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훅."
휭~ 퍽!!!
나무 기둥을 치면서 오는 반발력이 온몸의 뼈를 어그러트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동팔은 멈추지 않는다.
동팔은 배트를 휘두르면서 윤승완 코치가 한 말을 떠올린다.
"제일 중요한 건 선구안이지만 투수라면 다른 선수들보다 더 나을 거다. 실제로 투수 출신 중에 뛰어난 외야수와 타자들이 많거든. 그 다음이라면 역시나 제대로 맞추는 거지만… 그건 훈련으로 채워야 하지. 특히나 홈런을 노린다면 배트 스피드를 올려야 해. 홈런은 힘도 힘이지만 타구의 속도가 높아야 가능하니까."
맞추는 순간, 임팩트가 제대로 들어가야 한다. 동시에 투구의 힘에 밀리지 않게 자세를 잘 잡아야 하고, 힘으로 버티거나 밀어야 한다.
밀리게 되면 외야 플라이나 땅볼로 아웃카운트의 희생양만 될 뿐.
그래서 동팔을 타격할 때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방망이가 가도록 정교하게 휘둘렀다. 동시에 배트 스피드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방망이에 나무틀로 추를 달았다.
"휘두를 때 중요한 건 탄력적인 움직임이야. 동팔이 너는 이미 광속구를 뿌릴 수 있으니까 이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너에게 중요한 건 힘을 더 기르는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곳에 방망이가 정확히 가도록 하는 것. 결국 힘이 받쳐줘야 그것이 가능하겠지만."
그래서 동팔은 여기에 와서 타격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동팔은 투구 연습을 한 이후, 입에 단내가 나도록 타격 연습을 했다.
혹사에 혹사를 넘어 더 이상 움직일 여력과 능력도 없을 때가 되면 어느새 저녁이 됐다.
그러면 동팔은 아침에 미리 만들어둔 식사를 했다.
수저를 들 힘도 없으니 그릇을 들 힘은 더 없었다. 간단히 만든 틀에, 훈련을 하기 전에 먹을 것을 미리 올려놓았다. 그리고 훈련을 마치고 나면, 기어와서 겨우 입에 음식을 털어 넣었다.
턱 근육은 거의 쓰지 않았지만 다른 부위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기에 덩달아 지쳐 있었다.
씹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내일을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어떻게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그대로 침낭 안으로 들어가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잠에 빠졌다.
이후에 새벽이 되면 동팔은 다시 깨어났다.
깨고 싶어서 깨는 건 아니었다.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어깨와 가슴, 등과 다리에 밀려오는 고통이 동팔의 온몸을 비틀었기에 깰 수밖에 없었다.
한계 직전까지 했던 것만으로도 근육에 경련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혹사했으니 그때의 고통은 애교에 불과했다.
"으으으……."
동팔은 이를 꽉 깨물어 튀어 나오는 비명과 절규를 참았다. 하지만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동팔은 절로 눈물을 흘리며 침낭을 적셨다.
기절도 하지 못하고 고통을 참으며 기진맥진해진다.
'설마… 이렇게… 죽는… 건가……?'
이젠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어질 때, 날이 밝아 왔다.
그러면 방금 전에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완벽하게 회복된 몸만 남아 있었다.
"휴우……."
그러면 동팔은 갈등한다.
'다시 해? 말아?'
그 고통을 다시 겪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하지만 어제보다 더 나아진 느낌은 동팔로 하여금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가자. 어차피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어. 이런 훈련을 사람들과 같이할 수도 없고, 하려면 반드시 말릴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일주일간 시간을 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닌가.
만약 자신이 윤승완 코치거나(이젠 동팔이 우랑우탄팀을 나왔으니 투수가 되셨지만) 민희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았을 것이다.
본인이 생각해도 그럴 진데, 그들이 와서 본다면 더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일주일을 잡은 이유가 있었다.
"일주일… 그 이상이 되면 분명히 더 캐물으려 하겠지. 그렇다고 일주일이라 말한 후 더 늦으면 신고할 것이 뻔하고……."
