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61화 (61/325)

[61]

"후우……."

동팔이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이내 손에 공을 강하게 쥔 다음, 빠르고 낮게 공을 찔러 넣었다.

쉭!

회전을 빠르고 강하게 먹은 공은 공기를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빠른 직구를 기다리고 있던 민호준은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민호준의 강한 힘에 배트는 공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 동팔의 묵직한 공과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동팔의 공의 위력에 민호준은 밀리지 않게 배트를 밀었다.

민호준의 힘은 밀리지 않았다. 충분히 밀어내서 홈런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배트가 버티지 못했다.

빠각!!

배트가 쪼개졌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배트의 파편은 멀리가지 못하고 흩어졌다.

하지만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도 민호준의 타구는 생각보다 멀리, 높게 날아갔다.

"아… 이거 어떻게 될까요… 설마 돔 천장에 맞는 건가요?"

캐스터의 걱정과 달리 민호준이 타구는 천장에 닿지 않고 다시 떨어졌다.

그 공은 기다리고 있던 좌익수가 타구를 잡았다.

그걸 보며 해설위원이 말했다.

[아… 민호준 선수… 아쉽겠습니다. 배트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홈런이 될 수도 있었는데요. 그래도 저렇게 멀리 날아갈 줄은 몰랐습니다. 분명히 힘이 잘 실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럼 작년에 플라이 아웃이 없던 민호준 선수였는데, 강동팔 선수한테 그 이후로 처음 플라이 아웃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민호준 타자에 눌리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한 강동팔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지 않고선 할 수 없는 투구였습니다. 베짱이 대단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타석은 엑센의 5번과 6번 타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민호준과 달리 끈질긴 승부를 하지 못하고, 범타나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의 150을 넘지 않는 구속이 4회가 되자 155까지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타순이 돌아올 때엔 160의 강속구를 뿌리며 엑센의 강타자들을 돌려세웠다.

그 타자들 중에선 민호준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반의 끈질긴 승부와 달리 동팔과의 두 번째, 세 번째 타석에선 허무하게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것을 전부 지켜본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들은 동팔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다.

'구위가 뛰어나. 확실히 데려갈 필요가 있어.'

'하지만 우리 구단 말고, 다른 구단에서도 왔어.'

'경쟁도 경쟁이지만… 과연 RG가 동팔을 놓아주려고 할까? 적어도 2~3년은 묶어두고 싶어 할 텐데?'

동시에 민호준에 대한 평가는 시릴 만큼 냉혹했다.

'초반의 끈질긴 승부도 구속이 150을 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지.'

'그러니 그 이상의 속구가 오면 쉽게 속고, 삼진을 잘 당해.'

'한국 리그에선 통하겠지만… 메이저에 오면 1할이라도 칠 수 있을까? 거기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이 많아. 여기보다 훨씬 더…….'

팬들도 그들이 내린 평가와 다르지 않았다.

에이스 중의 에이스인 강동팔과 (홈런 기계이자 동시에 삼진 기계)인 강타자 민호준의 대결을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 빠르고 명확하게 결론이 나왔다.

그에 대한 평가는 간단히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압도(壓倒).

어떻게 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힘의 차이만 보여준, 시시한 결말을 내린 경기였다.

경기의 결과는 동팔의 완봉 승.

타선에서도 힘을 발휘해 생각보다 큰 점수 차이로 승리했다.

동팔의 완봉승 덕분에 RG는 볼펜의 자원을 아껴, 다음 경기를 위해 비축할 수 있었다.

월요일

월요병.

이것은 주말을 보낸 직장인들이 괴로운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월요일에 걸리는 병이었다.

휴일이 지나 다시금 업무와 상급자의 스트레스를 받으러 스스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날.

월요일에도 월요병의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좋은 약은 급여였다. 그리고 급여는 일정 수준을 기점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증상을 효과적으로 완화시켜줬다.

하지만 너무 적은 급여는 오히려 월요병을 악화시키는 악(惡)의 근원이었다.

그것도 월급날이 월요일 때에 효과를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올라가는 통장의 잔고는 직장인에게 있어서 자신이 일해 온 성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

그러나 월급을 받아도, 카드대금과 적금 및 보험으로 돈이 나가며 홀쭉해지는 것을 보면 다시 우울해지지만.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에게 있어서 월요병에 걸릴 일이 없었다. 특히 1군에 있는 선수들이라면.

월요일은 야구 경기가 없는 날이었기에 야구선수들에게는 월요일이 일반 직장인들의 일요일과 같은 날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월요병과 비슷한 것이 있다면 화요병이 될 것이다.

이런 날은 다른 사람들의 휴일과 같이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평범한 사람과 같이 보낼 수는 없었다.

다른 프로야구 선수들과 같이 동팔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같이 놀 사람이 없어……."

친구들은 용케도 신입사원으로 가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고, 취업하지 못한 친구들은 열심히 학원을 오가며 스펙 쌓기에 열중할 시간이었다.

