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7화 (37/325)

[37]

[160km/h]

사람들의 인식은 주로 10단위를 기준으로 받는 느낌이 다르다.

150킬로의 구속의 공과 149킬로의 구속은 고작해야 킬로1 차이가 전부지만 보거나 듣는 사람들은 그 이상의 차이로 인식한다.

야구에서 150대의 강속구와 160의 강속구도 마찬가지였다. 159킬로의 강속구도 대단하게 생각하지만 160이면 받는 느낌이 다르다.

특히나 160은 서양에서 100마일에 해당한다.

10단위가 아닌 100단위로 인식되기에 더 크게 다가온다(정확하게 말하면 100마일의 구속은 161킬로에 해당하지만 미터단위를 쓰는 동양권에선 160이나 161이나 큰 차이가 없다).

전광판에 구속이 찍히자 RG의 관중들은 물론, 로데의 관중들까지 일어나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봤다.

"야, 정말 160이야?"

"거짓말이지?"

"한국 선수가 160을 찍었다고? 150 후반대도 아니고?"

한국야구 역사에서 160킬로의 강속구를 던진 투수가 없던 건 아니었다. 다만 지극히 희귀했다. 한 시대에 두 명 이상 보기 힘들었다.

150 후반대의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은 상대적으로 많다. 대부분 한 팀에서 에이스로서 또는 강력한 마무리 투수로서 자리를 잡는다.

동팔의 구속이 전광판에 찍히자 흥분하는 사람들은 관중들만이 아니었다.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160을 찍었습니다. 그 사이 고장 날 일은 없으니 확실하겠죠?]

[프로구장에서 쓰는 스피드건은 확실합니다. 오차가 적어요. 160을 찍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대단한 겁니다.]

중계석에 있는 캐스터와 해설위원도 침을 튀기면서 중계를 했다.

[기록을 한 번 볼까요? 메이저리그에선 종종 볼 수 있는 구속이지만 한국에선 외국인 용병이 아니면 쉽게 보기 힘든 구속입니다.]

이후로 동팔이 다시 공을 던지기 전까지 짧게 중계를 이어 나갔다.

동팔의 강속구 소식은 그의 특별 영상을 준비하고 있던 방송국 관계자들에게도 들어갔다.

"뭐? 160?!! 정말?"

"맞아요. 지금 중계석은 물론 관중들도 난리가 났습니다.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완전 대박이지!! 너 야구하면서 이 말도 모르냐? 제구는 승리를 부르지만 강속구는 관중을 부른다."

그의 말에 소식을 전한 사람이 황당해 하며 말했다.

"그거… 보통 그 반대 아닙니까?"

'전투기는 영화를 만들지만 폭격기는 역사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그거에 빗대면 실속이라 할 수 있는 승리와 제구가 뒤로 가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생각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지금 프로야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몰라? 돈이야, 돈. 승리도 중요하지만 승리해야 관중이 오니까 중요하지.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투수가 있다면 광고 효과는 훨씬 커. 당연히 관중도 많이 오지. 과연 이번에는 어디까지 던질 수 있는지 궁금하거든."

그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제구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건 뛰고 있는 선수들의 이야기다. 투수 맞은편에 앉지 않는 이상, 관중은 투수가 공을 얼마나 절묘하게 던지는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정확히 볼 수 있는 좌석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강속구는 이야기가 다르다.

빠름의 정도가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이렇게 전광판에 숫자가 적히면 변화구와 달리 눈에 바로 들어오고 빠르게 체감할 수 있었다.

강속구로 들어오는 스트라이크.

그리고 헛스윙하는 타자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로데 승리 영상은 대충 준비하고 지금 당장 여기로 인력 더 붙여!! 여기 시간이 더 부족해!!"

"아, 알겠습니다!!"

적은 시간 안에, 상당히 높은 질을 가진 영상을 훨씬 제한된 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막을 만드는 일 자체는 간단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빠른 시간 안에 완성하여 방송에 내보내는 건 고도로 능숙한 사람만이 가능하다.

방송국에 있는 사람은 언제 무슨 일이 오더라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베테랑, 프로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사직에서 송출되는 중계는 공중파를 통해 전국으로 보내졌다. 동팔이 공을 제대로 던지는 것을 본 사람들은 전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이번에 처음으로 동팔이 전력투구하는 것을 본 가족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TV만 보고 있었다.

"……."

그러다 어머니가 먼저 말했다.

"저기… 동팔이 맞아요? 분명히 RG에 있고 이름도 같고 생긴 것도 같은데……."

150킬로의 강속구를 던졌을 때에는 이전의 구속을 완전히 회복했으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160의 구속은 가족들조차도 고개가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뭐… 동팔이란 이름이 흔한 건 아니니 분명히 우리 동팔이가 맞겠지……."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 동팔이 완벽한 재활과 재기를 넘어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니 아니 좋을 수 있을까.

민철의 집에서 TV를 보고 있던 스틸러스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으, 으, 으아아아아~!!!"

"동팔이 저거… 저거 진짜 160 맞냐?"

그들은 민철을 보며 말했다.

"이야~ 괜히 포수에 감독하는 게 아니네. 정확하게 맞췄어."

"히야, 윽수로 대단합니데이."

그들의 추켜세움에 민철도 저절로 어깨가 으쓱거렸다.

"아니, 뭐… 어쩌다 맞은 거지 뭐……."

동시에 그들은 동팔에 대해 말했다.

