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그들이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 리그를 비교하는 사이, 경기가 시작되었다.

"플레이!!"

엑센의 1번 타자인 서곤창이 타석에 들어와 있고, 동팔은 공을 던질 준비를 했다.

서곤창은 그만의 독특한 타격 폼을 잡고 타석에 서 있었다. 얼핏 보면 웃긴 폼이었지만, 그는 자신만의 폼으로 높은 타율을 가지고 있었다.

동팔도 야구 중계방송에서만 보던 그의 폼을 보자 실소가 나올 뻔했다.

그러나 그의 기록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올 수 없다.

'지난해 타율은 3할 이상. 그리고 출루율은 더 높아. 선구안도 뛰어나고, 타격도 타점을 잘 맞춰서 장타가 꽤 나오는 타자…….'

어느 구단도 1번 타자의 자리에 아무나 놓지 않았다.

제일 먼저 타석에 올라가는 선봉의 역할을 하게 되며 확률 상 제일 많은 타석에 오르는 타자였다.

야구에서 점수를 얻는 방법은 거듭되는 진루로 홈까지 돌아오는 것. 그러기 위해선 1루로 출루하는 능력이 뛰어난 타자가 더 많은 타석에 있어야 했다.

힘은 부족해도, 안타 생산 능력과 선구안으로 볼넷을 얻어 나가는 능력이 있는 타자가 주로 1번 타자가 됐다. 그리고 선구안이 높으니 변화구로 속이려 해도 쉽지 않아 투수의 입장에서 4번 타자보다 더 껄끄러운 상대.

동팔은 손에 쥔 공의 그립을 바꿔가며 포수의 사인을 정확하게 인식했다.

그와 동시에 동팔의 눈에선 포수의 뒤쪽 방향에 앉은 사람들도 같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전부 스피드건을 들고 있었으며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누가 봐도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구단에서 파견한 스카우터들도 전부 스피드건을 동팔에게 향했다.

그들의 모습에 동팔은 흥분되었다.

'이렇게 빨리……?'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중계만으로 선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으니 직접 사람을 보내 확인시키는 것임을 모를 수 없었다.

첫 선발에선 처음이기에 그만한 긴장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메이저리그에서 직접 사람을 파견하는 것을 보게 되자 다른 종류의 긴장이 느껴졌다.

'이번에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행보에 큰 영향을 주게 돼.'

못 던질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스카우터의 모습을 보자 동팔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그 사이, 중계석에선 중계가 이어지고 있었다.

[서곤창 선수는 지금 한국 야구에서 뛰어난 테이블 세터입니다. 타율이 높고, 선구안이 좋기에 출루율이 높습니다. 게다가 좋은 장타력에 발도 빠릅니다. 첫 타자를 잡지 못하면 이후에 엑센의 타선에 말릴 수 있어요. 조심해야 합니다.]

해설위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인을 받은 동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인구… 그렇다면…….'

그가 가볍게 다리를 올리더니, 팔을 빠르게 휘둘렀다.

쉭~ 퍽!!

서곤창이 배트를 휘두르려 했지만 그 앞에서 공이 아래로 휘었기에, 그는 배트를 급하게 거두었다.

하지만 서곤창의 배트는 상당히 나온 상태였다.

마운드에 있는 동팔로선 그의 배트가 선을 넘었는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판단과 판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 동팔은 판정을 내릴 수 있는 1루심을 바라보았다.

'스트라이크? 아니면 볼?'

회심의 유인구였지만 생각보다 서곤창의 임기응변이 뛰어났다. 유인구임을 확신하자 배트를 뒤로 돌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최병진은 역동적인 동작으로 일어나 1루심에게 판단을 요구했다.

척.

1루심은 확신에 찬 동작으로 판정을 내렸다.

판정은 스윙 인정. 그러자 주심도 확실하게 선언했다.

"스트~라이크!"

1루심의 판정에 엑센의 팬들은 항의했다.

"어떻게 스트라이크야!! 배트 안 나갔고만!!"

"RG한테 돈 먹었냐?!"

그러나 중계화면에서 보여주는 건 서곤창의 배트가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을 넘는 장면이었다.

정확한 1루심의 판단에 중계를 보는 엑센의 팬도 마냥 화를 낼 수 없었기에 툴툴거리며 불만만을 표시했다.

"아, 진짜… 정확하게 보네."

"좀 봐주면 안 되나."

그러나 오심 없는 정확한 판정이야 말로 그들이 야구장에 서 있는 이유였다. 편파판정은 오직 팬들만의 특권이자 그들에게만 허용된 것이니까.

그리고 팬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역시나 동팔의 구속(球速)이었다.

[132km/h]

빠른 직구가 아닌 변화구. 그것도 커브였기에 높은 구속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커브의 구속이 다른 투수의 속구에 준했다.

다른 투수들이 전력으로 던져 최고 구속의 직구를 던져도, 동팔은 같은 속도의 변화구를 던졌다.

팬들이 기대하던 150이 넘는 160의 강속구는 아니었지만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팬들은 방금 던진 커브에 감탄했다.

"어떻게 커브가 130이 나오냐?"

"보통 빨라도 120 아냐?"

"직접 보니까 확 다가오네. 저걸 어떻게 쳐?"

당연한 말이었지만 변화구는 변화의 폭이 크면 클수록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고, 변화를 크게 하기 위해선 속도가 낮을수록 좋았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낮으면 타자의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당연히 속도가 높은 상태에서 변화를 크게 하기 위해선 그만큼 공의 회전을 줘야 가능한 일.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들도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직접 중계를 보면서 동팔의 공을 분석한 내용을 빠짐없이 적어 나갔다.

