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49화 (49/325)

[49]

"그럼…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그야 사나이라면 당연히 허락해야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야. 리그 중간에 조정할 수 있다면 최대한 조종하도록 하마. 우천취소나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순서가 바뀔 순 있으니까. 대신 중간에 계투 요원이나 마무리로 들어갈 수 있는데 괜찮겠어?"

감독의 물음에 동팔은 고개를 힘차게 한 번 끄덕이며 말했다.

"네. 당연히."

오늘은 오성의 2선발인 남궁지완이 등판하는 날이다.

아직 리그 초반이고, 우천취소도 없니 각 팀의 2선발이 맞붙기 마련이다.

동팔이 비록 RG의 선수이긴 했지만 남궁지완의 투구 내용과 결과에 더 신경이 쓰였다.

동팔은 앉았다가 힘차게 일어나며 스쿼트를 마무리하며 생각했다.

'지완아… 적어도 작년보다 더 나아지지 않으면… 또 내 뒤에 있게 될 거야. 평생…….'

또한 평생은 아니더라도, 잠시나마 혜진에게 후회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퇴근시간이 되어가자 혜진은 업무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늘 남궁지완이 등판하는 것을 포함해, 프로야구의 경기 일정과 각 팀의 선발투수를 알려주는 기사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옆에 있던 동료가 그녀를 보더니 물었다.

"혜진아. 몸 괜찮아? 왠지 힘이 없어 보여."

"응? 아냐… 걱정할 거 없어."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뭐 보고 있어? 어머? 혹시 애인 등판하는 거? 이번에도 가는 거야?"

"아니, 이번엔 오성이 홈에서 하니까… 대구까지 내려가기가 좀 그래."

"아~ 그러겠다. 아쉽겠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업무를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혜진의 안색은 동료가 걱정한 것처럼 창백한 상태 그대로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

동팔이 재기를 준비하던 레슨장에선 사장님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사장님의 함박웃음의 근원은 바로 이번 달 매출액이었다.

특히나 사장님의 눈길을 끈 것은 동팔이 선발투수로 나온 이틀 전부터였다.

다른 날과 달리 그날은 단위가 달랐다.

레슨장의 수입은 주로 공을 던질 장소의 제공 및 투수 코치다.

1회성으로 간단하게 오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일정 기간 안에 정해진 횟수로 돈을 받는다.

예를 들면 '4주에 주 2회씩, 총 8회에 얼마' 이런 식이다.

동팔이 선발 등판한 그날 문의전화가 폭주했다.

어제는 주변에 아마야구단에서 단체로 등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덕분에 스케줄을 세밀하게 조정해야 하는 수고가 있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등록하니 좋지 않을 수 없는 사장님.

그래도 고민은 있었다.

'그런데 왜 동팔이 던진 마운드에서만 던지겠다는 거지?'

레슨장에 있는 마운드는 3개다.

레슨장이 서울에 있는 바람에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운드가 3개 있는 건 타격보다 투수 코치에 주력하다보니 가능한 배치였다.

그런데 3곳 중 한 곳만 사람들이 몰리고, 다른 곳은 놀고 있으니 사장님으로선 그게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이거… 억지로 저곳에 던지게 할 수도 없고. 차라리 동팔이 던진 곳에 프리미엄을 붙여서 더 비싸게 할까? 하지만 이미 등록한 상태니 더 올린다고 해서 당장 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고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는 사장님이다.

그는 동팔이 던지지 않은 곳에 회원들이 공을 던지게 할 방법이 없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TV에서 오늘의 프로야구가 중계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사장님은 중얼거렸다.

"동팔이가 등판하는 것도 아니니… 다른 구단 좀 볼까?"

사장님이 채널을 돌린 곳에서는 오성과 CT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동팔이랑 남궁지완이랑 좀…….'

동팔의 연애사를 알고 있기에 모르는 척 지나갈 수 없었다.

특히나 지금 오성의 선발투수는 남궁지완.

사장님은 채널을 고정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남궁지완이 투구를 할수록 사장님은 혀를 작게 차며 중얼거렸다.

"잘 던지네… 얄밉게……."

남궁지완의 최고 구속은 포심 패스트 볼이 154킬로.

그 이외의 다른 직구는 던지지 않았다.

변화구는 커브를 기반으로 포크볼과 빠른 슬라이더를 던진다.

간혹 가다가 회전을 거의 주지 않는 너클볼을 던지기도 했다.

너클볼을 던지자 중계석에서는 남궁지완에 대한 칭찬이 나왔다.

[너클볼은 마구 중에 하나라고 하죠. 회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외부 변수로 인해 어떤 움직임을 가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만큼 제구하기 어려운 구종이기도 하죠. 국내는 물론 메이저에서도 던지는 투수가 많지 않은 구종입니다. 거기다 치명적인 문제는 남궁지완 투수가 너클볼을 던질 때, 몸의 동작도 달라지기 때문에 타자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도 치기 어렵죠. 너클볼은. 타자도. 포수도. 심지어 투수도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공이거든요.]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말한 대로 너클볼의 장점을 잘 살려 상대하던 타자를 내야 땅볼로 처리한 남궁지완.