"이제 동팔이가 엄청난 투수가 되었네요. 작년과 다르게… 160의 강속구도 강속구지만 그 전엔 제구력이 장난 아니었죠. 강속구에 제구가 되는 절묘한 변화구라니……."

"가만. 생각해보니 메이저는 기본으로 갈 것 같고 잘하면 월드 시리즈도 노려볼 만하겠습니다."

"동팔이가 그 말을 했을 땐 그냥 포부만 말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로 가겠다. 가겠어."

가족과 스틸러스의 사람들은 물론 민희도 좋아했다.

다만 그녀는 동팔이 이미 160에 가까운 공을 던지고 있음을 알았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덜 놀랐을 뿐이다.

"역시… 오빠는 마운드에 있는 게 제일 잘 어울려……."

모든 사람이 동팔의 재기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것은 아니었다.

"……."

혜진은 동팔이 160의 강속구를 던지는 것을 보고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채널을 돌렸다. 그녀가 돌린 채널은 오성의 경기를 보여주었다.

그녀가 채널을 돌리는 순간 보인 것은 승부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오는 남궁지완의 모습이었다.

[남궁지완 투수, 팀의 에이스로서 열심히 잘 던졌습니다. 8회까지 마무리했지만 양 팀이 점수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마운드를 내려오고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별 상관없었다.

아무리 잘 던져도 타선의 지원이 없어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니까.

그동안 실점하지 않고 내려오는 것이 투수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동팔의 소식을 듣지 않기 위해 돌린 채널에서도 혜진은 벗어나지 못했다.

[아, 지금 엄청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방금 전 사직구장에서 RG에 신인으로 들어온 강동팔 선수가 시속 160킬로의 강속구를 던졌다고 합니다. 역시 개막인 만큼 화려한 볼거리를…….]

이어서 화면의 아래에 작은 화면으로 동팔이 공을 던지는 모습이 나오려 하자 혜진은 TV를 껐다.

주변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든지 동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상대하는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주자 견제에 대한 훈련을 생각보다 하지 못했어. 괜히 견제하려 했다가 실책이 나오면 바로 실점. 그렇다고 볼넷으로 보내줄 생각은 없어.'

남은 유일한 방법은 지금 상대하는 플라이아웃이든, 삼진이든 유도해 여기서 이닝을 끝내는 것이다.

[볼 카운트는 원 스트라이크. 강동팔 선수에게 유리하죠. 주자가 3루에 있지만 2아웃이기에 희생플라이의 걱정도 없습니다.]

[그럼 해설위원께선 이번에 어떤 공을 던질 거라 생각하십니까?]

[방금 전에 160에 가까운 강속구를 던졌습니다. 하지만 임아섭 선수도 보통 타자는 아니거든요. 150대는 물론 160대의 강속구도 상대해 본 선수입니다.

다만 그 경우는 외국인 용병이라 이번에는 상대가 다르죠. 이전에 상대한 선수는 분석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상대해야 합니다. 저는… 볼 카운트가 유리한 이상 속구는 아니고 변화구를 생각해봅니다.]

[그럼 어떤 변화구 예상하시나요?]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서 체인지업 예상하겠습니다. 투구 동작을 더 자세히 봐야 알겠지만 전 타자를 상대하면서 패스트 볼과 체인지업을 던질 때 투구 폼이 같았거든요.]

중계진의 해설이 계속되는 가운데, 임아섭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했다.

'체인지업일 가능성이 높아. 지켜보고 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인데… 이걸 예상하고 속구를 던질 가능성도…….'

볼 카운트도 자신에게 불리한 이상 섣불리 배트를 휘두를 수 없었다. 지금은 그가 단순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유일한 기회였다.

변화구를 기다리는 것도, 휘두르는 것도.

생각을 정리하고 공을 기다리는 사이. 사인을 받은 동팔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신경 쓸 필요 없는 주자를 두고 공을 던졌다.

동팔의 투구 폼을 본 아섭은 당황했다.

'응? 방금 전이랑 자세가 달라?'

미묘한 차이였지만 분명히 달랐다. 공을 던지는 팔의 각도가 조금 아래로 내려갔다. 동시에 발을 디딘 발끝의 위치도 살짝 달랐다. 전에는 홈플레이트 바로 앞의 직각이었지만 미묘하게 틀어져 있었다.

'젠장!!'

그나마 투구 폼을 보면 약간의 예측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미묘한 차이는 같은 공이라도 궤적을 다르게 만든다.

다행히 방금 전처럼 160에 달하는 강속구는 아니었다. 그러나 150의 속도라도 빠른 건 사실. 임아섭은 공의 처음 궤적만으로 예상해서 거의 반사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휭~ 따악!!

임아섭은 동팔의 공을 처음으로 맞췄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공을 때리는 순간, 강한 충격이 배트를 잡은 손아귀를 통해 느껴졌다.

"큭!"

프로의 일반적인 공이 아닌 무언가 묵직한 느낌을 받은 임아섭. 그래도 발군의 실력을 갖춘 타자였기에 밀리지 않고 힘으로 밀었다.

휙~

타구는 뒤의 관중석을 향해 날아갔다.

'파울… 두 스트라이크…….'

스치지도 못한 것보다 낫지만 그렇다고 해서 맞춘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지금 프로 타자인 임아섭에게 필요한 것은 파울 타구가 아닌 안타나 홈런이다.

특히나 주자가 3루에 가 있는 이상, 점수를 낼 수 있을 때 내야 중심타선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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