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1이닝을 쉽게 마무리하며 공수가 바뀌었다.
동팔이 마운드에서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자 관중석에선 더 동팔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여성 아이돌 그룹 멤버인 다희는 민희보다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 아는 척이라도 해주지……."
그리고 그 말을 옆에서 들은 민희는 가당치도 않았다.
"저기요. 야구팬이면서 규정도 몰라요? 설령 부모님이라도 선수는 경기 중에 관중에게 특별한 반응을 보내면 안 되거든요?"
나이는 어렸지만 최대한 예의 있게 말했다. 하지만 가는 말이 곱다고 오는 말도 고운 건 법칙이 아니었다.
"아, 진짜……."
아주 작았지만 그 뒤로 '짜증나게'라는 말을 한 것 같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어도 입 모양을 보면 모를 수 없었다. 특히나 연예인인 이상, 주변 시선을 의식해야 했기에 소리를 죽였을 뿐이었다.
그녀는 연기를 배웠기에 금방 표정을 바꿨다.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하지만 앞으로 수고롭게 그러시지 않아도 되세요."
돌려 말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신경 끄라는 말이었다.
민희도 다희가 한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지만 이를 으득 갈면서 성내지 않았다.
"저도 수고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수고하지 않게 해 주셨으면 하는데……."
네가 잘못하고 실수해서 한 조언이니, 다음부터 같은 실수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민희의 말 속에 있는 진짜 의미를 다희도 모르지 않았지만 그녀의 반응은 간단했다.
"흥……."
무시였다. 여전히 엑센의 유니폼을 입고, 원정 구단의 응원석인 3루 방향인 이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희는 방금 전 동팔의 구위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어떻게든 잘하면 될 것 같은데… 나랑 나이 차이도 6살밖에 안 나잖아? 전에 알아보니 군대도 이미 다녀왔고. 공을 잘 던지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자들이 못 치니까 잘 던지는 거겠지?'
야구에 대해 잘 몰라도 신문과 여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자신보다, 창창한 동팔에게 끌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외모는 그럭저럭 괜찮은 거 같고… 운동선수니까 몸도 좋을 거고…….'
여러 가지로 계산을 하고 있는 다희.
옆에 있는 민희의 눈에는 다희의 생각이 맑은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처럼 훤히 보였다.
'저걸 어떻게 해야 포기하게 만들까?'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객관적인 인지도야 유명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다희가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민희가 그녀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이유는 명확했다.
"동팔 오빠가 사귄 애인이 정말 예쁘던데."
미희가 흘린 말은 응원 구호에 밀려 잘 들리지 않았지지만 다희의 귀에는 정확히 들어왔다.
"오빠? 동팔 씨랑 친한 사이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불러요?"
다희는 민희가 동팔에 대한 호칭에 대해서 따졌다.
그러자 민희는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그야 잘 아는 사이니까 그렇죠. 저랑 오빠랑 어떤 사이인지 알지 못하는 건 그쪽 아닌가요? 확인은 해보셨어요?"
있는(?) 자의 여유가 절로 흘러나오는 말이었다.
그녀의 말에 다희는 계산이 복잡해졌다.
'정말로 아는 사이일까? 아니면? 그리고 사실이면?'
아니면 그만이었지만 사실이라면 나중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민희의 말을 마냥 믿을 수 없기에 다희는 따지기 시작했다.
"그럼 전화번호는 아시겠네요?"
만약 민희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전화를 해서 동팔과 통화해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민희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어머. 모르시나 봐요? 지금은 선수단 전원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왜요? 증명할 수 없으니 발뺌하는 거예요?"
"제가요? 그럴 리가요. 어차피 경기 끝나면 저절로 밝혀질 일인데… 무슨……."
"……."
"그러니 굳이 아는 척해서 동팔 오빠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그리고 오빠가 사귀는 애인 사진은 있거든요."
민희는 그 말을 하고 스마트 폰을 꺼내 전에 찍은 사진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민희는 마음이 조금 심란했다.
'정말 옛날 사진인데… 이거 찍었을 땐 이 사람 대신 내가 있었으면 했지만…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은…….'
민희가 보인 사진은 동팔이 고교 선수 시설, 혜진과 찍은 사진이었다. 두 사람의 눈에 띄어 사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들의 폰으로 그리고 팬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폰으로 서너 번 찍은 사진.
비록 7년 전의 사진이라 앳돼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동팔이란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민희의 사진을 보자 다희는 두 가지에 놀랐다.
'어머, 정말 애인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예뻐?'
처음에는 혜진의 미모로 인해서.
'잠깐. 이 사진을 가지고 있다면… 설마 정말로 동팔 선수랑 아는 사이?'
그리고 민희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바로 앞에서 두 사람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가능성을 떠나 동팔과 이어지기도 전에, 주변 사람과 척을 질 이유는 없다.
생각을 끝낸 다희가 급격히 태세를 바꾸었다.
"아, 저기… 방금 전에 함부로 말해서 죄송해요. 그런데…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얼굴을 떠나 입고 있는 옷으로 민희의 나이를 얼추 짐작한 다희였다.
'동팔 선수를 보고 오빠라고 했으니… 25살 이하일 거고, 능숙하고 익숙한 화장을 보면 나보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많겠지?'
무엇보다 자신이 스무 살인 것은 도움이 되었다.
다희의 말에 민희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되지. 나보다 다. 섯. 살이나 어린데 당연하지."
애초에 이길 생각이 아닌, 위치를 보여주기 위해서였기에 나이에 연연하지 않았다.
20대 중반이기에 연연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오빠한데 외모로 어필할 생각하지 마. 이 사람, 연예 기획사에서도 콜이 들어올 정도거든. 오디션을 봐야 하는 누군가들과 전혀 달라."
"네……."
