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꽈득.
임아섭은 배트를 고쳐 쥐고 매서운 눈으로 동팔을 주시했다. 분명히 방금 전에 동팔의 구위를 직접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동팔은 생각했다.
'역시… 프로…….'
비록 회복하기 전의 구위라도 자신의 공을 직접 상대하는 타자들은 대부분 기가 눌린다. 아마 2부 리그에선 그런 타자가 대부분이었고 1부 리그에선 절반이 안 되는 수가 눈을 빛냈다.
그때의 공보다 훨씬 위력적인, 도저히 칠 엄두가 나지 않는 동팔의 공을 직접 겪었음에도 임아섭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갈며 더 높은 집중력으로 동팔의 모든 동작을 체크하고 있었다.
"후우……."
이번에 던질 공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임아섭이 철저히 불리한 상황. 변화구로 방망이를 끌어올 수 있었고 160킬로의 강속구로 빠르게 꽂아 넣을 수 있었다.
이젠 임아섭도 방망이를 함부로 휘두를 수 없었다.
"후우……."
더 달아나느냐 아니면 저지되느냐의 순간에 동팔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쉬릭~!!
다양한 공이 가능했기에 임아섭은 무조건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신중함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빨라!!'
처음 상대했던 그 공처럼, 160에 달하는 공이 한가운데를 향해서 날아왔다.
임아섭은 이를 알아차리고 배트를 빠르게 휘둘렀다.
'젠장!!'
하지만 너무 늦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임아섭은 방망이를 멈출 수 없었다. 이미 한가운데로 들어온 이상, 멈춰봤자 결과는 스트라이크.
혹시라도 살짝 건들면 파울을 유도할 수 있기에 일말의 희망을 걸고 힘차게 휘둘렀다.
휙~!! 퍽!!
그러나 들려오는 소리는 나무배트에 공이 맞는 경쾌한 소리가 아닌, 포수 글러브와 격하게 포옹하는 둔탁한 소리였다.
"스투롸익!! 아웃!!"
쓰리 아웃 체인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속 시원한 강속구로 동팔은 8회 말을 매조지었다.
RG의 9회 초 공격에서 동팔이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있다면 RG가 1점이라도 내서 9회 말에 연속으로 등판하는 것뿐. 사실상 선발 자원이라 이후로 5이닝 이상을 던질 수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의 정규 리그의 최대 이닝은 12이닝이다.
9이닝을 포함해 동팔이 감당할 최대 이닝은 4이닝.
방금 전에 던진 8회 말을 포함하면 5이닝이다.
그 정도야 항상 선발로 뛰었던 동팔에게는 가뿐했다.
방금 전에 던진 투구의 수는 15개.
동팔은 어깨를 가볍게 풀면서 다음을 준비했다.
하지만 동팔이 다음에 나올 일은 없었다.
[RG팀 아쉽겠어요. 주자가 3루까지 갔는데 불러들이지 못합니다. 이것으로 게임 종료됩니다.]
[정말 아쉬울 겁니다. 뒤에 든든히 지켜줄 강력한 투수가 있어서 단단히 틀어막을 수 있죠. 한 점을 얻고 이후에 어떻게든 또 한 점을 내면 개막전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RG팬들보다 선수들이 더 아쉬울 거예요. 그래도 RG팬들은 강동팔 선수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마음의 큰 위로가 될 겁니다.]
중계석의 말대로 RG팬들은 아깝게 졌지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이야~ 쪼금 아깝다."
"그래도 강동팔이 있는 게 어디냐? 160의 강속구에 제구가 되는 변화구를 던지다니……."
"구단에서 이번에 일 제대로 했네. 했어."
"계약 조건이나 연봉을 어느 정도로 계약했는지 몰라도 신인인 이상 막대한 돈을 주진 않았겠지. 강동팔 외에도 굵직한 용병이랑 선수들을 데리고 왔잖아."
팬들이 원하는 것은 승리다. 모든 경기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처럼 항상 있는 일이다. 승리가 항상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승리하지 못한 것에 화를 내지 않는다.
상대가 더 강하면 지는 것이 당연하니까. 다만 과정에서 노력하지 않고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이면 운 좋게 그 경기를 이기더라도 팬들은 분노한다.
팬들은 지는 상황이라도 선수들이 전력을 다 하는 모습에 감동한다. 그 감동은 응원의 열기가 되어 구현된다.
단, 상상 이상의 연패가 없다는 전제 아래에서.
RG의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력을 다 해 팬들의 마음을 충족시켰다. 비록 패했지만 RG의 팬들은 희망을 보았다.
"그럼 이제 강동팔 선수를 선발로 쓰겠지? 몇 선발이 될까?"
"글쎄… 이미 1, 2, 3선발이 정해진 상황이니 4선발이나 5선발이지 않을까?"
"실력으로 보면 1, 2선발로 정해지는 거 아닌가?"
그들은 강동팔이 선발로 오르는 경기를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통쾌하게 뿌려지는 강속구, 절묘한 제구력에 상대 타자들이 그것도 강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을 생각하자 절로 흥분되었다.
