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5화 (35/325)

[35]

밖에서 지켜보며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는 관중과 시청자들과 달리, 타석에 있는 이유준의 머리는 복잡했다.

'다음에 뭐지? 포심? 아니면 슬라이더? 아니면 주력구로 알려진 커브?'

그도 프로였기에 동팔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하지만 알더라도 과연 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코스는 대략 예상할 수 있었다.

'내가 몸쪽 공에 약하다는 분석이 있으니 그쪽으로 던질 수 있어. 어차피 리드는 포수가 하니까.'

그는 몸쪽 공을 대비하고 살짝 뒤로 물러났다. 배트를 휘두르면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간격.

그의 행동에 포수 김강수는 의도를 알아차렸다.

'몸쪽 공을 대비한다라… 그럼…….'

김강수는 동팔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가 보낸 사인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사인을 본 RG의 코치들이 서로 말했다.

"복잡하네… 의도는 알겠는데……."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동팔이가 던질 수 있나? 보긴 본 것 같은데 지금 상태에선……"

한 코치의 중얼거림에 임상훈 감독이 답했다.

"가능해. 첫 관문을 확실히 통과했어."

코치들은 이번에 공을 던지는 동팔을 보고 말했다.

"정말로 저기서 그걸 던지면… 사람들의 반응이 기대됩니다. 이런 투수는 한국에 없었으니까."

그의 말이 끝났을 때, 동팔은 김강수 포수가 주문한 대로 공을 던졌다.

동팔이 던진 공은 이유준 타자의 몸쪽으로 직선처럼 향했다.

'역시 몸쪽!!'

예상한 대로 공이 오자 그는 정확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동팔이 던진 공은 몸쪽으로 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바깥쪽으로 빠졌다.

휭~ 퍽!!

"스트~라이크!!"

예상치 못한 빠른 변화구에 이유준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뭐지? 설마 빠른 슬라이더? 아냐. 슬라이더랑 조금 달라…….'

이것이 그가 파악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공의 구질을 몰라 의아한 것은 타석에 있는 그만이 아니었다.

[방금 던진 공은 슬라이더인가요? 절묘하게 빠졌습니다.]

[네… 슬라이더처럼 보이는데… 뭔가 좀 다릅니다. 이거 그립을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 마침 나오네요.]

해설위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슬로우 모션으로 동팔의 투구 동작을 보였다. 동팔이 공을 쥔 손은 돋보기 기능으로 확대하여 보여주었다.

[설마… 투심인가요? 잡는 걸 보니 확실히 투심인데… 한국에서 투심을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나오다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해설위원을 보자 캐스터도 같이 긴장하며 물었다.

[투심이요?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는 공 아닌가요?]

[맞습니다. 투심은 포심과 달라 아주 높은 제구력을 필요로 합니다. 단순히 공을 쥐는 것만으로 이렇게 구분하지 않죠. 낙폭이 크지 않아 제구가 쉬운 포심과 달리, 투심은 어느 각도로 잡고 던지느냐에 따라 공이 휩니다.

그래서 팔의 각도는 물론, 쥐고 있는 손도 중요한데요.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의도한 곳과 전혀 다른 곳으로 공이 가기 때문에 부단한 연습과 뛰어난 감각을 필요로 하는 고난이도의 구질입니다. 한국에도 투심을 던지는 투수가 있지만 주력구인 선수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대단한가 싶었던 캐스터지만 해설위원의 설명이 이어지자 그의 표정은 점점 놀라움으로 번져 갔다.

[그럼 강동팔 선수는 포심 패스트 볼이 150이 되는 건 물론이고 전에 던진 슬라이더에 기본 주력구인 커브, 거기에 투심까지 던질 수 있는 거군요.]

[투심은 계속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만약 강동팔 선수가 방금 던진 투심을 계속 던질 수 있다면… 어쩌면 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강동팔 선수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처음에 빠른 슬라이더라 생각한 사람은 동팔이 빠른 변화구도 던질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이구연 해설위원의 해설을 듣자 점점 그들 사이에 큰 요동이 일어났다.

특히나 중계와 경기를 동시에 보는 관중들은 요동의 중심에 있었다.

"정말 투심?"

"진짜? 그걸 던지는 투수가 한국에 있다고?"

"던지는 투수야 있지. 항상 제구하기 어려운 구종이라 잘 안 던져서 그렇지만……."

그 변화는 응원의 목소리에서 나타났다.

지금 스코어는 6대 5.

단 1점 차이로 RG가 지고 있었다. RG의 팬들은 동팔의 위력적인 구위를 보고 절로 응원소리가 높아졌다.

160

로데의 공격인 8회 말.

사직구장을 찾아온 로데의 팬들은 생각했다.

신인 투수가 올라오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쉽게 승리를 가져갈 것이다.

특히나 첫 타자가 2루타로 나가는 순간,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들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휙~ 퍽!!

"스트라이크!! 아웃!!"

9번 타자 이유준은 세 번째로 날아온 공을 치지 못하고 헛스윙으로 타석을 마감했다.

이어서 올라온 타자는 로데의 1번 타자 강용진.

