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지완의 과거
남궁지완이 처음으로 야구를 접한 건 초등학생 4학년 때였다.
아빠와 캐치볼을 하던 중, 아빠가 아들의 공 던지는 모습이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캐치볼을 하다가 아는 사람을 통해 리틀 야구단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완은 단연 독보적인 투수가 되었다.
동년배에서 지완의 공을 칠 수 있는 타자가 거의 없었다. 간혹 안타를 맞았지만 그건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었다.
"지완아. 이번에 공 좋았어."
"이번 경기에서도 부탁해."
"너만 믿는다. 지완아."
부모님은 물론 사람들의 시선을 마운드에서 한 몸에 받자 지완은 그 자체로 즐거웠다.
기대감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가끔은 있었지만 자신이 인정받는 그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중학생까지였다.
고등학생이 되고, 명문 야구부에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도 뛰어난 투구를 보이며 청룡기 우승의 한 축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단 한 명의 등장으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은 지완에게서 그에게로 돌아갔다.
"강동팔이라고… 엄청난 투수가 나왔다면서?"
"고1인데 벌써 구속이 145를 찍었다던데?"
"내년이면 150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며? 거기에 변화구도 절묘하다지? 커브를 치는 사람이 아직도 없어."
구속, 구위, 제구.
거기에 마운드에서 보이는 공격적인 피칭과 대범함.
모든 것에서 그를 이길 수 없었다.
그 이후로 3년 동안 2인자라는 말이 그를 따라다녔다.
"동팔이 다음이면 역시 지완이지 않냐?"
"동팔이만큼 아니지만… 그래도 뛰어난 투수지?"
"동팔이 하위 호환이랄까? 그래도 변화구 던지는 게 조금 다르지 않나?"
"구종은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강동팔보단 영……."
그것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것도 모자라 동팔에겐 한눈에 반할 정도로 예쁜 애인까지 있었다. 계속 야구만 하면서 여자친구 하나 없는 자신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지완은 당시 고교 감독님께 부탁했다.
"감독님… 저도 동팔이처럼 계속 출전하게 해주세요. 제발요……."
자신과 동팔의 눈에 띄는 제일 큰 차이점은 경기에 나서는 횟수였다.
실전을 더 거치면 더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로 한 부탁이었지만 당시 그의 스승은 허락하지 않았다.
"안 돼. 지금은 동팔이를 이기지 못해서 답답하겠지만… 지금의 너한텐 이게 최선이야. 내가 하는 말은 3년 안에 확실히 알게 될 거다."
"그럼 청룡기 우승은요? 동팔이를 이기지 못하면 절대로 청룡기 우승을 할 수 없잖아요."
그때, 지완의 스승님은 답했다.
"청룡기 우승보다 네가 더 소중해. 너는 그걸 알고 있어야 한다."
스승님의 그 말에 지완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3년 동안 동팔에 막혀 그가 다니던 학교는 청룡기 우승에 가지 못하고 준우승이나 4강에서 끝이 났다.
시간이 흘러 그의 스승의 말은 사실대로 이루어졌다.
"동팔이 이번에 방출되었다면서?"
"고등학교 때 혹사당한 후유증이라더라."
"완전히 재기할 수 없다며?"
동팔은 당시 지완이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락에 떨어졌다.
반면 지완은 이전부터 해온 훈련이 켜켜이 쌓여 결국 그때의 동팔보다 더 높은 구속을, 더 강한 구위를, 더 뛰어난 제구력을 가지게 되었다.
스승의 말은 옳았다.
결국 두 사람 사이의 승자는 살아남은 지완이었다.
스펙이나 경험으로도 동팔의 전성기 때보다 강해졌다.
하지만 지완은 동팔을 이겼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지완이 원했던 것은 단 하나.
'어떻게든… 직접 맞붙어서 이기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라이벌로서 경쟁심이었다.
그러다 동팔이 혹사에 의한 부상으로 방출되었을 때 드는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하지만 그 안타까움은 곧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해도 동팔과 직접 겨루지 못한 공허함이 지완의 마음을 채워 나갔다.
