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32화 (32/325)

[32]

"무~적 RG!!!"

"최~강 로데!!"

이어서 단장과 치어리더들이 주도하는 응원이 예열을 준비한다.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팀의 응원가를 불렀다.

이번에는 어웨이팀인 RG가 먼저 공격했다. 로데의 연고지인 부산에서 경기가 진행되기에 로데를 응원하는 관중이 훨씬 많았다.

더군다나 팬들이 많기로 유명한 세 팀 중 두 팀이 개막전에 맞붙었다. 관중의 응원 열기는 더욱 뜨거워져 아직은 추운 초봄의 기온과 바닷바람을 몰아내고 있었다.

"개막전이라 변수가 많겠지만 처리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처리하고 가자."

개막전인 이상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대팀에 대한 정보는 어디까지나 작년 것이 전부다. 가을의 추수가 있기 전까지는 작년에 나온 쌀이 햅쌀인 이유와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 로데 1군에 신인이 없다는 것 정도? 지금 전부 2군에 가 있지?"

"그렇습니다. 지금 선수들도 작년에 있거나, 트레이드 한 애들뿐입니다."

"신인이야 분석할 자료가 많지 않다는 것만 빼면 별거 없는데……."

신인이 프로에 올라오자마자 위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특히 역사가 오랜 리그일수록 더욱 그렇다. 리그가 생긴 지 오래되지 않다면 틀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 신인과 베테랑의 격차가 많지 않다.

오래된 리그는 그만큼 선수들도 노하우가 쌓였다. 그렇게 쌓인 노하우는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데 쓰인다.

특히 훈련법과 재활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중요한 자원이다. 그 자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수나, 기존의 선수들의 기량을 높였다.

그것은 리그의 역사만큼 쌓이며, 동시에 신인과 베테랑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한국 프로야구도 역사가 35년을 넘어가는 만큼 경험과 지식, 노하우가 쌓여 초반과 달리 신인의 돌풍 빈도가 줄어들었다.

이젠 신인이라 해도 잠재력을 보고 데려오지, 기존에 완성된 선수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완성된 선수가 아니기에 극도로 경계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스프링캠프에서 얼마나 바뀌겠느냐만 그 오차도 무시할 수 없지. 강점과 약점은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나마 상대팀에 신인이 없어서 분석이 용이한 RG와 달리 로데는 조금 머리가 아팠다.

"강동팔이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이번에 올라오냐?"

"재기했다고 하지만 얼마나 재활에 성공했는지 알 수 없으니 난감합니다. 병원을 수소문하려 해도 시간이 없었고……."

재활했다면 당연히 병원에서 했을 거란 게 상식이다.

하지만 동팔의 재활은 상식과 달랐기에 오랜 시간 병원에서 재활을 받지 않았다. 동팔이 병원에 간 것은 어디까지나 회복이 되었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 갔을 뿐이다.

병원에 간 빈도가 낮으니, 찾으려 해도 쉬울 리가 없었다. 설령 정보를 얻더라도 고작해야 '회복이 되었다'가 전부였다.

팀에겐 회복을 하고 '어느 구위까지 올라왔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정보였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이전에 150까지 던졌으니 그때를 기준으로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어? 한 번 끝났다고 판단이 내려진 상황에? 잘해야 140 걸치면 다행일 거다. 그사이 제구력이 좋아졌다는 건 들었지만 어느 정도인지 알 수도 없고……."

그러던 중 한 코치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승완이가 동팔이랑 같이 야구했다고 하지 않았어? 아마 1부 리그에서 같은 팀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한 번 알아볼까?"

그의 말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됐어. 구단이랑 완전히 깨진 상태로 방출되듯이 나갔는데 퍽이나 좋은 정보를 알려주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꼼수 같은 거 싫어하는 사람이니 거짓말은 안 할 거야. 차라리 말을 안 하면 안 했지. 내가 전화해 볼게."

경기는 이제 막 시작하는 중이라 선수들은 필드로 나왔다. 상대팀인 RG는 공격 팀이라 타자 한 사람만 나온 상태. 투수는 타석에 서지 않는 한국 리그의 특성 덕분에 급할 것도 없었다.

"어~ 승완아. 나야, 나. 다른 게 아니라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뭔데? 갑자기 연락하고. 그러고 보니 지금 개막하는 날인데… 바쁜 데도 전화하고. 혹시 너네 RG랑 하냐?

"그렇지. 역시 바로 아네. 사실 그거 때문에 전화했어."

이전 코치였다지만 좋지 않은 트러블이 생겨 나간 사람이다. 그에 윤승완도 그들이 왜 전화했는지 단번에 알았다.

―혹시 동팔이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동팔이 RG에 입단한 건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계약에 적절한 조언을 해준 사람이 자신이었으니 모를 수 없었다. 그의 말에 로데의 코치가 반색하며 말했다.

"그렇지. 이야기 들어보니까 자네랑 작년에 같은 팀에 있었다면서? 혹시 정보 있어?"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는데? 나 이제 로데 코치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 그리고 그 일도……."

그 말을 하면서 코치는 근처에 있는 감독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며 이어서 말했다.

"솔직히 그 일은 우리도 많이 안 좋게 생각하고 있어. 엄밀히 말하면 네 입장이랑 우리 코치들 입장이랑 같은 거 아니냐. 특히 이름값 있는 네가 그 꼴이 났는데 우리는 어떻겠어. 우리도 안 된다고 말렸지만 구단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했으니 우리가 어쩌겠냐. 그때 아무도 모르게 미안하단 말밖에 해준 게 없는 게 아직도 내 마음을 누른다."

