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7화 (27/325)

[27]

"엄마. 아빠. 동팔이 곤란하게 왜 그런 말을 해. 참 동팔아. 민희한테 이야기했어?"

"아, 응. 당연히 이야기했지."

"어떻게?"

"어떻게라니? 일단 전화로."

동팔의 말에 누나가 다그쳤다.

"야, 너 진짜. 그런 건 전화 말고 나중에 직접 만나서 또 이야기해야지!!"

누나의 말에 동팔은 나름 변명을 했다.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당장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일단 먼저 소식을 전해야지. 나중에 말해주면 너무 늦잖아."

하지만 변명은 변명일 뿐.

동팔의 말은 누나의 야단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왜 못 만나? 어디에서 일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 직접 찾아가면 되는 거지."

"하지만 나왔을 땐 너무 늦어서 퇴근했던데."

"그럼 집 근처까지 가서 만나면 될 거 아냐. 우리야 네가 집에 올 게 뻔하니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지만 민희는 그게 안 되잖니."

누나의 야단과 연애에 대한 조언과 충고가 이어졌다.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누나의 야단에 결국 항복한 사람은 동팔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알았으면 지금 당장 행동 안 하고 뭐 하고 있어? 지금 집에 있지만 내심 네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누나이 말에 동팔은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시간은 9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더 늦으면 나오라는 말도 하기 힘들어진다."

"알았다니까 그러네… 그럼… 저 잠시 나갔다 올게요."

이야기를 하다가 나가는 거지만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럼… 그래야지."

"앞으로 편하게 살려면 지금부터 네 자유를 미리 투자해라."

동팔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으면서 민희에게 만나자 전화했다. 당연히 민희는 오케이.

동팔은 집에서 나올 때, 부모님의 말씀으로 인해 발을 헛디딜 뻔했다.

"동팔아."

"네. 말씀하세요."

"오늘은 집에 안 들어와도 된다."

"컥!!"

집에 안 들어오면 어디서 잠을 잘까?

당연히 호텔이거나 모텔이다. 혼자 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 대상은 뻔했다.

"돼, 됐어요. 나중에요."

동팔은 부리나케 집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그가 나가자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나중에? 그래도 안 한다는 말은 안 하네?"

"그러게. 껄껄껄!!"

민희의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동팔은 그녀와 만났다.

"미안.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아뇨. 오히려 좋아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한적한 카페에서 앉은 두 사람. 동팔은 고민했다.

'뭐라고 말하지? 이미 캠프 이야기는 전화로 했는데, 또 해야 하나?'

애초에 그 이야기를 직접 전한다는 것에 의미를 둔 만남이다. 그러니 말을 해도 되지만 이제 막 만나서 그 이야기만 하기 그런 것도 사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서로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가 진동벨이 울렸다.

우우웅~

"나왔다. 가져올게."

남자이기에 그리고 민희를 부른 사람도 자신이었기에 동팔이 직접 가서 받아 왔다. 민희는 동팔이 가져온 따듯한 차이라떼를 마시며 말했다.

"역시 겨울이 다가와서 그런지 따듯한 게 당기네요. 맛도 있고. 그건 어때요?"

"이거? 그냥 그렇지 뭐."

"감상이 그게 뭐예요? 그거 한 번 마셔볼게요. 제 것도 드셔 보세요."

처음에는 서로 마시고 있는 것을 바꿔 마셔가며 가볍게 이야기를 했다.

동팔은 민희에게 물어 보았다.

"그런데 민희는 나중에 뭐 하고 싶어? 그냥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전부인 건 아니잖아."

동팔의 물음에 민희는 들고 있던 음료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요? 이렇게 저만의 카페를 만들어서 한가롭게 살고 싶어요. 실제로 그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저기 치이거나, 무언가에 쫓기고 싶진 않아서요. 하지만 돈이 없으니 창업은 무리고. 있더라도 많이 팔아서 최소한의 벌이는 되어야 하니 또 다른 압박에 있을 거고. 그래서 지금은 돈을 모으려고요."

"그거 회사 봉급으로는 쉽지 않을 텐데……."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힘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럼 나중에 내가 옵션으로 보너스를 받게 되면 어느 정도 줄까? 한… 20% 정도? 사실 그건 민희가 열심히 잘해 줘서 받을 수 있는 거니 일종의 매니저 보수라고 볼 수 있잖아."

동팔의 제의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하긴… 오빠가 옵션 조건을 거의 완수하면 받을 돈이 10억을 넘죠? 거기에 20%면 2억이니 좋기는 좋은데……."

일반적으로 매니저나 에이전트가 받는 수당에 비하면 아주 많은 액수였다. 하지만 민희가 원하는 건 단순히 돈의 액수가 아니었다.

"당장 받는 것보다 나중에 받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 그 돈이 생긴다고 해서 카페를 열고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건물을 사고 내 건물에서 사업을 해야 꾸준히 할 수 있잖아요."

"그럼 나중에 몰아서 받겠다고? 나한테 적금 붓듯이?"

"뭐… 그렇죠."

몰아서 받는 것에는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건 다른 의미였다.

나중에 동팔과 결혼하게 되면 그의 돈을 그녀가 관리하게 되는 것이 한국의 문화다.

물론 다른 경우도 많지만 지금의 상황이라면 동팔이 자신의 자금을 민희에게 맡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그녀에게 매니저를 맡긴 이상 자신의 돈을 이미 맡긴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애초에 민희의 목적은 동팔이 이후에 벌어들일 돈이 아니었다. 돈보다 이후에 결혼에 대한 생각이 동팔에게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둔감한 동팔도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팔은 모르는 척했다.