날렵한 몸과 매서운 눈빛으로 배트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선수였다.

김상수 포수는 강용진이 올라오자 부담을 느꼈다.

'테이블 세터인 1번 타자. 스트라이크든 볼이든 배트에 닿는다 싶으면 무조건 컨택… 꽤 골치 아픈데…….'

이제부터는 로데의 중심타선과 상대해야 한다.

이미 2루에선 3루로 도루하기 위해 대주자로 교체한 상태. 발이 빠른 주자가 나가 있으니 포수는 물론 마운드에 올라와 있는 동팔도 신경이 쓰였다.

김강수는 더그아웃에 있는 코치에게 사인을 받았다.

'응? 주자는 무시하라고?'

주자를 신경 쓰지 않는 건 타석에 있는 타자에게만 집중하라는 의미.

중심타선이라 부담스러웠지만 더그아웃에서 내린 결정이니 안 따를 수도 없었다.

동팔도 포수에게 사인을 받고 더 이상 뒤에서 3루로 도루할 준비하는 주자를 보지 않았다.

동팔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공을 때릴 준비를 하는 강용진을 봤다.

분명히 그가 동팔보다 경험도, 나이도 많았다.

하지만 동팔은 지지 않겠다는 듯이 바라보며 공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대로 물러나면 나아갈 수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노력한 그리고 감내한 고통을 생각하면 더욱더.

악마와 계약하기 전, 3년간 설움과 절망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공을 던졌다. 악마와 계약한 다음에는 혹사 이후에 회복하는 고통에서 눈물을 흘렸다.

결국 첫 단추를 끼워 프로에 입단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동팔의 집중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후우……."

사인을 받은 동팔은 그대로 공을 뿌렸다.

쉭~ 퍽!!

"스트~라이크!!"

초구는 투심 패스트 볼.

정확하게 제구된 공은 한가운데 몰리는 듯하더니 바깥쪽으로 빠졌다. 타자는 처음 궤적을 보고 속아 실투로 생각하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허공만 갈랐다.

[153km/h]

변화하는 빠른 공에 타자가 헛스윙하자 RG의 응원석이 환호했다.

도저히 칠 엄두가 나지 않는 동팔의 공이었지만 강용진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기만 하더니 다시 집중했다.

공을 받은 동팔은 다음 투구를 준비했다.

이후에 던진 공은 변화구인 커브.

선구안이 좋은 강용진은 자신의 배트에 맞더라도 파울이 될 것을 알았다. 그는 지켜보는 것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볼 카운트를 하나 늘렸다.

그 다음에 동팔이 던진 공은 체인지업.

빠르게 던지는 패스트 볼의 동작과 완전히 일치하는 투구 동작이었다. 강용진은 체인지업이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강용진이 맞춘 공은 좌측 펜스를 향해 날아가는 파울.

그것을 본 동팔과 김강수는 알아차렸다.

'설마 체인지업만 노리고?'

체인지업은 직구와 같은 폼이지만 힘을 덜 받아 패스트 볼보다 느리다.

느린 공이기에 공의 회전에 따라 궤적도 바뀐다.

체인지업을 던지는 목적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아 헛스윙을 유도하거나, 제대로 맞지 않게 하여 범타를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체인지업임을 알아차리고 노리면 장타가 잘 나오는 공이기에 위험한 구종이었다.

상대가 체인지업을 노리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이제 체인지업은 무리다.

구종 하나가 봉쇄되었다.

하지만 동팔은 오히려 불타올랐다. 그동안 쉬운 타자만 상대해 왔다.

공략 난이도가 올라가자 동팔은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것처럼 고양되었다. 그 증거로 동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마침 그 장면을 중계 카메라가 찍었다.

그 모습을 본 스틸러스의 선수들, 특히 항상 동팔의 앞에서 공을 받았던 민철이 말했다.

"동팔이 저거 완전히 텐션이 올라갔네. 이제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그러게요. 형님. 지금 동팔이 완전 즐기고 있습니다. 저 모습 정말 간만에 보네."

"우리랑 처음 야구 했을 시절에 짓고 더 이상 안 짓던 표정이었지? 그때 동팔이 내가 상대하면서 그걸 봤는데 타자 입장에선 정말 소름끼치더라."

"종종 느끼는 거지만… 동팔이 저거. 마운드에 올라오면 사람이 바뀐다 아입니까? 평상시에는 세상을 모르는 순딩이지만 마운드에 오르면 야수임더, 야수(野獸)."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의 눈빛처럼 동팔의 눈은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어떤 걸 던질까? 커브는 파악했고 체인지업은 무리. 그러면 패스트 볼인데 뭘 던지지? 투심? 포심? 아니면 슬라이더?'

던질 공은 무궁무진했다. 구종의 차이만이 아니라 그 구종의 변화도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었다.

지금 동팔이 고민하는 것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아웃카운트 하나를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제대로 요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민을 마친 동팔은 스스로 구종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포심을 요구하던 김강수의 사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음에 요구하는 슬라이더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의 주의사항을 김강수에게 전했다. 그는 동팔의 사인에 조금 긴장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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