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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엑센은 자신들의 홈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둘 다 서울이 연고지였기에 홈과 어웨이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강한 화력으로 투수들의 경계 1호인 팀.
그중에서도 훈련 중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가 있었다.
따악!!!
민호준이 친 타구가 멀리 뻗어 나가더니 밖으로 향했고, 곧 돔 천장에 맞았다.
타구가 페어지역 위의 돔 천장에 끼여 떨어지지 않으면 인정 2루타.
맞더라도 잡히면 플레이 상황으로 간주하여 아웃, 파울 지역에 맞으면 당연히 파울이었다.
하지만 맞는 위치에 따라 정해진 선 뒤로 맞으면 홈런으로 인정됐다.
민호준의 타구는 완벽하게 홈런으로 인정되는 곳에 맞아서 떨어졌다.
그러자 옆에서 보던 코치가 농담을 던졌다.
"이렇게 계속 천장을 맞추면 돔구장주가 너 싫어하겠다."
단순한 농담이었다.
그의 장타력에 대한 순수한 칭찬이었만 타격 코치의 칭찬에 민호준은 오히려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씨파. 싫어하면 싫어하라고 하세요."
그의 반응에 타격 코치는 순간 울컥했다. 하지만 민호준의 손에 들린 배트를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장타력은 그의 탁월한 힘에서 비롯됐다.
힘이 세면 셀수록 가속도가 늘어나 배트 스피드가 빨라진다. 그리고 늘어난 속도만큼 공을 더 강하게 타격하여 멀리 보낼 수 있다.
또한 충격력이 크다면 맞았을 때 타격도 컸다.
만약 호준이 기분이 나빠져 배트를 함부로 휘두르다 맞으면 그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 아냐. 미안. 훈련에 집중하자. 집중. 오늘도 홈런 쳐야지. 안 그래? 동팔이 상대로 치면 네 가치가 확 올라갈 거야."
아이를 달래듯이 호준을 달래는 코치.
'오늘따라 유난히 예민하네… 대체 왜 이러지?'
이미 장타력과 홈런에서 국내에 톱클래스에 있는 그였다. 당연히 이번에 그에게 책정된 연봉도 억 단위를 넘어간 지도 3년.
그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슬럼프에 빠진 것도 아니니 더 의아할 수밖에.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그에게 있었다.
민호준은 피칭머신으로 타격 연습을 하며 생각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메이저리그로 가야 해. 그래서 어떻게든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해서 반지를 껴야 하는데… 안 그러면 악마한테 내 영혼이……!!'
그 또한 악마와 계약을 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팔과 달리 남은 시간이 없었다.
이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야 했지만 아직도 한국 리그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힘이 더 강해지면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악마와 계약을 한 뒤 그는 홈런 기록을 매년 갱신하고 있었다. 덕분에 작년에는 62개의 홈런으로 이승협 이후로 깨지 못했던 시즌 최다 홈런의 기록인 56개를 깼다.
지금도 페이스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어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60개 이상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서 문을 두드리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민호준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여름 트레이드 시장을 노려야 해. 내년이 되면 계약이 끝나니까 구단에서도 어떻게든 기회를 주려고 하겠지. 이왕이면 빨리 넘기는 편이 구단 입장에서도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러니 그전에 그들이 먼저 움직이도록 타율을 끌어올린다. 반드시…….'
그의 유일한 단점은 타율.
걸리면 거의 장타였지만 잘 걸리지 않았다.
타율은 평범한 정도였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일말의 희망을 붙잡아야 했다.
그 기회가 바로 오늘 있었다.
"오늘 동팔이 보려고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움직이고 있다던데?"
"한국 선수를 주로 보고 스카웃하는 그 사람들이 온다더라. 한두 구단이 아닌 것 같아."
자신을 보러 온 사람은 아니었다. 급격히 떠오르는 신인 스타 투수인 동팔을 보러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민호준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들의 눈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방금 전에 코치가 민감해진 자신을 다독일 때 한 말이 그의 귀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강동팔… 어린 친구가 재기한 건 좋고 대단하게 생각해. 하지만…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의 제물이 되어줘야겠어…….'
그의 강속구든, 절묘한 변화구든. 동팔의 공을 쳐 그것을 메이저리그에서 온 사람들이 보게 한다면 동팔을 보러 왔다가 자신에게 시선이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다른 때보다 민감하고 예민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올해가 전부였기 때문에…….
거의 매일 있는 야구 경기.
하지만 그 전에 선수들은 물론 코치와 감독은 물론 구단의 스텝들까지 바빴다.
직접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과 그들을 훈련시키거나 분석 및 작전을 하는 코치와 감독이야 그 전부터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경기에 뛰지 않지만, 경기가 열리는 구장에선 구단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 전에 준비 및 안전에 신경을 썼다.
표를 끊고, 출입을 관리하는 것도 당연히 포함이었다.
고척 스카이돔구장에 들어오는 관중들은 상당수가 엑센의 팬들이었다. 하지만 연고지가 같고, 서울이었기에 RG의 팬들도 역시 많았다.
