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50화 (50/325)

[50]

그날 밤.

RG는 동팔을 시작으로 3연승에 성공했다.

로데와의 개막 2연전은 1승 1패.

그리고 오성과의 경기에서 2연패를 당한 후 첫 3연승이었다.

이제 정규 시즌 초반.

그것도 고작 7경기만 치렀다.

그래도 5할이 넘는 승률인 4승 3패를 기록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대부분의 시즌 초반을 부진하게 보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수들의 훈련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경기를 마치고 승리의 기쁨을 누린 후에는 선수들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야구선수인 그들에게는 퇴근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회사원에게 야근이 주어지듯이, 경기가 길게 가면 그만큼 퇴근시간이 늦어진다.

회사원들이 퇴근을 하면 전부 노는 것도 아니다.

퇴근 이후에 자기 개발에 시간을 쏟아붓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야구선수에게 그런 개념은 경기 끝나고 난 후, 각자 개인 훈련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선발투수로 나선 소르스와 중간 계투를 한 투수 그리고 마무리를 투수와 필드에서 열심히 뛴 선수를 제외한 남은 사람들 중에서 개인적인 훈련을 하는 사람은 절반 정도다.

하지만 오늘은 평상시와 달리 많은 선수가 집에 가지 않고 있었다.

그중에는 오늘 선발로 등판한 소르스도 있었다.

다른 선수들, 특히 같은 용병 입장인 히네신스와 호프가 다가와서 물었다.

"오늘 집에 안 가?"

"안 그러면 몸 망가진다."

그들이 말에 소르스가 답했다.

"알아. 오늘은 그냥 몸 좀 가볍게 풀려고. 스트레칭만 하고 갈 거야."

그 말을 하는 사이 소르스의 눈은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동팔을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 혼자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RG의 선수들 중 상당수가 동팔이 운동하는 것을 힐끔 힐끔 봤다.

그들 대부분은 동팔이 하는 훈련을 따라 하거나,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부 동팔의 운동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했다.

'강속구를 괜히 던지는 게 아니지.'

'동팔이 따라 하면 나도 언젠가 강속구를 던질 수 있을지도…….'

특히나 투수들의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오늘은 경기가 끝나고 운동을 하지 않던 선수들도 와 있었다.

평상시 운동을 하던 선수들은 동팔이 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을 소화하고 있었다.

전에는 3세트로 끝나던 횟수가 이젠 5세트 이상을 목표로 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며 제일 흐뭇해 하는 사람은 코치들과 감독였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하라고, 하라고 말해도 안 하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네."

"이것도 동팔이 덕분이라고 봐야 할까요?"

"이 정도면 됐다고 안주하던 애들도 자극을 받아 나오거나, 훈련량을 더 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임상훈 감독은 좋아하면서도 한 가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상시에 하던 것보다 너무 많이 하면 안 좋아. 그러니까 무리하지 않도록 조절시켜. 특히 내일 경기 나오는 애들은."

운동도 평상시에 해야 많은 훈련량을 감당할 수 있는 법이다.

갑자기 운동량이 늘어나면 오히려 고통과 부상의 위험이 있었다.

이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포함하여 어떻게 훈련을 더 시킬까 고민했지만,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

물론 이것도 코치들과 감독의 행복한 고민이지만 말이다.

한편, 오늘의 동팔은 평상시처럼 많은 운동을 하지 않았다.

가볍게 몸을 풀 정도(하지만 이것도 다른 선수들 입장에선 강도 높은 양이었다)로 마무리하고, 팀의 4번 타자인 히네신스에게 다가갔다.

"헤이. 히네신스. 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오, 통팔? 뭔데?"

"다른 게 아니라 타격할 때 말인데요."

동팔이 영어를 잘 하기에 두 사람의 대화는 막힘이 없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외국인 용병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두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한국인 선수들이었다.

동팔과 히네신스는 무언가 이야기를 하더니 헬스장을 나와 다른 곳으로 갔다.

두 사람이 간 곳은 바로 타격 훈련장이었다.

"갑자기 웬 타격 훈련을 하겠다는 건데? 정말로 메이저리그로 가려고?"

히네신스도 동팔의 구위를 보고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타격 연습의 조언을 구하는 동팔의 부탁을 듣자 바로 그 생각이 떠올랐다.

동팔의 목표는 메이저리그 입성 그리고 월드 시리즈 우승이다.

그러기 위해선 투수가 9번 타순에 배치되는 메이저리그의 룰을 따라 타격 연습을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타격에 히네신스의 조언을 구하는 건 다른 이유였다.

"공을 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가능한 빨리 치고 싶은데 그 사람 타구를 친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누군데?"

"그건……."

동팔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나를 속이고 애인을 빼앗아간 녀석이요."

동팔의 말에 히네신스의 반응이 바로 나왔다.

"뭐? 그런 녀석이 있어? 아주 못된 녀석이네. 그게 누군데?"

"남궁지완입니다."

그제야 히네신스는 동팔이 왜 다른 사람도 아니라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았다.

"아! 하긴 그럴 만해. 그 친구 공을 제일 많이 친 타자가 나니까."

RG 내부 한정으로 히네신스가 제일 높은 확률로 남궁지완의 공을 쳐냈다.

히네신스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동팔의 등을 거칠게 여러 번 때리며 말했다.

"좋아. 좋아. 선수라면 역시 필드에서 승부를 봐야지. 그리고 널 떠난 전 애인에게도 단단히 보여줄 수도 있고. 타격 연습이랑 훈련은 얼마나 했어?"

동팔은 자신의 타격폼과 배팅볼을 이용한 타격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볍게 치는 것 같아도 멀리 날아가는 공을 보며 히네신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웨이트 할 때부터 짐작했지만 힘이 장난 아니야. 타자해도 되겠어. 이러다 내 밥그릇도 빼앗기겠다."

