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9화 (39/325)

[39]

동팔이 160의 강속구로 인해 큰 인기와 주목을 받자 이득을 얻는 사람은 신지예 기자만이 아니었다.

레슨장의 사장님은 얼마 전에 주문한 현수막을 보고 절로 마음이 뿌듯했다.

[강동팔 투수가 재기를 준비하던 바로 그곳.]

그 글귀와 함께 스틸러스의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지는 강동팔의 모습이 있었다. 강동팔과 광고 계약은 했지만 RG와 계약한 건 아니었기에 조심스러운 선택이었다.

강동팔과 광고 계약을 하려는 회사가 많아진 건 당연한 일. 다만 이제 막 프로에서 처음으로 공을 던졌기에 아직은 확실한 흥행 보증수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때가 아니면 싼 가격에 계약을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동팔이 계속 제구가 되는 강속구와 변화구를 던져 승을 쌓아 가면 그의 몸값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동팔의 구위를 잘 알고 있는 사장님이었기에 싹이 보이자마자 그와 과감히 계약했다.

그것도 고작 광고 기간 동안 레슨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헐값으로.

또, 그동안 그와 함께 찍은 사진과 투구하는 사진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 놓았다.

이전부터 눈여겨보았기에 동팔이 이곳에 온 3년 간의 역사를 순서에 맞게 넣었다.

"햐~ 정말 이렇게 될 줄이야… 이대로 RG가 우승하면 대박인데. 메이저 가면 더 대박이고."

재활이나 재기는 동팔 스스로 한 것이다.

그러니 오는 사람의 모든 것을 봐 줄 수 없지만 그가 던졌던 곳이라는 것만으로 광고 효과가 확실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네? 허위광고 신고가 들어왔다구요? 누가? 그리고 뭐가 허위광고란 겁니까? 네? RG법무팀에서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어떤 사람의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직접 신고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하지만 실제로 동팔과 아는 사이고, 정말로 광고 계약을 했기에 전혀 꿀릴 것이 없는 사장님이었다.

그러나 사장님이 아무리 당당하게 행동해도 사기꾼을 워낙 많이 만나온 경찰과 RG의 법무팀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동팔이 직접 사인한 계약서가 있었고 오래전부터 다닌 증거가 사진으로 남아 있었기에 당장 현수막을 내릴 일은 없었다.

마지막에 동팔과 직접 통화한 RG법무팀이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사태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저희 구단보다 강동팔 선수와 먼저 계약하셨으니 어쩔 수 없죠. 대신 부탁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들 사이에 계약을 했으면 합니다."

"네? 어떤 계약입니까?"

"가능하다면 현수막에 나온 강동팔 선수의 사진을 RG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바꿨으면 합니다. 현수막 비용과 사진 그리고 편집까지 RG에서 해드릴 겁니다."

그들은 굳이 이길 수 없는 법정 싸움을 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돈을 쏟아부으면 못 이길 것도 없지만 그러면 출혈이 너무 크다. 또한 얻을 것도 거의 없었다.

그들은 차라리 처리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강동팔 선수의 인기를 힘입어 이곳이 잘 된다면 오히려 구단 홍보의 좋은 기회다.

갑질에 민감한 사회이기 때문에 도리어 도움을 준다면 구단 이미지에도 좋을 터였다.

계산을 빠르게 마친 RG는 레슨장의 사장님과 서로의 입장을 받아들여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다른 곳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내가 정말 강동팔 선수랑 잘 아는 사이라니까 그러네."

"전화해 봐. 사실인지 아닌지."

그들을 전혀 모르는 동팔로선 확인하더라도 같은 답변이 나왔다. 애초에 동팔을 통해 광고 계약을 맺은 곳은 그 레슨장이 유일하다는 것을 RG법무팀이 파악한 후였다.

그러하기에 굳이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강경하게 대처해 나갔다.

프로야구 개막과 동시에 160의 강속구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동팔. 그는 경기장으로 향하며 감독님의 말을 들었다.

"동팔아. 너 오늘 공 던질 일 없어. 그러니까 컨디션 조절에만 신경 써라."

시범경기나 연습경기 때와 비슷한 말투와 말.

하지만 동팔은 그때처럼 기분이 내려가지 않았다.

그 말뿐이었지만 감독님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인터넷 스포츠 신문 기사를 통해 나왔다.

[강동팔, RG의 5선발 확정.]

기사를 통해 알려진 것은 단순했다.

[실력이 뛰어나지만 아직은 신인인 강동팔 투수. 그는 어제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졌기에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5선발 …후략…….]

최고 전력 중 하나가 된 동팔을 가능한 빨리 마운드에 올리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은 월요일이니 휴식이었다.

5선발이면 목요일 등판이 가능하지만 2, 3선발이 되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되어야 등판시킬 수 있다.

비록 말석이라지만 5선발이 되는 것이 동팔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1, 2선발은 팀의 에이스라는 증거지만 동시에 같은 팀의 타자들도 상대팀의 에이스인 1, 2선발을 상대해야 한다.

결국 투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고 호투를 해도 승을 올리기 힘들다. 하지만 5선발의 경우, 상대팀의 투수도 5선발일 가능성이 높다.

9개 팀이던 시절에는 꼬이면 5선발과 1선발이 맞붙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천취소로 인해 경기가 밀리지 않는 이상 각 팀의 5선발끼리 겨루게 된다.

봄비는 많이 내리는 경우가 없고, 장마철이 다가오기 전까지 폭우가 내리는 경우도 많지 않다.