그중에 RG의 팬은 아니지만 특정 선수의 팬이기에 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민희였다.
"아… 안타깝지만 원정이라서 시즌권은 쓸 수 없고… 결국 내 돈으로 구매해야 했어……."
동팔이 서울이 아닌 곳으로 원정을 간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선발 등판을 하니 안 갈 수도 없었다.
특히나 시즌이 시작되면서 두 사람의 연애 패턴도 달리질 수밖에 없었다.
'야구선수들의 생활 패턴은 일반 사람들보다 늦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빨라야 10시. 보통은 정오 전에 일어나. 동팔 오빠야 성실하니 항상 빨리 일어나긴 해도… 그 시간은 9시…….'
그래서 출근 전에 짧게나마 전화로 안부를 묻고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 이후에 겹치는 시간은 이렇게 경기할 때 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동팔이 선발로 올라오지 않으면, 홈에서 하지 않으면 연봉이 많지 않은 민희에게 있어서 표 값은 상당한 지출이 됐다.
그러니 동팔의 선발 등판이 홈인 잠실구장에서 한다면 반드시 갔다. 이미 그에게 테이블석 시즌권을 받았으니 드는 비용이라면 사먹는 것과 차비가 전부였다.
그리고 이렇게 원정이라도 서울에서 하면 본인의 돈을 과감하게 써서라도 왔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더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는 시간은 빠르면 9시 반. 그러면 밤이라도 데이트 할 여유가 있었지만 보통 10시를 넘거나 늦으면 11시까지 하는 경우도 가끔 발생했다.
다음 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 민희는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자정을 넘기기 전에 잠잘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때 동팔은 팔팔하게 깨어 있는 상태.
그 차이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집중하며 바라볼 시간은 많지 않았다.
있다면 시합이 없는 월요일이 유일했지만, 시즌 초반이라 그럴 수 있는 월요일은 두 번이 전부였다.
동팔이 프로에 입단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함께할 시간이 줄어든 건 아쉬웠다.
경기장에 들어가던 민희는 그 사실이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애써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 이게 낫지. 회사에서 대리님께 계속 야단맞는 것을 보는 것보다 훨~씬! 낫지.'
돔구장이었기에 햇빛에 피부가 탈 걱정은 없었기에 제일 싼 외야석을 구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외야석이 아니었다.
"스카이블루석도 괜찮네. 아주 비싼 것도 아니고……."
당연히 외야 비지정석보다 비쌌지만 만 원 정도 더 쓰는 것으로 동팔을 가깝게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더군다나 주중 경기었기에 주말보다 더 싸기도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신용카드 혜택을 이용하여 더 할인을 받았다. 이미 작년에 동팔이 야구에 전념하는 때부터 신용카드를 바꾼 것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였다.
그 카드로 주 결제를 했기에 할인받는 조건에 맞았다.
몇 천원 더 싸게 구입하자 민희는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바로 앞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동팔을 본다는 생각에 흥이 더 오를 찰나.
그녀가 경기장에 들어와 야구장이 보였고, 동시에 민희의 눈에서 불똥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튀어나온 도둑고양이년이! 오빠한테!!'
오늘의 시구자는 아이돌 걸그룹의 멤버, 다희였다.
아무리 예뻐도 끼나 재주가 없으면 연예인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미모는 갖춘 것이 사실.
또한 자신보다 더 어렸다.
남자에게 있어 너무 어린 여자는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왕이면 더 젊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엄마한테 항상 들어 온 민희였다.
신체적인 조건으로 따지면 자신이 밀릴 수 있다고 생각되는 여자가 동팔의 옆에 붙어 있었다.
그동안 자신과의 과거가 있기에 의심하지 않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 밀려오는 불안감은 막을 수 없었고, 마침 그녀의 옆으로 한 남자가 지나가며 말했다.
"한참 뜨고 있는 다희잖아? 내가 연예인이라도 강동팔한테 고백하겠다. 잘 어울리네."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파고들어 민희는 매서운 눈으로 그 말을 한 남자를 노려봤다.
뒷모습밖에 보지 못했지만 확실히 중년의 남성이었다.
다만 아무리 노려보아도 보이지 않는 이상, 알아차릴 수 없는 법이었기에 그는 그냥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옆에 있던 어떤 아이가 민희의 모습을 보고 놀라 엄마한테 안겼다.
"엄마… 저 누나 무셔……."
"착한 아이는 저런 거 보는 거 아냐. 어서 가자."
그 말에 민희는 다시 표정을 풀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소용없었다.
민희는 애써 외면하며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비록 표정은 바꿨지만 그녀의 마음의 상태는 바뀌지 않았다.
'시구자면 시구만 하고 갈 것이지. 왜 오빠한테 붙어선… 엑센 홈구장이면 엑센 투수한테 갈 것이지…….'
오늘 RG의 선발 등판은 알고 있었지만 엑센의 선발 등판이 누구인지 신경도 쓰지 않는 민희.
그래서 이름도 모르고 있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기장에 난입하여 머리채를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민희는 속앓이를 하면서 시구하는 장면을 끝까지 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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