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44화 (44/325)

[44]

[이승협 선수가 뭐라고 하자 오성의 분위기가 바뀐 것 같습니다. 이 변화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그 말을 하던 때 김현우가 동팔의 투구를 때렸다.

[김현우 타격!! 아~ 하지만 멀리 뻗어나가지 못하고 우익수 플라이아웃입니다. 이제 오성의 아웃카운트는 5개 남았습니다. 다음 타자는 살아 있는 전설, 이승협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조금 위험했지만 중요한 아웃카운트를 잡은 동팔.

이미 그의 압도적인 공의 위력에 오성의 타자들은 탁류에 휩쓸린 것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하위타선은 물론 상위타선도 맥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이승협이 올라오자 동팔은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승협의 앞선 두 번의 타석에서 처음은 삼진, 그다음은 내야 땅볼로 물러났다.

분명히 동팔의 공을 직접 상대하면서 강력한 구위를 확인했지만 승협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담담히 바라보는 표정과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

마치 거센 격류에 저항하는 단단한 바위처럼 승협은 동팔의 기세를 버티고 있었다.

"……."

동팔은 전혀 기가 죽지 않고 여전히 강한 투지로 맞서는 승협이 신경 쓰였다.

이런 와중에 VIP 좌석에서 보고 있던 동팔의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허 참… 그래도 이승협 선수한텐 좀 봐주지……."

팀을 떠나서 이승협의 팬인 아버지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오직 동팔의 팬인 어머니는 그 말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 사람이 정말. 적어도 지금은 동팔이 응원해야지 뭔 소리하는 거예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옆에 앉은 누나도 비슷한 눈빛을 아빠에게 보내고 있었다.

"크흠… 뭐 그냥……."

"그냥 뭐? 이게 그냥 할 소리야?"

괜한 말을 하는 바람에 궁지에 몰린 아버지. 보기만 하던 누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빠. 오히려 동팔이가 봐주면 승협 선수가 더 싫어하지 않을까? 신인에게 동정 받으면 오히려 자존심에 상처만 입겠다."

누나의 말에 아버지는 할 말이 없었다.

그 사이, 동팔의 공은 시속 160의 빠른 속도로 포수 글러브를 향해 파고들었다.

승협은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으로 오는 공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타구는 높이 뜨며 뒤로 날아갔다.

이것으로 원 스트라이크가 되어 동팔에게 유리한 볼 카운트가 되었다.

동팔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내심 껄끄러웠다.

'이전 타석에선 치지 못한 공이었는데… 벌써 적응을 한 거야? 하지만 전 타석에 있던 타자는 맥없이 당했는데?'

조급하게 휘두르던 이전 타자와 달리 승협의 표정과 눈빛 그리고 동작에선 전혀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최선을 다 하는 자세였다.

그 묵직함이 이번 경기에서 처음으로 동팔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레전드는 레전드인가……."

이승협을 모를 수는 없었다.

자신이 공을 쥐기도 전에 이름을 떨친 유명한 타자.

역대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타자.

프로에 입단하고 한일통산 600개가 넘는 홈런을 쳤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

거기에 전성기만큼의 실력은 아니지만 여전히 상대를 위협하는 강한 타자다.

동팔은 로진백을 만져 손가락에 송진가루를 묻혔다.

만전을 기하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동팔은 다음에 던질 공을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던질 공은 포수가 사인을 통해 알려주지 않았다.

포수가 준 사인은 단 하나.

'제일 자신 있는 공을 던지라'는 주문이었다. 그도 다른 타자들과 다른 이승협의 기세를 느낀 것이다.

'경험이 많은 타자. 그러니 변화구는 가능한 자중하겠지. 그리고 동팔이의 구속은 여전히 160. 오히려 그것이 승산이 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동팔의 자신감이었다. 포수의 생각대로 동팔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느린 변화구는 조심히. 직구를 던졌으니 체인지업의 위력은 더 강하겠지만 그걸 노릴 수 있어. 그럼 결국 남은 건… 포심 패스트 볼.'

