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스프링캠프
160은 아니지만 그에 육박하는 광속구를 동팔이 던졌다는 소식은 바로 구단 전체에 퍼졌다.
그러자 바로 반응이 나왔다.
"네? 스프링캠프에 저도 간다구요? 저는 아직 2군이잖아요."
스프링캠프는 기본적으로 1군 선수들이 시즌을 시작하기 전, 몸을 만들고 서로의 호흡을 맞춘다. 그리고 각자 맡은 포지션에 대한 훈련도 예외가 아니다.
프로 1군 리그가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있다면 경기 시작 전이 전부지만 훈련하느라 힘을 빼놓으면 정작 시합에 힘을 쏟지 못하게 된다.
당연히 리그가 진행되는 중에는 할 수 있는 훈련은 제한된다.
그러니 리그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몸을 만들어 놓고 진행되는 중에 몸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만약 슬럼프에 빠지든가 체력이 바닥나면 2군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2군에서 훈련 및 휴식을 취하며 몸의 상태를 끌어올린다.
구단으로서도 시즌 성적을 잘 거두기 위해선 스프링캠프에 투자해야 한다. 연봉 협상이 완료되고 다음에 같이하게 된 선수들은 전부 스프링캠프에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렇다고 선수들이 싫어하는 건 아니다. 스프링캠프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은 팀의 주력이라는 인정을 받는 것.
그 인정을 동팔이 받은 증거가 스프링캠프 합류 소식이었다.
"이미 159킬로 던진 거 구단에서 다 알고 있어. 그러니 합류 안 할 수가 있겠냐? 한 사람 더 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고 이미 구단에서도 추가 조치를 다 했어. 너 여권 있냐?"
"네? 여권이요? 없는데요."
"그럼 지금 당장 만들어. 이번에도 LA로 간단다. 이전에는 미국 비자 받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단순 여행이나 단기체류라면 비자 없어도 입국할 수 있어. 그래도 여권은 있어야 하니까 발급 받아 놓고."
그 다음부터 스프링캠프에 가기 전, 동팔이 준비해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경험이 있으니 알아서 준비하지만 동팔은 처음이었기에 세심하게 일일이 알려주었다.
그 모습을 다른 2군의 선수들이 봤지만 아무도 질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안 가는 게 이상한 거지…….'
'강속구에 변화구도 자유자재로 뿌리는데 어떻게 안 부르겠어? 나라도 당장 부르겠다.'
처음부터 실력 차이를 알고 있었다. 이전에 그가 어떤 과정으로 프로에 다시 복귀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만약 동팔이 재능도 없고 실력도 없으면서 캠프에 갔다면 속으로 욕하고 뒤돌아서도 욕할 것이다. 하지만 가야 할 사람이 가는 것이니 질투도 나지 않는다.
동팔은 자신의 실력에 자만하여 다른 사람을 깔보는 일도 없었다. 코치가 돌아가자 그들은 동팔에게 와서 말했다.
"형, 옆에서 다 들었어요. 스프링캠프 가신다면서요?"
"하긴. 동팔이 형이라면 당연히 가셔야죠. 당장 1군은 아니라지만 사실상 1군 인정이나 다를 바 없는 조치인데. 축하드립니다."
그들의 축하에 동팔은 기뻐하고 또 고마워했다.
"미안. 내가 여기 오자마자 너무 바로 가는 건 아닌가 싶은데 괜찮아?"
2군에 있는 선수들은 계속 머물 생각이 없었다.
실력을 쌓고 쌓아 언젠가 1군에 서는 것. 그리고 KBO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여 인정을 받는 것이 목표다.
다른 선수가 1군에 올라가는 것을 보면 자신도 희망을 가지지만 동시에 약간의 질투도 나온다.
그건 동팔이 2군에서 재활했을 때 느낀 자신의 감정이었다. 그러니 동생들의 축하에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생들은 순수하게 축하하고 있었다.
"실력이 있으면 당연히 올라가셔야죠. 동팔이 형이 여기 계속 계시면 저희는 또 뭐가 됩니까?"
"동팔이 형도 못 올라가면 그거 완전히 절망이에요. 절망."
이 좋은 소식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동팔은 동생들에게 말했다.
"오늘 훈련 끝나고 고기나 먹자. 몸 만드는 중이니까 술은 자중하고."
당연히 동팔이 사주는 걸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날 밤.
프로에 입단한 후 더 이상 찾아올 필요가 없어진 레슨장에 온 동팔.
그는 집에 가기 전 사장님과 이야기를 했다.
"오~ 스프링캠프? 좋네. RG구단이면 이번에도 미국으로 가겠네? 어디로 간대?"
"LA로 간대요."
"좋겠다. 난 프로에 간 적도 없고 미국에 간 것도 신혼여행으로 하와이에 간 것이 전부인데."
사장님은 이어서 말했다.
"분명히 좋은 소식인데 말이야 기뻐하지 않은 것 같다? 걱정 있어?"
"네… 아직 시간은 있지만 한동안 멀리 가 있는 것도 그렇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처음이거든요."
