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오력의 투수-17화 (17/325)

[17]

"잘했어. 익숙하지 않겠지만 앞으로 계속 이렇게 나가자."

"네. 코치님."

애초에 구위가 너무 좋아서 위기 상황이 잘 찾아오지 않는 동팔에게 이런 상황의 훈련은 필수였다.

그러던 중에 태성이 상대 더그아웃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쟤네들 단무지 쓴다. 홍당무도 있는데?"

"네? 단무지요? 홍당무?"

대체 어디에 단무지가 있고, 홍당무가 있단 말인가?

그러자 다른 선수가 말했다.

"다른 게 아니라 쟤네들 배트 말하는 거야. 저기 노란 배트를 단무지, 최근 모델인 붉은 배트를 홍당무라고 말해."

"그래요? 확실히 이미지를 보면 그렇긴 한데… 왜 저 배트에만 별명이 붙어 있어요?"

그의 물음에 다른 선수가 말했다.

"사회인 야구하면서 그것도 몰랐어? 얼마 전에 저 배트 때문에 난리가 났잖아. 길이에 비해 무게가 가벼워서 스피드가 빨라.

거기에 컴포짓 소재라 반발력도 좋지. 그러니 저걸로 치면 단타가 장타로 되고, 홈런도 많이 칠 수 있거든. 하지만 강습형 타구가 되어 수비하는 사람이 다치는 경우가 종종 생겨. 오죽하면 저 배트 들고 타자가 타석에 서면 3루수는 주자가 있어도 일단 뒤로 빠지게 하잖아.

"

그에 이어서 다른 선수가 말했다.

"잡으면 다행이지만… 그게 쉽나? 프로 구장도 아니라 그라운드 상황은 열악하고, 어떻게 튈지도 모르지. 실제로 잡지 못해 눈에 맞거나 입에 맞으면 실명하거나 이가 부러져. 타박상은 기본이고. 그래서 사회인 야구에서도 규제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지금까지 규제 이야기는 없고, 알아서 조심하는 분위기다."

그들의 말에 태성이 정리했다.

"우리 리그에서 저 배트는 자중하는 쪽이지만 규제를 하는 것도 아냐. 다만 슬럼프에 빠진 타자나 떨어진 타격감을 올리기 위해 쓰는 경우는 있지. 그러니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라. 야구하다 다치면 보험회사는 놀다가 다쳤다면서 돈 잘 안 주려고 한다. 받으려면 시간이 좀 걸려."

그들의 말에 동팔이 말했다.

"아… 그랬군요. 2부에 있었을 때는 제 공을 치는 타자가 거의 없어서 몰랐는데… 그리고 프로에선 배트에 대한 규제를 들은 적이 없었어요."

프로에선 야구 배트의 길이와 무게의 규정이 있다.

재질은 통목재로 만든 것일 것. 겉면이 고른 둥근 나무여야 할 것. 그리고 굵기는 제일 굵은 부분이 7센티 이하. 길이는 106.8센티 이하. 거기에 색은 검은색, 담황색, 다갈색에 한해 허용한다.

재질이 정해져 있으니 반발력에 자연히 제한이 걸린다.

무게도 마찬가지. 그래서 무게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당연히 프로에서 타자가 배트를 휘두를 때 속도를 높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배트를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본인의 힘을 키워야만 했다.

동팔은 상대팀에서 가져온 노란 그리고 어떤 것은 붉은 방망이를 가볍게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걸 들고 나왔을 때, 제대로 치지 못하게 던지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다가왔다.

"마지막이다! 수비 제대로 하고 집중해!!"

태성이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하필… 마지막에 단무지냐…….'

시합이 끝나는데 필요한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상대도 마냥 지고 싶지 않은지 논란이 많은 그 방망이를 들고 나왔다.

그러자 말을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내야수들은 평상시보다 더 멀리 뒤로 갔다.

하지만 마운드에 있는 동팔이 뒤로 갈 수는 없었다.

'치지 못하게만 하자.'

이전이라면 긴장하지 않을 동팔이었지만 수비의 위치를 뒤로 돌리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였지만 조심해서 던져야 했다.

앗! 하는 순간 부상을 당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본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을 제대로 칠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할 건 조심해야 했다.

"후우……."

동팔은 심호흡을 한 다음 태성이 보낸 사인대로 공을 뿌렸다.

휭~ 퍽.

동팔의 오래된 주력구인 커브가 타자의 배트를 피해 아래로 꺾였다.

가볍게 헛스윙을 유도한 후, 다음에 던진 공은 더 빠르게 날아가는 투심 패스트 볼. 종이 아닌 횡적으로 변하는 빠른 공에 타자는 치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스트~라이크!!"

이제 남은 마지막 카운트는 하나.

태성의 사인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카운트에서 변화구를 이용한 헛스윙 유도였다.

하지만 단 한 번으로 게임을 끝내고 싶었던 동팔은 가만히 있더라도 아웃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 던지는 공은 아래쪽으로 꽉 찬 직구였다.

휙~!!

'높은 공이 아니니, 맞더라도 장타가 될 가능성은 없어. 그리고 회전수도 많이 주는 이상 더욱더…….'

가만히 있으면 아웃, 제대로 못 맞추면 땅볼. 설령 잘 맞더라도 단타가 전부인 공이었다.

하지만 동팔은 지금 타자가 들고 있는 방망이를 너무 가볍게 봤다.

때론 실력이 아니라 장비로 안타와 홈런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빠악!!