문제는 이승협도 그걸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유인구를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거나 범타 유도하는 것도 선택 중 하나다. 하지만 이승협이 경험이 많은 타자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동팔이 선택한 것은 변화구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번 시즌에 자주 마주치겠지. 하지만… 그 모든 기회에서 계속 피하기만 하는 건… 역시 예우가 아니다.'

이미 두 번의 맞대결에서 이겼다.

변화구와 유인구를 이용한 승리. 이제 동팔은 다른 방식의 승리를 원하고 있었다.

"후우……."

동팔은 공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능숙하게 다리를 들어 올린 후 강하게 내딛었다. 팔을 활처럼 탄력적으로, 손가락에 힘을 주어 공의 회전을 더 빠르고 강하게 했다.

쉭~

다른 160의 직구와 달리 회전을 더 강하게 먹인 공이 홈 플레이트에 도달할 때 속도가 더 높다.

빠른 회전이 공기의 저항을 더 강하게 뚫기 때문이다.

총알처럼 파고드는 동팔의 공. 대비하고 있던 이승협은 동팔이 공을 던지자마자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타구는 멀리 그리고 높게 날아갔다. 제대로 맞았지만 이승협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힘에 밀렸어. 더 밀어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홈런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타구는 더 멀리 뻗어나가지 못하고 낙하지점을 향해 뛰어가는 중견수의 글러브를 향해 떨어졌다. 그래도 이승협은 포기하지 않고 1루 베이스를 향해 뛰어갔다.

그러던 중에 기적이 일어났다.

"아!!"

너무 성급해서일까 아니면 퍼펙트게임에 신경을 쓰다 보니 긴장해서일까. 중견수는 자신의 글러브에 떨어진 공을 완전히 잡지 못했다. 글러브에 들어왔지만 뒤로 흘러가는 바람에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한 것이다.

"이런……."

중견수는 서둘러 공을 잡고 2루로 던졌다.

하지만 이승협은 1루에서 더 이상 가고 있지 않았기에 무의미했다.

[아~ 이거 아쉽네요. 이걸로 퍼펙트게임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건 안타라기보다 실책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실책 맞습니다. 분명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는데 외야수의 실수로 잡지 못한 거죠. 그러니 퍼펙트게임은 실패했지만 아직 노히트노런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 마침 이건 안타가 아니라 외야수 실책이라고 나오네요.]

중견수는 자신의 실책으로 퍼펙트게임이 깨지자 동팔에게 그리고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해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제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첫 퍼펙트게임이라는 업적이 바로 눈앞에 왔다가 사라졌다.

동팔은 물론 다른 선수들, 필드에 나와 있는 선수들만이 아니라 대기하고 있는 선수 및 코치 심지어 감독도 심기가 불편했다.

지금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면 수비하고 있는 중견수의 사기가 떨어진다. 그러면 더욱 긴장하고 몸이 굳어서 연이서 실책이 나올 수 있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래서 동팔은 물론 다른 선수들도 자신의 실책으로 자책하는 중견수를 뭐라 하지 않고 괜찮다고 위로해주었다.

'다음에 반드시 잡는다. 반드시…….'

중견수는 다음에 공이 날아오면 전력으로 뛰어 제대로 잡으리라 생각했다.

이승협에 의해 사기가 오른 오성의 타자들. 비록 이제부터 하위타선인 6번 타자가 나오지만 이전과 각오가 달랐다.

"승협이 형이 직접 보여주신 이상 이대로 당할 수 없어."

하지만 그들의 사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아무리 의욕이 앞서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 8회에 중견수가 나설 일도 없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오성의 중심타선을 지나 6번과 7번 타자를 동팔이 삼구삼진으로 완벽하게 돌려세웠기 때문이다.

이미 세 번째 상대하는 투수였지만 160의 강속구와 변화구를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강속구.

변화구도 스트라이크 존을 걸쳐서 들어오기에 맥없이 당하기만 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다음에는 반드시…….'

