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동팔이 형? 혼자 들어오시는 거세요?"
"응. 코치님이 나만 부르시던데."
"그래요? 이상하네……."
이진웅은 그 말을 하면서 전광판을 봤다.
지금은 8회 초, 자신들의 공격이었다. 이진웅은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 감독님… 그러실 생각이신가?"
그리고 동팔을 보며 말했다.
"어쩌면 한 이닝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더 던지실 수 있어요. 그러니 단단히 준비할게요. 처음에는 가볍게, 좀 있다가 전력으로 여섯 번 정도 하겠습니다."
"알았어."
처음으로 프로리그의 불펜에 들어온 동팔은 그냥 그러려니 생각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으니 지금 하는 것도 평상시에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해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RG의 공격은 약속의 8회를 증명하듯이 어떻게든 3점을 내고 마무리되었다.
현재 스코어는 6:5.
한 점차, 박빙의 승부였다.
덕분에 예상보다 투구를 더 많이 연습한 동팔은 적당히 달아오른 어깨를 유지하며 마운드로 향했다.
더그아웃을 나오기 전, 임상훈 감독이 동팔에게 말했다.
"프로의 첫 관문이자 마지막 관문이다. 어떻게 되도 상관없으니까 제대로 던지고 와."
"네? 네… 알겠습니다."
동팔은 감독의 말에 이렇게 생각했다.
'지고 있는 게임이니 부담 없이 던지라는 말씀이신가? 하지만 1점 차로 따라붙었는데 그럴 수 없지…….'
8회 말의 로데 공격을 막으면 9회 초 마지막 공격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그 생각을 하며 더그아웃을 나오는 순간, 동팔은 예상치 못한 것을 느꼈다.
"무~적 RG!!!"
"최~강 로데!!!"
양팀을 응원하는 소리는 더그아웃에서 들었던 것과 같았다. 응원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로 느끼는 압박감은 전혀 달랐다.
더그아웃에선 TV중계를 생생하게 본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나와서 마운드를 향한 순간 관중들의 응원과 환호, 야유는 동팔의 머리와 심장을 강하게 파고 들어와 찍어 눌렀다.
크게만 들렸던 관중들의 외침이 귀를 진동시켰다. 그 진동은 동팔의 심장을 흔들기 충분했고 방금 전에 했던 생각과 결의도 단번에 머릿속에서 날려버렸다.
수많은 관중들. 사직구장은 최대 28,000명이 들어올 수 있다.
프로야구의 모든 개막전 좌석이 매진되었으니 정말로 3만 명에 달하는 관중들이 마운드에 오르고 있는 강동팔을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나 동팔이 서 있어야 할 곳은 모든 관중의 시선이 집중되는 마운드. 28,000명이 보내는 시선의 압박에 동팔은 숨조차 쉬기 힘들어 호흡이 가빠왔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 나온 포수가 동팔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동팔아. 긴장하지 말고 심호흡해."
"아, 네……."
동팔은 그의 말대로 깊게 들이쉬었다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투수코치가 걱정하며 말했다.
"동팔이 괜찮을까? 프로로 처음 오른 마운드가 사직구장, 그것도 만원(滿員) 관중인 상태라니……."
그의 말에 승리가 날아간 강중근 투수가 답했다.
"아마 다리가 후들거릴 겁니다. 저도 처음 마운드 올랐을 때 어떻게 공을 던졌는지 몰랐거든요. 손에 힘은 안 들어가고 어깨와 팔에 힘을 어느 정도 줘야 하는지 전혀 감도 오지 않았으니……."
그에 임상훈 감독이 말했다.
"프로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야. 지고 있는 중이라도 이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면 나중에 더 많은 것이 걸렸을 땐 제대로 못 던져. 프로투수에게 제일 중요한 건 투구 능력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는 강심장이기도 하지."
그 말을 하는 사이에도 감독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동팔의 표정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말했다.
"이야~ 동팔이 표정 굳었다. 청룡기 때랑 비교할 수 없는 시선을 한 몸에 받으니 당연하겠지만."
"동팔이가 이걸 잘 넘어가야 할 텐데… 하긴 시범경기 때와 전혀 다른 분위기니……."
그의 말에 임상훈 감독이 말했다.
"그래서 시범경기에 안 보내고 제구력 위주로 훈련시킨 거야. 동팔이 구위가 너무 좋으니 분명히 연습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겠지. 그러다 기고만장해지면 곤란해. 높은 곳에 있으면 떨어질 때의 충격이 그만큼 큰 법이니까."
감독의 말에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동팔이 공이 보통 좋은 게 아니죠."
"그때 잘 던져도 본 경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면 실투가 나오기 마련이야. 실투를 놓칠 정도로 만만한 타자들은 여기에 없어. 그러면… 동팔이는 프로의 장벽이 아주 높다고 판단하고 자신감이 결여되겠지. 자신감의 결여는 곧 구위에 영향을 주니……."
단순히 훈련을 생각하면 실전 감각을 위해 동팔을 보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연습경기에서 잘하다가 본 경기에서 실수하여 추락하는 신인도 많았다.
임상훈 감독은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동팔의 구위를 더 높일 필요는 없었다. 그럼 남은 건 단 하나. 이 순간을 잘 넘어가기 위한 준비해야지. 그동안 시범경기에 나오지 못했으니 자신의 위치가 불안하다고 느낄 거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어. 도망치지 않았으니… 그 결과는 곧 나오겠지."
