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여보세요. 지예 언니. 무슨 일로 전화 주셨어요?
"아, 다른 게 아니라 지금 동팔 선수 전화기가 계속 꺼져 있더라고. 혹시 알고 있는 게 있을까 해서 전화했어."
―아, 그거요? 그건… 오빠가 어제부터 일주일 정도 어디론가 따로 간다고 말했어요. 여행은 아닌 것 같고… 혼자 가서 어디로 가셨는지 저도 몰라요.
다행히 사고가 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증이 밀려 올라왔다.
"그래? 정말? 그렇게만 말하고 더 이상의 말은 없었어?"
―네. 저도 알고 싶은데 말해주지 않고, 일주일간 핸드폰 전원도 꺼놓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서는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니까요?
그 이후로 민희의 성토가 이어졌다.
계속 따지고 들었다가 오히려 그의 마음이 떠날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의 행동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힘들어하던 중, 지예의 전화를 받아 답답한 마음을 토해냈다.
"그랬구나. 힘들겠네. 그래도 기한을 정해놨고, 굳이 다른 여자 만나러 갈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이미 프로에 입단 계약을 한 이상 극단적인 선택을 할 일도 없잖아."
―그야 저도 알죠. 아니까 일단 참고 넘어가는 중이에요.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아직도 오빠가 저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힘들고…….
상황이 힘든 것이 아니라 상황이 만든 마음의 변화가 민희를 힘들게 했다.
지예는 민희를 위로를 하는 것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입단 계약을 하고 1부 리그 마무리한 다음 일주일간 연락을 끊고 어디론가 갔다? 설마… 산속에 가서 이상한 수련을 하겠다며 무리하는 건 아니겠지?"
그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스스로 말도 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닐 거야. 이미 그렇게 혹사당하고 부상당해서 방출까지 당했는데… 그런 무리를 하겠어? 하면 정말 미친 거지."
하지만 그녀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몰랐다.
그녀가 지나가면서 한 예상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동팔은 사람이 잘 오지 않는 태백산맥의 깊은 곳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 동팔이 묵고 있는 곳은 텐트 하나.
그 안에는 방한용품과 일주일간 먹을 식재료, 마실 물이 있었다.
혹시라도 모를 야생동물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둔기나 날붙이도 있었고, 날이 추워졌지만 뱀의 출입을 막기 위해 주변에 약국에서 구입한 백반을 뿌렸다.
하지만 하루 만에 백반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반 위로 뱀이 지나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급히 인터넷에 검색을 한 다음, 마늘을 뿌렸다. 산이었지만 인터넷이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자극적인 냄새 때문인지 확실히 뱀이 마늘 주변을 피하는 것을 보자 동팔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텐트 위에는 주변의 색과 비슷한 위장막과 나뭇가지, 낙엽으로 덮었다.
이미 하루 전에 온 동팔은 자신의 손에 들린 둥근 돌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역시나 돌로 만들어진 둥근 공이 이십 개가 있었다.
동팔은 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몇 개나 던질 수 있을까……?"
동팔은 그 말을 하고 둥근 돌을 담아서 밖으로 나왔다.
해가 중천에 떴지만 여전히 차가운 산 공기는 동팔의 몸을 에워쌌다.
동팔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어설프게 만든 표적판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곤 비록 마운드만큼 매끄럽지 않지만 던지는 데 방해되는 것이 없는 곳에 섰다.
동팔은 한 걸음 떨어진 곳에 가져온 공들을 놓았다. 그리고 하나를 들어 글러브에 넣었다.
"후우……."
손에 느껴지는 묵직함. 야구공과 비교할 수 없는 무거운 무게. 둥근 돌의 차가우면서도 매끄러운 감촉.
야구공과 다른 것은 무게만이 아니었다. 실밥까지 구현하지 못했기에 변화구의 궤적도 구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팔이 여기에서 돌로 만든 공을 던지는 목적은 변화구의 제구력이 아니었다.
스윽~
휙!!
동팔은 야구공을 던지는 것처럼 돌로 만든 공을 던졌다. 그러자 바로 몸에서 신호가 왔다.
강한 부담과 압박이 어깨와 등을 통해 느껴졌다.
단순히 근육만이 아니라 어깨를 포함해서 팔꿈치와 손목의 관절도 비명을 질렀다 강한 저항에 팔과 어깨, 등이 겨우 버텨서 공을 던지면 마지막에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평상시 던지는 것도 손가락에 부담이 간다.
그러니 돌로 만들어진 공을 던지는 데 가해진 부담은 몇 배가 될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평상시와 달리 1kg이나 5kg, 10kg으로 늘리면 이전보다 할 수 있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100kg을 들다가 110kg을 들어도 마찬가지.
상대적으로 적은 비율이라도 그러할 텐데 그보다 몇 배는 더 강하고 무겁게 한다면 던질 수 있는 횟수는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휘익~ 퍽!!
동팔이 던진 공은 무릿매를 이용해 던진 물맷돌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갔다.
속도는 야구공에 던질 때와 비교하면 모자랐지만 적어도 사람이 맞으면 건장한 성인 남성도 뼈가 부러트릴 위력이었다.
하지만 무릿매와 같이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순수 손으로 던졌기에 부담도 역시 그대로 받아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손가락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으윽……."
등과 어깨, 팔에서 느끼는 고통도 상당했다.
하지만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이전부터 손가락만으로 푸시업을 하며 힘을 키워 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무리였다.
동팔은 꺾이기 직전인 손가락을 쥐었다 피며 다시 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싶으면 둥근 돌을 잡고, 방금 전과 같이 던졌다.