이번 이닝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올리고 더그아웃으로 향해가는 남궁지완의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포커스로 잡혔다.

[국내 토종 투수 가운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투수입니다. 지금 강동팔 선수에 가려지긴 했지만 작년의 국내 선수들 중에선 첫 손가락에 뽑히는 투수죠.]

[정규리그 중 30경기에 나왔고 18승을 거두었습니다. 퀄리티 스타트(QS)는 23회. 그중에 하이 퀄리티 스타트는 17회였습니다. 리그 정상급 투수지만 올해는 생각보다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강동팔 선수 때문이죠? 두 선수의 나이가 같으니, 이렇게 보면 고교 때로 다시 돌아온 것 같네요. 남궁지완 선수가 좋아할까요?]

[물어보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돌아와서 다행이라 말했습니다.]

[생각보다 통이 큰 선수인가 봅니다. 저 같으면 배 아파서 잠도 잘 안 올 것 같은데요. 그럼 두 선수가 맞붙는 날이 올까요?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지금 일정대로라면 두 사람이 같은 경기에 나설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맞붙게 되면 투수전으로 갈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리그 정상급 투수 둘이 붙으니 타선이 얼마나 푸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겁니다.]

그 이후로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중계 내용으로 계속 이어나갔다.

캐스터와 해설위원의 말에 중계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궁금해 했다.

"남궁지완이랑 강동팔이 맞붙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이상하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투수끼리 맞붙는다고 실력이 갈려지는 건 아니잖아? 양 타선의 실력이나 상황도 봐야 하고, 운도 결과에 큰 영향을 주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그 경기에서 승리한다고 한들 투수에게 승리한 건 아니잖아. 그 팀이 상대하는 팀을 이겼을 뿐이지. 투수와 타자의 대결도 아니고."

투수끼리의 비교는 같은 팀에서도 쉽지 않다.

거기다 다른 팀이라면 상대하는 타자들도 조금 다르기에 완전히 같은 조건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같은 성적을 거두어도, 아니면 약간 차이가 나는 성적을 거두어도 그것이 두 투수의 승패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다만 미디어나 팬들 사이에서 가십거리로 비교할 뿐이다.

그것은 남궁지완은 물론 동팔도 잘 알고 있다.

방금 전에 공을 던지고 더그아웃에서 쉬고 있는 남궁지완.

그는 얼마 전에 동팔이 던진 구위를 생각했다.

'160의 직구도 위력적이지만, 이전의 주력구였던 커브도 마찬가지. 그리고 슬라이더의 속도도 빠르고 체인지업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것까지 있어…….'

그는 동팔이 노히트노런으로 데뷔전을 완봉한 것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았다.

6년 전의 구위도 뛰어났지만 그때보다 더욱 위력적인 구위를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 나는 구속이 155가 최고기록이야. 결정구로 던질 수 있는 건 커브와 포크볼뿐이고. 너클볼이 있지만 주력구라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냐. 슬라이더는 비슷한 것 같지만 제구력의 비교는 쉽지 않아. 그건 본인만 아는 것이니…….'

투수가 공을 던지고 난 다음, 그 공이 투수 자신이 생각한 곳으로 갔는지 아닌지는 투수 본인만 알고 그 다음으로 사인을 보낸 포수가 잘 안다.

제구력에 대해 말하지만 실제로 제구가 잘 되는지, 안 되는지는 자료의 축적을 통해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전부다.

비록 남궁지완이 동팔에 대해 질투심을 가지고 있지만 둘 사이의 차이는 명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동팔의 구위가 더 좋아. 그건 인정해. 하지만… 승패는 구위만으로 정해지지 않아.'

팀의 타선은 오성이 더 우위에 있다.

잠실구장이 상대적으로 더 넓기에 그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RG는 타자보다 투수에 더 신경을 쓴다.

홈구장이기에 경기의 절반을 잠실구장에서 하니 거기에 전력을 맞추는 것이다.

다른 구장에선 홈런이 되는 타구가 잠실에선 큰 외야 플라이로 끝나니 투수를 더 중점적으로 키우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같이 쓰는 우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비율은 RG에 비해 타자에 더 쏠려 있었다.

그 이유를 포함하여 여러 요인이 합쳐져 작년 시즌에 우승할 수 있었다.

강동팔과 남궁지완의 맞대결에 대해서는 미디어에서도 슬슬 흘려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강동팔의 감동의 재기 스토리였다면, 이젠 고교 시설 라이벌로 있었던 두 사람이 과거를 비교하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도 투수끼리의 비교가 무리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단순했다.

승패를 떠나 경기에 이야기가 스며들게 되면 그 자체로 흥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고 강동팔과 남궁지완의 투수 맞대결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될 투수전의 묘미를 즐기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심지어 당자사인 남궁지완도 몰랐다.

두 사람의 대결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리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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