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45화 (45/325)

[45]

처음부터 단순하게 나가자 신해민도 강동팔의 작전을 알아차렸다.

'내가 약한 공 그리고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서 안 치면 불리하다. 하지만 치더라도… 제대로 맞지 않으면 밀려서 장타는 물론 단타도 기대할 수 없어.'

전략과 전술이 통하는 상대는 그나마 약한 쪽이 상대할 여력이 있을 때 이야기다.

스펙 자체가 상대적으로 너무 높으면 전략도 전술도 없이 찍어 누르면 그만이다.

바로 지금처럼.

그렇다고 해서 마냥 당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또 다른 기록이 희생양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쉭~

이번에도 몸쪽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궤적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공.

그리고 이미 동팔의 강속구를 기다리고 있던 해민은 공을 던지자마자 배트를 휘둘렀다.

공을 보지도 않고 휘두른 배트.

그래야 겨우 동팔의 강속구에 배트가 겨우 닿을 수 있었다.

따악~!!

동팔의 공을 치지도 못하던 오성의 타자들 중, 강속구에 배트가 닿은 타자는 그를 포함해 이승협과 김현우가 전부다.

앞의 두 사람과 달리 힘이 부족했기에 그보다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높이 떠버렸다.

누가 보더라도 플라이아웃이 확실했다.

다만 공이 날아간 곳이 불안했다.

"아, 중견수 방향……."

"또 실책은 아니겠지?"

그것을 아는지 중견수의 자세는 조금 불안했다.

전 이닝에서 자신의 실수를 알기에 더욱 긴장하고 있었다. 우익수가 그의 뒤쪽에서 공이 빠지더라도 커버할 수 있게 위치해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지켜봤다.

아무리 긴장했다지만 프로인 이상 평범한 타구를 놓친다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툭.

공은 가볍게 중견수의 글러브에 들어왔다.

중견수가 공을 잡자 RG의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전부 튀어 나왔다. 그 장면을 보면서 중계석에선 중계를 이어나갔다.

[방금 전 실책 만회하는 유은성 선수. 이걸로 마음의 빚을 조금 덜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강동팔 선수, 데뷔 첫 승을 완봉승. 거기에 노히트노런으로 기록합니다. 사실 퍼펙트게임이었다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퍼펙트게임인데요.]

[그렇죠. 아쉽긴 하지만 그 대기록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강동팔 선수가 지금과 같은 구위를 유지하기만 해도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RG의 선수들과 팬들은 연패를 끊은 것에 그리고 대기록을 세운 것에 환호하고 기뻐했다.

선수들은 승리를 기뻐하며 팬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동팔이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어 인터뷰를 하면서 경기는 마무리되었다.

남궁지완은 동팔이 선수들과 팬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을 오성의 더그아웃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고 상대팀이 이겼다.

그것도 투수 한 명을 공략하지 못하고 완벽하게.

만약 이승협의 행운의 실책으로 출루하지 않았다면 한국 프로야구의 첫 퍼펙트게임의 희생양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그들이 안도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분위기와 표정이 어두운 건 당연했다.

하지만 남궁지완이 표정은 오성의 선수들과 조금 달랐다. 그는 아무 말하지 않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았다.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받지 않는 혜진의 번호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한편, 경기가 끝나고 스틸러스와 우랑우탄 사람들은 전지를 걷고 경기장을 나왔다.

이미 여러 번 중계 카메라에 찍혀 명물이 된 그들은 사람들의 인사와 환호를 받으며 즐거워했다.

민철은 오늘 경기에서 동팔이 투구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흐음… 그건 안 좋은데… 설마 아직까지 못 고친 건가……?"

악마의 조카, 웜우드

수많은 축하를 뒤로하고 동팔은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이미 먹었고 경기가 끝난 시각은 9시 30분이었다.

그 이후로 인터뷰를 비롯하여 각종 언론의 취재를 거쳤다.

집에 겨우 돌아온 시간은 11시.

그것도 동팔의 호투와 RG가 적은 점수를 얻어 빨리 끝난 것이다.

"동팔아. 고생했다. 씻고 푹 자."

"네. 아버지."

많은 말이 하고 싶었지만 동팔이 피곤할까 봐 꾹 참고 배려하는 가족들이었다.

동팔도 처음으로 선발투수를 했기에 정신적으로 피곤한 상태였다.

동팔은 뜨거운 물로 샤워한 다음, 이미 펴 놓은 이불로 몸을 덮었다.

그러자 보일러의 온기가 단번에 느껴졌다.

이 상태라면 단번에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과거의 경험대로 동팔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나 새벽이 되자 동팔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다시 깨어나고 말았다.

"끄윽……."

온몸이 비틀리는 고통에 동팔은 간만에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었다.

'아… 그렇지… 회복의 부작용… 간만에… 느껴보네…….'

본격적으로 프로에 들어가기 전, 산에 들어가 미친 듯이 몸을 혹사했다. 혹사 차원을 넘어 온몸의 근육이 끊어졌다가 다시 회복하는 초강경의 수를 썼다.

그 이후로 동팔은 몸을 혹사할 일이 거의 없었다.

스프링캠프에선 다른 사람들과 합숙을 했다.

프로에 들어온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훈련양을 소화했을 뿐이다.

그 이후에는 빠른 회복을 위해 마사지를 받거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프로리그의 역사만큼 체계적인 선수 보호로 인해 동팔에게 걸린 몸의 부하(負荷)는 전보다 적었다.

없는 건 아니지만 혼자서 훈련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회복이 더 빨랐다.

악마가 준 회복 능력을 의지하지 않더라도.

