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8화 (18/325)

[18]

돌아오는 길에 민희가 물었다.

"오빠. 집에 있는 동안에는 뭐 해요? 여전히 훈련?"

그녀의 물음에 동팔은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하루 종일 훈련할 수는 없어. 그냥 간간히 생각을 해. 정신없이 야구에 훈련만 하다가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요……."

그러다 민희는 동팔의 다친 무릎을 보며 물었다.

"다행히 치료비는 그쪽에서 상당부분 댔다고 했죠?"

"응. 규제가 걸린 것은 아니라서 법적으로 안 그래도 되지만… 미안한 거겠지."

"당연히 미안해 해야죠. 사고이긴 했지만 그때 논란이 된 방망이를 쓰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다치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 말을 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다친 것처럼 화를 내는 민희였다.

"그리고 그거 아세요? 오빠가 다친 후에 그 리그 규정이 추가되었어요. 위험한 방망이는 쓰지 않는 것으로. 해당 상품을 저격할 수 없지만… 길이에 비해 너무 가벼운 방망이는 쓰지 않기로 했대요. 어차피 다 같이 규제를 하면 공평하게 되니까. 왜 꼭 사고가 난 다음에 바뀌는지 모르겠네."

"그랬어? 그건 몰랐네. 이왕이면 스스로 자중했으면 좋았겠지만… 그게 안 되니 규정을 만들었겠지."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오빠도 참 발자취를 많이 남기시는 것 같아요. 전의 혹사논란으로 인해서 고교생은 130개 이상 던지지 못하는 규정이 생겼고, 이젠 여기에서도 배트 규제를 만들어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규정 제조기 아니에요?"

이것도 동팔이 주목을 받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일반 선수가 다쳤다면 사고로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팔의 경우, 이미 그 리그에서 재기의 소식이 알려진 상황.

잘하면 자신의 리그에서 엄청난 선수가 재기하여 부활하고, 나중에 특급 투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선수가 논란이 일어나는 일로 인해 부상을 당했다면?

다른 리그는 몰라도, 자신들의 리그를 위해서라도 배트에 대한 규정을 리그 중간에 만들었던 것이다.

"그 규정을 만들 때, 태성 오빠랑 윤승완 코치님이 목소리를 크게 내셨어요. 같은 팀이기도 했지만 나중에 상대팀의 선수도 보호해야 하니까요."

민희의 말에 동팔은 갑자기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지금 팀은 어때? 이미 세 게임은 더 했지?"

그들과 만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재활에 집중하다 보니 물어볼 시간이 없었고, 물어봐도 그들은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회복에 집중하라 말하며 굳이 알 필요가 있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 도리어 불안해지기 마련.

민희도 주저하더니 겨우 말했다.

"솔직히 좋지 않아요. 오빠가 있을 때와 아닐 때의 전력은 큰 차이가 나니까요. 세 번 모두 패했어요. 그래서 전에는 4강 혼전이었지만 지금은 3강 혼전이에요. 물론 오빠가 복귀하면 다시 승차를 줄일 수 있겠지만… 많이 빡빡해질 거예요."

민희의 말에 동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부상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팀의 우승을 위해 공을 던지는 것이 투수의 역할이다.

그리고 팀의 우승은 자신의 프로 입단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다.

개인적인 이득으로든, 아니든 팀의 우승은 자신의 일과 마찬가지.

그녀가 전한 사실에 동팔의 마음과 같이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자 민희는 동팔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오빠. 그렇다고 무리하진 마세요. 조급해하면 될 일도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주변을 돌아보면서 여유를 가져 봐요. 열심히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쉴 때 제대로 쉬어야 다음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잖아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민희의 말에 동팔은 조급해서 안달이 났던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동팔은 자신의 어깨와 마음을 감싸는 민희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민희의 말대로 야구만이 아닌, 주변에 시야를 돌리자 그녀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고마워."

동팔은 그동안 할까 말까 망설였던 말을 주저하다가 뱉었다.

"그리고… 나랑 사귈래?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앞날도 불투명하지만…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그의 말에 민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애초에 민희가 하는 모든 행동은 단순히 팬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랜 시간 함께한 아내래도 쉽게 할 수 없었다.

이전의 가능성도 많이 사라졌고, 실제로 프로에 간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도 민희는 동팔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성심성의껏 그를 도왔다.

동팔은 그녀에게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오히려 미안했다. 하지만 동시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전에 사귀었던 혜진은 동팔이 나락에 빠지자 자신의 마음도 멀어졌다.

하지만 민희는 더 안 좋은 상황에 있던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단순히 예쁜 정도로 따지면 혜진이 더 예뻤지만 동팔의 마음이 민희에게 기울어진 지는 오래였다.

민희는 이내 자신을 잡은 동팔의 손을 쥐며 말했다.

"네. 그 말… 기다렸어요."

동팔과 민희가 공식적으로 연인이 된 그날.

동팔은 자신의 말대로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선택하고 함께 있어 준 민희가 너무 고마웠다.