민희는 지금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지 1년 넘었다는 건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민희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이코! 아, 실수. 손가락이 미끄러졌네!"
라고 했지만 전혀 실수가 아니었다.
민희는 화면을 한 번 더 밀어 그 뒤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동팔과 자신이 함께한 사진이었다. 혜진과 같이 있던 사진이 아니라, 동팔의 옆에 자신이 있는 사진.
그 사진을 보자 다희의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다.
'어? 어라……?'
단순히 두 사람이 있는 사진이라면 그러려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냥 팔짱도 아니고, 연인처럼 꼬옥 안고 있는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희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자 민희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리고 승리의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 이거… 오빠가 차 뽑고 처음으로 데이트하면서 찍은 사진인데… 여기 꽤 괜찮더라. 나중에 한 번 가봐. 어제 갔으니 어디론가 사라지진 않았을걸?"
이젠 대놓고 동팔과 자신의 사이를 말하는 민희였다.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은 요리 사진에 맞은편에는 동팔이 웃는 모습이 보였다.
"어… 어, 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다희는 크게 당황했다.
'그, 그럼… 나… 그동안 애인 앞에서 그 짓을……?'
동팔의 과거(?)까지 알고 있는 정도라면 한두 해 사귄 사이가 아니란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민희는 혹시라도 모를 일말의 가능성을 완전히 말소시켰다.
"오빠 방출당하고 엄청 고생했지. 회사에서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그러다 재기하는 중에 오빠랑 사귀게 되었는데, 이렇게까지 재활에 성공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리고 전에 사귄 그 사람은 방출된 오빠를 차고 다른 사람 만났어. 지금쯤이면 엄청 후회하겠지? 안 그래?"
나는 너처럼 지금의 성공한 동팔만 본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실패자와 같은 상황일 때부터 아는 사이였다.
나는 너와 달리 돈과 능력에 혹해서 가까이한 것이 아니라, 미래가 보이지 않던 그때부터 함께한 전우와 같은 사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한 민희.
거기에 너보다 예쁜 애인에게도 마음을 버렸는데,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고작 그 정도 얼굴 가지고 되겠냐는 의미도 숨어 있었다.
완전한 필패(必敗).
"흐윽… 으아아앙~!!"
결국 다희는 패배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울며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녀와 같이 가시방석에서 관람하던 코디와 매니저도 덩달아 같이 나갔다.
그러자 민희는 난감해하며 중얼거렸다.
"아… 아직 애인데 너무했나?"
상대는 자신보다 5살이 어린 애송이. 하지만 대놓고 연적이 되려한 이상, 봐줄 수 없는 민희였다.
민희가 다희를 압도하며 보내버리는 사이, 2회 초에서도 RG는 점수를 내지 못하고 공수가 바뀌었다.
이번에 타자는 엑센의 4번 타자 민호준.
강타자와 마주치게 된 동팔을 보며 중계진에서도 이 대결의 예측하기 바빴다.
[민호준 타자의 작년 기록은 타율 0.264. 출루율은 0.314. 그리고 장타율은 0.820입니다. 낮은 타율과 출루율에도 OPS가 높은 이유는 장타율 때문이죠.]
[기록을 보면 정말 특별합니다. 작년에 딱 500 타수를 채웠습니다. 그중에 2루타가 30개. 치기 힘들다는 3루타를 31개나 때렸어요. 그리고 홈런 62개를 쳐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새웠습니다. 그런데 1루타가 몇 개냐 하면! 9개밖에 없습니다.]
[홈런 수가 단타보다 일곱 배 더 많은 타자죠. 걸리면 날아간다.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덕분에 타점도 많죠?]
[그럼요. 기본 타점만 해도 62개 아닙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개막전부터 홈런을 쳤습니다. 지금 페이스라면 작년 기록을 다시 갱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죠. 과연 강동팔 선수와 최병진 포수가 어떤 작전으로 민호준을 상대할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경기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겁니다. 이구연 해설위원은 타자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타석에 들어설까요?]
[민호준 타자는 밀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힘이 있으니 타점을 뒤로 잡아도 퍼 올릴 수 있는 자신이 있는 거죠. 하지만 밀어치기의 장점은 변화구에 대처가 가능하지만, 몸쪽 공이 오면 힘이 실리지 않아 단타나 플라이 아웃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상대가 힘이 강한 민호준이라 단타나 2루타 정도 나오지만 말이죠.]
[그러고 보면 신기한 것이 또 있죠. 민호준 타자는 삼진은 많아도 플라이 아웃이 없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인 선수가 또 있나 싶습니다.]
중계진들이 중계방송을 하는 사이, 스카우터들은 동팔의 기록을 계속해서 적어나갈 준비를 했다 동시에 상대 타자에 대한 정보도 같이 보고 있었다.
"민호준? 확실히 힘은 뛰어난데?"
"메이저리그에서도 톱클래스야."
"근데 타율이 영… 한국 리그에서 이 정도라면 메이저리그에선 홈런 기계가 아니라 삼진 기계가 될 게 뻔해."
여기까지는 과거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의 정보였다.
"그래도 강동팔을 상대로 해서 안타나 홈런을 뽑아낸다면… 이야기가 다를지도……."
단순히 기록의 스펙을 넘어, 그 기록이 누구를 통해 나왔는지도 중요한 척도가 된다.
강동팔은 이미 메이저리그급의 투수로 판단했다.
지금 그들이 판단하려는 것은 적당한 포스팅 금액을 파악하기 위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으러 온 것이다.
애초에 목적은 동팔의 정확한 정보의 획득. 하지만 그러다 종종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면 곁가지로 알아보는 것도 그들의 하는 임무 중 하나.
특히나 민호준의 경우, 작년에 한국 리그 홈런 신기록을 세웠기에 주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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