"알았어. 그럼 나중에… 한… 4년 뒤? 그때 벌어놓은 것에 최소 20%는 민희에게 줄게. 민희에겐 자격이 충분히 있으니까."

솔직히 민희는 동팔이 '자신과 결혼하면 결국 내 돈이 네 돈이라면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길 기대했다. 그래서 내심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아리송했다.

'이거… 나랑 결혼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기한도 말하지 않고 그냥 주겠다고 했다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기한이 있으니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생각만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동팔이 이어서 말했다.

"민희야. 나 지금은 가능한 빨리 올라가고 싶어. 그래서 구단과 계약 기간을 가능한 짧게 잡으려 했던 거고. 그리고… 난 앞으로 4년 안으로…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고 싶어."

누가 들으면 우스갯소리냐 할 말이었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것도 아니고 마이너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이제 구단에 입단한 신인 한국 투수였다. 아무리 잠재력이 많더라도 그것을 전부 끌어올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한국 선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야구의 1군 리그인 KBO리그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쟁쟁한 메이저 구단들도 월드 시리즈전의 챔피언십 우승이 힘겹다. 이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두 팀이 겨루어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것이 월드 시리즈.

그런 상황에 동팔은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 것도 아니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말하고 있었다. 언젠가도 아니고 4년 안에.

이 말을 하면서 동팔은 민희가 웃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희는 웃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럼… 4년 동안 야구에 전념하시겠단 건가요……?"

오히려 동팔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주고 있었다. 그녀의 물음에 동팔은 사실대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악마와의 계약이… 그때 끝난다고 말할 수 없으니…….'

계약 당사자인 동팔도 처음에는 현실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을 겪게 되자 믿을 수밖에 없었다.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는 힘을 얻었지만 힘을 얻은 그 이후로 5년 이내에 조건을 완수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죽지 않게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게 된다면? 그 상태에서 자신이 이미 민희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게 된다면?

거기까지 생각하자 자신을 믿고 따라와주는 그녀가 불행해 지는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동팔은 말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든 아니든, 민희에게 결혼하자는 청혼을…….

"응… 그러려고 해.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면… 그때 주변을 돌아보려고."

그 주변에는 가족들도 있지만 민희도 포함된다는 건 본인도 알고 있었다.

동팔이 말한 돌아본다는 의미 또한.

솔직히 민희는 왜 4년인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길어 보이는 4년이지만 지금 자신은 고작해야 24살이다. 그리고 4년 후에 동팔의 나이는 스물아홉, 자신은 스물여덟이다.

늦은 나이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적당한 나이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너무 빠를 수 있기에 민희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말했다.

"그럼… 기다릴게요. 대신… 그땐 확실하게 말해주셔야 해요. 알겠죠?"

"응. 하지 말라고 해도 말할 거야. 다른 사람들이 다 알 수 있게."

처음 불렀던 의도와 달리 전혀 다른 말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한 더 정확한 목표를 말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메이저리그 진출, 잘 해야 월드 시리즈 우승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걸 4년 안에 이루겠다는 건 말할 수 없었다. 민희에게만은 진심으로, 진지하게 말했고 그녀도 받아들여 주었다.

"그런데 오빠. 절 부른 이유는 그거 말하려고 부른 거예요?"

"응? 아니. 이건 어쩌다가.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진 마. 틀림없이 놀릴 거니까."

"그건 저도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부른 이유는 뭔데요?"

"그야… 이번에 캠프 가게 된 거… 다시 말해주고 싶어서. 전화로 말했지만 그래도… 직접 얼굴 보면서 또 전해주고 싶었거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들었다. 민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부분은 다른 부분도 아닌 '직접 얼굴을 보면서'라는 부분이었다.

"어머. 오빠도… 참……."

그 말로 불안하던 민희의 마음도 많이 안정될 수 있었다.

오늘은 서로가 바쁜 날이지만 바쁜 와중에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은 민희에게 그리고 동팔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동팔은 민희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시간이 많이 가서 막차를 타고 겨우 향할 수 있었다.

설령 막차를 놓치더라도 돈이 없어 택시를 못 타는 건 아니다.

프로에 들어온 이상, 이전보다 돈에 덜 연연할 수 있었다. 지금 동팔은 돈의 압박에서 벗어난 것보다 더 큰 속박이 자신에게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4년…이라… 가능할까?"

4년 안에 반드시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전에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생각해서 한 영혼을 건 계약 때문에.

하지만 이렇게 돌아보자 자신에게 이미 많은 것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힘들 때나 좋을 때나 항상 함께해온 가족들. 그리고 자신이 안 좋았을 때, 이미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옆에 있어주고 도와준 민희가 있었다.

아마 2부 리그의 스틸러스 선수들도 있었다. 같이 야구를 할 때도 좋았지만 떠날 때도 붙잡지 않고 동팔의 꿈을 지금도 응원하고 있었다.

레슨장의 사장님도 동팔의 특이한 훈련에 뭐라 하지 않고 도와주고 허용해주셨다. 자신이 아는 부분에 있어는 적절한 도움도 주었다.

회사에선 자신이 다시 투수로 재기하겠다고 하자 시간을 배려했고 검진비용까지 지원해주었다.

지난 1년 동안 윤승완 투수의 코치도 무료로 받았다. 1부 리그의 우랑우탄팀과 함께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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