여기서 동팔의 친구라고 말은 했지만 동팔에게 친구는 많지 않았다. 지금 말하는 친구는 아마 야구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말했다.

그들 대부분이 직장인이었기에 월요일에는 당연히 일하러 회사로 출근을 했다 애인인 민희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근 선배님이 같이 놀러 가자고 할 때 갈 걸 그랬나……."

그래서 그들은 그들끼리 모여, 취미가 맞는 사람끼리 모여 놀러 다녔다.

어떤 선수는 가족들과 여행을 갔고, 슬럼프에 빠진 선수는 그럴 여유도 없이 훈련에 매진(邁進)했다. 그 외 선수들은 그동안 노력해서 받은 연봉과 성과급으로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이 상황이 익숙한 선수들과 달리, 동팔은 시즌 중에 맞이하는 세 번째 월요일이 아직도 어색했다.

처음에는 늦게까지 늦잠을 자볼까도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내일이 되면 동팔의 세 번째 선발 등판이었다.

그래서 어제는 훈련을 강도 높게 하지 않고, 컨디션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몸이 피곤하지 않으니 굳이 잠을 더 잘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중 동팔은 자신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을 떠올렸다.

"아, 맞다! 그게 있었지. 선배님이랑 같이 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중요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할 수 없었던 일.

그 일을 떠올리자 동팔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나가는 동팔을 보며 엄마가 부르셨다.

"동팔아! 어디 가니?"

그러자 동팔이 순순히 말했다.

"금은방이요."

한편, 광주에 있는 한동욱은 집에서 평상시 좋아하는 소설과 만화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동팔과 같이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해야 하는 그였다.

하지만 너무 휴일인 월요일을 너무 여유롭게 보내자, 지켜보고 있던 스크레이치가 그의 앞에 나타날 정도였다.

"너무 편하게 있는 거 아닌가? 자네한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을 텐데?"

그의 물음에 한동욱은 손에 쥔 만화책을 놓지 않고 답했다.

"사람이 항상 일만 할 수는 없잖아. 너희들과 달리,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지."

"하지만 하루 쉬면 하루 늦어지게 돼."

"그야 그렇지. 하지만 하루 쉬지 않으면 남은 6일을 비효율적으로 보내게 될 거야. 효율로 따지면 이게 더 좋다고."

한동욱은 여전히 여유 있는 표정과 행동과 자세를 취하며 만화책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말해도 들을 것 같지 않은 그의 행동에 스크레이치도 등을 돌렸다.

"자네의 선택이니 자네가 그 책임을 지겠지."

그리고 더 이상 스크레이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동욱은 그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역시나 웜우드의 말대로야. 스크레이치의 책략 중 하나. 불안을 조성하여 조급하게 만들어 실수하게 만든다라…….'

스크레이치는 눈앞에 사라지면서 책임을 들먹였다.

지금 훈련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이상했다.

스크레이치가 노리는 건 한동욱의 영혼.

그 영혼을 얻기 위해선 그의 실력이 떨어져야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훈련을 받도록 유도했다.

'정말 악마 아니랄까 봐 속이고 또 속이려 하기는… 아무리 바빠도 그 사이에 쉼은 필요하지. 이것은 웜우드가 말 한대로 생명의 법. 그리고 악마들이 싫어하는 법.'

물에 빠져도 30초마다 수면 위로 나와 숨을 쉴 수 있는 사람과 나오지 못해 숨을 쉴 수 없는 사람의 생존 확률은 극단적으로 갈릴 수밖에 없었다.

웜우드는 한동욱에게 조언하면서 이 말을 덧붙였다.

"사업주를 봐도 눈에 보여. 악마 같은 사업주는 사원들이 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쉬지도 못하게 만들거든."

그러니 한동욱은 웜우드의 조언을 받아들여 월요일은 무조건 쉬는 것으로 정했다.

그 반응은 생각보다 빨랐다. 이전에 가만히 있던 스크레이치가 직접 나와 훈련을 하라고 말한 것이다.

만약 월요일에도 훈련을 하는 것이 한동욱에게 도움이 된다면 스크레이치가 말렸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오히려 훈련을 부추기자 의심만 생기게 되었다.

'확신할 수 없었지만 스크레이치의 반응으로 월요일 쉬는 것은 확정. 그냥 쉴 수는 없으니 취미라도 만들까?'

반면, 시간이 1년도 남지 않은 민호준은 피칭머신을 앞에 두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따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공과 달리, 그의 표정은 조급함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좋은 기회였는데! 이렇게 날릴 수 없어……!!'

그는 동팔이 공의 속도를 올리자 치지 못했다.

그 결과, 메이저리그에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몸을 숨기고 민호준에게 온 스크레이치는 민호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자 안심했다.

'잘되고 있어. 그들에 비하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찌 되었건 영혼 하나를 얻을 수 있으니…….'

스크레이치는 그의 영혼을 획득할 수 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이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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