 있는 RG는 호텔에 있는 한 방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은 임상훈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 그리고 이번에 선발투수로 등판하는 동팔 또 이번 경기에서 호흡을 맞출 김강수 포수도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번에 하는 회의는 수비 쪽이었다. 그래서 회의의 주제는 지아의 타자들로 집중되어 있었다.

"지아 타선은 엑센이나 오성에 비하면 무게는 떨어져. 기록만 봐도 그걸 알 수 있지."

감독의 말대로 지아의 타선은 모든 기록에서 중위권 이었다. 타점부터 해서 타율과 볼넷의 숫자까지. 이것만 보면 타격 상위권에 있는 엑센이나 오성에 비해 압박을 덜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평균의 함정이 존재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수의 기록을 보면 팀 기록보다 더 떨어진다. 그렇다고 이 말이 좋다는 건 아냐. 단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게가 다른 사람보다 더 무겁다는 거니까."

평균은 잘하나 못하나 그들의 통계를 합쳐 중간점을 만든다. 이래서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평균과 표본의 격차를 제곱하여 더한 편차라는 개념을 만든 것이다.

다른 팀의 경우 편차가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지아의 타선은 평균에 비해 타자들의 편차가 심한 편에 속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선수의 이름을 임상훈 감독이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투수 쪽에선 우리 동팔이가 압도적이라면, 타자 쪽에선 지아의 한동욱과 엑센의 민호준이 압도적이다. 실제로 무게의 추를 더하고 싶다면 한동욱이 더 껄끄러워. 제일 먼저 중요한 건 타율이야. 시즌 초반에 4할이던 타율이 지금은 5할."

감독의 말에 타격코치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 말씀은 최근 타율이 6할까지 올라왔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5할이라는 기록이 나왔겠어. 한동욱의 작년 타율은 0.421이었는데, 그 기세를 이어가는 것도 부족해 뛰어넘고 있다. 대신 안타 중에 장타가 민호준에 비하면 적지만… 그래도 절반 이상이 2루타 이상이야.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중요한 기록도 세워 나가고 있는 거 알고 있지?"

감독의 말에 포수 김강수가 답했다.

"지금 시즌 기록만 따지면 삼진이 없습니다. 전부 안타 아니면 볼넷. 몸에 맞는 볼이나 범타로만 타석을 끝내고 있습니다."

그의 대답에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이미 지난 시즌 연속 무삼진 연타석 기록을 갈아치웠어. 작년 기록까지 합치면 290여 타석에 서는 동안 삼진이 없었다. 어떻게든 투수의 공을 반드시 치는 타자야."

감독이 그 말을 하고 수비 코치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그는 얼마 전에 분석한 내용을 알려주었다.

"좌우타석을 가리지 않는 스위치히터이기도 하지만, 밀어치거나 당겨 치는 것. 둘 다 능숙하게 한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수비를 옮기면 당겨 치고, 왼쪽으로 옮기면 밀어 쳐서 수비벽을 뚫어. 바꿔 말해 수비쉬프트가 통하지 않는 타자야. 강수는 한 번 상대해봐서 잘 알잖아."

코치의 말에 강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짐작이 가지 않았어요. 유인구를 던져도, 단 한 번도 속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러면 100%는 타격에 성공해요. 그리고 그중에 절반은 안타가 되죠. 그리고 지금은 폼이 더 올라왔으니 안타가 될 확률도 높아졌고, 장타력도 늘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의 말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사실을 확인하자 코치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하지만 오늘은 이전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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