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20화 (20/325)

[20]

한편, 동팔이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던 사람은 시합에 나온 사람이 전부가 아니었다.

"정말 재기했나 본데? 구위가 살아 있어."

"이 정도면 2군에 바로 투입해도 될 것 같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몸을 숨기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스피드 건을 들고 있지 않았지만 눈짐작만으로 대략적인 구속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세세하게 알 수는 없어도, 적어도 10킬로 내외의 단위는 구분이 가능했다.

"150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140……."

"이미 변화구는 정평이 나 있는 데다가 계속 보면 알 수 있으니까."

그들은 프로구단의 스카우터.

이미 동팔이 리그 중반을 향해 갈 때에 일부 구단에서는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

그중에 일부 구단은 이렇게 스카우터를 직접 보냈다.

동팔은 올라온 이후로 단 한 번의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다.

삼구삼진으로 타자를 돌려세우기도 하고, 변화구를 던져 헛스윙을 유도해냈다.

거기에 때론 범타를 유도하기까지 했다.

프로가 아니라지만 준프로에 해당하는, 그것도 리그에서 1위인 팀을 상태로 농락하는 동팔의 모습.

비록 구단은 달랐지만 파견된 스카우터들의 판단은 일치했다.

그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나타났다.

프로 입단 제의

다음 날.

동팔은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의외의 사람으로 인해 놀라고 있었다.

"네? 입단이요?"

"그렇습니다. 어제 강동판 선수가 던진 공을 봤습니다. 보니까 2군은 물론, 잘하면 1군에서도 통할 구위(球威)라고 판단해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때, 동팔의 엄마가 과일을 깎아서 가지고 오셨다.

자신의 아들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지 어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천천히 드시면서 이야기하세요. 호호호."

그녀는 방을 나오시면서 주먹을 가볍게 쥐어 힘내라는 표시를 동팔에게 보냈다.

어머니의 응원을 살짝 고개를 숙여 받은 동팔은 스카우터와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그럼… 제가 지금 가면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나요?"

그의 말에 스카우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글쎄요. 지금이라면 연봉 1,500 정도…? 1군에 바로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자신의 말에 동팔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그는 재빨리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강동팔 선수. 솔직히 연봉이 낮은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에서 돈 쓰며 야구하는 것보다 돈을 받으며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요?

그리고 아마에선 제대로 된 케어를 받을 수 없어요. 하지만 2군이라도 프로에 들어가면 달라집니다. 또 옵션 계약이 반드시 붙어요. 잘하면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어요. 승리 수당은 물론 이닝을 얼마나 소화했는지. 그리고 평균 자책점에 따라 보너스도 받죠.

"

그 말을 하는 도중에도 스카우터는 동팔의 안색을 계속 살폈다.

하지만 한 번 어두워진 동팔의 표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정확히 옵션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조건이 있는데… 오래 계약할 생각은 없습니다. 길어야 3년. 제일 좋은 건 1년이나 2년인데 가능한가요?"

계약 금액만큼 중요한 것이 계약 기간이었다. 좋은 선수를 오래도록 잡아두기 위해선 계약기간을 오래 잡았다.

반면 선수 입장에선 자유계약으로 풀리는 것을 생각해야 했기에 짧은 기간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것도 자유계약 자격을 얻기 전에 한해서였지만.

"글쎄요. 그건 확답드릴 수 없습니다. 동팔 선수의 구위가 좋은 건 사실이지만 구단에서 어떻게 판단할지 알 수가 없고. 아, 물론 저는 최대한 좋게 보고할 겁니다."

스카우터가 아무리 좋은 선수를 발견하고 추천하더라도, 결국 결정을 내리는 쪽은 그가 아닌 구단이었다.

그것은 동팔도 알고 있었기에 기분 나빠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계약 기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었다.

'지금 입단해도 제대로 된 활약을 한다는 보장이 없어. 그건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런데도 짧게 계약하려는 거야?'

실제로 신인의 경우 보통 1년 단기 계약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자유계약으로 풀리는 아홉 시즌까지 다른 팀에 마음대로 이적할 수 없다.

2군에서 1군으로 언제 불릴 지도 모르는 상황에 1군에서 적응하고, 제대로 된 역할을 감당하기까지 걸릴 시간을 생각해야 했다.

겉으로 보면 장기 계약은 오히려 동팔에게 유리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구단이 장기계약을 원하고 있었다.

구단으로선 오히려 연봉을 포함한 돈보다 짧은 기간이 더 문제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구단에는 강 선수의 생각을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동팔과 스카우터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스카우터가 가자 어머니가 와서 물었다.

"동팔아. 잘됐어? 지금 당장 입단할 수 있대?"

어머니의 물음에 동팔은 사실 그대로 말했다.

"아뇨. 일단 떠보려고 온 것 같아요. 지금 저에게 중요한 건 돈보다 시간이니까요."

