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60화 (60/325)

[60]

한편, 마운드에 있는 동팔은 최병진으로부터 사인을 받고 있었다.

'속구는 위험해. 그건 동의. 하지만 그럼 어느 코스로 던지는 것이 좋을까?'

한 방에 점수가 잘 나는 타자라면 투수 입장에서 처리하는 것이 버거웠다. 이것은 밑에 안전망이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동팔도 민호준에게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편하게 던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포수인 최병진도 속구를 던지지 말라고 사인을 보냈다.

상대는 강한 타격 능력을 가졌지만 동시에 잘 속거나 쉽게 배트가 나가는 타자였다.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경우에는 변화의 크기가 크지 않고, 속도가 빨라 장타를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연히 남은 구종은 변화구 뿐.

그러면 어떤 변화구를 던질지가 중요했다.

동시에 이번 경기가 본인에게도 아주 중요한 민호준은 이전에 없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선구안. 최대한 보는 방향으로… 초반인 이상, 160의 강속구는 배제하고 나머지를 생각하자.'

상대의 공이 빠르지만 그에게 있어 건들지도 못하는 공은 아니었다. 작년에 친 홈런 중에, 160의 강속구를 때려서 날린 것도 있었다.

지금 민호준에게 중요한 것은 동팔이 어떤 공을 던질지 알아차리고 치는 것.

동팔은 최병진이 유도하는 방향의 포수 미트가 있는 방향을 본 다음, 공을 뿌렸다.

쉭~

동팔의 공은 빠르게 병진의 미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민호준의 몸쪽 위.

'볼?'

그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몸을 뒤로 살짝 뺐다.

하지만 동팔의 공은 그가 예상한 곳으로 가지 않고, 더 바깥쪽 아래로 빠졌다. 동시에 최병진의 포수 미트도 같이 빠져서 동팔의 공을 정확하게 받았다.

처음 공을 봤을 때의 코스는 분명히 몸쪽 위로 가는 볼. 하지만 공은 중간에 방향을 바꿔서 스트라이크 존의 중앙 위쪽으로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심판의 선언에 민호준을 알았다.

'슬라이더? 그런데 변화 궤적이…….'

이전에 상대하던 투수들과 다른 슬라이더를 던졌다. 분명히 코스와 속도는 비슷했지만 변하는 폭이 더 컸다.

특히 RG에서 다른 투수들과 호흡을 맞춰본 최병진은 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휘었어. 다른 투수들이 던지는 공도 유인되는데 이 정도 궤적이면… 당연히 넘어가지.'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방금 전에 동팔이 던진 공을 까딱하면 못 잡을 수도 있었다.

설령 잡지 못하더라도 가슴 위로 가는 공이라 블로킹이 가능했으며, 주자가 없기에 견제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이미 예상을 한 궤적에서 크게 벗어난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미트를 놓은 곳은 속이기 위한 것. 나중에 공이 실제로 들어온 곳으로 미트를 빠르게 옮겼다.

자신이 주문한 대로 정확하게 공을 꽂아 넣은 동팔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그는 공을 동팔에게 던졌다.

'다음에는 어떤 것으로?'

지금 볼카운트는 원 스트라이크.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였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었다. 완벽히 속았지만 한 방이 있는 타자에게 볼 카운트는 큰 의미가 없었다.

볼카운트가 어느 쪽에게 유리하던지 타자가 한 방 크게 때리면 이전의 볼카운트는 사라졌다.

그러니 이번에도 완벽하게 속일 방법을 찾고, 행동해야 했다.

투수의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아웃카운트를 올리면 이전의 볼 카운트는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최병진과 사인을 주고받으며 다음에 던질 공을 정해 갔다.

시간을 많이 끌 수 없기에 빠르게 의견을 교환했다.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

'느리지 않나요?'

'괜찮아. 안 맞으면 돼.'

'알겠습니다.'

조금 불안했지만 동팔은 그의 리드를 믿고 커브 그립으로 공을 쥐고는 빠르고 간결하게, 제대로 긁으며 공을 던졌다.

팡.

동팔의 바로 옆이라면 그가 공을 채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회전을 먹은 공은 가운데를 향해 날아가더니 아래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휙~ 퍽.

동팔의 커브는 바닥에 거의 닿기 전까지 공이 떨어졌다.

공이 한가운데로 몰리는 것으로 본 민호준은 방망이가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방금 전에 본 변화구를 떠올렸고, 생각보다 느린 구속에 배트가 나가다 멈춰 되돌아갔다.

주심은 스트라이크를 외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왔지만 타자 앞에선 무릎 밑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속진 않았다. 하지만 방망이가 나오다 말았어.'

최병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공을 다시 동팔에게 던졌다. 그리고는 다음에 던질 공을 동팔에게 알려주었다.

'네? 정말이요?'

'그래. 그러니까 던져.'

동팔은 지금 그가 요구하는 공을 던져야 하나 이번에도 고민했다.

'방금 전에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를 노렸다기보다 무언가 낚시질하는 느낌이었지?'

타자의 상태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포수였다. 그가 요구하는 공은 투수인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요구했을 것이다.

그래서 동팔은 이번에도 최병진의 판단을 믿고, 그가 원하는 구종의 그립으로 공을 쥐었다.