그러다 지완은 여전히 동팔과 헤어지지 않은 혜진을 보며 이런 결심을 했다.
'혜진이의 마음을 얻으면… 조금은 달라질까?'
지금의 상태에서 절대적인 우위는 자신에게 있었다.
동팔은 더 이상 야구선수로서 재기할 수 없었다.
야구만 해 온 동팔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자신은 오성의 선발 투수가 되었고, 더 성장하면 에이스로서 1, 2, 3선발 중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연봉, 스펙에서 이젠 동팔을 모든 것에서 압도했다.
이제 남은 것은 혜진의 마음을 돌려놓을 자신의 행동과 마음이었다.
지완이 꾸준히 달려든 덕분에 혜진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고, 2년간 비밀 연애를 했다. 그리고 결국 동팔과 혜진을 헤어지게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다.
처음에는 좋았다.
동팔을 이겼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후련했다.
하지만 이내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고작 이런 걸로 동팔을 이겼다고 자위질이라니…….'
그렇다고 혜진과 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동팔과 사귀고 있었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달려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니 책임지는 건 당연했다. 그것이 그의 자존심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지완은 동팔의 재기 소식을 듣게 되었다.
"RG에 입단? 어떻게……?"
이전부터 동팔의 상황을 수시로 체크했다.
고작 120이 최고 구속이고, 변화구의 종류가 늘었으며, 제구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프로에 들어갈 수 없다.
신기하게 생각되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애초에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이제 더 이상 신경 쓸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팔이 로데와의 개막전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 자신이 예상했던 모든 것이 깨졌다.
"동팔이 160의 강속구를 던졌다면서? 투심까지 제대로 잘 던졌다더라."
"변화구도 커브는 기본에 슬라이더랑 체인지업까지 있다지?"
구속도, 구위도, 구종도 모든 것에서 다시 자신을 압도했다.
동팔이 처음으로 선발 등판을 하던 때는 자신의 구단인 오성과의 경기였다.
지완은 더그아웃에서 동팔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동팔이 공을 던질 때마다, 그가 강속구를 뿌리며 오성의 타자들을 돌려세울 때마다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자신에게도 쏟아지지 않던 환호를 단 한 번의 선발 등판으로 받고 있었다.
지완은 기시감을 느꼈다.
'그때랑… 똑같아… 완전히…….'
고교 때 이후로 느끼지 않았던 패배감과 무력감.
당시엔 동팔이 혹사를 당하면서 등판했을 때라 무리한 상태에서의 성적이었다.
또한 그때의 지완은 무리하지 않고, 착실하게 훈련을 받아가며 자신의 실력을 쌓아가던 때였다.
이후에 생각하면 그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의 차이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핑계에 불과하게 되었다.
동팔은 혹독한 시간을 거쳐 완벽하게 부활했다.
지금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구위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지는 건가 하는 무력감과 절망이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지완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잘됐잖아? 고작 불펜에 겨우 붙어 있는 녀석을 눌러버리는 것보다 이렇게 선발 대 선발로 붙는 것이 훨씬 더 나아.'
분명히 뛰어난 구위를 지니고 있었지만 단순히 공을 잘 던지는 것만으로 승리를 거둘 수는 없었다.
동팔의 공이 위력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타자들과 용병으로 온 타자들이 치지 못할 공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지완은 경기장의 관중석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혜진이는 왜 안 보이지?'
동팔과 헤어지기 전에는 눈에 띄는 것을 싫어했기에 오지 않았지만 헤어진 작년부터는 자주 오곤 했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기에 오늘 같이 잠실에서 경기가 열리면 거의 관람을 오는 그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동팔이 때문에?'
원래 좋아하던 사람이 동팔이었기에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완은 그런 생각을 애써 지우려 했지만, 혜진이 종종 보이던 반응을 떠올리면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동팔이 재기하여 돌아 온 이후, 혜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가끔 창백해지기도 했고, 때론 손을 떨기도 했다.
이후 더 이상 경기장에서 혜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하면 혜진의 답변은 항상 같았다.
―미안… 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몸이 안 좋으니 억지로 나오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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