'경기장 스피드건이랑 우리 거랑 큰 차이가 없어. 고작해야 1에서 2킬로 차이?'

'그리고 커브가 확실해. 커브가 132라… 회전수가 대체 얼마나 빨라야 가능한 거지?'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어서 중계화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중계화면이 아닌, 직접 동팔을 상대하는 서곤창은 다시 마음을 잡고 있었다.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직접 상대하니 느낌이 전혀 다르잖아? 다음에 뭘 던질 거지?'

수치로는 큰 차이가 느껴졌지만 타자가 투수의 공을 상대할 때의 속도에선 그렇게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특히나 던지는 순간부터 날아오는 초반까지 속도는 구별이 거의 불가능했다.

속도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올 때는 공이 중간 이상을 지나갔을 때. 하지만 강속구의 경우, 중간을 지나 배트를 휘두르면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프로 타자들은 투수가 던질 공을 예측하고, 그 공이 왔다 싶으면 무조건 배트를 휘둘렀다.

서곤창은 동팔이 던질 수 있는 구종이 다양하다는 것이 껄끄러웠다. 그래도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기 위해 타석에 오기 전, 이미 생각한 작전을 되뇌었다.

'초반부터 160은 안 들어와. 속구는 커트하는 것에 주력. 느린 공은 타점을 최대한 뒤로하고 밀어치는 방향으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지켜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동시에 동팔과 포수인 최병진은 그 다음에 던질 공을 준비했다. 상대가 만만치 않은 타자였기에 그들의 의견은 여러 번 바뀌었다.

'다음에 유인구, 커브 다시?'

'아니요. 간파 당했어요.'

'그럼 슬라이더?'

'아니요. 밀어 쳐서 안 돼요.'

'그럼 속구. 빠르게 가자.'

그의 사인에 동팔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을 한 동팔은 전력은 아니었지만 포심 그립을 잡고 힘차게 공을 뿌렸다.

서곤창은 동팔의 역동적인 투구 동작을 보곤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빨라!!'

쉭~ 따악!!

서곤창은 공이 빠르게 오는 것을 보자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로 동팔의 공을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급하게 휘두른 데다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공은 파울 지역으로 넘어갔다.

"휴……."

플라이아웃이 아닌 것에 감사하고 서곤창은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잡은 후, 다음 공을 기다렸다.

상대 타자에 대한 분석 중 민호준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서곤창도 만만히 볼 수 없는 타자였다.

그러니 동팔은 물론, 그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최병진도 서곤창의 약점을 노리거나 만들어야 했다.

최병진이 동팔에게 요구한 공은 몸 쪽으로 빠지는 공.

구종은 어떤 거라도 상관이 없었다.

'빠른 공에 반사적으로 배트가 나갔어. 그럼 가능할지도…….'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한 공이었다. 그리고 설령 맞더라도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범타로 끝낼 수 있었다.

휭~

빠르게 들어오는 직구와 같이 서곤창의 배트도 빠르게 돌아갔다. 하지만 안쪽으로 빠지면서 헛스윙을 했다.

이대로는 3스트라이크.

그러나 서곤창의 플레이는 끝이 아니었다.

1루에 주자가 없으며 2스트라이크에서 헛스윙을 했다.

하지만 동팔의 공은 너무 빠졌기에 포수가 잡지 못하고 말았다. 3스트라이크지만 아웃은 아닌 상태.

즉, 서곤창은 낫아웃 상태였다.

"뛰어!!"

낫아웃 상태였기에 서곤창은 공이 빠진 것을 보자 1루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어, 어……?"

야구를 하면서 간만에, 프로에선 처음 겪는 낫아웃 상태에 동팔은 당황하면서도 일단 1루로 뛰어갔다.

그 사이, 공이 빠졌어도 최병진은 빠르게 공을 잡아 1루로 송구했다. 사람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던지는 공보다 빠를 수 없었다.

투수 출신 포수인 최병진의 공은 빠르고 정확하게 기다리고 있던 1루수의 글러브로 날아갔다.

"아웃!"

공이 빠르게 빠졌기에 보통 낫아웃 상황과 달라 기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민첩한 최병진의 행동과 이미 기다리고 있던 1루수. 거기에 송구 에러를 대비해 우익수까지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실 1루수가 있기에 동팔이 굳이 갈 이유는 없었다.

1루수인 정상운이 가볍게 웃으며 동팔에게 공을 던지며 말했다.

"짜식. 긴장했구나. 긴장 풀어. 인마. 하하."

"아, 네……."

공을 받은 동팔은 그 공을 살피며 마운드에 올랐다.

공에는 특별히 문제점은 없어 보였다.

다만 땅에 굴러 흙이 묻어 있었다. 닦아 봐도 흙먼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자 동팔은 공을 포수에게 던졌다.

포수는 공을 살피더니 심판에게 보여주었고, 심판은 공의 상태를 보더니 즉시 공을 새것으로 바꿔주었다.

규정에 의해 공에 이물질이 묻으면 안 됐다.

그 이물질로 인해 공의 궤적이 바뀌게 되므로 투수에게 더 유리한 움직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곤창은 엑센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 사이 배트걸은 서곤창의 배트를 회수했다.

동시에 2번 타자 고종운이 타석에 올라왔다.

'어떻게든 누구라도 진루해서 흔들어봐야 하는데…….'

하지만 엑센의 바람과 달리, 그 이후로 이어지는 타석에선 동팔의 공을 친 타자가 없이 이닝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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