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53화 (53/325)

[53]

"민철이 오빠랑 스틸러스 분들… 그리고 우랑우탄 분들과는 연락하고 계세요?"

"아니… 사실 요즘 훈련에 집중하다보니 먼저 연락한 적은 없었어. 그분들도 나한테 방해가 될까 봐 연락을 안 하시는 것 같은데… 조만간 다시 연락해야지."

"맞다! 윤승완 코치님은 로데에서 다시 부른 것 같던데 안 가신다고 하셨어요."

"왜? 좋은 기회잖아."

"그야…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고 계시니까 그렇죠. 동팔 오빠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분이시잖아요. 오빠에 대한 정보를 빼내려는 목적이 전부인 것을 아시니까 안 가신 거예요. 다 알려주면 전처럼 별거 아닌 이유로 쫓아낼 거라면서. 차라리 속 편하게 야구하신다고 당분간 프로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고 하셨어요."

"그랬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네."

함께하는 가족이나 이렇게 따로 만나지 않는 이상, 그들과 다시 만나는 건 작정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시즌 중이었고, 시간이 많지 않은 동팔은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도 아껴야 했다.

민희가 조심스럽게 그 말을 꺼냈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오빠는 뭔가… 쫓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4년 안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여유를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런 얘기도 있잖아요. 쉬지 않고 나무를 하면 오히려 도끼날이 빨리 닳아서 많이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중간에 쉬면서 도끼날을 갈면 그보다 더 많은 나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

"나는 처음 듣는데? 그래도 좋은 이야기니 마음에 담아둘게. 그런데 요즘 뭐 해? 일만 하는 건 아닐 테고… 저녁에 학원 다닌다고 했잖아."

"영어 학원이요. 나중에 메이저리그의 구단과 계약을 하려면 미리 공부해야죠. 구단에서도 열심히 나선다는 보장도 없고, 오빠가 오히려 너무 뛰어난 실력을 보이니 쉽게 보내주지 않을 지도 몰라요. 그러니 규정이나 유사 사례. 또는 어떻게 해야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지도 공부해야 하고… 특히 계약서는 영어로 쓸 게 뻔하니까 단어도 많이 알아놔야 하잖아요."

처음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한 동팔의 매니저였다. 하지만 의외로 RG구단을 상대로 하여 동팔에게 유리하도록 조건을 만들어내고 계약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구단에서도 민희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민희가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사실 이미 밑 작업 시작했어요. 윤승완 코치님과 같이…….'

한편, 지금 한낮인 한국과 달리 미국은 시차로 인해 깊은 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야근은 존재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노동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강력한 철퇴를 맞았다. 야근을 하게 되면 그에 맞추어 반드시 임금을 지급해야 했다.

그래서 미국의 사업자들은 직원들이 야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빨리 일을 마치고,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일반 사원들도 야근하며 시간을 빼앗기는 것보다 저녁에는 가족과 같이 있는 것을 선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업자 본인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메이저리그의 구단은 항상 뛰어난 선수를 찾고 있었다.

그 범위는 미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오지 같은 곳까지 시선이 가는 건 아니었다. 프로 구단이 있는 나라의 프로 리그의 선수들을 파악했다.

단순히 뛰어난 선수만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 메이저리그에 맞는 선수를 찾아야 했고, 적응할 수 있는지도 파악해야 했다.

아마 리그에서는 쿠바 선수를 선호하며, 프로 리그중 아시아에선 일본과 한국, 대만이 대상이 됐다.

연간 80경기 이상 하는 정규 리그가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한국과 대만이 전부였다.

그 이외에 단축 리그나 윈터 리그를 하는 나라가 있긴 했지만 그걸 다 포함시켜도 야구를 하는 나라는 15개 이상 넘지 못했다.

그런 나라는 도미니카나 베네수엘라처럼 야구 방면에 이름이 알려진 나라도 있었지만 이탈리아나 네덜란드처럼 잘 모르는 나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모든 리그에서 나온 선수들을 파악하며, 구속이 빠르고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 또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타자를 선별했다.

후보군이 추려지면 사람을 직접 보내 파악하도록 했다.

또한 그들이 직접 알아내는 길도 있었지만 때론 그 반대도 많았다.

"음… 이거 또 왔어? 지겹지도 않나?"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기 위해 어떻게 알아냈는지 몰라도 관계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소개만 하면 보지 않을 것이 뻔하기에 관련된 자료와 영상까지 첨부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문제는 영상을 첨부할 경우, 용량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인터넷 주소로 링크를 걸어놓았다.

그러나 미국의 인터넷은 한국에 비해 빠르지 않아 링크를 걸어도 온전한 영상이 나오기 전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좋은 선수를 알게 되고, 선수도 인정을 받는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았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메일을 보내서 소개할 정도라면 프로 리그에서도 인정을 못 받는 뜨내기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는 담당자는 이런 메일이 오면 바로 지워버리곤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작년부터 계속 보내고 지랄이야."

그는 항상 그렇듯이 방금 전에도 한국에서 온 메일의 내용을 보지도 않고 지우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단어가 눈에 걸렸다.

