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2화 (22/325)

[22]

처음 스카우터가 집으로 찾아 온 이후, 두세 군데에서 접촉을 해 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더 이상 스카우터가 찾아오지 않았다.

구단은 달랐지만 그들의 생각은 동일했다.

'우리가 오지 않으면 안달 나겠지? 스스로 구단에 문을 두드리도록 만들어야 더 유리한 조건에서 계약할 수 있어.'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동팔은 구단에 스스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동팔은 아마 1부 리그에서 절대적인 구위를 뽐내고 있었다.

쉭~!!

동팔이 공을 던지자 타자는 손도 쓰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뭐 이렇게 공이 빨라?'

동팔은 그날 이후로 마지막 3이닝만 소화했다.

그러니 처음 올라온 투수의 공에 익숙해진 그들은 동팔의 공에 적응할 수 없었다.

"이젠 145까지 나오는데?"

"정말 리그 끝날 때는 150 찍겠다."

"아마에서 그 속도면 깡패지 깡패. 그리고 거의 대부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고."

"가끔 상대적으로 느린 공이 오지만… 그거 치면 무조건 땅볼이나 플라이 아웃. 방법이 없네, 방법이……."

이 말은 상대팀에서도 나왔지만 같은 팀인 우랑우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연히 이 보고를 듣는 구단에서는 더욱 몸이 달아올랐다.

그중에 한 구단인 RG에선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강동팔 선수가 원하는 것은 높은 연봉에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계약이 아니라, 단기 계약을 원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와 접촉한 구단에 같은 조건을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년에서 길어야 3년. 그 이상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스카우터의 보고에 구단주는 고심에 빠졌다.

그러자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지금 강동팔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어느 정도까지 통할 것 같나?"

그의 진문에 스카우터는 즉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1군에서도 통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2군에선 충분합니다."

"그럼 1군에서 어느 정도로?"

"그건… 최소한 셋업의 역할은 감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선발의 경우, 변수가 많아서 감독의 선택과 결정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그의 보고에 구단주의 고심은 더욱 깊어졌다.

'오성에 입단했을 땐 부상으로 인해 1군에서 던지지 못했어. 그래서 프로에서 기록은 전무. 그러니 150의 구속을 가져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2군에서 적응을 마치고 1군으로 올라가는 것에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게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없으니…….'

그동안 같은 문제로 다른 구단들이 동팔과 짧은 계약에 사인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팔의 구위와 구속이 계속 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결단을 누가 먼저 내리느냐에 따라 어느 구단이 그를 데리고 갈지 결정되는 상황.

그 와중에 구단주의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지금 강동팔 투수의 결정구가 뭐라고 했지?"

"5년 전에는 강속구와 커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그리고 뛰어난 제구력입니다."

스카우터는 구단주가 질문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했다.

그의 말에 구단주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내년부터 3년 계약으로 진행해. 조건은 기본 연봉보다 옵션에 더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이 있어. 만약 그가 메이저리그로 가고 싶어 하고, 그를 원하는 팀이 있다면 전력으로 지원해준다."

"…네?"

구단주의 말에 스카우터는 의아했다.

그러자 구단주가 말했다.

"그가 왜 기간을 짧게 하려고 했겠나? 한국 리그에 만족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젠 한국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도 매년마다 있는 일이고."

구단주의 말에 스카우터는 회의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고작 3년 만에 메이저라니."

"몰라. 하지만 지금 강동팔 투수는 가능한 빨리 메이저리그에 가려고 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 그가 얼마나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상상 이상으로 큰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럼 우리는 1년의 빌미로 포스팅 금액을 챙길 수 있으니까. 물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구단주의 말에 스카우터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조심스럽게 진행하겠습니다."

이미 다른 구단들이 주목하고 있는 선수였다.

당연히 자신들이 짧은 기간에 계약을 하려는 걸 알면 그들 또한 나설 수도 있었다.

그러면 경쟁이 시작되고, 경쟁은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만든다.

그러니 그 전에 미리, 비밀리에 선점해야 좋은 선수를 싼 가격에 데려올 수 있다. 수익이 중요한 구단의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얼마 후.

"그럼 이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응. 일단 2군에 들어가겠지만… 3년으로 줄일 수 있으니까."

"그래도 구단에서 좋게 봤나 봐요. 1년만 보고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기로 묶어 두는 것도 아니고."

민희의 말에 윤승완 코치가 말했다.

"구단에서도 동팔이 보면서 머리가 많이 복잡했을 거다. 분명히 지금 보면 구위는 뛰어난데, 그렇다고 부상이력이 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거기에 프로에서 던진 기록도 없으니 어디까지 통할지도 몰라. 안정적으로 가면 1년으로 하고 싶은데 지금 구위와 성장을 생각하면 5년도 생각해야 하고."

그의 말대로 지금 동팔은 어떤 계약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계약 기간은 3년 이내로 하려는 건 가능한 빨리 메이저리그로 가려고 그러는 거죠? 구단이 욕심을 부리다 못 가게 되는 건 안 되니까."

"응. 이왕이면 더 젊을 때 메이저로 가고 싶어. 그래야 도전을 하더라도 더 많이 그리고 더 높이 도전할 수 있거든."

민희는 동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세부적인 계약 조건은 어떻게 돼요? 어차피 저랑 코치님은 다른 구단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데나 가서 말하지도 않을 거니까 말해주세요."

민희의 말에 동팔은 잠지 고민했다.

원래 이런 계약 조건은 다른 사람에게, 특히 다른 구단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민희의 말대로 이들은 다른 구단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오직 동팔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동팔은 조심스럽게 말해주었다.

계약 조건을 세부적으로 듣자 윤승완 코치가 말했다.