적어도 전반기 절반 이상의 경기에서 동팔이 우위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승을 바라보는 RG로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선발은 나중에 올스타전이 끝나고 재조정하면 될 일이었다.

그 소식은 동팔의 모든 지인들에게 알려졌다.

동팔의 첫 선발 등판은 오는 목요일.

장소는 RG와 작년 우승팀 우산의 구장인 잠실이었다.

첫 선발 등판

RG의 팬들은 동팔이 선발 등판하는 목요일을 기다렸다.

그사이 RG의 경기의 승패는 1승 4패.

경기력은 3승 2패로 봐도 될 정도로 잘했다.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로데와의 주말 2연전은 1승 1패로 마무리되었다.

화요일부터 시작되는 오성과의 주중 3연전에서는 2번을 내리 패했다. 그것도 홈인 잠실구장에서.

팬도 답답하지만 선수들은 더 답답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절대로 질 수 없었다.

그들이 프로인 이상 승리해야 하기 때문도 있지만 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다들 알지? 홈에서 스윕 당하면 그게 뭔 꼴이냐?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그걸 보여드릴 수 없잖아."

RG의 선수들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

경기 전, 잠실구장에 모여 승리를 위한 다짐을 하고 가볍게 훈련을 시작했다.

상황은 선수들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삭막한 건 아니었다.

"동팔아. 이번에 오성이랑 하는데 괜찮겠어? 엄밀히 말하면 너네 친정팀이잖아."

포수 마스크를 쓰는 김강수의 가벼운 농담에 동팔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프로에 친정팀이 무슨 상관입니까. 5년 전이라 기억도 까마득해요."

동팔은 그 말을 하고 공을 가볍게 던졌다. 아무리 가볍게 던져도 동팔의 구속은 150을 넘었다.

휙~ 퍽!!!

묵직한 동팔의 공에 만족한 강수는 다시 공을 던지며 말했다.

"그야 그렇지. 그래도 너 재활하는 데 꽤나 썼다고 들었거든. 네 공이 무뎌지지 않겠지만 그냥 물어봤어."

"그것도 다 과거입니다. 절 인정한 RG팀이 저는 훨씬 좋거든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동팔은 그 말을 하면서 힘차게 공을 뿌렸다.

쉭~ 퍽!!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인한 대로 공을 던진 동팔.

그러면서 동팔은 작년의 일을 떠올린다.

'재활을 지원해 준 것은 고맙지만… 그래도 봐줄 생각은 전혀 없어. 나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은 걸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어쩌면 그때, 그 코치를 통해 자신이 회복했다는 것을 알렸다면 동팔은 RG가 아닌 오성에 입단했을 수 있었다.

적어도 혹사당한 부상으로부터 재활하는 데 도움을 준 정과 의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기회조차 주지 않고 차버린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동팔은 지금 오성에 입단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남궁지완…….'

자신의 애인을 채간, 고교시설부터 나름 라이벌이라 볼 수 있는 동갑내기 친구.

하지만 동팔은 처음부터 그를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와 종종 마주치긴 했지만 구위는 물론 제구력까지 자신이 우위에 있었다.

심지어 둘의 맞대결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보여주었다.

언론이 1위와 2위의 성적을 거둔 두 사람을 라이벌 구도로 만들었을 뿐 동팔은 오직 더 높은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지완이 어디로 가든지 신경 쓴 적은 없었다.

적어도 혜진과 헤어지고 그녀의 새로운 애인이 남궁지완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진.

재기를 준비하며 한동안 잊고 지내왔지만 지금부터는 아니다. 자신에게 민희가 있는 이상 그녀에게 구질구질하게 다시 매달릴 생각은 없었다.

동팔도 자신이 방출당하면서 그녀가 힘들어한 것을 알고 있기에 일방적으로 미워할 생각은 이전에 버렸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겠다는 건 아니다.

동팔이 바라는 보복은 두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었다.

"제가 잘 던지는 모습을 보면 오성에서도 좋아하겠죠. 적어도 헛돈 쓴 것이 아니라는 게 입증되는 거잖아요."

단순한 보복이었다. 동팔은 혜진에게 네가 버티지 못하고 속이면서까지 찬 남자가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동팔은 그 말을 하고 이번에는 전력으로 공을 던졌다.

쉭~ 퍽!!

뒤에 있던 스피드건에서 동팔의 구속을 알려주었다.

[161km/h]

동팔의 구속을 보고 같이 연습하던 선수들이 말했다.

"이젠 완벽한 100마일이네."

"동팔아. 너 그거 얼마나 던질 수 있냐?"

그에 동팔은 조금 줄여서 말했다.

"한… 50번 이상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리하면 70번도 가능해요."

동팔에게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는 말할 수 없었다. 시즌 중인데다가 혹사를 당해 방출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체력 좋네. 난 그거 절반이라도 던졌으면 좋겠다."

"젊음이 좋구나. 그렇다고 내가 네 나이 때 너만큼 던진 건 아니지만."

"동팔이 믿고 타자들이 좀 힘을 내자. 한 점이라도 내면 이길 수 있어. 오성의 선발은 용병도 아니고 남궁지완도 아니잖아."

연패를 끊는 것은 팀 에이스의 숙명. 비록 5선발이었지만 지금 동팔은 에이스의 부담을 안고 있었다.

신인인 동팔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거라 생각했기에 감독이 직접 올라와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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