타격하는 동안 동팔의 몸은 전혀 요동이 없다.

굳건한 지지대를 땅에 박아 넣은 것처럼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쳐도 하체가 흔들리지 않았다.

동팔의 입장에선 당연했다.

이전에는 더 무거운 배트를 들고 단단한 기둥을 후려쳤다.

그때 느낀 반발력과 충격에 비하면 공을 치는 것은 너무 약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강타자가 될 수 없었다.

히네신스는 농담에 이어서 진지한 충고를 했다.

"그런데 주로 힘으로 밀어치는 것 같아. 사실 강속구를 상대로 하려면 배트 스피드가 더 빨라야 하거든. 그리고 기본 타격 폼은 좋지만 아직 익숙하게 이어지지 않고 있어.

투구할 때도 그렇지만 뭐든지 휘두를 때 타이밍이랑 밸런스가 맞아야 해. 지금 통팔을 보면 허리의 움직임이 좀 어색해. 그래서 하체에서 올라오는 힘을 제대로 못 받고 있어. 그것 때문에 아마 스피드가 떨어진 게 아닐까?

"

히네신스는 자신의 훈련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어서 남궁지완에 대한 공략법도 알려주었다.

"강한 투수란 건 통팔도 알 거야. 하지만 못 칠 투수는 아니야. 그랬다면 평균자책점이 제로였겠지. 지금의 통팔처럼."

다음 날 아침.

RG의 프론트에서 방금 전에 임상훈 감독이 직접 작성하여 보낸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한 선수의 등장으로 팀이 바뀐다라… 좋은 신호인데 복잡하군……."

보고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동팔의 선발 등판으로 인해 얻을 구단의 수입.

그리고 이후에 예상되는 동팔의 성적.

또 팀 안에서 동팔로 인해 생긴 다양한 변화들과 그 여파에 대한 내용이었다.

전부 다 좋은 소식이었다.

동팔이 등판하는 날은 최소한 패배할 확률이 거의 없다.

예상되는 성적은 20승 이상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거기에 동팔이 열심히 훈련하기에 그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다른 선수들도 전보다 더 훈련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주의 표정이 마냥 좋지 않은 것은 동팔의 계약 조건 때문이었다.

지금 동팔의 예상되는 성적으로는 연봉 10억 이상도 가능하다.

연봉이 구단주의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돈을 써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몰라도 그 값을 하니 연봉은 상관없어. 하지만… 계약기간이 너무 짧아. 2년 이상 계약하지 않으려는 걸 옵트아웃으로 겨우 잡은 거였으니 어쩔 수 없지만……."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 자유계약조건을 얻기 위해선 9시즌 동안 리그에서 일정 이상의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했다.

보통 처음 입단하는 선수들은 다년 계약을 선호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1년 계약이다.

다년 계약이나, 계약금을 받을 수 있는 선수는 자유계약 조건을 만족시킨 선수 또는 신인 선수 중에서 1, 2순위로 지명된 특별한 선수에 한했다.

그렇게 따지면 동팔에게 조건이 걸렸다.

하지만 다년 계약을 한 것도 구단의 입장에선 최대한 성의를 보인 것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강동팔을 계속 붙잡고 싶었다.

이런 초특급 투수를 언제 또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계약기간을 더 늘리고, 항상 보호선수로 등록하여 타팀으로 가는 걸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상태에서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 강동팔 선수는 2년 동안 다른 구단과 계약할 수 없으니 그사이에는 떠돌이 신세가 된다. 이런 전력을 그냥 두는 것도 미친 짓이지. 이적료도 못 받고, 구단 이미지에도 안 좋고, 선수와 악연을 만들게 되니 최악이야……."

자신들의 생각대로 할 수 없다면 구단의 이득을 생각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나마 포스팅 금액이라도 많이 받아내기 위해선 가능한 빨리 팔아야 하는데… 역시 메이저리그 구단 중에서 어디까지 부를지 아직 알 수 없으니 원… 그리고 연봉을 좀 많이 줄 걸 그랬나? 그럼 더 많이 받아낼 수 있었을 텐데……."

이미 구단주를 비롯해서 감독과 코치들 그리고 일부 선수들은 강동팔이 메이저리그로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그에 대한 동팔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의지로만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제일 중요한 변수를 고려해야 했다.

그건 다른 것이 아니라 동팔의 실력이었다.

"160의 강속구에 제구력이 있는 것만으로 이미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들이 움직였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고… 이제 남은 건 강동팔이 한국 리그에서 얼마나 빼어난 성적을 거두는지로군. 거기에 따라… 그를 데려가기 위해 제시할 포스팅 금액이 달라지겠지……."

포스팅 금액에 따라 구단은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 동팔을 메이저리그에 보내는 시기도 빨라질 수 있었다.

너무 늦게 보냈다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편, 스크레이치는 RG구단주의 뒤에서 계약서와 현재 상황 보고서를 같이 보고 있었다.

악마가 바로 옆에 있었지만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구단주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악마는 동팔의 상황을 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빨리 진출할지도 모르겠어. 예상보다 그의 성장이 너무 빨라."

이대로라면 동팔이 정해진 기간 안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꽤 높았다.

좋은 사냥감을 그냥 두어 절대 놓칠 생각이 없는 스크레이치.

"이대로 두면 안 되겠군. 역시 걸림돌을 만들어두는 것이 좋겠어. 한동욱이 생각보다 깐깐하니 쉽게 조종할 수 있는 녀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 말을 하면서 문이 아닌 벽을 통과하며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쓰기 좋을 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름이… 남궁지완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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