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구속을 더 끌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제구도 더 잘했으면 좋은데… 실제 경기에서 던질 수 있는 구종도 하나 더 있었으면…….'
이미 프로에서 당당한 선발 투수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전에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승리 투수가 되는 것을 꿈꾸었지만 현실을 보게 되자 절로 포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추격조의 불펜투수로 만족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선발의 자리에서 승리 투수가 되도록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
자신이 아니더라도 항상 선발 투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치고 올라오는 선수들이 차고 넘쳤다.
이 경쟁에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그러던 중 윤재국의 눈에 동팔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동팔이가 오늘도 제일 빨리 왔지?'
사실상 1선발과 다를 바 없는 그의 구위였다. 인정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구속부터 제구력까지 전부 자신을 압도하는 투수.
거기에 체력도 좋아 이닝 소화 능력도 좋을 것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전에 어떤 전설적인 투수의 투구가 워낙 위력적이라 술을 마시고 던져도 치는 타자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술을 마시고 경기에 들어서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와서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그가 할 일을 충분히 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도 아니고 조금 늦는 것으로 동팔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팔은 누구보다 빨리 와 이미 훈련받을 준비를 끝냈다.
덕분에 다른 선수들의 출근 시간도 빨라졌지만.
윤재국은 잠시 고민했다.
'한 번 물어봐?'
자신이 고쳐야 할 점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선배로서 묻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이내 결심하더니 동팔에게 다가갔다.
"저기… 동팔아……."
"네. 형."
"그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무언가 주저하는 그의 모습에 동팔은 고개를 살짝 숙였고, 편하게 답할 수 있도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동팔의 행동에 물으면서도 말할까 말까 여전히 고민하던 윤재국은 결국 자신의 고민을 동팔에게 털어놓았다.
"다른 게 아니라… 내 단점이라든가 고쳐야 할 점이라든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니?"
재국의 물음에 동팔은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선배님이신데… 그대로 말씀드려도 될까?'
그리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동팔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게…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제 투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하체가 흔들린다는 느낌? 그리고 그때마다 제구가 잘 안 되셔서 공이 높이 뜬다든가 한가운데로 몰렸죠."
동팔의 그 말에 윤재국은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 그랬어? 어쩐지……."
동팔이 말한 순간은 전부 자신이 오늘 떠올린 어제의 실투들이었다.
높이 뜨는 바람에 주자가 볼넷으로 나갔고, 주자가 쌓인 상태에서 강타자인 민호준에게 실투를 하는 바람에 홈런을 맞고 말았다.
"먼저는 하체 운동을 하시는 걸 추천 드릴게요. 스쿼트를 비롯해서 전보다 훈련 양을 점점 더 늘려 가시면 될 거예요. 저도 작년에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하체가 훨씬 중요하단 걸 알았거든요."
이건 동팔이 사고로 무릎을 다치지 않았다면 체감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그렇다고 재국이 동팔처럼 회복력과 재생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니 다치라고 말할 수 없는 법.
그러면 다른 방법으로 하체를 강화시켜 나가야 했다.
동팔도 그 이후로 어깨와 등이나 팔뿐만 아니라 다리와 허리도 각별히 신경 쓰며 운동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강속구였다.
"고맙다. 코치님들이 그 말씀하셔서 하긴 했는데… 더 해야겠네. 먹고 싶은 거 없냐? 내가 한 번 제대로 쏠게."
후배이긴 했지만 동팔의 조언을 듣자 부끄러우면서도 밝은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재국의 진심 어린 말에 동팔이 바로 말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밥보다 선배님께 다른 걸 부탁하고 싶은데요."
동팔의 말에 윤재국은 기뻐하며 말했다.
"뭔데? 말해 봐! 보증 빼고 다 들어줄게."
정말로 모든 것을 다 들어줄 듯한 행동에 동팔은 쑥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른 게 아니라… 선배님의 주력구가 스플리터와 싱커잖습니까? 그걸 배우고 싶어서요. 그것만큼은 선배님을 따라올 사람이 없잖아요."
"그거야 얼마든지."
동팔의 부탁에 재국은 딴말을 하지 않았다.
동팔은 이미 체인지업을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하기에 재국의 주력구 중 하나인 체인지업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또한 선배가 후배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상했을 그의 자존심도 이번에 회복할 수 있었다.
마냥 조언을 듣는 것보다 서로 조언하며 도와주는 것이 선배인 재국에게 훨씬 마음에 힘을 주었다.
"오늘만이 아니라 그 다음에도 가르쳐줄게. 먼저 싱커는 너무 연습하지 말고. 알고 있겠지만… 팔과 어깨에 부담을 많이 주는 구종이야."
그러면서 지금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인 그립을 쥐는 법을 알려주었다.
오늘은 동팔이 선발로 등판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
그래도 재국이 말한 것처럼 오늘만 날은 아니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조용히 훔쳐보던 임상훈 감독은 생각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잘 나가서 거만할 줄 알았는데… 의외야. 후배라면 가르치는 거야 봤지만, 선배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조언하다니…….'
동팔이 재국에게 했던 조언은 그가 이전부터 해 왔다.
