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3화 (23/325)

[23]

민희의 요구에 스카우터는 황당했다.

"옵트아웃이요? 그건 아무나 하는 조건이 아니에요. 그리고 계약 만료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건 스스로 방출되겠다는 것이에요. 입단 후, 일정 조건을 9시즌 동안 채워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자유계약선수의 조건인 것도 알고 있습니까?"

스카우터가 말한 대로 민희가 말한 부분은 위험한 부분이었다.

계약이 연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단이 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그 선수는 영원히 프로에서 야구를 할 수 없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단 입장에선 나쁜 조건은 아니잖아요? 그쪽으로선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가 될 것이고, 우리도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빨리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안 그래요? 물론 조건 중에 2시즌 동안 50승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민희의 말에 스카우터도 가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좋습니다. 동팔 선수에 대해 확신하는 것은 좋지만 그쪽이 말한 대로 우리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옵트아웃에 구단의 조건을 걸겠습니다. 2년 안에 일정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방출입니다."

그 이후로 치열한 협상은 몇 번 있었다.

결국에 손을 든 곳은 구단이었다.

이미 동팔에게 자신들이 제의한 것과 비슷한 제의를 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이걸로 하죠. 옵션은 솔직히 이전에 합의가 끝났지만… 옵트아웃 조건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으니……."

"그거든 뭐든 결국 둘 사이의 이견만 없다면 계약은 성립되는 거잖아요. 저도 이 조건에는 만족해요. 불가능한 조건도 아니고, 출전이 보장된다면야 뭐……."

둘이 합의한 것에는 2+1 조건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조건은 각각 달랐다.

"정말 다음 시즌에 평균자책점 5.0 이하 가능하겠습니까? 안 그러면 1년 뒤에 방출입니다. 그리고 방출되면 더 이상 프로야구가 불가능합니다."

방출이라는 단어에 더 강조하는 스카우터.

그래도 민희는 당당하게 말했다.

"당연하죠. 동팔 선수보다 구위가 안 좋은 투수들도 그 이상은 하잖아요. 그러니 구단에서도 이 조건을 지켜줘야 합니다. 1군 경기 전반기 50이닝 출전 보장. 그리고 ERA(평균자책점)가 5.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1군 보장. 또한 그 사이 한 시즌에 180이닝 이상 출전을 보장할 것."

민희의 말에 스카우터도 지지 않으며 답했다.

"동팔 선수가 잘 던지면 감독님이 안 쓰실 이유가 없죠. 좋습니다. 그리고 옵트아웃 조건은 동팔 선수가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 한 시즌 200이닝 이상 소화. 그리고 평균 자책점 2.5 이하. 마지막으로 두 시즌 다 해서 25승 이상, 10패 이하입니다. 그리고 본인의 실수로 부상을 입어 경기에 나오지도 못하고 방출될 경우, 계약은 파기되고 지급된 연봉과 계약금 전부 반환해야 합니다."

이닝 소화나 평균 자책점은 혼자서 어떻게든 만들 수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승리 조건은 투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패전의 경우, 일단 점수만 내지 않으면 되기에 어떻게든 피할 수 있지만 승리는 까다로웠다.

투수가 점수는 내지 않아도, 타격에서도 점수를 내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제일 어려운 옵트아웃 조건이었다.

그래서 민희는 두 시즌 20승으로 주장했지만 구단에서는 보험이자 확실히 동팔을 묶기 위해서 30승을 불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중간점으로 합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어때요?"

민희는 동팔에서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미 세부적인 내용은 옆에 있으면서 들었고, 하나하나 조항을 세심하게 살폈다.

이전에는 매니저나 에이전시에 맡겼지만 앞으로 자신의 앞날. 특히 5년 안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선 작은 착오도 있어선 안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을 보내면서 이미 1년을 사용했지 않은가.

'어차피 자유계약으로 나갈 수 없어. 그렇다면 배수진을 쳐야만 해. 이렇게 계약 시한이 짧으면 짧을수록 위험하지만, 동시에 기회가 생겨. 내가 잘하는 만큼!!'

조항을 일일이 다 확인한 동팔은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리고 계약서 중 하나를 자신이, 다른 하나는 구단의 스카우터가 가져가면서 계약은 거의 완료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구단주의 사인.

하지만 이미 스카우터가 말한 조건은 구단주의 허락의 범주에 들어가 있기에 마지막에 깨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민희가 제안한 조건은 구단에서도 무리가 되지 않는 조건이었다.

"당장 발표할 수 없지만 이제부터 강동팔 선수는 우리 RG 구단 소속입니다. 그럼 언제부터 오실 건가요? 지금 당장이라도 2군에서 훈련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계약 기간은 다음 시즌부터.

하지만 2군에 사람 하나 더 들어온다고 해서 큰 손해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팔이 빨리 들어와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구단에도, 그에게도 더 큰 이익이 된다.