그의 말에 어머니는 답답해하시며 말했다.

"아이고. 요 녀석아. 지금 기회가 왔을 때 어서 잡아야지. 그냥 어떤 조건이든 받아들인 다음에 거기서 인정받고 가면 되잖아."

만약 이전이었다면 어머니의 말대로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팔은 어머니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엄마. 나한테 남은 시간 많지 않아. 5년 이내에 월드 시리즈 우승해야 하는데… 그럼 아무리 늦어도 3년 안에는 메이저리그에 가 있어야 해.'

만약 악마와의 계약이 아니었다면 이런 고민을 할 기회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시한부 인생이 되었지만 일말의 희망이 있는 이상,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구단의 고집으로 자신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무산될 확률은 지워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구단과의 계약기간을 최대한 짧게 해야 했다.

하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어머니께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 없었다. 그리고 말씀드린다 한들 믿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답답해하시고 불안해하시는 어머니를 그냥 보고 있지도 않았다.

"지금은 한두 군데에서만 왔지만 나중에 더 많은 구단이 올 거예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경쟁이 될 거고, 그러면 나중에 더 좋은 조건으로 입단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의 엄마는 동팔의 말에 그나마 안심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프로에 가면 지금 당장이라도 훈련에 집중할 수 있잖아."

"그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2군에 바로 들어간다고 저한테 집중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프로에서 코치하신 분께 일대일로 과외 받고 있으니까 훈련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동팔의 말에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네가 원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니… 네 인생이니 네가 결정해라."

그래도 지금 당장 좋은 길이 있는데 가지 않는 아들이 답답한 건 바뀌지 않았다.

그저 동팔의 말대로 좋게 풀리길 바랐지만 이 기회가 사라지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오, 드디어 프로에서도 움직였구나. 하긴. 이제 슬슬 때가 되긴 했지. 이미 아마리그에서 너 모르는 사람 찾기가 힘든데."

"그런가요? 주변 소문에는 둔감해서 잘 몰랐는데… 그랬군요."

오늘도 레슨장에 와서 공을 던진 후, 잠시 쉬고 있는 중이었다.

사장은 프로구단에서 다가왔다는 것에 기분이 고무되었다.

"아무리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정말로 현실이 되니 느낌이 남다르다. 그런데 왜 거절한 거야? 아마 1부 리그에서 우승하려는 제일 큰 이유가 구단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였잖아. 목적이 이루어졌으니 계약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낫지 않을까?"

표현이 완화되었을 뿐 그도 동팔의 어머니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러자 동팔이 어머니께는 말씀 드리지 못한 이유 하나를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이미 약속했거든요. 아마리그 우승에 일조하겠다고. 남자가 약속을 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고 냉큼 버릴 수는 없잖아요. 분명히 좋은 기회인 건 맞지만… 이 기회가 한 번만 오지 않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동팔의 말에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지금 동팔이 구위가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이게 더 낫지. 의리도 챙기고, 실리도 챙길 수 있잖아."

사장이 어머니와 달리 동팔의 선택을 지지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무엇보다 살다 보면 먹잇감이 눈앞에 있어도 기다려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암. 시즌이 마무리되면 이적시장이랑 팀 리빌딩으로 엄청나게 바빠지니까."

그만큼 많은 선수들이 시장에 나오지만 그 못지않게 많은 금액이 오간다. 각 구단의 눈치게임이 시작되고, 노리는 구단이 많을수록 선수의 몸값은 높이 뛴다.

당연히 동팔도 예외일 수 없었다.

단순히 구속만 빠르다고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볼의 움직임이 좋지 않고 속도만 빠르면 치기 좋은 베팅볼에 불과하다.

이것은 프로에서 이미 증명이 된 사실.

하지만 동팔이 지금 던지는 구속만 해도 140대.

변화구의 제구력은 물론 타자 앞에서 변하는 볼 끝의 움직임이 뛰어났다.

강속구는 물론 제구력이 뛰어나니, 군침을 흘리고 달려들 구단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한 생리를 잘 아는 사장이었기에 동팔의 기다림에 조급하지 않을 수 있던 것이다.

오늘도 평상시처럼 윤승완 코치의 세심한 가르침과 민희의 도움으로 레슨장에서 공을 던졌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훈련을 위해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는 의외의 인물과 마주치게 되었다.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군. 시간 있나?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중년의 영국 신사.

그의 복장을 보면 주변 사람들이 흘깃 훔쳐볼 만도 했지만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갈 길 바쁘고, 살아가기도 벅찬 사람들은 주변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둘째 치고 그를 보는 사람은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그를 보고 있는 사람은 오직 동팔 한 사람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동팔은 분명히 지금 이 순간이 현실임을 알면서도 몽환적으로 다가왔다. 주변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모든 감각이 오직 악마를 향하고 있었다.

동팔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악마, 스크레이치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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