"응? 잠깐. 너 처음 입단했을 때 스프링캠프 안 갔어?"
"네. 가기 전에 어깨에 힘이 안 들어가서 병원에 먼저 들렸거든요. 거기서 부상 확인하고 스프링캠프 가기 전에 재활에 들어갔어요. 그 이후는 아시는 대로예요."
동팔의 말에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구나. 오성 구단도 워낙 빵빵한 구단이니 좋은 곳으로 갔을 텐데. 그리고 걱정은 그게 전부는 아니지?"
사장님의 말에 동팔은 사람들에게 잘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말했다.
"네. 분명히 구속(球速)은 올라왔어요. 하지만… 구속이 오른 만큼 제구력이 떨어졌어요. 변화구의 코스를 정확하게 보내는 게 전보다 더 어려워져서……."
사람들은 투수의 구속(球速)에 더 집중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구력.
아무리 공이 빨라도 원하는 곳에 가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오히려 볼넷을 많이 내주게 되어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그동안 동팔이가 던진 공의 속도는 120에서 140 정도. 그런 상황에 구속이 오른 건 좋지만 동시에 제구에도 변화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봐. 구속이 올라가니 당연히 제구가 더 힘들지. 안 그러겠어?"
"그야 그렇죠."
"그럼 이후에 더 열심히 훈련하는 것밖에 더 있겠냐? 너도 처음 여기 와서 던졌을 때 느리게 던져도 원하는 만큼 제구가 안 됐잖아. 2년이 지나니 완벽한 제구가 된 거지. 지금은 안 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150에도 제구가 완벽하게 될 거야."
사장님은 동팔에게 희망을 담아 격려했다.
동시에 주의도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지 말고. 조급하면 안 돼. 그러다 다시 부상을 입으면 어떻게 하냐? 겨우 잡은 기회를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내 자신이 실수해서 잃어버릴 수 없지. 안 그래?"
"네… 그렇죠."
하지만 동팔은 사장님께 말하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괜찮아요. 혹사해도 다음 날이면 회복할 수 있거든요.'
다만 그 과정에 심한 고통이 수반되지만.
동팔이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스프링캠프에 가면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없어. 내가 집에서 하고 있는 훈련을 못 할 거야.'
이전처럼 혹사를 하고 온몸이 회복되면서 더 강해지는 훈련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동팔이 스프링캠프에 가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그곳에는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장점을 사장님이 말했다.
"이젠 윤승완 선수에게 코치 받을 수 없으니 그곳에 가서 제대로 그리고 많이 배워라. 그분도 좋은 선생님이지만 그곳엔 더 체계적인 그리고 더 방대한 노하우가 있는 곳이니까."
지금 동팔에게 필요한 것은 몸의 힘을 더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 그리고 어떻게, 어떤 패턴으로 공을 던져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 노하우를 배우고 직접 경험하며 실행할 수 있는 곳이 스프링캠프였다.
더구나 이전에는 윤승완이라는 한 사람의 경험만으로 배웠다면 이젠 다양한 경험을 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배울 수 있었다.
동팔이 집으로 돌아와 좋은 소식을 전하자 당연히 가족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드디어 동팔이도 제대로 캠프에 가는구나."
"언젠가 갈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결정되다니……."
동팔이 처음 프로에 처음 입단했을 때, 부상으로 인해 가지 못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동팔이가 희망을 잡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희망이 끊어졌을 때 절망에 빠진 모습도 직접 봤다.
"전에 다 잃고 군대에 갔을 때만 해도 세상이 끝난 줄 알았지."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더니 드디어 결실을 거두네."
"계속 야구할 땐 안쓰럽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걱정했는데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라 다행이다. 내가 괜히 거기 넣어 달라고 했나?"
누나의 말에 동팔은 웃으며 말했다.
"아냐. 누나. 야구장이인 나한테 맞는 일은 아니었지만 좋은 만남도 많았으니까."
동팔의 말에 엄마가 물었다.
"그렇지. 거기서 민희 만났지? 들어보니까 너 계약할 때 아주 똑 부러지게 잘했다면서? 정말 잘 만났지. 인연도 이런 인연이 없어. 그래서 날짜는 언제니?"
엄마도 지금 당장 결혼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냥 당황스러워할 동팔의 모습을 보기 위해 던진 가벼운 농담이었다.
"아, 아니. 지금 나이도 있는데… 서로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저 이제 25살이고 민희는 저보다 한 살 어려요."
그때, 부창부수(婦唱夫隨)가 무엇인지 아버지가 보여주셨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차이도 무슨 상관이고. 젊어도 이 사람이면 됐다 싶으면 그냥 같이 사는 거야. 안 그래. 여보?"
"그럼. 그렇고말고. 나이가 뭐가 중요해? 오히려 이렇게 빨리 내 사람 만난 것이 행운이고 축복이지."
농담이기는 하지만 두 분의 속마음이 들어간 농담이었다. 동팔이 젊었을 적에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빨리 결혼해서 안정감을 가지기도 바라셨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동팔의 선택 그리고 민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것까지 일일이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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