오늘도 경기가 끝난 후에 얼음팩으로 찜질하며 열기와 붓기를 가라앉혔다.

사실상 특급투수의 능력을 보였으니 기본 연봉이 적더라도 그에 대한 대우가 확연이 달랐다.

그래도 전력투구하며 간만에 몸에 무리가 왔으니 회복하려는 만큼 고통이 찾아왔다.

이 고통은 이전에 산에서 겪은 것에 비하면 약과였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 자체가 괜찮다는 건 아니다.

아픈 건 아픈 거다.

동팔은 고통에 신음을 삼키면서도 기뻐했다.

꿈에도 기다리던 첫 선발.

그리고 첫 승리.

이전에 없었던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남겼다.

고통 이상의 성취감이 동팔의 온몸을 휘감았다.

원하던 것을 이룬 이 감각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이 있기까지 함께해준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동팔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날 밤, 고통 속에도 벅차오르는 기쁨이 그의 눈물을 통해 흘러내렸다.

동팔의 첫 선발 등판은 RG만이 아니라 다른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을 받았다.

그 전부터 관심을 받던 등판이었지만 첫 승을 노히트노런으로 그리고 완봉승으로 기록한 것이다.

노히트노런은 투수만이 아닌 팀의 기록이지만 완봉승은 온전히 투수의 기록이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나온 인터넷 스포츠 기자 그리고 다음 날 나온 스포츠 신문의 대부분은 동팔의 강속구와 완봉승, 노히트노런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과 조금 다른 관심으로 그를 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흐음… 역시나 그런가……."

1군의 다른 프로야구 선수들과 달리, 아침 9시에 일어나 훈련을 위해 구단으로 가는 한동욱.

다른 선수들의 평균 기상시간이 11시 내외임을 생각하면 꽤 이른 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차에서 신문을 훑어본 후, 뒷좌석에 던졌다.

그러자 그의 옆자리에 중년의 영국 신사가 나타났다. 그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경쟁자가 신경 쓰이나?"

아무도 없을, 있어서도 안 되는 곳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누구라도 놀라야 할 상황이었지만 한동욱은 평범하게 운전하며 말했다.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지. 내 디딤돌이 될지, 벽이 될지 모르잖아."

한동욱은 그 말을 하면서 신호등의 신호에 따라 핸들을 옆으로 꺾었다. 몸이 한 쪽으로 쏠렸지만 스크레이치의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옆에서 훔쳐보며 한동욱은 생각했다.

'역시나 악마는 악마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크레이치는 여전히 웃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말은 했어? 나 말고 다른 계약자가 있다는 사실을."

"굳이 말할 이유는 없지. 다른 계약자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은 자네가 유일하거든. 그러니 나도 굳이 속일 이유가 없으니 사실대로 말해 줬을 뿐일세."

악마는 그 말을 하고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듯이 시내를 둘러보았다.

그의 행동에 한동욱은 소름이 끼쳤다.

'분명히 좋은 먹잇감을 찾는 중이겠지…….'

자신은 이미 그의 덫에 걸린 상태였다.

벗어날 방법은 단 하나였다.

"그래서 그 친구의 자유 조건은 뭐지? 분명히 나처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겠지만."

"내가 말해줘야 할 이유가 있나?"

"말 안 해주면 내가 직접 가서 물어보면 그만이야. 그리고 목적에 따라 협력할 수도 있지."

한동욱은 그 말을 하고 스크레이치를 바라보다가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좋지 않겠나? 그러는 것이 자네의 목적을 이루는 데 더 도움이 될 텐데?"

"혼자 하기 어렵다면 협력하는 것이 사람 아니겠어? 경쟁자라고 무조건 배척할 이유는 없지."

그 말을 하면서 한동욱은 다시 스크레이치에게 시선을 주며 압박했다.

"별거 없네. 자네와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 5년 이내에 월드 시리즈 우승이 조건이지. 작년 초에 계약했으니 한… 3년하고 11개월 남았지."

"그래? 나랑 거의 비슷하네. 그런데 나랑 그 친구랑 같은 팀에 입단해서 우승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럼 둘 다 풀려나나?"

"그렇긴 해. 하지만… 과연 그게 쉬울지 모르겠어."

"왜? 불가능하다 생각하는 거야?"

"하고자 한다면 불가능하지 않지."

파훼법이 나왔어도 스크레이치의 표정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다만… 사람의 탐욕이 그걸 가능하게 할지 모르겠군."

그러자 동욱이 물었다.

"내가 그를 밟고 목적을 이룰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의 물음에 악마의 미소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건 그때가 되면 이해하게 될 걸세. 자네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결국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의 손에 들어왔다는 건 기억하고 있게나."

스크레이치는 그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동욱이 중얼거렸다.

"그건… 네가 말한 대로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네 녀석한테 마냥 당할 수 없거든."

이윽고 동욱은 지아 훈련장에 도착했다.

그가 주차하고 훈련장에 들어갈 때, 금발의 영국 청년이 손을 흔들며 반겼다.

"여~ 여전히 좋은 얼굴, 좋은 영혼이군. 반가워."

그의 말에 동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잘 도망치고 있나 봐. 방금 전에 네 삼촌을 봤어. 웜우드(Wormwood)."

지금 나타난 외국인의 이름은 웜우드.

스크레이치가 쫓고 있는, 그의 조카이자 사냥감 중 하나인 하급 악마였다.

자신을 죽이고 힘을 흡수하려는 천적이 주변에 있음에도 웜우드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찾을 수 있으면 찾아보라고 그래. 난 악마 중에서도 교활하기로 유명한 삼촌의 교육을 충실하게 받은 유일한 악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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