"이거… 안 좋은 것 같은데? 본 연봉보다 옵션에 더 무게가 가는 건 이해하지만 문제는 그 옵션이 생각보다 적어. 만약 동팔이가 20승을 하게 되면 총 연봉이 13승 투수보다 적잖아."

민희도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딱 3년만이에요? 만약 그보다 메이저리그팀에서 제의가 오면 결국 구단이 칼자루를 쥐게 되는 거니 좋아 보이진 않아요. 혹시 옵트아웃(Opt―Out) 가능하다면 그걸로 해 봐요. 그건 일정 조건을 채우면 계약 만료가 되거든요."

그러면서 민희는 무언가 열심히 고민하더니 종이를 가져와서 적었다.

"오빠. 아직 계약서에 사인 안 하셨다고 했죠?"

"응."

"그럼 다행이에요. 잘하면 오빠한테도, 구단에도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방법이 있어요. 기간에 대한 건 제가 연봉과 옵션 액수에 대한 건 코치님이 세부적으로 한 번 알아볼게요. 그 전에 사인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그리곤 동팔을 가만히 두고, 민희는 윤승완 코치와 신나게 무언가 이야기했다.

어차피 협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조건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기에 두 사람의 회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민희는 다시 종이에 깔끔히 정리한 계약 조건을 적어서 동팔에게 주었다.

"여기 저희가 완성한 계약 조건이에요. 이거에 완전히 부합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근접하면 지금 오빠가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에요."

동팔은 민희가 준 종이를 받아들고 하나하나 읽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윤승완 코치가 민희에게 말했다.

"보니까 민희야. 너 그냥 동팔이 매니저 하면 되겠다. 생각보다 이런 일 잘할 것 같은데."

"네? 제가요? 제가 어떻게……."

"매니저에 특별히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잖니. 그리고 매니저에게 중요한 것은 협상 능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선수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동시에 구단이 원하는 것을 알면 끝. 나머지 규정은 공부하면 돼."

윤승완 코치의 말과 격려에도 민희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제가 잘한다는 자신도 없고……."

그러자 그가 말했다.

"적어도 동팔이가 계약하는 것보다 낫겠지. 그동안 보니까 마운드에서는 무적인데, 사회에 나가면 사기당하기 딱 좋은 녀석이야. 주변에서 지켜줄 사람이 있어야 해. 어차피 지금 계속 사귀는 중이고, 나중을 생각해서 투자하는 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안 그러냐, 동팔아?"

윤승완의 말에 동팔은 계약 조건을 보다가 황급하게 말했다.

"네? 네. 저야 그러면 좋죠. 솔직히 이런 쪽은 저도 잘 모르거든요. 야구에 전념할 수 있다면야 좋습니다."

동팔의 말에 윤승완 코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원래 가족 중에 하는 것이 제일 믿을 만하지만, 잘한다는 보장이 없지. 그러면 가족이 될 사람이 맡는 것도 좋을 거고. 안 그래?"

그의 말에 동팔과 민희는 절로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래도 부정하지 않고 있기에 앞날이 밝아 보였다.

두 사람의 반응에 윤승완 코치는 껄껄 웃으며 최강의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니 다음에 스카우터랑 만날 때, 동팔이가 하면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말을 알려주지."

얼마 후, RG의 스카우터는 동팔만이 아닌 민희와 같이 만나게 되었다.

'여자? 애인인가?'

협상을 하는 중에 애인을 데리고 오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민희가 철없이 조르는 바람에, 동팔이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바로 알게 되었다.

"여기 이 조항은 이렇게 바꿨으면 해요. 이건 동팔 선수가 20승을 하게 되었을 때, 받는 금액을 생각하면 너무 적은 금액 아닌가요? 그러니 이건 이런 조건으로 해서……."

민희는 능숙하게 계약 조건의 세부적인 항목을 적어 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동팔은 가만히 있기만 했다.

점점 구단에 불리해지는 조항이 추가되자 스카우터가 따졌다.

"저기…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이 계약은 동팔 선수와 RG구단 사이의 계약입니다. 제3자는 끼어들 수 없어요. 그리고 동팔 선수도 말씀을 해주세요. 이러다 계약 못 할 수 있습니다."

은근히 겁을 주며 압박하는 스카우터.

그러자 동팔은 윤승완 코치가 알려준 무적의 말을 했다.

"계약 협상에 대한 건 저의 매니저인 민희가 전담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자세한 이야기는 민희와 하시면 됩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가 되묻자 민희가 따졌다.

"설마, 여자는 매니저 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죠? 그리고 이미 여기 오기 전에 프로야구 구단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계약 조건을 파악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리한 제안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무리 많이 주더라도 지금 시세(?)로 따져도 적정한 옵션 금액일 텐데요? 만약 동팔 선수가 못 하면 안 줘도 되는 돈이고, 활약을 하면 그에 맞추어주면 되는 거죠."

틀린 말이 아니라 반박할 수 없었다.

민희의 말은 이어졌다.

"그리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동팔 선수는 뛰어난 구위를 지니고 있어요. 비록 구단에서 아니라고 판단했다면 여기 오시지도 않았을 거예요.

이전 기록은 없는데다가 부상 이력도 있으니 더욱 불안할 거예요. 하지만 위험이 큰 만큼, 얻는 이득도 크다는 것 명심하세요.

그리고 진짜 협상은 옵션이 아니에요. 기한에 대한 조건이에요. 저는 옵트아웃을 제안하겠습니다. 2+1이에요. 기본 계약은 2년. 그리고 그 사이 동팔 선수가 구단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면 선수의 의지에 따라 2년 후에 계약이 만료됩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