동팔이 던진 공은 너무 정직했다. 비록 아래쪽으로 향한 공이었지만 타자가 치기엔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타자가 친 타구는 마운드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 한 번 낮게 튕기더니 공을 던진 후 마무리 동작을 하고 있던 동팔의 왼쪽 무릎을 강타했다.

뻑!!

"아악!!"

동팔이 맞은 공은 옆으로 빠르게 굴러 유격수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그리고 유격수는 재빨리 1루로 송구하여 타자를 잡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아웃 카운트가 아니었다.

"동팔아!! 괜찮냐!!"

태성을 비롯한 다른 선수들과 더그아웃에서 지켜보고 있던 민희가 전부 쓰러진 동팔에게 달려갔다.

상대팀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1루에서 아웃된 선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네… 잠시만……."

동팔은 부축을 받아 겨우 일어났지만 다시 걸으려고 하자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자 태성이 받치며 말했다.

"안 되겠다. 너 무리하지 마. 대성아. 너 빨리 전화해서 구급차 불러! 어서!!"

"네! 형!!"

시합은 이겼다.

하지만 우랑우탄팀은 절대적인 전력인 동팔을 잃고 말았다.

구급차를 타고 가까운 병원에 도착한 동팔은 응급처치를 하고 더 큰 병원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정밀 검진을 받은 결과는 믿고 싶지 않았다.

"이거 심각하네… 맞은 곳이 왼쪽 무릎이라고 했죠? 공은 어느 손으로 던지죠?"

"오른손이요."

"오른손? 그럼 이렇게 던지게 되면… 공을 던져야 칠 수 있으니 타이밍은 이 정도려나……?"

의사는 앉은 상태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을 어설프게 보이더니 말했다.

"하필 맞은 곳이 지지하고 있던 곳이라 충격이 더 크게 왔습니다. 반대쪽이었다면 들린 다리가 충격이 흩어지는데… 그게 아니에요. 예를 들면 망치와 모루를 생각하시면 돼요. 지지대를 대고 맞느냐, 아니냐의 차이처럼 큽니다."

의사는 그 말을 하고 손으로 그 차이를 보여주었다.

말만 했을 때와는 달리, 직접 보여주자 얼마나 큰 차이인지 알게 되었다.

"여기 손뼉을 칠 때 이렇게 공중에 놓고 치면 타격이 잘 안 되죠? 반면 이렇게 책상 위에 놓고 치면 같은 속도로 때려도 타격이 더 큽니다."

"네……."

"만약 오른쪽에 맞았다면 단순 타박상으로 끝났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하필 반대쪽이라 근육과 인대의 손상이 큽니다. 적어도 3개월은 안정을 취하세요. 정 불안하면 하체를 쓰지 않는 훈련만 하셔야 합니다. 시합은 무리예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에 동팔은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제가 안 나가면… 팀은……."

그러자 의사는 아직 말하지 않은 더 나쁜 소식을 전했다.

"그것도 그나마 제일 나은 겁니다. 어쩌면 인대나 힘줄이 끊어질 수도, 아니 이미 끊어졌을 수도 있어요. 그럼 영원히 재기할 수 없습니다. 답답하시겠지만 이것이 최선이에요."

"……."

의사의 말에 동팔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왼쪽 무릎이 빨리 회복하려면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깁스를 할 테니까 일주에 한 번씩 와서 새로 하셔야 합니다. 제일 좋은 건 목발도 하지 않고 휠체어로 생활하시는 거예요."

무엇보다 휠체어라는 단어를 듣자 지금 자신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번에 다가왔다.

"그러니 제대로, 빨리 회복하려면 치료에 전념하세요. 괜히 조급하게 움직이다가 더 크게 다쳐서 후회하지 마시고요."

무릎을 다친 이후, 동팔은 더 이상 레슨장에 가지 못했다.

사장이 걱정할 것이 염려했고, 그도 의사의 말대로 회복에 전념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하며 동팔을 위로했다.

그 이후로 동팔은 걸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이용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오빠. 이거 사왔어요. 악력 훈련에 좋은 거래요."

"고마워. 민희야. 괜히 폐만 끼치고……."

"폐는 무슨……."

동팔은 민희가 사가지고 온 작은 운동기구를 손에 쥐었다. 손에 쥐기 좋은 형태에 탄성이 강한 스프링 4개가 사이에 있었다.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무릎을 사용할 수 없으니… 이거라도 해야지. 그리고 오늘도 부탁해."

"네."

민희는 익숙하게 동팔이 탄 휠체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민희는 나가는 길에 마주친 동팔의 엄마와 인사를 나눴다.

"저희 잠시 나갔다 올게요."

"그래라. 날이 길어졌지만 너무 늦게 오진 말고."

"네."

동팔의 엄마는 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역시 짚신도 짝이 있다고 그러더니… 안 좋게 되었다고 버리는 사람보다 힘들 때 같이 있어 주는 사람이 진짜지. 진짜."

아직 두 사람이 사귄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동팔의 어머니는 이미 두 사람의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동팔과 민희가 간 곳은 가까운 헬스장.

동팔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금 집안의 지원이 있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오자 트레이너가 반겼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그거 하시려는 거죠?"

"네. 부탁드립니다."

동팔이 여기에서 하는 운동은 철저히 상체 운동으로 제한됐다.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온 동팔을 호기심으로 봤지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헬스 기구를 사용하면서 자세는 동팔이 잡았지만 자리는 민희가 뒤에서 받쳐줬다. 그리고 무게를 바꾸려고 할 때엔 트레이너가 와서 도와주었다.

약 1시간의 웨이트 트레이닝이 끝나면 동팔은 민희의 도움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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