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동팔아. 지금 상태에서 네 공을 칠 수 있는 로데 타자는 거의 없어. 너의 공에 대한 분석도 없거니와 너의 구위는 우리가 잘 알고 있잖아."
포수의 역할은 투수를 리드하는 것. 그 리드에는 격려와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강수 포수는 간략한 작전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둘은 150 정도. 그리고 마지막 아웃 카운트부터 전력투구해. 왜 그러는지 알지?"
그의 말에 동팔은 아마 1부 리그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동팔의 구위는 너무 압도적이었다. 상대 타자는 동팔 이후에 올라온 투수가 더욱 만만하게 보이는 현상이 일어났고 이것은 자신감의 차이로 바뀌었다.
지금은 아마리그가 아니었기에 선수 출신이 던질 수 있는 이닝 제한이 없었다. 초반에 적당한 공으로 인식시킨 후, 점점 더 위력적인 투구를 하면 효과적으로 이닝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RG의 불펜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는 없었다.
이것은 8이닝과 9이닝을 전부 동팔에게 맡기겠다는 신뢰의 표시.
돌아갈 길이 없는, 무조건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동팔에게 실력이 없다면 이 현실이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동팔은 안다. 그의 공을 아는 사람도 안다.
자신을 믿어주는 이 상황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되어 다가왔다.
"이제 눈빛이 돌아오네. 잘할 수 있어. 기대한다."
김강수 포수는 그 말을 하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사이 로데에선 강동팔에 대한 성급한 분석을 마쳤다.
"시속 130 후반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40도 가능할 수 있겠는데요. 슬라이더로 133이면 충분할 겁니다."
"일단 승완이가 말한 만큼은 아니지만 구속은 좀 올라 왔네요. 슬라이더도 던질 수 있고."
지금 그들의 판단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었다. 지극히 제한된 정보에서 상식적인 범위라면 그 정도가 적당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유준이지? 그리고 그 다음은 강용진이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1번 타자인 용진이가 나오면 적어도 다음 이닝에 점수를 더 뽑을 수 있을 겁니다."
방금 전 8번 타자가 장타를 쳤고, 중심타선이라 할 수 있는 1~5번 타순이 돌아온다. 로데가 좋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편, 김강수 포수의 격려와 말로 인해 전보다 안정을 찾은 동팔. 그는 손에 든 공의 익숙한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가볍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최~강 로데!!"
"무~적 RG!!"
관중들의 환호와 응원소리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8회였기에 더 응원가가 크게 울리고 있었다.
방금 전과 달리 동팔의 마음은 그들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았다.
동팔의 눈에는 오직 포수의 사인 그리고 타자의 팔꿈치와 무릎, 배트가 들어왔다.
심판마다 스트라이크 존이 조금 다르지만 그 정도 차이는 동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후우……."
주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 도루를 하라면 하라는 듯이 그냥 둔다. 지금 동팔에게 중요한 건 타석에 올라온 타자를 잡는 것.
타석의 타자는 방금 전 동팔이 던진 공으로 그의 구위에 대한 판단을 마쳤다. 그의 판단은 로데 코치와 선수들의 판단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강속구는 못 던져. 그러니 침착하게… 변화구는 잘 보고서 커트하면 그만…….'
아주 절묘한 제구력이 아닌 이상, 빠른 공을 던지지 못하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숫자는 줄어든다. 하지만 이번에 들어온 동팔의 공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었다.
쉭~ 퍽!!
동팔의 공은 빠르게 이유준의 앞을 통과했다.
"어?"
이유준이 생각한 동팔의 구속은 최고 140킬로.
하지만 지금 지나간 공은 그 속도를 가볍게 넘었다.
"스트~라이크!!"
심판의 판정에 이유준은 생각했다.
'잠깐, 생각보다 빠른데? 정말 140 맞아?'
프로에 몇 년을 있으면서 다양한 투수를 상대해 왔다.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물론, 제구력을 바탕으로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도 있었다.
지나가는 공의 느낌만으로 대략적인 속도를 감 잡을 수 있었다. 방금 던진 동팔의 공은 자신이 예상한 시속 140을 충분히 뛰어 넘었다.
원래 잘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그는 정말로 궁금해서 뒤에 있는 스피드건의 전광판을 봤다.
조금 뒤, 동팔이 방금 전에 던진 구속이 나왔다.
[151km/h]
프로에서 150이 넘으면 강속구에 포함된다. 140도 충분히 빠른 공이지만 느낌이 전혀 다르다. 아차 하는 사이에 날아오는 공의 속도가 150 이상이다.
이유준은 생각한 속도가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자신의 감각이 살아 있음에 안도하면서도 크게 난감해했다.
'151? 그럼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동팔을 직접 상대하는 그는 당혹스러움에 직면했다.
중계석에 있던 캐스터와 해설위원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그들은 스피드건에 찍힌 동팔의 구속을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말했다.
[잠깐, 정말 150 이상인가요? 설마 스피드건이 고장 난 건 아닌가요?]
[그 잠깐 사이 고장 날 일은 없으니 맞을 거예요. 하지만 정말 믿기지 않은 구속입니다. 재활에 성공했다지만 잘해야 최고 구속 140 정도로 예상했는데요. 저희의 예상이 틀렸습니다. 150이면… 강동팔 선수가 고교 때 던진 구속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건데요.]