무력하던 분위기는 없었다. 오히려 동팔의 공을 상대할수록 더욱 거센 승부욕만을 이끌어내었다. 그 부분은 더그아웃에 돌아오는 동팔도 느끼며 순수하게 감탄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감탄은 감탄이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프로리그. 결코 호의만으로 봐주는 곳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8회 말 RG의 공격.

이미 2점의 점수를 낸 상황에 1점을 추가하여 3대 0의 스코어가 되었다.

그사이 감독이 동팔에게 물어봤다.

"동팔아. 더 던질 수 있다고 했지? 몇 개 더 던질 수 있냐?"

지금까지 동팔이 던진 공은 81개.

그중 160의 강속구가 36개였다. 아무리 투구 숫자가 적어도 전력투구를 한 숫자가 많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팔은 자신 있게 말했다.

"계속해서 160으로 20개 이상 던질 수 있습니다."

"그러냐. 알았다."

동팔의 말에 감독은 불펜에 구원투수인 김정우를 보내려던 것을 취소했다.

9회 초에 동팔이 마운드로 올라오자 모든 관중들이 기립했다.

"와~!!!"

한국 프로야구 사상 투수가 데뷔전에서 처음으로 노히트의 완봉승을 기록할지 모를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 순간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없는 관중들은 모든 환호를 동팔에게 보냈다.

RG 팬들이야 순수하게 응원할 수 있지만 오성 팬들은 마음이 복잡했다.

프로야구 팬으로서 대기록이 세워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대팀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희생양이 되는 건 피하고 싶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건 오성의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야유만 보내지 않았지 그들은 오성의 타자들이 어떻게든 기적을 만들어내주길 바랐다.

많은 상념이 뒤섞이며 복잡했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고르디온의 매듭을 잘라 버리듯이 동팔의 공은 오성의 8번 타자와 9번 타자를 완벽하게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것으로 강동팔 선수의 삼진 개수는 16개입니다. 이제 남은 마지막 카운트는 단 하나.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잠시 살펴보니 고인이 되신,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이자 별이신 최동원 선수의 기록과 같고 이전 한화의 투수였다가 LA로 간 류현민 선수가 17개로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기록은 어떻습니까?]

[네 명이 20개의 탈삼진 기록을 세웠습니다.]

[역시 '메이저, 메이저'하는 이유가 있네요. 사실 한 경기에 10개의 삼진도 어려운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삼진 하나 잡는 것도 어렵습니다. 한 경기에 6개를 잡으면 두 이닝을 지우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벌써 16개의 삼진을 잡았습니다. 이건 5개 이상의 이닝을 지운 거죠.]

[그리고 이번에 강동팔 선수가 삼진을 잡으면 류현민 선수가 세운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류현민 선수는 완투승, 강동팔 선수는 완봉승이 되겠습니다.]

[각종 기록이 이 한 경기에 달려 있네요. 그런데 타자가 만만치 않습니다. 오성의 1번 타자 신해민 선수는 뛰어난 타자에 감각이 좋습니다. 강동팔 투수와 한 경기에서 네 번째 맞대결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만큼 공에 적응했을 가능성이 높죠?]

중계석에서 말하고 있는 주의할 점은 동팔도 잘 알고 있었다.

많은 기록이 걸린 상황이지만 지금 동팔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다.

계약할 때 내건 옵트아웃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두 시즌 안에 25승을 거두어야 했다.

'가능한 빨리 끝내자. 어차피 맞더라도 멀리 못 날아가니까.'

신해민의 단점은 장타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동팔의 볼배합은 단순했다.

"후우……."

쉭~ 퍽!!

"스트~라이크!!"

방향은 몸쪽으로 향하는 공.

구종은 160에 달하는 포심 패스트 볼이다.

그것을 보자 오성의 선수들과 코치들이 혀를 찼다.

"9회인데도 160이야?"

"체력이 얼마나 좋은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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