스윽~ 휙~!!

동팔은 여전히 방금 전과 같은 동작으로 공을 던졌다.

다만 그의 팔과 전체적인 몸동작은 무언가 더 역동적으로 보였다.

그로 인해 민호준은 판단을 빨리 내렸다.

'빠른 직구!!'

어차피 지금은 원 스트라이크에 원 볼.

한 번 헛스윙을 하더라도 다음에 기회가 있었다.

휭~!!

민호준은 날아오는 공의 궤적을 예상하고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공이 중간지점을 통과하고, 거의 앞에 오자 자신의 판단착오를 알아차렸다.

'체인지업?'

역동적인 동작에 비해 속도가 생각보다 느렸다.

타자가 공의 속도를 알아차리는 건 생각보다 늦었다. 공을 던지는 순간에 공의 속도의 차이를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

또한 빠른 직구를 던지는 동작과 같기에 체인지업이 타자를 상대로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속도가 느리기에 어느 쪽으로 회전이 걸리느냐에 따라 공의 궤적이 바뀌었다.

'큭!!'

민호준은 빨리 나간 배트의 속도를 줄이려고 했다.

그러나 힘을 한껏 먹은 배트는 이미 쳐야 할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팔이 던진 공은 배트가 지나간 곳을 스치지도 않았다.

퍽!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헛스윙을 한 이상, 판정은 단 하나.

"스트~라이크!!"

이것으로 볼카운트는 2S 1B.

몰리는 쪽은 민호준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는 안 돼…….'

다른 투수에게 당하는 것도 곤란했다.

그마나 뛰어난 투수인 동팔에게 당하는 것이라면 조금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뒤에선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파견한 스카우터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생각대로 이대로 당한다면 자신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빠득.

민호준은 이빨을 갈고, 배트를 강하게 고쳐 쥐었다.

꽈드득.

배트 그립을 강하게 쥐자, 그 부분에서 무언가 비틀어지는 소리가 주심과 포수에게 들렸다.

'대체 힘이 얼마나 좋은 거야?'

'저 소리가 나기는 나는구나.'

민호준의 괴력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바로 앞에서 보자 느낌이 달랐다. 민호준의 절박함과 간절한 바람이 기적을 만들어냈는지도 몰랐다.

따악!!

다음에 던진 동팔의 변화구를 걷어 올린 민호준.

하지만 공은 파울 지역으로 날아갔다.

"휴우……."

파울에 안도했지만 동팔은 공이 날아간 곳을 보고는 절로 가슴이 철렁거렸다.

'공이 돔 끝에?'

파울만 아니었다면, 돔만 아니었다면 완벽한 장외홈런이었다. 만약 빗맞지 않았다면 정말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동팔은 소름이 끼쳤다.

'잘 안 맞아도 저기까지 날아갈 정도면… 제대로 맞으면… 천장 깨지는 거 아냐?'

변화구였기에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동팔은 민호준의 배트를 이끌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변화구를 던졌다.

그러나 민호준은 칠 수 없는 변화구는 흘려보내고, 배트가 닿는 공이라면 무조건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그러면서 파울만 3개가 나왔고, 볼도 2개를 골라내어 2S 3B. 풀 카운트가 되었다.

이제 어느 쪽도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관중들은 물론 중계진에서도 집중하고 있었다.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연 최종적인 승자가 누가 될까요?]

[그래도 첫 타석에서 이렇게 끈질기면 지금 타석을 물러나게 되더라도… 다음 타석에는 다른 결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눈여겨볼 기록이 있습니다. 그걸 보면 과연 다음 타석에 더 좋은 결과가 있다는 보장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기록 말씀이시죠?]

[지금 동팔 선수가 던지는 구속입니다. 최고 속도가 150킬로를 넘지 않고 있죠. 나중에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걸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구속입니다. 하지만 민호준을 상대하면서 그 이상의 구속으로 공을 던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바꿔 말해서… 동팔 선수에게 그만큼 여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중계진이 해설을 하는 사이, 동팔도 고도의 집중력으로 다음에 던질 공을 준비했다.

'변화구는 전부 커트하고 있어. 그렇다고 볼을 던질 수도 없고…….'

전이라면 가능했겠지만 이제 볼을 던지면 볼넷으로 출루시키게 됐다.

민호준만큼은 아니었지만 이후의 타선도 가볍게 상대할 타순이 아니었다. 다른 팀에 가면 4번 타자가 될 수 있는 타자가 엑센에선 민호준에게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민호준을 피해하기 위해 볼넷을 허용한다면 나중에 더 큰 타격이 되어 들어올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동팔이 가야 할 곳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어난 투수로 남는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메이저리그에 가면… 이 정도 압박감은 기본이야. 내 앞의 타자보다 더 강하고 빠른 타자들과 상대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동팔은 볼넷을 주더라도 괜찮다는 최병진의 사인을 거부했다.

동팔의 의중을 읽은 포수 최병직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

'승부?!!'

젊고 아직 경험이 없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인지도 몰랐다.

투수를 리드하는 쪽이 포수였지만, 투수가 강하게 나오면 포수로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실제로 공을 던지는 사람은 투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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