[구속이 완전히 회복된 것도 모자라 방금 전에는 슬라이더를 제대로 꽂아 넣었는데요. 그럼 그때보다 더 강해져서 돌아온 거 아닌가요? 강속구에 커브, 슬라이더까지.]
이는 비단 중계석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직접 관람하고 있는 관중들도 놀랐다.
"야, 정말 150인가 봐. 자꾸 보여준다."
"진짜? 방금 전 잠깐 나와서 잘 못 봤는데 진짜로?"
한국에서 시속 150 이상의 구속을 지닌 투수는 많지 않다. 물론 무리해서 던지면 가능하지만 문제는 제구력이다. 연습경기나 훈련 중에 던질 수 있어도, 실제 경기에서 던지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컨트롤에 실패해서 타자의 머리로 향하면 스치기만 해도 퇴장이다.
그만큼 자신이 없으면 강속구는 던질 수 없었다.
그사이, 중계방송을 하는 방송국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야, 빨리 강동팔 선수 자료 다 가져와!! 다음 이닝 특별 영상 반드시 만들어야 해!!"
방송국 관계자들은 불타올랐다. 특히나 강동팔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재기하고 복귀한 것도 좋아. 150이라고? 이건 이전 구속을 완전히 회복한 거잖아? 잠깐, 그럼 배경은 불사조? 촌스럽지 않은 불사조 이미지나 동영상이 어디 있더라? 그리고 BGM은…….'
그의 머릿속에선 이미 시청자들의 채널을 돌리고 고정시킨 영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동팔이 8회 말에 던지는 동안 그리고 RG가 9회 초에 공격하는 동안에 영상을 다 만들어야 했기에 조급했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지금 로데가 이기고 있습니다. 경기 끝나면 로데 승리 영상이랑 하이라이트도 만들어야 하고 지금이면 9회 초에 경기가 끝날 수 있습니다."
"지금 그게 중요해? 그거보다 더 큰 게 여기 있잖아!! 그건 대충 만들어. 항상 해 봐서 잘 알잖아!! 그리고 강동팔 특별 영상 만들어 놓으면 타이틀은 '불사조 강동팔. 더욱 진화해서 돌아오다!!' 그걸로 가!!"
그의 눈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울 만도 하지만 동팔의 구위를 보고 그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제길… 이걸 뉴스 특보로 알릴 수 없다니…….'
정치를 포함하여 안전과 관련된 속보가 아닌 이상, 이미 방송 중인 채널에 속보 자막을 넣을 수 없다.
아무리 충격적이고 좋은 소식이라도 스포츠였기에 한계가 있었다.
만약 그게 가능한 이벤트라면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도. 예를 들면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을 때나 월드컵이나 그에 준하는 세계권 대회에서 특별한 업적을 세웠을 경우에 한했다.
그마저도 인기가 있는 종목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지. 조만간 강동팔 선수 특집 코너가 필요할지 모르니 그거 준비도 해야 하고……."
동팔이 던진 단 하나의 공. 그 공이 적지인 사직구장에 조용한 변화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이야~~!!"
"동팔이 쩐다!!"
"저노마, 저노마. 언젠가 사고 칠 줄 알았다 안 카나? 하하하."
스틸러스의 사람들은 동팔이 150의 구속을 보여주자 모두 뛰면서 좋아했다. 그 와중에 민철은 가만히 있었다. 처음에 좋아하던 사람들도 민철이 가만히 있자 궁금해하면서 물었다.
"민철이 형님은 왜 가만히 계시는 겁니까? 제일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그의 물음에 다른 사람들도 민철을 보았다. 그러자 민철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너희들… 아직도 모르겠냐? 지금 몇 회지?"
"그야… 8회 말 아닙니까?"
"그래. 9회 말이 아냐. 그런데 왜 벌써 150을 던지는 거지? 전력투구는 9회에 해야 하니 힘을 비축해야 하는데?"
민철의 말에 스틸러스의 사람들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 졌다.
"그럼… 민철이 형은 지금 동팔이가 던진 공이… 최고 구속이 아닐 수 있다… 그 말이에요? 하지만 사실 9회 초에 RG가 점수를 못 내면 9회 말도 없이 경기 끝나니까 마지막이나 다를 바가 없잖아요."
이미 150을 넘은 것도 대단하다.
그런데 그게 최고속이 아니라면? 물론 민철이 과민 반응을 보인 걸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민철은 솔직히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의 직감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몰라. 어쩌면 지금이 최고 구속일 수 있겠지. 어차피 모든 타자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프로가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잖아. 직접 상대하지 않아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 공이 눈에 익어.
이대로 이닝을 끝내도 다음에는 로데의 중심타선을 상대해야 해. 그럼… 나라면 차라리 던질 수 있는 최고속에서 조금 모자란 속도로 던진 후, 타이밍을 뺏도록 할 거야.
"
민철의 말에 스틸러스 사람들은 알았다.
그가 왜 굳은 표정으로 TV중계를 보고 있었는지, 동시에 그의 눈에 어린 환희의 빛도 놓치지 않았다.
"동팔이 자식… 곧 성공할 거란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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