"동…팔?"

이미 구단에서도 강동팔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

강속구를 던지는 모든 투수는 그들의 정보망에 바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로데와의 경기에서 8회 말에 등판했다.

하지만 그가 던진 공의 위력은 그날 밤 대한민국을 흔들었고, 그 여파가 미국까지 도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첫 선발 등판에 데뷔전을 노히트 노런의 완봉 승으로 끝냈다.

이닝 소화 능력은 물론이고, 헛스윙을 유도해 삼진을 만들어 내는 능력과 범타를 유도하여 효율적인 투구를 보여주었다.

'이전에는 상대하는 팀이 한국 프로 팀이라 넘어갔지만 지금은 한국 팀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10년 전만 해도 메이저리그는 한국 프로 야구를 무시했다. 잘해봐야 자신들의 트리플 에이급. 즉, 마이너급이면 잘 봐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방이라고 무시하던 한국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올림픽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메이저리그의 타자들을 돌려세우는 투수들과 뛰어난 투수들의 공을 때려 타점을 만들어내는 타자들.

그 이후로 한국 리그에 대한 관찰과 연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평가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사이로 보고 있었다.

다만 아직도 깨지지 않은 판단은 있었다.

'일본 리그만큼은 아니지만… 인기가 많고 뛰어난 선수가 있는 곳이지…….'

그들은 여전히 한국 리그를 일본보다 한 수 아래로 판단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야구 인프라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과 규모였고, 이는 프로팀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국가대항전과 같이 하나의 최정예 팀을 만드는 것이라면 한국도 미국이나 일본에 뒤쳐지지 않은 팀을 꾸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 겨우 하나의 팀을 만들 수 있다면 일본은 그보다 2~3개의 팀을, 미국은 10개의 팀을 만들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전과 달리 한국 프로 리그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동팔이 160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그는 혹시나 하며 메일을 열어보았다. 덤으로 그 메일을 제외한 다른 메일은 전부 휴지통으로 들어갔지만.

"흐음……."

메일의 내용은 간단했다.

[아래 링크된 영상을 확인해보세요.]

동팔에 대한 소개는 전혀 없었다.

문장은 단 하나. 하지만 많은 단어와 정보보다 그 한 마디가 그의 손을 강하게 이끌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링크가 된 파란색 주소를 클릭하자 유투브 영상으로 넘어갔다.

조회수가 많진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유투브에 나오는 영상은 동팔이 레슨장에서 공을 던지는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보던 그였지만 곧 세 개의 고리를 설치하는 것을 보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설마 저걸 통과한다고? 한두 개 통과하면 모를까… 세 개를?"

하지만 동팔이 공을 던져 깔끔하게 세 고리를 통과하자 그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두 개도 아니고! 정말 세 개를?!!!"

처음에는 우연인가 싶었다.

하지만 영상은 편집을 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중간에 끊이지 않았고, 계속 재생되었다.

동팔은 중간에 카메라를 끄지 않은 상태로 계속해서 공을 던졌다.

처음에는 커브. 다음에는 슬라이더.

커브의 구속은 130에 달했고, 슬라이더는 150에 육박했다.

그의 입장에서 레슨장의 스피드건의 숫자가 정확하다는 신뢰가 없었다. 하지만 그도 메이저리그에서 많은 선수들을 보았고, 또한 많은 공을 보았다.

숫자가 아니더라도 동팔의 구위를 보면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제구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동팔의 제구력에 감탄을 하던 그였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젠장… 설마… 이 메일을 나 한 사람에게만 보냈을 리도 없고……."

혼자만 알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분명히 다른 구단의 사람들에게도 같은 메일을 보냈을 것이 뻔했다.

그럼 달라지는 것은 담당자들 중에 누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메일을 열어보았는지 정도였다.

이미 그들도 동팔이 160의 강속구를 던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경쟁률은 더욱 더 높아지게 되며, 이것은 결국 동팔의 몸값이 더 높아지게 된다는 의미였다.

'지금 당장 접촉해야 하나? 그런데 이번에 데뷔했다면 포스팅 금액을 어느 정도까지 책정하고 보고해야 하지?'

덕분에 그는 곤히 잠든 남들과 달리 잠에 빠질 수 없게 되었다.

한두 사람이 아닌, 메이저리그의 선수를 포섭하는 사람들을 잠 못 들게 한 장본인은 애인과 함께 점심을 먹고 나왔다.

"정말 오빠 유명인 다 됐다. 이런 것도 좋지만… 전처럼 편하게 햄버거 먹던 게 그리울 때도 있어요."

"너도? 나도 그래. 그냥 공을 잘 던지려고만 했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몰릴 줄은 몰랐지."

"하긴. 고교 때도 인기가 많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아니었으니까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동팔은 따듯하고 부드러운 민희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손가락 사이에 느껴지는 민희의 손가락이 동팔로 하여금 계속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RG의 훈련장이었다. 잠실에서 경기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우산이 홈구장으로 썼다.

동팔은 2시가 되기 전에 도착해야 했기에 1시가 넘은 지금은 조금 빠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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