자신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외딴 곳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최대한이 그 정도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2군에서 선수들이 처음으로 모이는 시간이 그 다음이었다.
그래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일주일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프로에 들어가면 다시는 얻을 수 없는 훈련의 시간을.
일주일 후.
RG구단의 2군 구장에서는 선수들이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비록 2군에 있었지만 계속 이곳에 머물 생각은 없었다.
훈련으로 실력을 쌓아 반드시 1군에 올라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회를 얻어 활약할 준비를 한다.
2군 경기는 그 경기는 실전을 겸하는 훈련에 가깝다. 그래도 실전에 자신이 얼마나 능력을 발휘할지 알 수 있는 경기였기에 허투루 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2군 경기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면 1군에 올려 보내도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설령 2군 경기에서 독보적으로 잘한다고 해도 바로 1군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저 1군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지는 것뿐이다.
이적시장이 마무리되고, 서로의 소속이 명확해지면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모여서 훈련을 시작한다.
1군은 겨울에도 훈련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훈련하도록 대대적인 지원을 한다.
하지만 2군은 아니다. 그나마 구단이 재정이 좋고, 선수에게 투자를 많이 하면 모를까. 보통은 실내에서 훈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론 2군에서도 기대를 모으는 유망주나 잠재력이 좋은 선수는 1군 스프링 캠프에 부름을 받는다.
아직은 스프링캠프가 시작하기 전, 시즌 동안 뛴 선수들의 몇 안 되는 휴식기간이다.
하지만 2군 선수들은 마냥 쉬지 못한다. 언제라도 1군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록 다음 시즌의 전반기에 1군 경기 중 50이닝의 출전은 보장받았지만 동팔은 아직 2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사이, 그들 사이에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온 신인은 언제 온대?"
"선배님들이 이렇게 일찍 왔는데. 벌써부터 빠져서는."
그들은 프로에 처음 올라온 애기들을 놀릴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입꼬리가 귀에 걸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들은 게 맞나 싶은데 말이야. 그 왜… 강동팔이 우리 구단에 들어왔다고 하지 않았어? 들리는 말론 아마 1부를 완전히 씹어 먹었다던데?"
한 사람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말했다.
"아… 강동팔? 맞아. 하지만 아마 1부에서 아무리 잘하면 뭐 하냐? 선수 출신이 있어도 대부분 은퇴하거나 방출된 사람이 전부인 리그에서? 그것도 한 경기에서 뛸 수 있는 숫자가 제한되는데 무슨……."
"거긴 130대만 잘 던져도 씹어 먹잖아. 우리 중 누가 가도 그 정도는 한다."
아마 1부 리그를 우습게 보는 말이었지만 현실이었다.
훈련에 전념하는 선수와 직장인이 취미로 하는 수준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활해도 이전 구속 회복하는 건 불가능해. 잘 해야 130겨우 턱걸이하겠지. 제구력은 더 나아졌으려나? 그 사이 구종이 더 늘어날 수 있으니… 2군이나 1군에서 잘해야 셋업맨 할 거다. 그렇게 하려고 싼값에 데려올 수 있겠지. 그 전에 누구 계약 금액 아는 사람 있어?"
"그걸 본인 입이나 구단에서 말 안 해주잖아. 말해도 되는 조건이 있고, 안 되는 조건이 있으니까. 그래도 부상이력 때문에 많이 못 받겠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도착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양반은 아냐."
그의 시선을 따라 다른 사람들도 눈을 돌렸다.
그러자 동팔이 선수복을 입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그들은 동팔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그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거… 서열이 어떻게 되나?'
'경력으로 보면 나보다 선배이고, 나이도 많지만…….'
한국에서 나이만큼 서열에 영향을 주는 것이 없다.
선배와 후배를 가르는 기수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나 운동과 방송 예술을 하는 곳에선 더 하다.