스카우터의 말에 동팔이 말했다.

"지금 당장은 갈 수 없습니다. 이미 1부 리그 우승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훈련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할 수 없는 훈련이라 들어가기 전에 해야 합니다."

"그런가요? 대체 어떤 훈련입니까?"

어떤 훈련이기에 프로구단에서 할 수 없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스카우터. 그건 민희도 마찬가지였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동팔은 말하지 않았다. 또한 말할 수 없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을 위한 극한의 준비

아마 1부 리그에서 동팔의 공을 칠 수 있는 타자는 없었다. 자연히 우랑우탄팀의 방어율은 리그 1위였고, 덩달아 순위도 차곡차곡 올라갔다.

그리고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우랑우탄팀은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1부 리그가 마무리되면서 프로리그도 마무리를 향해 하고 있었다.

그동안 선수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운으로 거둔 성과가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동욱. 새로운 한국 거포. 역대 최고의 기록 갱신.]

그 기록 중 상당수는 잘한 기록도 있었지만 종종 최악의 기록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끔은 안 좋은 소식도 올라왔다.

[충격!! 제2의 바람의 아들. 약물중독으로 사망.]

하지만 지금 동팔의 시선을 잡는 기사는 이것이었다.

[토종 에이스의 자존심, 오성의 남궁지완! 리그 18승!!!]

자신에 밀려서 만년 2위였던 남궁지완.

하지만 지금은 스포츠 신문의 기사처럼 국내 출신 투수 중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반면 자신은 방출이 되며 아무런 희망도 없이 5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복귀하여 새로운 구단에 들어가는 상황.

무엇보다 자신의 전 애인이었던 혜진이의 새로운 연인이었다. 혜진을 생각하자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동팔은 이내 고개를 흔들며 생각했다.

'이미 끝났어. 나에겐 민희가 있으니까.'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자신과 혜진의 관계였다.

그 자체는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동팔이 두 사람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어떻게…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날 속인 거지?"

헤어진 충격은 빨리 흘려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작정하고 자신을 속인 건 쉽게 흘려보낼 수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 이제 너의 진짜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시켜줄 테니까."

그렇다고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사람을 써서 나쁜 짓을 한다는 건 아니었다.

그가 복수를 하는 곳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서 있을 마운드. 그곳에서 모든 것을 시작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그전에 동팔은 아무에게 말할 수 없는 준비를 했다.

그 장소는 좋은 훈련시설이 있는 구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설은 없었고,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산속 깊은 곳이었다.

다음 날, 신지예 기자는 뛸 듯이 좋은 소식을 들었다.

"강동팔 선수를 주제로 해서 12주간 주 1회 연재해. 따로 코너는 만들어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편집장님!!"

강동팔이 RG에 입단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자 그동안 강동팔을 취재해 온 성과가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신지예 기자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면서 중얼거렸다.

"자, 이제 어디서부터 시작해볼까? 윤 코치님과 만났던 순간부터? 아니면 동팔 선수가 방출된 그때……?"

이야기의 시작을 어느 지점부터 잡는지는 비단 소설에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전처럼 신문을 사서 읽기보다 인터넷으로 사람들이 찾아서 보는 것이 지금의 현실.

그러니 일단 사면 언젠가 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게 써야 했다. 특히나 연재로 하게 되면 시작은 제목부터 강렬해야 했다.

괜히 인터넷 기사 제목에 '충격!'이라든지 '단독', '헉!', '경악!'과 같이 선정적인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니다.

이젠 나름 자중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래도 조회수에 자신의 수입이 정해지는 만큼, 욕은 먹더라도 일단 독자를 낚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하지만 신지예 기자는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는 기자였다.

종이로 나오는 신문에 연재할 공간이 있는 이상,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시작은… 거의 잊힌 기억을 떠올려야 하니까 간단한 소개부터 할까? 그리고 그 다음에 만난 이야기로 이어가고……."

어떻게 기사를 써야 사람들이 주목하고, 읽기 쉬운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강동팔 선수는 뭐 하고 있는 거지? 이젠 아마리그도 끝났으니 지금은 2군에 들어가서 훈련 중일까?"

이미 이와 관련된 기사를 작성한다고 말을 해놓았다.

그래도 고정 코너로 확정된 이상 말해주는 것이 그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 전화를 했다.

하지만 신호는 동팔의 핸드폰에 닿지 못했다.

―지금 전화기의 전원이 꺼져 있어…….

"……?"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라면 훈련 중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핸드폰의 전원이 꺼지면 불안해지는 지금의 시대에 이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전원의 배터리가 다 방전되기 전에 미리 충전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부터 이러더니… 아직도?"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로 계속 두는 일은 더욱더 없었다. 보통 그럴 경우는 일부러 충전을 안 하든가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여 충전할 수 없는 경우였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그녀가 걱정하며 그의 일을 잘 알 만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사람은 동팔과 달리 전화를 바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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