그는 민희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너희 선택…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

그 말을 하고 동팔은 자신의 왼쪽 무릎을 구속하고 있는 깁스를 풀었다. 아직 회복이 안 되었기에 절대로 풀어선 안 되고, 걷는 것조차 피해야 했다.

하지만 동팔은 휠체어에서 가볍게 일어났다.

그것도 모자라 살짝 뛰어보기까지 했다.

"역시… 완전히 회복되었어. 그렇게까지 다쳤는 데도 불구하고……."

걸어도, 뛰어도 아무런 이상함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었다.

동팔은 그 달라진 점을 바로 확인했다.

스윽~

휙!!

공을 들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투구 동작을 했다.

왼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자신의 움직임과 체중을 지탱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탄탄해진 느낌이 들었다.

'뼈가 부러진 다음 붙으면 그 부분은 더 단단해져. 인대나 힘줄도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럴지도 몰라.'

사실 무릎 부상은 이전에 완전히 회복했다.

전에는 공을 던진 후, 자세를 다시 잡는데 시간이 걸렸다.

불편함은 없었다. 그러나 굳건함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전에는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않은 나무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거목까진 아니어도 바닥에 더 단단히 붙는 느낌이 들었다.

동팔이 무릎 부상을 당한 그날 새벽.

"으윽……."

동팔은 여전히 훈련 후, 새벽마다 찾아오는 고통에 신음을 토했다.

하지만 이미 신음을 막아줄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있었다.

평상시와 달리 왼쪽 무릎이 다친 이후로 그곳이 뜨겁게 아팠다.

뜨거운 인두로 지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릎 연골에 꽂아 넣은 듯한 고통이었다.

"흐으… 흐으……."

그 덕분에 어깨와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고통도 아니었다.

오로지 무릎의 고통으로 인해 동팔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제발… 누군가 날… 죽여줘…….'

지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음뿐이었다. 하지만 고통이 찾아오면 그로 인해 몸의 통제권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당시에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아침이 되면 고통은 사라졌고, 다시 회복된 몸을 만나게 됐다.

그러니 고통스러워도 어떻게든 버틸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아니었다.

이후에 나아질 자신의 몸을 알아도, 이 고통에서 만큼은 도망치고 싶었다.

다행히 아침이 되자 고통은 사라졌다.

그렇게 사흘 후, 동팔은 큰 변화를 느꼈다.

"무릎이… 이상한데?"

나쁜 이상함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느낌이었다.

부상을 당했을 때엔 힘을 줄 때마다 따끔거리고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힘을 줘도 부담이 없었고, 오히려 힘이 더 잘 받는 느낌이었다.

"그냥 느낌만 그런가…? 아니면……."

동팔은 모험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너무 괜찮은 느낌이 들었기에 깁스를 풀고 조심스럽게 왼다리를 움직여보았다.

"……."

아픔이 없었다.

이번에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걸었다. 역시나 이상이 없었다.

이후로 위로 뛰어 보기도 하고, 천천히 뛰다가 전력 질주도 해봤다.

하지만 무릎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없었다.

단순히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힘도 제대로 들어갔다.

그래서 마지막엔 공만 쥐지 않았을 뿐, 제대로 된 투구 동작을 해봤다.

휙!

"……."

그러자 동팔은 확실히 알았다.

"설마… 이것도?"

동팔은 악마가 자신에게 준 능력이 단순히 피로한 근육이 빨리 풀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부상에도 적용되는 줄은 몰랐다.

'하긴… 혹사에 끊어진 근육도 완전히 회복했는데 이 정도도 가능하겠지.'

다만 문제는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 찾아왔다.

특히나 사흘 동안 새벽마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작렬통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동팔은 악마가 했던 말 중 하나를 떠올렸다.

"아무리 혹사하듯 훈련해도 자다가 일어나면 회복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만, 아주 약간의 부작용이 있겠지만… 신경 쓸 건 아니야. 회복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거든."

확실히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었다.

동시에 동팔은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동팔은 자신의 방에서 남들이 모르는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이랄 것은 별것 없다.

팔과 가슴의 근육을 키우기 위한 푸시업. 탄력적인 줄을 이용한 윗몸 일으키기. 그리고 역시나 줄을 걸어 허리를 좌우로 움직여 등과 허리 근육을 키웠다.

운동 자체는 평범했다.

하지만 운동하는 양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끄드드드득…….

동팔은 단순한 푸시업을 하지 않았다.

손바닥이 아닌, 손가락으로 체중을 지탱했다. 그리고 빠르게, 횟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움직였다.

한 번 하는 것만으로 손가락 근육은 비명을 질렀고, 땀은 비 오듯이 쏟아지기 시작하며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이전에는 파열되기 직전까지, 정확한 한계를 두고 훈련을 했다.

그러나 이젠 그 한계를 넘었다.

신체적 한계를 뛰어 넘으면 더 강해진다든가 하지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동팔에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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