전에는 적당히 받아들였다면 동팔의 조언은 완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항상 무표정하던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다른 투수들에게 안됐지만… 이걸로 재국이의 구위가 좋아지면 선발진이 완성돼. 물론 나중에 예기치 못한 사고나 슬럼프가 온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선발로 쓸 수 있는 투수가 많다는 것은 기나 긴 레이스를 할 때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가용한 자원이 많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는 것을 막아줬다. 이후에 전략을 세울 때 유용하니 심지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5선발 체제도 좋지만… 이참에 6선발로? 요일별로 선발을?!'
물론 에이스 투수들이 많기에 그들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에서 불리하기에 할 수 없는 체제였다.
동시에 훈련을 하면서 동팔과 재국이 이야기하던 것을 보던 후배들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나도 한 번 가서 물어볼까?'
'꼭 투구나 제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땐 무얼 하는지도 궁금하고…….'
처음에는 5년에 걸쳐 재활을 하고, 재기에 성공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처음으로 마운드에 오르고, 실전에서 160의 강속구를 뿌렸다. 그리고 데뷔전에서 완봉승을 거두었다.
노히트 노런의 기록을 세우면서 급격히 많은 팬들이 생겼다. 덕분에 지금은 구단에서 동팔에게 보낸 팬레터는 물론, 선물을 감당하기 버거워하고 있었다.
동팔은 SNS를 하지 않았기에 팬들이 애정을 표시하기 위해선 직접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든가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보내는 것 이외에는 없었다.
처음과 달리 갑자기 위상이 높아진 동팔에게 다가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 하지만 얼마 전에 진혁과 지금처럼 재국이 다가가자 스스럼없이 대했다.
그 모습에 용기를 얻어 후배들이 동팔에게 다가가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모습에 코치들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진압 작전(?)에 나섰다.
"오늘 동팔이 선발인 거 몰라?"
"우리는 왜 있냐? 동팔이에게 묻기 전에 우리한테 먼저 와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해서 동팔로부터 떨어트려 놓고는 동팔에게 말했다.
"동팔아. 지금 우리랑 같이 분석 회의에 들어 와라."
"오늘은 좀 빨리 시작할 거야. 최병진!! 회의 시작이다!"
시합을 하기 전에 상대에 대한 분석은 필수였다.
상대하는 투수의 주력구가 무엇인지, 어떤 볼 배합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기본인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쌓인 자료로 타자들의 약점과 성향도 분석했다.
투수를 리드하는 포수는 상대에 대한 연구와 분석을 반드시 해야 했기에 항상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필수였다.
당연히 분석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상태나 상황을 직접 보고 느끼며 임기응변을 동원해야 했다.
동팔은 그들과 같이 작은 회의실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코치들이 들어왔고, 이번에 상대할 엑센의 타자들에 대한 분석을 나누어주었다.
"병진이는 이미 알고 있고, 다른 사람도 잘 알고 있겠지만… 엑센의 화력은 강해. 보통은 1번부터 4번까지가 중심 타선이고, 자원이 있으면 5번까지 중심 타선으로 보면 될 거야.
하지만 엑센은 아니다. 1번부터 6번까지 전부 방심할 수 없는 한 방이 있고, 나머지 7, 8, 9번 타자들도 타율이 높아. 어디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없는 타순이야. 어제 재국이가 다른 팀을 상대했을 경우,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었지만 한 고비를 못 넘어가서 당했지.
"
그건 그들이 바로 앞에서 봤기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제일 주의해야 할 타자를 알려주었다.
"엑센의 4번 타자인 민호준이야. 타율은 고만고만해. 하지만 파워가 상상을 초월한다. 걸리면 거의 넘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할 거다. 거기에 작년 OPS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어."
투수 코치는 동팔을 보며 이어 말했다.
"동팔아. 잡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잡아야 할 이유는 없어. 호준이 앞에 주자를 최소화시켜. 안타를 맞아도 되지만 볼넷만은 주지 마. 정 위험하다 싶으면 호준이만 볼넷 주고 보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호준이의 약점은 타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거야. 다만 바깥쪽 공에 특히 강해. 바깥쪽 공을 치면 거의 홈런이야. 그러니까 위험도를 낮추려면 안쪽으로 던지고… 그럼 2루타 정도로 끝날 수 있어. 운이 좋으면."
이번에 말하는 건 동팔도 그리고 같이 있는 포수 최병진과 다른 코치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투수 코치가 한 번 더 말을 한 것은 그만큼 주의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혹시 동팔이 예기치 못한 사태로 긴장하면 최병진이 올라와 주의를 환기시킬 때 유용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감독과 코치가 알고 시작 전에 지시한 것을 떠올릴 수 있기에 부담을 더는 시간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잠실보다 구장이 작은 고척이지만… 그래도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야. 전에 목동구장에 비하면 낫지. 구장이 팀에 따라 늘어났다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 조건은 같아."
조건은 같았지만 팀이 전력은 같지 않았다.
같은 전장이라도 보병에게 유리한 전장이 있었고, 기병에게 유리한 전장이 있었다.
구장이 좁다면 공력력이 더 좋은 쪽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더라도 바뀔 것은 없기에 마인드 컨트롤하는 의미로 그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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