그리고 다시 입을 가린 손을 치우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해주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 그건 네 자유인데. 그래도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조금만 알려줄 수 없겠냐?"

그의 말에 윤승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답했다.

―내가 말한 건 믿을 수 있고?

"네가 거짓말할 사람도 아닌데 왜 못 믿겠냐. 그래서 강동팔 선수는 어떤데?"

―나는 거짓말이야 안 하지. 대신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신 없어서 그래. 그 녀석… 내가 전에 본 적 없던 진짜 천재야.

그러자 가볍게 전화했던 로데 코치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네가 천재라고 할 선수가 있었어? 대체 어느 정도인데?"

그 물음에 윤승완은 자신이 본 사실 그대로를 말해주었다.

―구속이 이미 150을 넘었어. 어쩌면 160도 가능할지 몰라. 실제로 내가 재 봤으니까 틀림없어.

"뭐?!"

―그리고 변화구는 커브에 슬라이더랑 체인지업도 잘 던져. 패스트 볼도 포심은 물론 투심까지 던진다. 제구력은 한국의 어떤 투수들보다 정확해.

윤승완의 말에 로데 코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화를 내며 말했다.

"야, 윤승완! 너 진짜 이러기냐? 아무리 우리가 싫어도 그렇지 이렇게 사람을 놀려? 이제 재기한 사람이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 윤승완이 한 말은 국내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톱클래스 안에 드는 스펙이었다. 그런 선수가 왜 한국 리그에 있겠는가?

―그래서 미리 말했잖아. 말해도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없다고.

"너……."

―나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너처럼 못 믿고 화를 냈을 거다. 그러니 지금 네가 화를 내도 이해해. 근데 내가 허튼 말한 적 있든?

"……."

―그러니까 내가 말해준 걸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하고 대비해. 어쩌면 셋업맨으로 등판할 수 있으니까 그때 보면 바로 알 일인데.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윤승완의 말에 로데 코치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진지한 표정이 되어 물어보았다.

"그거… 정말 사실이야?"

―나오면 직접 확인해 봐. 일단 내가 말한 건 사실이니까.

"알았다. 말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화내서 미안하다. 조만간 서울 올라가면 같이 한잔하자. 내가 살게."

그것으로 통화를 마친 로데 코치.

다른 코치들은 물론 감독도 그를 보고 있었다. 그들 중 타격코치가 와서 물어봤다.

"승완이라 뭐래?"

그의 물음에 코치는 갈등했다.

'승완이가 한 말을 그대로 해, 말아?'

자신이 감당할 일은 아니었지만 이후의 반응이 두려웠다. 그래도 말하지 않을 수 없기에 그는 승완이 한 말 그대로 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반응은 코치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속 160?"

"주력구가 셋 이상인 것도 대단한데 그걸 제대로 컨트롤하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고작 26살에?"

"뻥도 적당히 쳐야지 믿지… 이건 로데 싫다고 대놓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달라?"

하지만 윤승완과 친하거나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 승완이가?'

'믿기 힘든 말이지만 평상시 승완이를 생각하면 우리가 싫더라도 이렇게 놀릴 사람은 아닌데…….'

그러나 그들은 감독의 눈치를 보다가 자신들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로데 감독이 말했다.

"신경 꺼. 연습 경기에 내보내지 않은 걸 보면 뻔하지."

그것으로 동팔에 대한 로데의 경계와 주의는 끝이 났다.

개막전의 결과에 따라서 이번 시즌의 결과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한국 프로야구리그의 경기 숫자는 한 팀당 144경기.

그중 개막전은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결국 144번의 경기 중에 하나다.

아직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불확실하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지는 게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결국 모든 경기의 결과가 쌓여 리그 마지막에 가을 야구를 하는 팀과 우승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첫 시작을 승리로 장식하는 것이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일.

애초에 이기려고 경기하지, 지려고 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지는 것은 쉬워도 이기는 것은 어려운 법.

6회를 넘어 7회 말, 로데의 공격.

따악~!!

선발투수인 강중근이 내려오고 셋업맨인 이규민이 올라왔다. 6회까지 단 2실점으로 잘 막은 RG였지만 7회에 연속 안타와 홈런으로 4실점을 하고 말았다.

전광판에 적힌 점수는 6:2였다.

이기고 있다가 역전되는 바람에 중간 계투로 오른 이규민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G의 임상훈 감독은 투수를 교체하지 않았다.

이미 투수코치가 물어봤지만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규민이 한 이닝을 마무리 짓자 필드에 있던 선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수비하던 선수들이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다른 선수들과 코치들이 말했다.

"수고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임상훈 감독이 투수코치에게 말했다.

"동팔이 준비 시켜."

"네? 네. 알겠습니다."

투수코치는 감독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동팔을 향해 다가가며 생각했다.

'동팔이 한 명만? 적어도 두 명은 준비시켜야 할 텐데?'

감독이 그걸 모를 리도 없었다. 이건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 이상, 습관과 같은 것이기에 더 의아했다. 하지만 감독이 한 명만 준비시키라고 했기에 그는 일단 따랐다.

"동팔아. 다음 이닝에 마운드에 올라갈 준비해."

그 말의 의미는 동팔도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동팔은 그대로 불펜으로 향했다. 그가 들어오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포수 이진웅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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