하지만 동팔이 처음 프로에 들어왔을 때, 2군에 있던 선수들은 1군에 올라가거나 방출되었다. 비록 구단을 다르지만 구단에 있던 년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프로에 몸을 담는 선수라면 여러 이유로 구단을 옮기는 것이 일상. 간혹 프랜차이즈 스타처럼 한 팀에 오랜 시간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여기 모인 선수들 중에서 동팔보다 이후에 프로로 들어온 선수가 대다수. 나이도 대부분 어렸다.
단순히 신인이 들어왔다면 준비했던 대로 자신들보다 늦었다는 이유로 야단을 칠 것이다.
하지만 동팔은 단순한 신인이 아니라 불가능.
결국 어색한 침묵 속에 진짜 신인이 와도 어쩌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모를 상황에 코치가 도착하자 서열 정리를 끝냈다.
"강동팔 선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많지? 프로에 들어왔지만… 어떤 빌어먹을 노인네가 고교때 혹사시키는 바람에 부상을 입었고, 재활에 실패했다. 그렇게 구단에서 나왔지만 재기해서 우리 RG구단에 들어왔어. 그것만으로 대단한 거야. 그리고 나이로나, 기수로나. 너희들보다 높으니까 깍듯이 대해라. 알겠어?"
"네."
그 이후에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 훈련을 시작했다.
신인이든 아니든 계속 선수생활을 해 왔기에 굳이 오리엔테이션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있다면 앞으로 훈련 일정이 전부.
"앞으로 훈련할 때, 스프링캠프 가기 전까진 1군 애들도 와서 훈련에 참여할 거야. 그러니 와도 놀라지 말고 평소대로 훈련 해."
코치는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달한 뒤 동팔을 불렀다.
"동팔아. 너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했지?"
"네."
"그럼 어디까지… 아냐. 들은 게 있기는 하지만 직접 보는 것이 낫겠지. 지금 올라가서 던져 봐."
"알겠습니다."
코치의 말에 동팔은 마운드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는 사이, 다른 선수들이 작게 수군거렸다.
"얼마나 던질 수 있을까?"
"정말로 완전히 회복되었다면 전에 던졌던 만큼은 던지겠지?"
"그럼 150?! 그거 1군에서도 에이스급 구속 아냐?"
"설마 그 정도까지 회복됐겠냐? 부상당하고 120이 한계였으니… 130이나 겨우 넘겠지."
그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한계였다.
동팔은 그들의 대화는 전부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마운드에 올라간 후, 자신이 던질 곳을 향해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는 포수를 대신해서 둥근 표적과 그 위로 구속을 알려줄 전광판이 있었다.
동팔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던질 곳을 봤다.
"후우……."
그리고는 익숙하고도 매끄럽게 공을 던졌다.
쉭~ 펑!!
"……."
"……."
동팔의 손을 떠난 공은 표적 한가운데 정확히 명중했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와 정확한 제구에 지켜보던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어느 정도 듣고 온 코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놀란 건 그 다음에 나온 구속이었다.
[156km/h]
스피드건마다 같은 공이라도 표시되는 속도는 다르다.
하지만 레슨장에서 사용하는 스피드건은 일반 사람이 던지기에 속도가 더 많이 나오는 기종을 설치한다.
그러나 프로에선 다르다.
정확한 측정이 우선이기에 최대한 좋은 스피드건을 사용한다. 그러니 지금 나온 구속은 뻥튀기 된 값이 아닌, 실제 속도에 근접한 값이란 의미였다.
별다른 말이 없었기에 동팔은 다시 자세를 잡고는 다시 한 번 공을 던졌다.
쉭~ 펑!!
이번에도 어김없이 표적의 한가운데 명중했다.
하지만 다른 것은 구속(球速).
[159km/h]
160km만 못 넘었을 뿐이지, 거기에 근접한 광속구였다.
한국에서 160에 달하는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손에 꼽았고, 국내 출신 투수로 따지면 더욱 줄어든다.
동팔의 투구를 본 2군 선수들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형… 왜 여기 있지?"
"바로 1군에 가야 하는 거 아냐?"
그들에게 있어서 동팔은 지금의 자신들로선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절벽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것도 단 두 번의 투구(投球)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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