그들이 그 말을 하는 사이, 8회 초가 시작되었다.
'아… 음… 저기다 던지면 되나……?'
이제 동팔은 두려움에 떨고 있기보다 정신이 멍했다. 너무 강한 압박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김강수 포수는 생각했다.
'무서워 떨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어째 상태가 영…….'
동팔이 최대한 정신줄을 잡을 수 있게 손으로 열심히 사인을 보냈다.
여기저기서 복잡하게 했지만 그가 보낸 사인은 중간 속도의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
동팔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는 이구연 해설위원이 말했다.
[강동팔 선수. 많이 떨릴 거예요. 이럴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죠. 바로 훈련입니다. 그럼 머리는 멍해도 몸을 알아서 움직이거든요.]
그의 말을 증명하듯 동팔은 익숙하게 다리를 올린 후, 강하게 바닥에 내딛었다. 등 뒤로 간 손과 공은 강한 탄력을 받으며 포수의 글러브를 향해 날아갔다.
휙~ 퍽!
"스트~라이크!!"
로데의 타자는 동팔의 공을 보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공이 좋아. 느리지도 않고 스트라이크 존에 제대로 걸쳤어.'
타자가 치기 힘든 공은 스트라이크인지 아니면 볼인지 헛갈리는 공이다.
정석적으로 따지면 동팔의 공은 이상적이었다.
타자는 그렇다고 긴장하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이번 건 프로 첫 투구니까 봐주지만…….'
상대팀이라도 같은 선수이기에 공유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부상을 막는 것.
그리고 상대의 기본적인 배려다.
재기한 이후 프로에서 처음으로 던진 공이 안타를 맞거나 홈런을 맞으면 그건 그것대로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어떤 타자는 프로에서 처음 올라온 신인의 첫 투구는 치지 않는다.
관중들과 중계석에서는 그런 것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것은 포수 뒤에 있는 스피드건의 숫자였다.
[지금 133 나왔네요. 적당히 빠른 슬라이더였습니다.]
[제대로 꽉 찬 공이었습니다. 이 투구가 우연이 아니라면 강동팔 선수, 이번 시즌 기대해볼 만하겠습니다.]
타자도 슬쩍 뒤를 보며 동팔의 정확한 구속을 봤다.
'구속은 적당히 파악했고 제구력도 좋아. 볼 끝이 살아 있어.'
다음에 던질 공을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치지 못할 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팔은 다시 사인을 받았다.
'이번에는… 포심?'
낙차가 크지 않는 빠른 볼을 요구했다.
'하긴 방금 전에는 바깥쪽 아래로 빠지는 슬라이더니, 포심을 던지면 더 위로 올라오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포수의 의도를 안 동팔은 포심 그립을 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여전히 관중들의 시선과 외침, 환호와 야유가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공은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동팔은 스스로 동작을 절제하기 위해 몸에 힘을 뺐다.
익숙한 동작으로 공을 던지는 순간, 동팔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아뿔싸!! 힘이……!!'
포심 패스트 볼의 장점은 정확한 제구. 하지만 공의 궤적의 변화가 없기에 타자가 알아차리면 장타로 연결이 된다. 그러니 타자가 알아차릴 수 없게 빠르게 던져야 한다.
그런데 팔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이 구속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기회!!'
프로에서 몇 년의 시간을 1군에 있었기에 타자는 단번에 먹잇감인 줄 알고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경쾌한 소리가 나며 공은 우중간을 깨끗하게 갈랐다.
"와아~!!!"
이미 이기고 있는 중이지만 2루타가 나오자 로데의 팬들은 더욱 환호했다. 한 점 차이로 쫓기는 이상, 이참에 점수를 더 벌려야 안심할 수 있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안타를 맞자 동팔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김강수 포수가 일어나 잠시 경기를 멈추고 동팔에게 다가갔다.
"동팔아. 지금 정신없지? 다 이해해. 나도 프로 처음에 올라왔을 때 엄청 긴장했거든. 시선이 집중되는 마운드도 아닌데 말이야."
"네……."
"하지만 이건 익숙해지면 아무렇지 않아. 그런데 그 전에 감독님께서 너한테 말씀하신 것이 있었지? 뭐라고 말씀하셨어?"
"그건… 프로의 첫 관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되도 상관없으니 제대로 던지고 오라고 말씀하셨어요."
동팔의 말에 김강수 포수가 말했다.
"맞아. 이제 프로 첫 관문이야. 지금 네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타자이기도 하지만 관중이기도 해. 이 압박을 이기지 못하면 너 메이저리그 가서도 제대로 못 던진다."
김강수의 뒷말은 농담이었다. 그 말에 동팔은 자신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래… 난… 4년 안에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월드 시리즈에서 모일 관중의 숫자는 여기보다 많을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전 세계에 생중계가 되는 대회다. 우승이 걸린 경기라면 더욱더 시선을 받을 터.
자신은 4년 안에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죽는다.
그것도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는 죽음을 당해야 한다.
그때 남게 될 가족들 그리고 민희가 떠올랐다. 동시에 여기까지 오는 데 한 노력과 고통이 떠올랐다.
'그래. 고작… 이 정도도 이기지 못해서야…….'
으득.
동팔의 반응에 김강수 포수는 생각했다.
'감독님이 왜 너를 시범경기에 보내지 않았는지 말해줄까 했지만… 이걸 보니 나중에 해도 되겠네.'
대신 동팔에게 하나의 사실을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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