휘익~ 퍽!!
으득.
공이 날아가면서 손가락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팔은 자책했다.
'제길… 힘이 안 들어갔어.'
힘을 줄 수 없는 상태라면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힘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과 손가락에 힘을 제대로 싣지 못했다.
두렵다.
회복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공을 던질 때의 고통과 이후의 고통 그 자체만으로 두렵다. 그리고 오늘이 지나고 내일 새벽에 다가올, 회복의 고통도 두렵다.
그 두려움이 손가락에 힘을 싣지 못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고통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즐기라는 것은 피하지 못할 때로 한정한다.
하지만 동팔이 스스로 가혹하게 자신을 몰아넣는 이유가 있었다. 두렵고 무서워도, 공을 던질 때마도 떨쳐내며 힘을 다해 던지려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어. 힘들고 어렵지만 이걸 통과하면… 나는 더욱더…….'
강해질 수 있다.
던지는 힘이 더 강해지는 만큼 구속은 올라간다.
그것은 표적판 위에 놓은 스피드건의 숫자가 말해주고 있었다.
어제 던진 투수 숫자는 15번이 한계. 그 이후로 손가락은 힘을 잃고 늘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어제 처음 던졌을 때보단 나았다. 확실히 회복한 다음에 던지면 전보다 더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 성취가 동팔로 하여금 다시 공을 잡고 던지는 데 힘을 주었다.
휙~ 퍽!!
그러기를 20회.
결국 손가락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꺾여 힘을 잃었다.
"으윽……."
손가락이 뒤로 꺾이는 고문을 자청해서 받고 있는 동팔. 하지만 손가락이 꺾여도 동팔은 멈추지 않았다.
동팔이 나무로 만들어진 야구 배트를 잡았다.
야구 배트의 몸통에는 무게가 더 나가는 나무 뭉치가 있었다.
멀쩡한 왼손으로 오른손을 탄력 있고, 굵은 고무줄을 이용하여 묶었다.
다음으로 동팔이 간 곳은 단단한 나무 기둥이 있는 곳이었다.
역시나 텐트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나무 기둥은 사람 머리보다 더 굵었으며, 치는 부분은 소리가 나지 않게 새끼줄로 둘러서 넓게 묶었다.
"후우……."
동팔은 기둥의 앞에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미 오른손가락이 꺾여 있어 고통이 찾아 왔지만 압박이 되어서인지 처음보다 고통은 덜했다.
그 상태에서 동팔은 타격 자세를 취했다.
이미 기본자세는 윤승완 코치를 통해 배우고 익혔다.
동팔은 처음에는 허공을 향해서 타격 자세를 취했다.
휘잉~ 휘잉~
야구 방망이가 산바람을 가른다.
오른손가락은 물론, 등과 어깨도 욱신거린다.
이내 나무 기둥 앞에 서더니, 기둥을 향해 배트를 휘둘렀다.
퍽!
야구 배트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기둥에 부딪혔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동팔에게 전해졌다.
기둥에 휘두르면서 느껴지는 허리와 등의 부담. 하지만 더 큰 충격은 기둥을 타격했을 때 손잡이를 통해 들어왔다.
자연히 이미 꺾여서 아픈 오른손가락은 물론이고, 멀쩡한 왼손도 아찔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충격은 팔을 통해 어깨와 등을 관통했고, 고통의 자극이 머릿속을 찔러 들어왔다.
"끄윽……."
투수인 동팔이 굳이 타격 연습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잘 던지고 틀어막아도 결국에 승리 투수가 되기 위해선 점수를 내야 해…….'
패배는 막을 수 있지만 승리는 혼자서 이룰 수 없고, 타자들이 점수를 내야지만 승리할 수 있다.
승리투수의 조건은 5이닝 이상. 투구를 하는 사이에 타자들이 점수를 내서 리드하고 있을 때만 가능했다.
투수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선 평균자책점을 낮추든가 피안타율을 줄이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닝을 던질 수 있는지, 볼넷이나 몸에 맞는 볼의 숫자도 줄여야 했다.
사실 투수의 몸값에서 몇 승을 했는지는 앞에 나열한 조건보다 덜 중요했다. 그저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전부다.
동팔이 단순히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타격 연습을 할 때에 투구 연습을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이번에 한 계약 조건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두 시즌에 25승 이상 거두어야 해. 그래야 옵트아웃으로 2시즌 후에 계약 기간을 빨리 끝낼 수 있어. 구단으로 하여금 더 조급하게 만들어야 해. 그러기 위해선 한 시즌에 12, 13승을 거두면 되지만 그게 된다는 보장도 없고…….'
자신이 8이닝 동안 열심히 틀어막아도 그 사이에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한다면?
마운드에 내려온 후, 다음 투수가 점수를 먹으면 패전 투수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무리 투수가 잘 막은 후에 타자들이 끝내기 안타나 홈런을 치면 승리 투수는 마무리 투수가 된다.
선발투수에게 운이 없는 경우지만 이런 경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의외로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승수를 쌓지 못하면 나중에 2시즌이 지나갔을 때 자신은 여전히 구단에 묶일 수도 있다.
지금 동팔에게 중요한 것은 가능한 빨리 메이저리그로 가는 것. 일본 리그를 거쳐서 갈 여유는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가 9번 타순에 서지만 한국은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메이저리그의 타석에 들어설 준비도 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 동팔에게 필요한 것은 점수를 낼 능력과 안타가 아닌 홈런이 목적이었다.
단 한 점이라도 낸다면 자신이 승리투수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투수인 자신도 타격 연습에 전념해야 했고, 그 준비과정으로 몸을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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