"으아~ 강동팔이 선발로 오를 걸 생각하니 진짜 미치겠다. 나 빤스 좀 갈아입고 오면 안 되냐?"
"마, 더럽게스리……."
그렇게 말하던 친구도,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어서 말했다.
"야… 나랑 같이 가자… 나도 좀 지릴 것 같다."
다음 날.
동팔의 160킬로의 강속구가 모든 스포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불사조 강동팔, 더욱 진화해서 돌아오다.]
[시속 160km/h. 토종 강속구, 강동팔]
[압도적 최강의 신인. 160의 강동팔.]
전부 강동팔이 던진 160킬로의 강속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종이로 나오는 신문만이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독자들의 관심과 접속을 이끌어 내기 위해 각종 기사들이 범람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압도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는 칼럼이 있었다.
"꺄~! 어쩜 좋아~!!"
기쁨의 비명을 지르는 기자는 칼럼을 작성한 주인공인 신지예 기자였다.
그녀가 쓴 건 강동팔이 아마 1부 리그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와 재활 및 재기를 준비하던 시기의 취재기였다.
처음 쓰였을 적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나마 강동팔이 RG에 입단했을 때 사람들이 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생각과 달리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자 아쉬웠지만 그녀는 때를 기다렸다.
'언젠가… 강동팔 선수가 제대로 공을 던지는 모습만 보여주게 되면…….'
이미 그를 취재하면서 구위(球威)를 직접 확인했다.
150의 강속구에 절묘한 제구가 되는 변화구만으로 자신의 칼럼이 다시 집중 받으리란 걸 예상했다.
설마 강동팔이 160의 강속구를 뿌릴 줄은 그녀도 알지 못했다.
덕분에 강동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어제 일에 대한 기사는 범람하여 경기를 보지 않은 기자들도 기사를 쓰고 있어 발에 채이다시피 많았다.
하지만 동팔의 과거에 대한 기사는 5년 전의 방출 기사를 제외하고 신지예 기자가 쓴 칼럼이 전부였다.
특히 동팔의 재기와 그 과정에 대해 나온 유일한 칼럼이었기에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조회 수에 의해 광고가 노출되고 그만큼 고료가 나오기에 신지예 기자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자식은 또 뭐야? 그때 취재한 사람은 나 한 사람밖에 없는데 자기가 있는 것처럼 소설을 쓰고 있어?"
그녀의 기사를 본 어느 기레기가 거의 복사하듯 기사를 써서 올린 것이 보였다.
동종업계에 있는 이상, 최소한의 상도덕이란 것이 있다. 다른 기사를 보고 올릴 수는 있지만 그렇다는 사실 정도는 알려주거나 제3자의 관점에서 쓰는 것이 원칙이다. 이렇게 취재도 하지 않고 오히려 본인이 직접 취재한 것처럼 쓰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신지예 기자는 즉시 그 기사의 주소를 복사한 다음 톡으로 편집장에게 보냈다.
[편집장님. 이거 보세요. 우리 칼럼을 다른 신문사에서 자기들이 직접 취재한 것처럼 왜곡해서 올렸어요. 이거 따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얼마 뒤에 편집장에게서 톡이 왔다.
[지금 당장 처리할게.]
이것은 사실상 단독보도와 같이 특별한 기사이자 칼럼이었다. 자그마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쏟아부은 작품과 같다.
그런데 어느 놈이 날름 끼어들었다. 이대로 두면 이 칼럼으로 인해 얻을 수익이 반 토막 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
당연히 편집장만이 아니라 부장에 이사까지 움직였다. 이어서 편집장에게 톡이 왔다.
[그 칼럼, 메인에 올려놨어. 확인해 봐. 포털 사이트 메인에도 올려놨고. 단독보도라고 도장 찍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동시에 다른 신문사에서 쓴 유사 칼럼과 기사는 가짜라고 공지했다.
자신들의 수익이 걸린 이상, 그것도 '대박 수익'이 예상되니 민첩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신지예 기자의 행운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금 강동팔 선수 취재하기 하늘에 별 따기인 것 알지? 신 기자는 작년에 취재하면서 친분이 있을 테니까 간간히 찾아가서 이야기 좀 해. 혹시 선물이 필요하면 말하고. 회사에서 선물비용 대줄 거야.]
이미 강동팔에게 많은 기자들이 몰릴 것을 예상한 RG구단에선 그에 대한 보호를 시작했다.
일반기자들이 그와 접촉하려면 RG구단의 선수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친분이 있다면 굳이 이럴 필요가 없이 간단하게 해결된다.
특히 그의 심중에 있는 말을 꺼낼 수 있는 유일한 기자인 이상, 신문사에서도 그녀의 대우를 같이 올렸다.
이 좋은 기회를 걷어찰 이유가 없는 신지예 기자.
동팔이 어디까지 가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는 그녀는 혹시나 하며 톡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강동팔 선수가 메이저리그 가면 취재 목적으로 저도 같이 갈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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